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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1개 · 1 / 1쪽 · 한 쪽 20개

열한 살 아동 학대 피해자의 회복

설교자는 오랫동안 집에 갇혀 학대와 굶주림을 겪은 11살 소녀의 신문 기사를 소개합니다. 아이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가스 배관을 타고 집 밖으로 탈출했습니다. 발견 당시 아이의 키는 120cm였고 몸무게는 16kg에 불과했으며, 같은 나이 평균 몸무게는 39kg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슈퍼마켓 주인은 여섯 살쯤 되어 보인다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일주일 뒤 기사에는 아이의 몸무게가 4kg 늘었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설교자는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고 나눕니다. 그는 회복의 가장 중요한 비결이 억압된 공간을 벗어난 데 있다고 묻고 답합니다. 이를 신앙에 적용하여,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자리에 머문 채 회복을 바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회개하고 잘못된 생활을 청산해야 영혼도 회복된다고 강조합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5–6문단 · 예화 4

본문 발췌 보기

오늘 저는 초대받아 오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래 교회를 다녔지만 몸은 늘 주일에 한 번씩 여기 와 있지만, 이게 뭔지를 잘 맛을 못 보신 분에게 특별한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매마른 걸 안 매마르게 해 달라고 자꾸 떼 쓰는 바람에, 매마른 곳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걸 못 배운 게 우리 아닙니까? 어머니를 보면 매마른 곳에서도 만족하시니까 감당할 장사가 없잖아요. 사단이 뭘로 유혹하겠냐고요? 13평 괜찮다는데, 이만하면 됐지, 저 자꾸 넓은데 가려 그러느냐, 그러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속으로 한번 대답해 보세요. 아니, 하나님은 여러분을 풍성하게 인도하기를 원하신다는데, 물된 동산같이 인도해 주신다는데, 내 잔이 넘치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왜 맨날 이렇게 빈곤합니까? 왜 우리는 맨날 이렇게 매마르게 사는 거냐고요? 아니, 오늘 처음 오신 분은 그래서 그렇다 치고, 오래 예수 믿는 여러분, 어떻게 왜 우리 내면에 이런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없어지고, 늘 낙심하고, 걸핏하면 절망에 빠지고, 이상한 사람 만나 가지고 상처를 받으면 풀리지 않고, 계속 그 마음의 분노 때문에 내 마음의 평정신을 잃어버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 물론 너무나 광야 같은 악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매순간 기쁘고 매순간 행복할 수는 없잖아요. 그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믿음 좋아도 이거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뭐죠? 그런 순간마다 그 매마른 광야를 만나는 순간마다 인도하심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의 공급이 다시 흐르는 일이 일어나면 되는데, 그게 없잖아요. 아, 내가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하는데, 어떤 분한테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잖아요. 제가 이 질문을 가지고 묵상을 하면서, '주님은 이처럼 우리를 풍성하게 인도하기 원하시는데, 왜 많은 성도님들은 이렇게 매말라 가나?' 이걸 생각하다가, 또 다른 오래 전에 나온 그 아동학대 사건 신문 기사가 생각이 난 거죠. 아마 제가 말씀드리면 기억하신 분이 많으실 거예요. 그 당시 그 아이가 11살 여자였는데요. 오랫동안 집안에 갇혀 지냈지도 못하고, 그렇게 학대를 당한 사건입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그 아이가, 집청이었나 보죠. 가스 배관을 타고 집 밖으로 탈출을 한 거예요. 얼마나 그동안 굶주였는지, 11살짜리 아이의 키가 120cm라고 하는데요. 그 당시 우리나라 7살 나이 평균 키가 120이래요. 11살 나이가 키가 120이고, 몸무게가 16kg이었대요. 우리나라 그 당시 11살짜리 아이들 평균 몸무게가 39kg이었대요. 자기 또 애들이 다 평균이 39kg인데 16kg이었다는 거예요. 얼마나 굶주였는지 아시겠죠? 어죽께요. 그 아이를 발견한 슈퍼마켓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아, 여자인데요. 한 여섯 살쯤 돼 보입니다.' 이렇게 말했다는 거죠. 한 일주일쯤 뒤에 참 반가운 소식인데, 제 마음이 참 씁쓸하고 슬펐던 신문 기사 하나를 봤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아빠의 학대를 피해 탈출한 영양실조 11살 딸, 일주일 만에 몸무게가 4kg 늘어.' 이게 너무 반가우면서도 참 너무 씁쓸하더라고요. 아니, 도대체 얼마나 극심한 영양 실조에 시달렸으면, 일주일 만에 4kg이 늘어난 거예요? 11살짜리 애가, 남의 가정 사정을 모르니까 함부로 정죄할 마음은 없습니다만, 이걸 우리 삶에, 신앙생활에 적용해 보자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질문을 또 드려 볼게요. 여러분, 그 아이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16kg 하던 그 몸무게가 일주일 만에 4kg이 늘어날 정도로 회복이 된 겁니까? 가장 중요한 비결이 뭐죠? 배관 타고 탈출했잖아요. 자기가 거기에 억압돼 있던 그 공간을 벗어났기 때문 아닙니까? 이걸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거거든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이 점점 매말라가고, 감사가 사라지고, 삶의 의욕은 없어지고, 기쁨도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뭐 있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 주시는데." 이런 원망이 넘쳐나는 여러분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를 혼미하게 하는 그 영역을 벗어나려고 애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려고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그 아이처럼 가스 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해야 회복이 일어나듯이, 우리의 신앙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곳을 배회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 생활은 청산하지 않으면서, 제가 돌아보면은요. 목사들인데도 어릴 때 항상 하나님 없어. 하나도 안 도와줘. 그걸 제가 많이 불평한 기억이 나거든요. 도와줄 수 없는 불신앙의 자리에 머물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했다고요. 20대 초반에 시카고로 이민 가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 상황에서 진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제가 은혜를 누리기 시작한 출발이 되는 거예요. 저는 가끔씩요. 저는 3월 15일 날 시카고로 이민을 갔는데, 그 날이 영적으로 내 생일이라고 얘기를 해요. 제가 미국에 안 갔으면, 시카고에 가지 않았으면, 그 절망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절대로 목사가 안 됐습니다. 교회도 안 나갈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 인격적으로 제가 애쓰지도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뭘 강조하고 싶은 겁니까? 여러분, 이런 점에서 저는 기독교 변증가거든요. CS 루이스라는 분. 여러분, 신앙생활 처음 하시거나, 오늘 초대 오신 분들, CS 루이스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십시오. 어떤 책이라도 괜찮아요. 이분이 정말 대단한 분인데요. 이분이 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우리가 그냥 내 힘을 의지하여 전도해 보면, 그런 분들이 옛날에 많았습니다. "난 주먹을 믿어. 난 내 주먹을 믿지. 난 하나님 없어도 돼." 너무나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려고 바둥바둥 그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 종이 신문이 있을 때, 신문 보내라고 몰입하고 있으면, 아내가 처음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로 "식사하세요. 밥 먹으라고요." 안 들려요. 신문에 내가 몰입하고 있으면, 밥 먹으라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거든요. 오늘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풍요로운 삶을 원하세요. 계속 말씀하십니다. "진짜 얘들아, 땅이 다가 아니라고, 왜 그렇게 바둥바둥 그리냐고." 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영혼이 없다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설명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 반통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안 그렇던가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건 전부이고, 나는 영혼이 없는 짐승하고 똑같이, 나 우리 강아지를 보면서, 이 강아지가 어떨 때는 나하고 차이가 뭐지? 걔도 모든 흰혈구를 다 갖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동물들하고 저하고의 결정적인 차이는, 저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 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려요. 그리고 집에 가서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땅이 끝이라고 한다면,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잖아요. 설명이 안 되는 그 많은 일들이, 왜 이후에 연장되는 그 부분을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은 계속 그 말씀을 해 주세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참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본문에서 "다 배불리 먹고" 이런 결과가 이제 결론이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놀라운 결론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어땠는 줄 아십니까? 자, 15절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마태복음 14장 15절입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두 대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빈 들은 결핍의 상징 아닙니까? 게다가 제자들이 관찰한 그대로, 이미 밤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구할 수 없다. 그 이야기를 지금 고백한 거거든요. 그래서 빈 들이요. 이거가 어떻게 다 배불리 먹고의 재료가 됐나? 이게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결핍의 상징인 빈 들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기에 지금 밤까지 찾아왔는데, 놀라운 건 그게 역설적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배불리 먹게 된 원인이었다는 거예요. 다른 데서 그날 군중들 먹일 수 있는 양식을 구해 왔으면, 예수님의 기적에 음식은 나오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요. 결핍이 기적을 만든 재료가 된 거거든요. 빈 들이 다 배불리 먹고, 이 풍요로움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누가 저한테, "아니 그 장소가 빈 들이었는데, 거기는 결핍이었는데,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저한테 물으시면, 저는 대답 간단하게 다 그거요. 정답은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결핍이 재료가 된 겁니다. 오늘 초대받아 오신 분들과 우리 교회 오래 다니지만 복음이 뭔지 모르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핵심이 이거거든요. 여러분, 살다 보면 빈 들이 오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차원의 빈 들이 오고, 관계적으로 배신당해서 상처받는 빈 들이 오고,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마음을 나눌 길이 없어 가지고 막 절망하고, 이게 인생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이 그때 이미 분당 우리 교회 만 명에 단임 목사로 딱 계획을 하고 계셔 가지고, 저희에게 빈 들을 좀 빨리 보내 주셨어요. 저는 20대 초에 인생의 빈 들, 인생의 쓴맛을 본 거거든요. 지금도 기억해요. 절망적인 제 상황, 환경은요. 아니, 내가 한국 살다가 미국 갔는데, 그때 경제 격차가 미국하고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이만큼 우리나라가 낙후가 됐는데, 세상에, 난 미국이라고 갔는데, 미국에서 저 화장실 가는데 새벽에 불을 켜면은 바퀴벌레들이 막 놀라가고, 이것 왜 일찍 일어나서 그러면서 막 바퀴벌레가 도망가는 그 그거, 아, 내가 한국에도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이 목조 건물, 막 미국에 낡아 빠진 100년된 목조 건물에 제가 사는데, 하여튼 한심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셨죠. 온 남매 중에 뚝 떨어지는 막내죠. 대학교 2학년 맞추고 이민을 갔는데, 거기서 다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학비를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이게 절망이 온 거죠. 빈 들이 찾아왔죠. 자꾸 좌절이 겹치니까, 그냥 죽고 싶더라고요. 조금만 더 제가 용감했으면, 뭐 도전했을지 모르죠. 무서워서 못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에요. 그 빈 들들이 저로 하여금 놀랍게도 배불리 먹고, 이 인생을 만들어 준 거 아닙니까? 배불리 먹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한테, 아 참, 저희 교회가요, 지금도 자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힘듭니다. 그 오연을 하지 말아 주세요. 얼마나 주 목사가 욕심이 많아 가지고, 나까지 신도 만들려고 그냥 저렇게 쓴다고 그러는데, 진짜 오해하세요. 저희는요, 일만 소도 파송 운동으로 만 명 이상을 다 파송한 교회예요. 이 오해만 가지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왜 그 영화 한편 참 재밌는 거 보고 나면, 막 진짜 우리에 보고, 너 그거 봐야 된다. 말 안 들어, 너 진짜 이 영화는 봐야 된다. 아직도 안 봤니? 같이 가져 나오고, 이런 영화가 있잖아요. 최근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이 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한 거예요. 여러분이 마음 말고는 다른 거 없습니다. 바로 어제인데요.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 마음을 울린 찬양, 이게 참, 원래부터 잘 아는 곡인데, 하나님은 때에 따라 새롭게 은혜를 주세요. 광야를 지나며, 이런 제목의 찬양인데, 가사가 이렇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써 있네." 제가 이 가사가 너무 어제 와닿 가지고요. 왜 시카고에 만 명 때 저를 보는 거 같으니까요. "왜 나를 깊은 어둠에 가두어 두느냐고, 막 떼지를하고, 당신이 신이냐고, 막 이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