🏠설교명장말씀을 찾고, 설교를 읽다명장 게시판 홈

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1개 · 1 / 1쪽 · 한 쪽 20개

임정태 목사의 목사 안수식을 보며 떠올린 10년 전 자신

설교자는 지난주 월요일 임정태 목사의 목사 안수식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그 자리에서 설교자는 안수받는 임 목사가 아니라 자신의 10년 전 모습을 떠올렸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10년 전 안수를 받을 때 이미 비용 계산을 끝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비용을 계산하는 자신을 보며 절망스러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선택했을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그래서 오히려 감사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는 대가를 알지 못한 채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 사랑이 좋아서 따라왔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런 자신의 고백을 통해 신앙의 길이 계산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주님의 사랑 앞에 날마다 다시 결단해야 하는 길임을 나눕니다.

이용휘 · 2026-10-18

설교 내 2–2문단 · 예화 9

본문 발췌 보기

왜냐하면 여러분과 제가 모두 그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걷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의 길을 걷기를 거부하면서도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제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고인이 된 기독교 지도자 존 스토트 목사는 그의 저서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서 현대 교회를 향해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고, 예수님을 따르는 데 얼마나 많은 대가가 필요한지 단 한 번도 숙고해 보지 않은 채 그분을 따르기 시작한다. 그 결과 기독교 세계는 소위 명목상 기독교라는 매우 수치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뼈 아픈 진단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러분과 저에게도 들어맞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과 저에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을 철저히 계산할 것을 촉구합니다. '성도'라는 이름,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 자체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는 의미가 새겨져 있습니다. 성도는 따로, 제자 따로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철저한 헌신은 목회자나 선교사 같은 특별한 사역자들만 가야 하는 길이라고 스스로 타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은 사역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고백을 너무나 쉽게 해 버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 예수님 알아요. 그분의 생각을 들어보니 좋은 말 같아요. 그의 의견에 동의해요. 하지만 그분께 헌신하지 않습니다.' 마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사랑한다는 말이 결혼 서약이라는 그 의미가 너무나 가벼워진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과 저의 모습과 같습니다. 물론 우리의 구원과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는 그 강렬한 끌림이 인위적인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영적 생명력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적 생명력이 주어진 이후에, 마치 커플이 사랑에 빠진 후에 일생을 함께하기로 결혼을 결심하고 만남을 지속하는 것은 그들의 지성과 의지를 다한 선택과 결정이듯이, 은혜로 믿음을 선물받은 성도는 반드시 자신의 뜻과 의지를 다해 그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은 결코 복음을 사기치듯 팔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알려주심과 동시에, 그분을 따를 때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에서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은 끊임없이 무리들과 제자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무리 안에는 훗날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게 될 제자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처음에는 온전치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위대한 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러 가신다고 하자 '주님,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항변합니다. 스승의 참혹한 미래가 자신의 미래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메시아를 그려놓고, 주님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길을 가시자 움직여 주지 않자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로막았던 제자들의 모습이 여러분과 저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 자꾸 우리는 그 기준을 낮추고 타협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저에게 오늘 말씀이 무겁게만 들린다면, 왜 무겁게만 들릴까요? 그것은 여러분과 제가 무엇을 얻었는지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 소중함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서 46절에 천국 비유를 이렇게 이야기하죠.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아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귀한 진주 하나를 발견함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 알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부를 가지고 그 밭을 산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에게는 비용 계산이 끝났습니다. 가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에 기쁨으로 값을 지불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은혜는 거저받은 것이죠.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가를 지불하셨죠.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사실 간음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서 잊어버리고 주님을 사랑하지도, 주님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맹목적인 무리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참된 가치를 알아보고 그 가치를 따르는 자,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 헌신된 소수를 찾으십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얻게 되는 영광스러운 유익과 그분을 따르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를 저울에 달아보십시오. 비용을 철저히 계산하지 않는 자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작은 유혹이나 환난이 닥치면 곧바로 신앙을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비용 계산 없이 제자인 척하는 자들은 쟁기를 잡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 자, 자꾸 세상을 향해 뒤돌아보는 자와 같을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해야 할 막대한 비용이 있습니다. 포기해야 할 세상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감수해야 할 억울함과 고난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가 얻는 구원과 영생은 세상의 그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유익입니다. 그럼 부모가 자녀를 키우며 들어가는 막대한 시간과 재정이 아까워 자녀를 포기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수고를 뛰어넘는 생명의 기쁨과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사랑이, 그 사랑 앞에 우리가 그 십자가를 지고 나를 부인하며 주님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제 밤에 한 번, 저를 향해 질문해 보았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에 임정태 목사님의 목사 안수식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 안수식을 보면서, 임정태 목사님은 안 보고 저의 10년 전 모습을 보았습니다. 목사 수품 받은 지 10년이 되었거든요. 우리 담임 목사님은 목회 벌써 40년 하셨다고 하는데, 그거에 비하면 조금 배운 쪼물레기입니다. 그런데 그 10년 전에 목사 수품 받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비용 계산을 다 끝냈다고 생각을 했는데, 여전히 비용 계산하는 저를 보면서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만약에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선택했을까? 내가 만약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고 비용 계산을 했더라면 선택했을까?' 자신있게 대답을 못 하겠더라고요. 근데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과 저는 대부분 주님을 따르는 데, 주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는 데 이러한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는 것을 모르고, 그냥 그 사랑만 생각하고, 그냥 그것이 좋아서 주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제가 저희 아내한테 결혼하기 전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유머가 없는 사람이니까, 너를 재미있게 웃겨 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너무 솔직하죠.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후에 시간이 지난 후에, 저희 아내가 저에게 뭐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게 감사죠. '이 정도일 줄 몰랐으니깐,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잘 모르고 사실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냥 주님의 그 사랑이 좋아서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비용 계산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 앞에 여전히 세상과 겸하여 섬기며, 양다리를 걸치며 주님을 적당히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만을 따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담임 목사님께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담임 목사님 지금 40년 목회 생활을 하시면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 길을 걸어가시겠습니까? 만약이란 없지만, 다시 태어날 일은 없지만,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걸어가시겠습니까? 질문은 안 해 봤습니다. 그렇지만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담임 목사님을 볼 때, 그 길을 계속 걸어가실 것 같더라고요. 왜냐면 주님을 너무 사랑해서, 그 복음을 증언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귀해서, 매일 강단에서 표현하시는 것처럼 '나 같은 사람을 써 주시는 거 자체가 너무나 감사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쭉 뚜벅뚜벅 걸어가실 것 같더라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어떠하십니까? 신앙생활한 지 너무나 오래되었는데, 여전히 그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나 같은 자를 불러 주시고 사용하여 주시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귀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여전히 그냥 세상에 작은 것 좀 반짝여 보이는 그런 것들의 눈이 멀고, 여전히 주님과 저울질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오늘 주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이야기하십니다. 무리와 제자들에게, 다른 어떤 거보다 나를 더 우선순위해 두라고. 너를 부인하고, 너보다 더 그 너의 삶의 참 주인 되신 주님을 따르라고. 네가 움켜지고 있는 그 소유를 내려놓고, 영원한 생명이신 그 주님을 붙잡고 따르기로 결단하라고, 여러분과 저에게 요청하십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그 비용 계산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사랑과 그 영광스러움 앞에, 아까워하지 말고 주님만을 보고 따르실 수 있기를,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