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예배당 태풍 피해와 면장의 도움
설교자는 사천 예배당이 농지 경계를 약 1미터 넘어 지어져 사천군청에서 문제 삼았던 일을 말합니다. 설교자는 앞마당을 넓히기 위해 사택 쪽으로 경계를 넘어 지었는데, 그 땅은 곧 대지로 바뀔 땅이었다고 설명합니다. 1979년 8월에는 태풍이 두 번 지나가 큰 피해가 났고, 군에서는 복구를 위해 올라가는 김에 잘못 지은 건물을 뜯겠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설교자는 블록 공장에서 시멘트를 제대로 넣어 단단한 블록을 찍어 달라고 부탁해 정성껏 쌓아 올렸다고 회고합니다. 포클레인이 온다는 날짜가 다가오자 설교자는 잠도 오지 않고 식욕도 잃었습니다. 그는 면장 이영우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면장도 설교자를 위해 애를 태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사건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워졌고, 그 무렵 이영우 면장이 원래 집이 있던 곳이라는 서류를 군에 제출해 통과시켰다고 전해집니다. 설교자는 그 사건이 자신을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니며 자신은 그것을 기도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덧붙입니다.
설교 내 53–60문단 · 예화 6
본문 발췌 보기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제가 어려운 일들이 있으면 기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내 힘으로 안 되는데. 그렇게 기도하게 되면 예기치 않은 일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1979년도에 제가 아까 얘기한 사천에 있을 때 예배당을 지으면서 좀 무리한 일을 했어요. 땅이 두 필지가 있는데 한 필지는 대지고 한 필지는 농지인 거야. 농지에는 사택은 지을 수 있어, 주택은. 그래서 농지에 주택을 짓고, 앞에 길가 쪽에 있는 예배당 지을 땅을 길 쪽으로 앞마당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어차피 사택을 지은 땅도 곧 대지로 변경될 것이기 때문에 앞에 마당을 남기려고 사택 쪽으로 경계를 넘어서 좀 침범해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다 내 땅이고 결국 그 땅도 대지로 될 것이고, 농지로 보존되는 땅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목이 아직은 변경 전이고 농지인데 예배당을 거기다 한 1미터 더 들어가 지었거든. 그걸 사천군청에서 문제 삼아서. 8월에 태풍이 두 개가 왔어요. 어빙이라는 태풍하고 주디라는 태풍이 8월 초에 한 번, 8월 중순에 한 번, 두 번 할퀴고 지나면서 그때 태풍이 얼마나 무서웠냐? 한 130명이 죽었다는, 그 당시에. 그래서 우리 성경 강좌 하는 모임이 안 됐어요. 교통이 다 두절되어서 길이 끊겨 차가 못 다닐 정도로 무시무시한 태풍이 지나갔는데. 군에서 또 연락이 뭐가 왔느냐? 태풍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 굴착기나 이런 것이 그쪽에 올라갈 텐데 올라간 김에 우리가, 내가 잘못 지은 걸 뜯는다는 거야. 아이고, 저는 여간해서 금식 안 하고 철야 잘 안 하는데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말라. 그게 어떻게 지은 집이냐? 제가 사천에 가서 블록 공장에 가 보니까 블록에 시멘트가 너무 적게 들어갔어. 보통 그런 블록 살 때 깎아 달라고 하면서 사잖아요. 제가 달라는 대로, 얼마 더 쳐 드릴 테니까 시멘트를 제대로 넣어서 단단한 블록을 만들어 달라 하니까 사장이 쳐다보더라고요. 보통 깎자고 하잖아요. 왜 그렇게 해야 되냐 하면 이거는 보통 사람 집을 짓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집을 지을 것이기 때문에 블록에 시멘트를 제대로 섞어서 찍어 달라. 정말 가서 보니까 다른 거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멘트가 제대로 들어간 거야. 때려 보니까 쇠 소리가 나요.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내 손으로 다 쌓아 올려서 이제 지붕 얹을 만큼 올라갔어. 진주노회 안에 블록 한 장씩 보내 주세요 해서 모금한 거잖아. 그걸 다 쌓아 올렸는데 포클레인 가지고 와서 밀어 버린다고. 여러분, 기도 안 하겠어요? 기도를 하다가 면장을 찾아갔어요. 면장은 법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다 해 주려고 하는데 법이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 이영우라는 면장,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는데 이분이 저를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나보다 더 애를 태우는 거라. 그래서 날짜가 바짝바짝 다가오는데, 그해에 태풍이 연달아 두 개나 왔기 때문에 사천에서 고성 사이 경계, 제일 먼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서 포클레인으로 밀어 버리는 걸 보고 내가 어떻게 견뎌 낼 것인가. 잠이 안 오고 밥맛이 떨어지고 진짜 살맛이 없어지는 거예요. 10월 29일인가 포클레인이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에 뭐가 있어? 1979년도 10월 26일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예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거야. 그때는 박정희가 곧 나라고 나라가 박정희야, 그냥. 그런데 박정희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러니까 나라가 질서도 없고 그냥 세상이 끝난 것처럼 됐어요. 그때 이영우 면장이 군에 가서 여기 공부상에는 없어도 원래 집이 있던 곳이다, 그렇게 서류를 해서 통과시켰대요. 그래서 포클레인 가지고 오는 걸 포기하고 지금도 예배당이 거기 있습니다. 그 뒤에 있는 농지로 되어 있는 땅을 빨리 지목 변경해서 완전히 무결하게 처리한 거예요.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나를 위해서 박정희를 쏜 건 아니죠. 나는 그걸 기도한 게 아니야. 그냥 이게 부서지지 않기만을. 여러분, 우리가 여기 땅을 산 것도 아이엠에프를 내가 낸 거 아니잖아요. 아이엠에프가 터지니까 진로 포도원이 50만 평 되는 땅이 공중분해되어 날아갈 때, 여기 진로 포도주 공장 터인데 너무 헐값에 나온 거라. 이 땅 여기 요만큼을 9천만 원에 그때 돈으로 샀는데, 여러분은 9천만 원이 안 큰지 몰라도 1998년도 9천만 원은 지금 9억 정도 되는 돈일 거야, 아마 27년, 28년 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