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과 성 쌓기의 결과
설교자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 성을 쌓는 것을 바벨탑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인간이 발견한 것 가운데 하나가 성이며, 그것이 바로 바벨탑이라는 것입니다. 타인의 공격에서 나를 지키려고 성을 쌓다 보면, 결국 사람들과 단절되는 결과가 생깁니다. 설교자는 성을 높이 쌓을수록 사람은 스스로 성 안에 갇히고, 결국 홀로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 장면은 자기 방어가 오히려 관계를 끊고 고립을 가져오는 과정으로 제시됩니다. 설교자는 이 경고를 통해 사람을 믿고 관계 안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설교 내 1–1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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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피하지 말고, 꼭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가장 중요한 생각은, 그 제자가 내 제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속한 사람인데, 하나님이 나한테 보낸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보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남편도 누가 보내 준 사람이라고요?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이고요. 여러분의 아내도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이에요. 여러분을 속이려는 친구도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셨습니다. 이 제자들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나한테 보내 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나는 이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주고 축복해 주고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일 가지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보통 제자라 부르면, 내가 이 사람한테 무슨 일을 시키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전문성을 훈련시키고 전수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사랑이었습니다. 부족하고 흠이 있고 미숙해도, 그걸 다 껴안고, 이 사람이 언젠가 성숙해질 때까지 예수님 죽고 나서 성령 받을 것을 아시고, 그때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어 주고 기다려 주고 사랑했던 것이 제자 훈련이었다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 훈련을 하시고 나서, 두 번째로 예수님은 기도를 하시는데,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도를 하십니다. 11절부터 다시 보시겠습니다. 11절 한번 같이 읽어 주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어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옵소서.' 11절에 보면 두 가지 기도가 나와요. 첫째는 '아버지여 저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이고요. 두 번째는 '아버지여 하나님이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먼저 하나되게 해 달라는 기도부터 시작을 하겠습니다. 사람의 본능, 죄인의 본질이 분열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아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이면 얼마 가지 못해서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서로 평가하고, 서로 비판하고 헤어지는 게 인간의 본능입니다. 가만 놔두면 꼭 인간은 헤어지게 되 있어요. 가만 놔두면 인간이 서로서로 이렇게 사랑하고 협동하고 하나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인간은 서로 헤어지지 못해서 앙탈을 합니다. 그게 인간의 죄성이고 본능이에요. 사람의 본능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에요. 가만 놔두면 서로 미워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에요. 사랑의 본능은 나눔이 아니라 소유예요. 자꾸 가지려고 해요. 주려고 하지 않고, 자꾸 내 것을 만들려는 게 인간의 본능이에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에요. 처음에는 평화한 거 같지요. 처음에는 나누어 줄 것 같지요. 처음에는 사랑하는 것 같지요. 그러나 부패한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그 본질이 다 드러나는 거예요. 인간은 일치하기보다는 자꾸 분열해요. 분열의 영이 있어요. 왜 이렇게 사람들은 자꾸 가만 놔두면 싸우고 비판하고 헤어질까? 이유가 간단합니다. 그 속에 죄가 있기 때문에, 죄 뿌리가 있기 때문에, 도덕과 교양과 훈련을 통해서는 처음에는 안 보여요. 그러나 그것이 지나가면 인간 안에 죄성의 뿌리가 이렇게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람은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소유의 욕망,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권력의 욕망, 사람을 믿지 않는 의심의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잘 믿다가도 의심하고, 하나됐다고 하다가 또 편가르게 하고 싸우는 것이 인간입니다. 제일 큰 숙제가 동업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나는 끝까지는 사람 보면 머리 숙이고 싶어요. 그게은 어렵습니다. 꼭은 나중에 헤어집니다. 사탄은 분열의 영입니다. 마귀가 들어오면 어떤 이유를 들어서도 싸우고요. 이게 어디까지 싸울까요? 교회도 싸워요. 그 교회 싸우는 거 보셨어요? 아, 뭐 많이 받겠지요. 안 싸우는 교회가 없고요. 분열 안 하는 교회가 없어요. 사랑에서 서로 헤어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파송해서요. 근데 인간은 자꾸 이렇게 싸워서 헤어져요. 성령은 연합과 일치의 영입니다. 이 성령이 임하면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서 틀린 것도 하나로 만들고, 다른 것도 새롭게 하나로 만드는 영이 성령의 영입니다. 사탄의 영은 분열과 미움과 비판과 싸움으로 결론을 짓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화해자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화목 재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한테 부탁한 게 뭐예요? 세상을 화목케 하라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천사도 감당할 수 없는 직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화목케 하는 축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가는 곳마다 화해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트라블 메이커가 되지 마시고 피스메이커가 되십시오. 싸우면 붙여주고, 이혼하면 붙여주고, 나가면 돌아오게 하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화해자의 특징이 뭔줄 아세요? 십자가 짓는 거예요. 그냥 있어서는 화해가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기 위하여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던 것처럼, 화해자의 대가는 언제나 십자가를 짓는 것입니다. '주여, 저들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 기도였어요.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12절에 있는 11절에 있는데, 11절 12절에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아버지여, 저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옵소서.' 우선 12절을 읽겠습니다. 12절 시작.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오사 지키었나이다. 그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이는 멸망할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심이라.' 예수님의 관심은 11절에도 12절에도 보존하게 해 달라. 제자들을 지켜 달라. 보호해 달라, 보존해 달라.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11절에서는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존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셨고, 12절에도 똑같이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여 지키었나이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11절에는 하나님이 보존하게 해 달라는 기도고, 12절에는 '내가 저들을 보존하여 지켰나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성도의 보존, 안전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지키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켜 주지 아니하면, 우리가 내가 나를 아무리 지켜도 잘 안 돼요. 인간이 발견한 것 중에 하나가 성입니다. 성.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성을 쌓는 거예요. 그게 바벨탑이에요. 성을 쌓다 보면 무슨 결과가 오느냐? 성을 높이 쌓다 보면, 타인의 공격에서부터 날 지키기 위해서 성을 쌓다 보면은 타인과 단절되는 거예요. 인간은 인간의 외로움이란 누가 외롭게 만들어 준 게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 거예요. 여러분 외롭다는 사람한테 속지 마세요. '나는 외로워' 이런 거. 뭘 외로워요? 자기가 외로움을 만들었지. 이 사람 끊었지. 저 사람 끊었지. 혼자 골방에 들어가 이집 입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안 내려올 방법이 어디 있어요? 외로운 사람 제가 말합니다. 이불을 팍 차고 나오십시오. 아멘. 그리고 나가 사람 만나세요. 그럼 안 외로워져요. 이래서 뭐 싫고 절에서 싫고 다 [한숨] 스스로 외로움을 만나는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성을 쌓으면 첫째 타인과 단절되고요. 두 번째 또 뭐가 있어요? 스스로 성 안에 갇치는 거예요. 그리고 홀로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지켜 주지 않으면 우리가 어찌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운전해도, 술 먹고 뒤에서 박는데 어떻게 해요? 내 노력으로만 세상은 사라지지 않아요. 내 노력 내가 성실하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요. 하나님의 보호와 보존이 필요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보호. 시편 23편 1절부터 4절에 보면은 유명한 말씀이 있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놓이시며, 잔잔한 시내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비록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아니하시나이다.' 이게 뭐냐면 하나님의 보호, 하나님의 보전.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렇게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자녀요. 여러분, 여러분이 팔이 힘이 세 가지고 자녀를 붙잡고 있을 때까지는 여러분 품안에 있어요. 근데 이 아이들이 품 안에 오래 있지 않아요. 다 떠납니다. 쫓아다니면서 잔소리 하겠어요. 쫓아다니면서 밥을 먹여 주겠어요. 하나님이 보호해 줘야지요. 그래서 꼭 기도해야 돼요. '나는 더 이상 보호할 능력이 없다.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이 지켜 주옵소서.' 아멘. 이렇게 기도하는 거예요. 여러분 남편을 다 어떻게 지켜요? 술직 가는데 하나님이 지켜 줘야죠. 하나님이 여러분의 안에도 하나님이 지켜주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버지여 지켜 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세 번째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이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했었어요. 13절을 보겠습니다. 시작.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기독교의 교리 중에 독특한 교리는 기쁨의 교리입니다. 기독교는 슬픔의 종교가 아니라 기쁨의 종교고요. 좌절의 종교가 아니라 희망의 종교입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