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11개 · 1 / 1쪽 · 한 쪽 20개
설교자가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30년 넘게 기도한 경험
설교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나눕니다. 그는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30년 넘게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한 2년 전에 그 기도에 응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응답받지 못하고 기다리는 기도 제목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응답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 기도가 다 잘못 구한 것은 아니라고 적용합니다. 오랜 시간 같은 제목을 붙들고 기도해 온 성도들도 이 자리에 계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기다림이 길어지는 기도 앞에서 낙심하기보다, 그 기도를 계속 붙들고 있는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성도들과 함께 기도의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한경진 · 2026-10-21
설교 내 1–1문단 · 예화 3
본문 발췌 보기
우리는 왜 싸울까요? 가정에서도 싸우고 직장에서도 싸우고 교회에서도 싸웁니다. 큰 소리가 오가는 싸움만 싸움이 아니죠.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또 웃는 얼굴로 싸우기도 합니다. 새벽부터 싸우는 말씀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싸움은 우리와 때려와 뗄 때려도 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도 그랬습니다. 바로 앞에서 화평을 이야기하던 야고보는 싸움이 어디서 나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는 보통 왜 싸웠냐고 묻죠. 그때 대부분은 그 사람이 먼저 그랬기 때문에 싸웠다고 합니다. 말투가 기분 나빴고 또 눈치가 없고, 그 사람이 먼저 그랬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죠. 자기밖에 몰라서 싸웠다고 합니다. 내 기준에서 보면 싸움의 원인은 언제나 저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도 그렇게 말했을까요? 우리가 눈을 돌려서 저쪽에서 싸움의 원인을 찾는 동안, 야고보가 말합니다.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싸운다는 말은 군대가 전투에 나선다는 뜻입니다. 겉으로는 조용합니다. 하지만 속에서는 욕망이 군대처럼 전혀를 갖추고 행군하고 있습니다. 내 몸속, 내 지체 안에서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결국 다른 지체들 사이로 번지죠. 그렇다면 모든 갈등이 다 내 탓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정말 상대가 잘못했을 수도 있고, 내가 부당하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수도 있죠. 오늘 본문은 누가 잘했냐, 잘못했냐를 가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일을 겪는 동안 내 마음 속에서 뭐가 싸우고 있는지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가 이 싸움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지 우리 말씀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2절 같이 보실까요?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함으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원하는 것이 있는데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살인합니다. 시기해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투고 싸우죠. 물론 우리 중에는 직접 손을 대서 사람을 해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형제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에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그 사람을 지워버리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 이런 마음도 살인입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저기 사람들은 찾아다니면서 하소연은 하는데, 정작 하나님께는 가지 않습니다. 후회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인데, 또 구하는 걸 기뻐하시는 분인데 말이죠. 결핍이 있을 때 우리는 사람에게 먼저 갑니다. 아니면 내가 직접 해결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건 아버지가 인색하셔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렇다면 구하면 다 주실까요? 어, 그건 또 아닙니다. 3절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여기서 정욕은 내가 누리고 싶은 것, 내 만족, 내 쾌락을 말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서 모두 허사하여 허의하면서 써버렸듯이, 하나님께 받아서 내 쾌락과 내 만족에 써 버리려고 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을 구하느냐만큼 무엇에 쓰려고 구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저렇게 되게 해 주세요."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기도의 중심에 제가 서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엿부는 기도가 아니라, 내 뜻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내 뜻을 알려 드리는 기도를 하는 거죠. 같은 간절함이어도 다른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정말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걸 그대로 말씀드립니다. 또 눈물로 구해도 됩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 뒤에 둡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죠. 그러나 뒤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자리에도 아마 오랜 시간 또 같은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해 오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도 제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서 30년 넘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2년 전에 응답을 받았죠.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응답받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응답받지 못했다고 해서 다 잘못 구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거두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 하는 응답을 들었죠. 간절히 구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때 내 마음은 어떻습니까? 서운하고, 또 하나님이 나는 덜 사랑하시는 거 같고, 또 이렇게까지 기도했는데 하는 그런 서운함이 올라오지는 않으신가요? 내 기도가 거절된 그 자리에서 내가 진짜 무엇을 원했는지, 내 욕망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가?" 자기 중심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에게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4절이죠.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니라." 교회 성도들에게 간음한 여인들아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신부라고 하셨죠. 신약은 그 신랑이 그리스도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한 신부가 됩니다. 그런데 신랑이 계신 집에서 한 신부된 지체들이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신랑의 뜻은 묻지 않고 자기 목만 주장합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세상과 벗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뭐가 잘 사는 건지, 뭐가 행복이고 불행인지, 세상이 정해 주는 대로 따라갑니다. 세상이 지어준 잣대를 들고 뭐가 모자라고 못 미치는지 따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교회로도 들어옵니다. 몇 명이 왔는지, 효과는 있었는지, 효율과 숫자를 제일 앞에 갔다 대죠. 야고보는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아직 벗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나 세상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스쳐 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쪽으로 마음을 정하는 순간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결혼 반지는 그대로 끼고 있습니다. 집에도 매일 들어오죠. 그래서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압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래서 남편의 마음이 아픕니다. 5절이 바로 그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여기서 말하는 시기 질은 우리가 흔히 쓰는 시기 질투와는 다릅니다. 우리의 시기 질은 남이 가진 게 탐나고, 또 남이 잘 되는 게 배 아픈 시기죠.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속하는 마음입니다. 신부가 딴 곳을 보고 있는데, 신랑이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면 그게 더 이상합니다. 질투는 사랑이 식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속이 바짝바짝 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부를 요구하십니다. 다른데 마음 두지 말고, 하나님의 신부답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데로 가서 상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신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질투는 은혜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6절 함께 읽어 보실까요?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구약의 호세야 선지자는 간음한 아내를 값을 치르고 다시 데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하신 모습이 바로 이랬습니다. "내가 어찌 너를 놓했느냐. 간음한 여인들아" 하고 부르는 소리는 바로 이 소리입니다. 내 쫓는 책망이 아니라 붙드는 책망입니다. 아내를 갚고 다시 찾아온 그 일을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와 겸손한 자를 다르게 대하십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대적하신다. 어, 이것만큼 무섭고 또 큰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맞서는 줄도 모르고 맞설 때가 있습니다. 잘난 척하는 것만이 교만이 아닙니다. "나도 틀릴 수 있다" 하는 가능성을 닫아두는 것도 교만입니다. "내 생각이 맞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문을 닫아 버리는 거죠. "제가 틀렸다면 고쳐 주십시오" 하고 열어두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정욕을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걸 인정하는 자리가 바로 낮은 자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더 큰 은혜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7절부터는 연달아서 명령이 나옵니다. 전부 은혜를 받은 너희에게, 또 교회 공동체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명령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보겠습니다. 첫째는 복종하고 대적하십시오. 우리 속의 욕망은 군대처럼 행군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방향을 바꿔서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겁니다. 마귀는 비방하는 자, 고발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서로 싸울 때, 우리가 서로 비방하고 싸울 때 가장 좋아하는 자가 누구일까요? 형제를 향하던 공격을 이제 그 공격의 방향을 돌려서,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그 비방을 향해 서십시오. 형제를 비방하면서 마귀를 대적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8절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신다고 약속합니다. 탕자가 아직 멀리 있을 때 아버지가 그 탕자를 보고 달려나오셨듯이 말이죠. 그러니 그분께 걸어가십시오. 내가 돌아서서 발을 떼면 그분은 이미 달려오고 계십니다. 그리고 손과 마음을 깨끗이 하십시오. 손은 행동이고, 마음은 동기입니다. 한 손에는 하나님, 한 손에는 내 욕심을 준 사람을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부릅니다. 셋째, 슬퍼하며 낮아지십시오. 9절은 슬퍼하고 애통하며 울라고 합니다. 웃음을 애통으로 바꾸라는 말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에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뭘 이렇게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그 웃음을 멈추란 거죠. 우리의 울음은 벌받을까 봐 무서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우는 울음입니다. 이렇게 주 앞에서 낮아지면 높이는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싸움은 결국 마음의 문제입니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와 응답
설교자는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 마음에 무엇이 드러나는지 살피기 위해 바울의 사례를 듭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거두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바울은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응답을 들었다고 설교자는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간절히 구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을 때 서운함이 올라오는 우리의 모습을 함께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나를 덜 사랑하시는 것 같고 이렇게까지 기도했는데 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에 따르면 거절된 자리에서 내가 진짜 무엇을 원했는지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도록 권합니다.
한경진 · 2026-10-21
설교 내 1–1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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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싸울까요? 가정에서도 싸우고 직장에서도 싸우고 교회에서도 싸웁니다. 큰 소리가 오가는 싸움만 싸움이 아니죠.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또 웃는 얼굴로 싸우기도 합니다. 새벽부터 싸우는 말씀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싸움은 우리와 때려와 뗄 때려도 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도 그랬습니다. 바로 앞에서 화평을 이야기하던 야고보는 싸움이 어디서 나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는 보통 왜 싸웠냐고 묻죠. 그때 대부분은 그 사람이 먼저 그랬기 때문에 싸웠다고 합니다. 말투가 기분 나빴고 또 눈치가 없고, 그 사람이 먼저 그랬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죠. 자기밖에 몰라서 싸웠다고 합니다. 내 기준에서 보면 싸움의 원인은 언제나 저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도 그렇게 말했을까요? 우리가 눈을 돌려서 저쪽에서 싸움의 원인을 찾는 동안, 야고보가 말합니다.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싸운다는 말은 군대가 전투에 나선다는 뜻입니다. 겉으로는 조용합니다. 하지만 속에서는 욕망이 군대처럼 전혀를 갖추고 행군하고 있습니다. 내 몸속, 내 지체 안에서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결국 다른 지체들 사이로 번지죠. 그렇다면 모든 갈등이 다 내 탓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정말 상대가 잘못했을 수도 있고, 내가 부당하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수도 있죠. 오늘 본문은 누가 잘했냐, 잘못했냐를 가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일을 겪는 동안 내 마음 속에서 뭐가 싸우고 있는지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가 이 싸움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지 우리 말씀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2절 같이 보실까요?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함으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원하는 것이 있는데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살인합니다. 시기해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투고 싸우죠. 물론 우리 중에는 직접 손을 대서 사람을 해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형제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에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그 사람을 지워버리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 이런 마음도 살인입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저기 사람들은 찾아다니면서 하소연은 하는데, 정작 하나님께는 가지 않습니다. 후회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인데, 또 구하는 걸 기뻐하시는 분인데 말이죠. 결핍이 있을 때 우리는 사람에게 먼저 갑니다. 아니면 내가 직접 해결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건 아버지가 인색하셔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렇다면 구하면 다 주실까요? 어, 그건 또 아닙니다. 3절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여기서 정욕은 내가 누리고 싶은 것, 내 만족, 내 쾌락을 말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서 모두 허사하여 허의하면서 써버렸듯이, 하나님께 받아서 내 쾌락과 내 만족에 써 버리려고 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을 구하느냐만큼 무엇에 쓰려고 구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저렇게 되게 해 주세요."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기도의 중심에 제가 서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엿부는 기도가 아니라, 내 뜻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내 뜻을 알려 드리는 기도를 하는 거죠. 같은 간절함이어도 다른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정말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걸 그대로 말씀드립니다. 또 눈물로 구해도 됩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 뒤에 둡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죠. 그러나 뒤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자리에도 아마 오랜 시간 또 같은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해 오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도 제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서 30년 넘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2년 전에 응답을 받았죠.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응답받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응답받지 못했다고 해서 다 잘못 구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거두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 하는 응답을 들었죠. 간절히 구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때 내 마음은 어떻습니까? 서운하고, 또 하나님이 나는 덜 사랑하시는 거 같고, 또 이렇게까지 기도했는데 하는 그런 서운함이 올라오지는 않으신가요? 내 기도가 거절된 그 자리에서 내가 진짜 무엇을 원했는지, 내 욕망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가?" 자기 중심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에게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4절이죠.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니라." 교회 성도들에게 간음한 여인들아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신부라고 하셨죠. 신약은 그 신랑이 그리스도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한 신부가 됩니다. 그런데 신랑이 계신 집에서 한 신부된 지체들이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신랑의 뜻은 묻지 않고 자기 목만 주장합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세상과 벗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뭐가 잘 사는 건지, 뭐가 행복이고 불행인지, 세상이 정해 주는 대로 따라갑니다. 세상이 지어준 잣대를 들고 뭐가 모자라고 못 미치는지 따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교회로도 들어옵니다. 몇 명이 왔는지, 효과는 있었는지, 효율과 숫자를 제일 앞에 갔다 대죠. 야고보는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아직 벗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나 세상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스쳐 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쪽으로 마음을 정하는 순간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결혼 반지는 그대로 끼고 있습니다. 집에도 매일 들어오죠. 그래서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압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래서 남편의 마음이 아픕니다. 5절이 바로 그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여기서 말하는 시기 질은 우리가 흔히 쓰는 시기 질투와는 다릅니다. 우리의 시기 질은 남이 가진 게 탐나고, 또 남이 잘 되는 게 배 아픈 시기죠.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속하는 마음입니다. 신부가 딴 곳을 보고 있는데, 신랑이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면 그게 더 이상합니다. 질투는 사랑이 식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속이 바짝바짝 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부를 요구하십니다. 다른데 마음 두지 말고, 하나님의 신부답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데로 가서 상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신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질투는 은혜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6절 함께 읽어 보실까요?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구약의 호세야 선지자는 간음한 아내를 값을 치르고 다시 데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하신 모습이 바로 이랬습니다. "내가 어찌 너를 놓했느냐. 간음한 여인들아" 하고 부르는 소리는 바로 이 소리입니다. 내 쫓는 책망이 아니라 붙드는 책망입니다. 아내를 갚고 다시 찾아온 그 일을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와 겸손한 자를 다르게 대하십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대적하신다. 어, 이것만큼 무섭고 또 큰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맞서는 줄도 모르고 맞설 때가 있습니다. 잘난 척하는 것만이 교만이 아닙니다. "나도 틀릴 수 있다" 하는 가능성을 닫아두는 것도 교만입니다. "내 생각이 맞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문을 닫아 버리는 거죠. "제가 틀렸다면 고쳐 주십시오" 하고 열어두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정욕을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걸 인정하는 자리가 바로 낮은 자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더 큰 은혜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7절부터는 연달아서 명령이 나옵니다. 전부 은혜를 받은 너희에게, 또 교회 공동체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명령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보겠습니다. 첫째는 복종하고 대적하십시오. 우리 속의 욕망은 군대처럼 행군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방향을 바꿔서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겁니다. 마귀는 비방하는 자, 고발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서로 싸울 때, 우리가 서로 비방하고 싸울 때 가장 좋아하는 자가 누구일까요? 형제를 향하던 공격을 이제 그 공격의 방향을 돌려서,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그 비방을 향해 서십시오. 형제를 비방하면서 마귀를 대적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8절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신다고 약속합니다. 탕자가 아직 멀리 있을 때 아버지가 그 탕자를 보고 달려나오셨듯이 말이죠. 그러니 그분께 걸어가십시오. 내가 돌아서서 발을 떼면 그분은 이미 달려오고 계십니다. 그리고 손과 마음을 깨끗이 하십시오. 손은 행동이고, 마음은 동기입니다. 한 손에는 하나님, 한 손에는 내 욕심을 준 사람을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부릅니다. 셋째, 슬퍼하며 낮아지십시오. 9절은 슬퍼하고 애통하며 울라고 합니다. 웃음을 애통으로 바꾸라는 말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에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뭘 이렇게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그 웃음을 멈추란 거죠. 우리의 울음은 벌받을까 봐 무서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우는 울음입니다. 이렇게 주 앞에서 낮아지면 높이는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싸움은 결국 마음의 문제입니다.
노회 청원을 세 번 보내 예배당 건축 기금을 얻은 사천 교회 이야기
설교자는 1977년 7월 10일 신학 공부 중 강사 목사의 권유로 사천의 작은 예배당에 파견되었다고 회고합니다. 그 예배당은 26년간 유지되다 폐쇄된 곳이었고, 교역자가 없는 날이 많았으며, 남은 교인은 할머니 두 사람과 몇몇 집사뿐이었습니다. 집은 흙벽에 곰팡이 냄새가 났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마을 사람들은 예배당을 변소만도 못하다고 비웃었습니다. 설교자는 예배당을 지을 돈과 인맥이 없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노회에 블록 한 장씩을 보내 달라는 청원을 냈습니다. 노회는 이를 기각했고 설교자는 날짜만 고쳐 같은 문구로 6개월 뒤 다시 보냈습니다. 세 번째 청원에서 노회 임원들이 이 방식의 모금을 허락하기로 결의했고, 설교자는 이를 각 교회에 알려 벽돌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헌금으로 예배당과 사택, 교육관이 세워졌고, 설교자는 5년 뒤 떠날 때 약 100만 원의 예산을 남겨 두었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 경험을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확신의 근거로 나눕니다.
노우호 · 2026-10-20
설교 내 9–24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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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서 들은 분도 계시겠는데, 오래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50년 전에 제가 사천이라는 곳에 갔는데, 조그만 예배당을 건축해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지 26년간 유지되다가 폐쇄한 거라. 그것도 교역자가 공석으로 있는 날이 절반, 교역자가 있는 날이 절반, 이런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교역자가 와서 살아갈 수 있는 재정이 아예 안 되는 그런 곳인데 26년간 유지해 오다가 폐쇄한 거라. 이 교회가 안 된다고 해서. 이제 교회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세례 교인 15명 이상이 있어야 되고, 그게 떨어진 채 2년, 3년 가면 등급이 격하돼서 교회가 아니고 그냥 기도처, 이렇게 한 급 내려옵니다.
그건 기도처 정도도 안 되고, 할머니 두 사람하고 남자, 소위 집사라고 한 분이 서리 집사로 되어 있고 여자 집사 한둘이 있고, 그게 다예요. 교회학교 학생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런데도 여러분, 세상에 어떤 단체든 이런 식이면 벌써 흐지부지되고 사라지고 할 텐데 교회는 좀 다른 데가 있어요. 그래도 유지가 되는 거예요. 목회자도 없고 뭐 해도 어떻든 거기 모여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때는 할머니 둘만 나와서 예배하는 거야. 그런데 할머니 둘이 성경도, 성경 글자도 몰라. 그러니까 뭘 하면 되겠어요? 여러분, 그 모르는 할머니 둘이서 주일날 예배하면 뭘 하면 되겠습니까? 생각을 안 해 보신 거지.
사도신경 합시다. 그러면 그건 다 외웠거든요. 사도신경하고 찬송을 아는 걸 하나 꺼내야 돼. 그런데 또 안 맞아. 둘이 해도 그걸 모르니까 둘이 하면 이부 합창을 하고 그래. 그리고 성경은 모르니까 읽을 수도 없고, 주기도문 합시다. 그게 끝이라. 예배가 그게 끝인데, 그렇게 교회가 힘이 없어도 기도도 하고 할머니들이 유지를 하는데, 우리가 신학 공부할 때 저를 보고 그 강사 목사님이 거기를 가라는 거예요.
1977년 7월 10일에 거기를 간 거예요. 가서 어렵사리 그 할머니, 80이 넘은 할머니는 큰방에 자고 나는 작은방에. 그런데 벽에 곰팡이 냄새, 흙냄새가 나고 흙벽에다가 벽지를 자꾸 바르니까 벽지가 두껍고 뻣뻣해져서 자꾸 떨어져 나와. 서로 내미니까 바람 불면 벽지가 푹 나왔다가 들어갔다 합니다. 풍구질을 해서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그게 또 대밭 밑에 있어서 거름 냄새가 나요.
그런데 할머니가 밥을 차려 주는데, 하여튼 파리가 먹다가 빨다가 반은 소화가 된 것 같아. 파리가 얼마나 빨았는지. 냉장고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갔으니까. 그런데 그걸 내놓는데 그걸 먹어야 돼요, 안 먹어야 돼요?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전도사가 없는 게 절반이니까, 전도사가 온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정성을 들여서 갈치를 사서 구웠는데, 구운 건지 삶은 건지 하여튼 그것도 파리가 얼마나 냄새를 좋아하는지. 그걸 갖다 내놓는데 이것도 먹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고민인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제가 금식 중입니다. 금식이 아니고 뭐 금식이죠, 금식. 그러니까 자주 금식을 했어요, 덕분에. 금요일 저녁에 가서 토요일 금식하고, 끓여 먹을 수도 없고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거의 밥을 못 먹다시피 하는 거죠. 지금 나는 그때 그걸 어떻게 견뎌 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 전도한다고 우리가 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교회 나오라고 하니까, 온 동네가 다 전기가 들어왔는데 길가에 있는 외딴집 예배당하고 그 할머니 집만 전기가 안 들어온 거야. 그리고 80세 넘은 할머니 혼자 사니까 집을 손볼 수도 없고, 그야말로 기침만 하면 집이 날아갈 것 같아, 무너질 것 같아요.
전도하러 갔더니 뭐라고 하느냐? 야, 우리 화장실만도 못한 거, 변소간만도 못한 거, 우리가 거기 가란 말이냐, 오란 말이냐 그러더라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전도하러 못 나가겠어요. 그 말 듣고 나니까 사실이거든요. 그 당시만 해도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어서 집마다 지붕 개량도 하고 페인트도 칠하고, 속은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 좀 번지르르하게 하는데 온 동네 전기도 들어오는데 예배당하고 할머니 집에는 전기도 안 들어온 거라. 거기다가 비포장도로 큰길가, 진주하고 고성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직행 버스가 지나가는 길가에 있으니까 버스 지나갈 때마다 먼지를 막 덮어씌우고 하니까, 정말 가서 보니까 눈물 나는 거예요.
지금도 내가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멍청해서 그런지, 그걸 무시하지 못하고 그래도 전도하려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 반응이 그렇다는 거야. 그때 기도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 전도하려고 하니까 예배당이나 전도사 꼬락서니가 이래서 어떻게 전도를 하겠습니까? 차라리 없으면 모르겠는데 있다는 게 온 마을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밖에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지어야 되겠는데 예배당을 지으려면 돈이 있어야 되고 땅을 사야 되고, 어디서 건축비를 말해서 돈을 어떻게 말을 해요? 저는 늦게 믿어서 인맥이 없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아무도 저에게 손잡아 주고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기도를 해야 돼.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그리고 그 예배당에다가 사람 나오라고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봐도. 그때부터 전도를 못 하겠더라고.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창피하게 들리는지.
그래서 학교에 와서 나를 보낸 강사 목사님에게 도저히 이래서는 못 하겠다고 하니까, 무슨 소리냐며 화를 버럭 내면서 그냥 엎드려 있으라, 기도하고 있으라는 거예요. 엎드려 있어도 하늘에서 벽돌이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눈앞이 캄캄하고 그래요.
그런데 얼마 있었더니 한 장로님이, 나를 가라고 한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의 강월상이라는 장로님이 산을 하나 팔아서 돈을 싸 들고 온 거야. 그러니까 나를 보낸 분은 나름대로 저를 도우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했던 것 같아요. 나는 순종해서 간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동네 제일 입구의 반듯한 땅을 사기로 해서 계약을 하고. 그런데 땅 가지고 예배당이 됩니까? 기초를 하고 벽돌을 올려야 될 거 아니야. 뭐가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기도도 하지만 노회에다가 청원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50년 전이니까 진주노회 안에 교회가 한 육칠십 개 됐을 텐데, 거기에 재정적으로 목회자 생활비라도 줄 수 있는 교회가 아마 열 교회도 안 될 거다. 그렇게 어려웠어요. 노회에 청원서를 내는데 노회 재정이 없는 건 제가 상식적으로 아니까요. 경남 진주노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한 사람당 블록, 우리 여기 말로죠, 블록 한 장씩을 보내 주시면 제가 목수 일을 한 경험이 있으니까 내 손으로 지어 보겠습니다. 기도하고 그걸 보냈어요.
그런데 노회에서 보니까 이런 청원이라고 하면서 그냥 기각시켜 버린 거야. 6개월 있다가 또 보냈어요. 날짜만 고쳐서 똑같은 문구 그대로, 한 자도 안 고치고 보냈어요. 이 사람이 또 보냈네 하고 또 기각. 오기가 생기더라고. 내가 번거롭게 하리라. [웃음] 이 과부처럼 내가 번거롭게 하리라. 세 번째 보내니까 노회 임원들이 이 사람이 또 보냈네, 이것도 계속 보낼 모양인데, 그래서 그걸 상정해서 노회에서 결의를 한 거예요.
정치하는 목사, 장로들이 얼마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그렇게 모아서 모금을 해 주는 게 아니고 그런 방식으로 모금하는 걸 허락하기로. 자기들 책임은 안 되는 거야. 그런 방식으로 모금하는 걸 허락하기로 결의해서 통과됐어요. 그래서 허락받았다고 하면서 각 교회에, 노회 안에 주소가 있으니까 다 보냈어요. 노회에서 허락받았다, 예배당을 내 손으로 지을 테니까, 내가 건축 경험이 있으니까 벽돌만 보내 주면 내가 쌓아 올리겠다.
그 간단한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렇게 모인 돈으로 예배당을 다 짓고 사택 다 짓고 교육관 짓고, 내가 그 교회에서 5년 있다가 떠나오는데 그때 돈으로 100만 원 정도 남기고 왔다고, 예산을 남겨 놓고.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아,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들으신다.
원지 땅을 40일 안에 잔금 치른 이야기
설교자는 원지에서 남은 땅 한 필지를 사게 된 경위를 말합니다. 그 땅은 동네 한복판에 남아 있던 땅이었고, 단성고등학교 앞에서 대를 쪼개는 일을 하던 사람의 소유였습니다. 그 주인은 노름으로 큰 빚을 졌고, 설교자는 그 빚 때문에 땅이 나왔다고 돌아봅니다. 설교자에게는 한 푼도 없었지만 기도하며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보통 한 달인 계약 기간 중 잔금 마련이 어려울 것 같아 설교자는 기간을 40일로 늘려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동안 잠이 오지 않았고, 돈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가장 어려워하는 설교자는 아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걱정이 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40일 안에 잔금을 치르고 이전 등기를 마쳤고, 그 땅에 사택과 예배당을 지을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설교자는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미련한 일인지 믿음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노우호 · 2026-10-20
설교 내 25–28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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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다음에 바로 1982년도 9월에 여기 원지에 왔는데, 원지에 와서는 간이 좀 커졌어요. 지난번에 벽돌 한 장 했는데 이번에는 시멘트 한 포로 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멘트 한 포씩 보내 주시면 예배당 짓겠습니다 했더니요. 돈을 모아 주면 되는데 어떤 목사는 시멘트를 한 차 사서 싣고 왔어. 생초에 있던 목사님인데. 예배당을 지으려면 땅을 사서 기초를 하고 그 이후에 시멘트도 사용할 텐데 시멘트부터 사면 어떻게 해? 그러면 시멘트가 굳어서 못 쓸 텐데. 돈을 가져오면 될 텐데 시멘트를 사 와서, 그런 일도 있고.
그렇게 해서 원지에서도 원지 한복판에, 원지에서 남은 땅이 딱 한 개 있어. 남아 있을 땅이 아닌 거야. 동네 한복판인데 거기 남아 있어서 그게 나온 거야. 나온 땅의 임자가 누구냐면 여기 단성고등학교 앞에 가면 대 쪼개는 데, 대 쪼개는 그 사람이라. 그 사람 땅인데 노름을 해서 빚을 엄청나게 진 거야, 노름빚을. 노름빚이 아니었으면 안 팔 텐데 그 사람이 노름하는 바람에 우리가 그 땅을 사게 되는 거예요.
한 푼도 없이 또 기도했는데 계약 날짜를 보통 계약하고 중도금하고 잔금 치르는 걸 한 달로 하는데,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한 달 안에 잔금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40일로 해 달라고 졸라서 40일로 했어요. 그리고는 잠이 안 와. 40일 안에 잔금을 치러야 하니까. 잔금만 치르고 나면 그다음에 땅은 뒤에 팔아도 그 가치는 갖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잔금을 치르는 게 목표인 거예요.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잔금을, 내가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 가서 치러요?
그런데 어떻든 이래저래 해서, 제가 어디 가서 돈 문제를 가지고 도와 달라는 말을 제일 하기 어려워서 잘 못하는 입장인 거야. 그걸 못 하겠어. 돈을 도와 달라, 이걸 잘 못하는 거예요. 어떻든 여러분, 그렇게 해서 40일 안에 잔금을 치르고 이전 등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택을 짓고 예배당을 짓고 그렇게 해냈거든요. 지금 보면 그게 미련한 건지 믿음인지 모르지만.
다메섹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만난 기도 응답
설교자는 아브라함의 종 다메섹 엘리에셀이 이삭의 배필을 구하러 밧단아람에 가서 기도한 일을 소개합니다. 엘리에셀은 동네 입구에서 우물가의 처녀에게 물을 청했을 때 약대에게도 물을 길어 주겠다고 대답하는 여자를 이삭의 아내로 믿겠다고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설교자는 이 기도가 먼 훗날이 아니라 그날 응답되기를 구한 것이라고 짚습니다. 기도를 마치기 전에 브두엘의 딸 리브가가 물동이를 들고 나왔고, 엘리에셀이 물을 청하자 그녀는 마시게 해 주겠다고 답했습니다. 설교자는 우물이 깊어 물을 긷는 일이 쉽지 않았고, 약대는 많은 물을 마시기 때문에 리브가가 계속 물을 길어 부어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엘리에셀은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전해집니다. 설교자는 기도를 마치기 전에 응답받은 이 사건에서 엘리에셀의 믿음이 탁월하다고 평가하며, 일한 만큼 기도한 만큼 믿음이 나타난다고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0
설교 내 40–44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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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어떤 사람의 기도는 굉장히 빨리 응답됩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 집의 청지기 다메섹 엘리에셀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가 존경하는 주인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위해서 배필을 구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본토 밧단아람으로 가요. 동네가 가까워지니까, 지금 자기가 막중한 사명을 띠고 한 가문을 이어 갈 만한 좋은 며느릿감을 구해야 되는데, 여러분 사람 보고 이력서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다메섹 엘리에셀이 동네 가까이 올 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동네 입구에 가서 우물가에 물 길으러 오는 처녀들이 있을 텐데, 내가 어떤 처녀를 보고 소녀야, 내게 물 좀 다오 이렇게 하면, 예, 제가 마시게 해 드리리다 하고 당신의 약대를 위해서도 내가 물을 길으리다 하고 대답하는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가 이삭의 아내감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줄 내가 믿겠나이다. 그렇게 하는 거예요. 굉장히 구체적이에요. 또 먼 훗날 얘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그날 응답되는 걸 봐야 될 텐데.
기도 끝나고 눈을 떠 보니까 바로 어떤 처녀가 나와. 브두엘의 딸, 라반의 여동생 리브가야. 오길래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하는데, 소녀야, 물을 좀 마시게 다오 하니까 그 처녀가 낯선 사람에게 못 본 체하지 않고, 예, 제가 마시게 해 드리리다 하고 당신의 약대를 위해서도 내가 물을 길으리다.
우리나라처럼 물 길기가 쉽거나 틀면 나오는 그런 게 아니고 우물이 상당히 깊어서 물을 길으려면 상당히 힘도 들여야 되고, 또 여러분 사람이야 한 잔이면 목마른 건 해갈되는데 약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약대가 물을 마시면 많이 마시거든요. 한번 충분히 마시면 15일간 물 안 마시고 갈 수 있어. 그래서 약대를 위해서 물을 길으리다 할 때는 약대에게 물 한 잔 주고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라. 물을 계속 길어서 붓고, 약대가 다 마시면 또 붓고 하는 걸 다메섹 엘리에셀이 묵묵히 보고 있는 겁니다.
보다가 다메섹 엘리에셀이 땅에 엎드려요. 종의 기도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빨리 들어주시다니 하면서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 여기 보면 기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 응답됐다는 거예요.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오래전에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어쩌면 다메섹 엘리에셀의 믿음이 아브라함보다 더 탁월하다. 대단한 믿음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의 기도가 그 사람의 믿음이거든. 보통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해도 우리 기도한 만큼 이루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그 사람의 믿음이 뭘로 보이느냐? 일한 만큼, 기도한 만큼 그렇게 나타나는 거예요. 일 안 하는 사람은 기도를 안 하고, 기도 안 하는 사람은 일이 안 돼.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런 건데.
사천 예배당 태풍 피해와 면장의 도움
설교자는 사천 예배당이 농지 경계를 약 1미터 넘어 지어져 사천군청에서 문제 삼았던 일을 말합니다. 설교자는 앞마당을 넓히기 위해 사택 쪽으로 경계를 넘어 지었는데, 그 땅은 곧 대지로 바뀔 땅이었다고 설명합니다. 1979년 8월에는 태풍이 두 번 지나가 큰 피해가 났고, 군에서는 복구를 위해 올라가는 김에 잘못 지은 건물을 뜯겠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설교자는 블록 공장에서 시멘트를 제대로 넣어 단단한 블록을 찍어 달라고 부탁해 정성껏 쌓아 올렸다고 회고합니다. 포클레인이 온다는 날짜가 다가오자 설교자는 잠도 오지 않고 식욕도 잃었습니다. 그는 면장 이영우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면장도 설교자를 위해 애를 태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사건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워졌고, 그 무렵 이영우 면장이 원래 집이 있던 곳이라는 서류를 군에 제출해 통과시켰다고 전해집니다. 설교자는 그 사건이 자신을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니며 자신은 그것을 기도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덧붙입니다.
노우호 · 2026-10-20
설교 내 53–60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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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제가 어려운 일들이 있으면 기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내 힘으로 안 되는데. 그렇게 기도하게 되면 예기치 않은 일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1979년도에 제가 아까 얘기한 사천에 있을 때 예배당을 지으면서 좀 무리한 일을 했어요. 땅이 두 필지가 있는데 한 필지는 대지고 한 필지는 농지인 거야. 농지에는 사택은 지을 수 있어, 주택은. 그래서 농지에 주택을 짓고, 앞에 길가 쪽에 있는 예배당 지을 땅을 길 쪽으로 앞마당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어차피 사택을 지은 땅도 곧 대지로 변경될 것이기 때문에 앞에 마당을 남기려고 사택 쪽으로 경계를 넘어서 좀 침범해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다 내 땅이고 결국 그 땅도 대지로 될 것이고, 농지로 보존되는 땅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목이 아직은 변경 전이고 농지인데 예배당을 거기다 한 1미터 더 들어가 지었거든. 그걸 사천군청에서 문제 삼아서. 8월에 태풍이 두 개가 왔어요. 어빙이라는 태풍하고 주디라는 태풍이 8월 초에 한 번, 8월 중순에 한 번, 두 번 할퀴고 지나면서 그때 태풍이 얼마나 무서웠냐? 한 130명이 죽었다는, 그 당시에. 그래서 우리 성경 강좌 하는 모임이 안 됐어요. 교통이 다 두절되어서 길이 끊겨 차가 못 다닐 정도로 무시무시한 태풍이 지나갔는데.
군에서 또 연락이 뭐가 왔느냐? 태풍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 굴착기나 이런 것이 그쪽에 올라갈 텐데 올라간 김에 우리가, 내가 잘못 지은 걸 뜯는다는 거야. 아이고, 저는 여간해서 금식 안 하고 철야 잘 안 하는데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말라. 그게 어떻게 지은 집이냐? 제가 사천에 가서 블록 공장에 가 보니까 블록에 시멘트가 너무 적게 들어갔어. 보통 그런 블록 살 때 깎아 달라고 하면서 사잖아요. 제가 달라는 대로, 얼마 더 쳐 드릴 테니까 시멘트를 제대로 넣어서 단단한 블록을 만들어 달라 하니까 사장이 쳐다보더라고요. 보통 깎자고 하잖아요.
왜 그렇게 해야 되냐 하면 이거는 보통 사람 집을 짓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집을 지을 것이기 때문에 블록에 시멘트를 제대로 섞어서 찍어 달라. 정말 가서 보니까 다른 거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멘트가 제대로 들어간 거야. 때려 보니까 쇠 소리가 나요.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내 손으로 다 쌓아 올려서 이제 지붕 얹을 만큼 올라갔어. 진주노회 안에 블록 한 장씩 보내 주세요 해서 모금한 거잖아. 그걸 다 쌓아 올렸는데 포클레인 가지고 와서 밀어 버린다고.
여러분, 기도 안 하겠어요? 기도를 하다가 면장을 찾아갔어요. 면장은 법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다 해 주려고 하는데 법이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 이영우라는 면장,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는데 이분이 저를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나보다 더 애를 태우는 거라.
그래서 날짜가 바짝바짝 다가오는데, 그해에 태풍이 연달아 두 개나 왔기 때문에 사천에서 고성 사이 경계, 제일 먼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서 포클레인으로 밀어 버리는 걸 보고 내가 어떻게 견뎌 낼 것인가. 잠이 안 오고 밥맛이 떨어지고 진짜 살맛이 없어지는 거예요. 10월 29일인가 포클레인이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에 뭐가 있어? 1979년도 10월 26일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예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거야. 그때는 박정희가 곧 나라고 나라가 박정희야, 그냥. 그런데 박정희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러니까 나라가 질서도 없고 그냥 세상이 끝난 것처럼 됐어요. 그때 이영우 면장이 군에 가서 여기 공부상에는 없어도 원래 집이 있던 곳이다, 그렇게 서류를 해서 통과시켰대요. 그래서 포클레인 가지고 오는 걸 포기하고 지금도 예배당이 거기 있습니다. 그 뒤에 있는 농지로 되어 있는 땅을 빨리 지목 변경해서 완전히 무결하게 처리한 거예요.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나를 위해서 박정희를 쏜 건 아니죠. 나는 그걸 기도한 게 아니야. 그냥 이게 부서지지 않기만을. 여러분, 우리가 여기 땅을 산 것도 아이엠에프를 내가 낸 거 아니잖아요. 아이엠에프가 터지니까 진로 포도원이 50만 평 되는 땅이 공중분해되어 날아갈 때, 여기 진로 포도주 공장 터인데 너무 헐값에 나온 거라. 이 땅 여기 요만큼을 9천만 원에 그때 돈으로 샀는데, 여러분은 9천만 원이 안 큰지 몰라도 1998년도 9천만 원은 지금 9억 정도 되는 돈일 거야, 아마 27년, 28년 전이니까.
2008년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의 확산
설교자는 건강이 나빠지던 2008년에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을 남기려는 마음으로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구약을 4박 5일씩 두 차례, 신약을 한 차례 강의했고, 이를 녹음해 엠피쓰리 파일로 만들어 시디에 담아 보급했습니다. 설교자는 이 자료가 자신이 죽어도 계속 하나님 말씀을 들려줄 것이며, 한국 교회에 남기는 유언처럼 남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그 작업을 마치자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졌고, 당뇨 등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회고합니다. 설교자는 이 자료가 생각보다 많이 팔려 이후 여러 시설을 마련하는 데 보탬이 된 것 같다고 돌아봅니다. 현장에 있던 오일주 집사는 광주 월광교회 세미나와 관련해 이 자료를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소개됩니다. 설교자는 불법 복제본이 유에스비에 담겨 여러 나라로 퍼졌다고 말하며, 필라델피아에서는 설교를 듣던 한 분이 네팔 선교 헌금을 보내왔다고 전합니다.
노우호 · 2026-10-20
설교 내 73–76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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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에 제가 건강이 조금 안 좋아지면서, 내가 이러다가는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보지도 못하고 내 생이 끝나는 거 아닌가? 2008년도에는 뭘 했느냐? 에스라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구약을 4박 5일, 4박 5일 두 번, 그리고 신약을 또 한 번, 그렇게 해서 녹음해서 엠피쓰리 파일로 만들어서 그때는 유에스비가 아니고 시디에 담아 보급하게 됐는데, 나는 죽어도 내 시디는 살아 있어서 계속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들려줄 것이다. 그걸 해 놓고 나면 내가 한국 교회에 남기는 유언처럼 남아 있으리라 하고 만들었어요.
그걸 만드니까 조금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당뇨도 있고 여러 가지가 힘들었는데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그런데 그렇게 반응이 일어날 줄 몰랐어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2008년도 이후에 여기 우리가 땅을 장만하거나 이렇게 하는 거 보면 전부 다 그게 너무 많이 나가서, 심화 과정이 엄청나게 많이 나간 거예요. 우리 상상을 넘어설 만큼 많이 나가서 이런 시설도 만들어지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다른 거는 만들어도 별로 많이 안 나갔는데 그 심화 과정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 주고. 오늘 여기 앉아 계시는 오일주 집사님, 최근에 알았는데, 제가 오래전에 광주 월광교회에 가서 세미나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이분이, 그걸 최근에 얘기 듣고. 그러니까 지금도, 그건 또 불법인데 불법 복제품이 요즘은 유에스비에 담겨서 돌아다니는데 온 세계를 돌아다니는 거예요. 우루과이, 파라과이, 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더반, 이런 데 가서, 발도 없는데 거기 날아다니는 거예요.
얼마 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우리 설교를 들으시는 분이 있어서 네팔 선교 헌금을 보내온 분도 있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보면 심화 과정을 듣고 성경이 안 보이다가 성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분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진심을 담아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게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건 즉시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생각, 우리 조급한 사람 생각보다는 조금 더디 응답되는 수가 많아요.
원지 땅 계약과 40일 잔금 마련
설교자는 원지에서 교회 건축을 위해 시멘트 한 포씩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일부 목사님은 시멘트를 한 차 사 와서 싣고 왔지만, 설교자는 시멘트가 굳어 버릴 수 있다며 돈을 모아 오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동네 한복판에 남은 땅이 하나 있었는데, 그 땅의 주인은 노름빚 때문에 팔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설교자는 땅을 계약하면서 보통 한 달인 잔금 기한을 40일로 늘려 달라고 졸랐다. 돈이 전혀 없었기에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걱정했지만, 기도하며 기한 안에 잔금을 치르고 이전등기를 마쳤다. 이후 사택과 예배당을 짓게 되었다. 설교자는 돈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가장 어려워했다고 고백하면서도, 이 경험을 통해 돈 문제는 사람 문제보다 하나님께 어렵지 않다고 적용한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하지 못한 일은 거의 없었다고 돌아본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29–33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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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바로 1982년도 9월에 여기 원지에 왔는데, 원지에 와서는 간이 좀 커졌어요. 지난번에 벽돌 한 장 했는데 이번에는 시멘트 한 포로 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멘트 한 포씩 보내 주시면 예배당을 짓겠습니다, 했더니 돈으로 모아 주면 될 텐데 어떤 목사님은 시멘트를 한 차 사 가지고 싣고 왔어. 생초에 있던 목사님인데. 아니, 예배당을 지으려면 땅을 사서 기초를 하고 그 이후에 시멘트도 사용할 텐데, 시멘트부터 사면 어떻게 해. 놔두면 시멘트 굳어서 못 쓸 텐데. 돈을 가져오면 될 텐데 시멘트를 사 와 가지고.
원지에서도 원지 한복판에 남은 땅이 딱 한 개 있었어요. 남을 땅이 아닌 거야. 동네 한복판인데 남아 있어 가지고 나온 거야. 그 땅의 임자가 누구냐 하면 여기 단성고등학교 앞에 가면 대 쪼개는 데, 대 쪼개는 그 사람들 땅인데 노름을 해서 빚을 엄청나게 진 거야, 노름빚을. 노름빚이 아니었으면 안 팔 텐데 그 사람이 노름하는 바람에 우리가 그 땅을 사게 되는 거예요.
한 푼도 없이 또 기도했는데, 보통 계약하고 중도금하고 잔금 치르는 것을 한 달 정도로 하는데,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한 달 안에 잔금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40일로 해 달라고 졸라 가지고 40일로 했어요. 그리고는 잠이 안 와. 40일 안에 잔금을 치러야 하니까. 잔금만 치르고 나면 그다음에 땅은 되팔아도 그 가치는 갖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잔금을 치르는 게 목표인 거예요.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아는 사람도 없는데 잔금을 어디서 처리해요?
어떻게든 이래저래 해 가지고, 제가 어디 가서 돈 문제를 가지고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제일 하기 어려워서 잘 못하는 입장이에요. 그걸 못 하겠어. 돈을 도와 달라는 걸 잘 못하는 거예요. 어떻든 여러분, 그렇게 해서 40일 안에 잔금을 치르고 이전등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택을 짓고 예배당을 짓고 그렇게 해냈거든요.
저걸 보면 그게 미련한 건지 믿음인지 모르지만, 그리고 여기 지금 여러분 아시는 대로 에스라하우스 땅을 장만하고 집을 짓고 저쪽 건물 짓고. 내가 돈이 있었느냐? 진짜 내 생활비하고 아이들 교육비도 안 되는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계약해 가지고 이루어 왔는지, 지금도 돌아보면 상상이 잘 안 돼요. 그래서 내가 볼 때 돈 문제는 하나님께 간단한 것 같다. 안 어려운 것 같아요. 뭐가 어려우냐? 사람. 사람은 하나님도 애를 먹어. 사람은 참 어려운데 돈은 그렇게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경험상. 지금까지 제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가지고 못 해 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다메섹 엘리에셀의 빠른 기도 응답
설교자는 아브라함의 종 다메섹 엘리에셀이 주인의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하러 밧단아람에 간 이야기를 소개한다. 동네가 가까워졌을 때 그는 막중한 사명을 앞에 두고 사람을 알아볼 방법이 없어 구체적으로 기도했다.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온 처녀에게 물을 청했을 때 그가 약대에게도 물을 길어 주겠다고 대답하면 그 여인을 이삭의 아내로 믿겠다는 내용이었다.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브두엘의 딸 리브가가 나왔고, 그녀는 낯선 사람에게 물을 주고 약대를 위해서도 물을 길어 주었다. 약대는 많은 물을 마시기 때문에 그 일은 쉽지 않았지만, 엘리에셀은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는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 설교자는 이를 빠른 응답의 예로 들며, 기도가 곧 그 사람의 믿음을 드러낸다고 말하고 종의 믿음이 아브라함보다 탁월하다고 평가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44–48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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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어떤 사람의 기도는 굉장히 빨리 응답됩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 집의 청지기 다메섹 엘리에셀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가 존경하는 주인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위해서 배필을 구하려고 아브라함의 본토 밧단아람으로 가요. 그 동네가 가까워지니까 자기가 막중한 사명을 띠고, 한 가문을 이어갈 만한 좋은 며느릿감을 구해야 되는데, 사람 보고 이력서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다메섹 엘리에셀이 동네가 가까워질 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동네 입구에 가서 우물가에 물 길으러 오는 처녀들이 있을 텐데, 제가 어떤 처녀를 보고 소녀야, 내게 물 좀 다오 하면, 예, 제가 마시게 해 드리리다 하고 당신의 약대를 위해서도 내가 물을 길으리이다 하고 대답하는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가 이삭의 아내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줄 제가 믿겠나이다.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아주 굉장히 구체적이에요.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니고 당장 그날 응답되는 걸 봐야 될 텐데.
기도 끝나고 눈을 떠 보니까 바로 어떤 처녀가 나와. 브두엘의 딸, 라반의 여동생 리브가야. 오길래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길으려 하는데 소녀야, 물을 좀 마시게 다오 하니까, 그 처녀가 낯선 사람에게 못 본 체하지 않고 예, 제가 마시게 해 드리리다 하고 당신의 약대를 위해서도 내가 물을 길으리이다.
우리나라처럼 물을 긷기 쉬운 우물이 아니고 틀면 나오는 그런 게 아니고, 우물이 상당히 깊어 가지고 물을 길으려면 상당히 힘도 들여야 돼요. 또 사람이야 한 잔이면 목마른 것이 해갈되는데 약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약대가 물을 마시면 많이 마시거든요. 한 번 충분히 마시면 15일간 물 안 마시고 갈 수 있어. 그래서 약대를 위해 물을 길으리이다 할 때는 약대에게 물 한 잔 주고 끝내지 않았을 거라. 물을 계속 길어서 붓고, 약대가 다 마시면 또 붓고 하는 걸 다메섹 엘리에셀이 묵묵히 보고 있는 겁니다.
보다가 다메섹 엘리에셀이 땅에 엎드려요. 종의 기도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빨리 들어주시다니 하면서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는 거예요. 여기 보면 기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 응답됐다는 거예요.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오래전에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어찌 보면 다메섹 엘리에셀의 믿음이 아브라함보다 더 탁월하다. 대단한 믿음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 사람의 기도가 그 사람의 믿음이거든.
사천 예배당 철거 위기와 면장의 도움
설교자는 사천 예배당 건축 과정에서 생긴 위기를 전한다. 땅이 대지와 농지로 나뉘어 있었는데, 예배당의 앞마당을 넓히려고 사택 쪽 경계를 조금 넘어 한 미터 정도 더 지었다. 그 땅은 곧 대지로 바뀔 땅이었지만 지목 변경 전이라 사천군청이 문제를 삼았다. 그해 8월에는 태풍이 두 차례 지나가 큰 피해가 있었고, 이후 군에서 복구를 위해 굴착기가 올라와 잘못 지은 부분을 뜯겠다고 연락했다. 설교자는 블록을 살 때 시멘트를 제대로 넣어 단단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일을 떠올리며 마음이 타들어 갔다. 그는 날짜가 다가오는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고, 면장 이영우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면장도 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애썼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이 피격되는 혼란 속에서 면장이 이곳이 원래 집이 있던 곳이라는 서류를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 결과 포클레인은 돌아갔고 예배당은 지금까지 서 있게 되었다. 설교자는 자신이 그 사건을 기도로 일으킨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하며, 다만 예배당이 부서지지 않기만 기도했다고 말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55–60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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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제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 안 할 수 있습니까? 내 힘으로 안 되는데. 기도하게 되면 예기치 않은 일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1979년도에 제가 사천에, 아까 이야기한 그곳에 있을 때 예배당을 지으면서 조금 무리한 일을 했어요. 땅이 두 필지가 있는데 한 필지는 대지고 한 필지는 농지인 거야. 농지에는 사택을 지을 수 있어. 주택은. 그래서 농지에 주택을 짓고, 앞에 길가 쪽에 있는 예배당 지을 땅은 길 쪽으로 앞마당을 좀 많이 남기기 위해서, 어차피 사택을 지은 그 땅도 곧 대지로 변경될 것이기 때문에, 앞에 마당을 남기느라 사택 쪽으로 경계를 넘어서 조금 침범해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다 내 땅이고 결국 그 땅도 대지로 될 것이고, 농지로 보존되는 땅은 아닙니다. 지목이 아직 변경 전이고 농지인데 예배당을 거기에 한 1미터 더 지었거든. 그걸 사천군청에서 문제 삼아 가지고. 그해 8월에 태풍이 두 개 왔어요. 어빙호라는 태풍하고 주디라는 태풍이 한 달에, 8월 초에 한 번, 8월 중순에 한 번, 두 번 할퀴고 지나가면서. 그때 태풍이 얼마나 무서웠느냐? 한 130명이 죽었다는 거야, 당시에. 우리 성경 강좌하는 모임도 안 되고, 교통이 다 두절돼서 길이 끊겨 차가 못 다닐 정도로 무시무시한 태풍이 지나갔는데.
군에서 또 연락이 뭐였느냐?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해 굴착기 같은 것이 그쪽에 올라갈 텐데, 올라간 김에 우리가, 내가 잘못 지은 것을 뜯는다는 거야. 아이고, 저는 여간해서는 금식 안 하고 철야 잘 안 하는데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말라요. 어떻게 지은 집이냐. 제가 사천에 가서 블록 공장에 가 가지고 보니까 블록에 시멘트가 너무 적게 들어갔어. 보통 블록 살 때 깎아 달라고 하잖아요. 저는 얼마 더 쳐 드릴 테니까 시멘트를 제대로 넣어서 단단한 블록을 만들어 달라 하니까 사장이 쳐다보더라고요. 보통 깎자고 그러잖아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이건 보통 사람 집을 짓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집을 지을 것이기 때문에 블록에 시멘트를 제대로 섞어서 찍어 달라. 정말 가서 보니까 다른 것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멘트가 기가 막히게 들어간 거야. 때려 보니까 쇳소리가 나.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내 손으로 다 쌓아 올려서 지붕만큼 올라갔어. 진주노회 안에 블록 한 장씩 보내 주세요 해 가지고 모금한 거잖아. 그걸 다 쌓아 올렸는데 포클레인으로 와서 밀어 버린다고.
여러분, 기도 안 하겠어요? 기도하다가 면장을 찾아가고. 면장은 법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다 해 주려고 하는데 법이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 이영우라는 면장,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는데 이분이 저를 참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애가 나보다 더 타는 거라. 날짜가 바짝바짝 다가오는데, 그해 태풍이 연달아 두 개나 왔기 때문에 사천에서 고성 사이 경계, 제일 먼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 가지고. 포클레인으로 밀어 버리는 걸 보고 내가 어떻게 견뎌 낼 것인가? 잠이 안 오고 밤이 두렵고, 진짜 살맛이 없어지는 거야.
10월 29일인가 포클레인이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에 뭐가 있었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거야. 그때는 박정희가 곧 나라이고 나라가 박정희야, 그냥. 그런데 박정희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온 나라가 질서도 없고 세상 끝난 것 같았어요. 그때 이영우 면장이 군에 가 가지고, 여기가 원래 사실 공부상에는 없어도 원래 집이 있던 곳이다, 해 가지고 서류를 만들어 통과시켜. 그래서 포클레인 가지고 오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도 예배당이 서 있습니다. 그 뒤에 있는 농지로 돼 있던 땅은 빨리 지목 변경해 가지고 완전무결하게 처리된 거예요.
2008년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의 확산
설교자는 2008년 건강이 나빠지자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스라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을 만들었다. 구약을 4박 5일씩 두 차례, 신약을 한 차례 녹음해 엠피스리 파일로 만들고 시디에 담아 보급했다. 설교자는 이 시디가 자신의 사후에도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는 유언 같은 역할을 하리라 기대했다. 완성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졌다. 그런데 반응은 설교자의 예상을 넘어섰다. 심화 과정은 많은 사람이 구입했고, 이후 판매가 많아 땅 장만과 시설 건축이 이루어졌다고 돌아본다. 광주 월광교회의 오일주 집사님처럼 먼 곳의 성도들도 참여했고, 불법 복제본까지 우루과이, 파라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퍼졌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설교를 듣고 네팔 선교 헌금을 보낸 분도 있었다. 설교자는 심화 과정을 듣고 성경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람이 많다고 전하며, 하나님이 기도와 사역의 길을 넓혀 주셨다고 간증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74–77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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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에 제가 건강이 조금 안 좋아지면서 이러다가는 내가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보지도 못하고 내 생이 끝나는 거 아닌가? 2008년도에는 뭘 했느냐? 에스라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구약을 4박 5일씩 두 번, 신약을 또 한 번, 그렇게 해 가지고 녹음해서 엠피스리 파일로 만들어 그때는 유에스비가 아니고 시디에 담아서 보급하게 됐는데, 나는 죽어도 내 시디는 살아 있어 가지고 계속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들려줄 것이다. 그걸 해 놓고 나면 내가 한국 교회에 남기는 유언처럼 남아 있으리라 하고 만들었어요.
그걸 만들어 놓으니까 조금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그때까지만 해도 당뇨도 있고 여러 가지가 힘들었는데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그런데 그렇게 반응이 일어날 줄 몰랐어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이후, 2008년도 이후에 우리가 여기 땅을 장만하거나 이렇게 한 걸 보면 전부 다 그게 너무 많이 나간 거예요. 심화 과정이 엄청나게 많이 나간 거예요. 우리 상상을 넘어설 만큼 많이 나가 가지고 이런 시설도 만들어지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다른 걸 만들어도 별로 많이 안 나갔는데 심화 과정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 주고. 오늘 여기 앉아 계신 오일주 집사님, 최근에 알았는데, 이분은 제가 오래전에 광주 월광교회에 가서 세미나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이분이, 최근에 이야기를 듣고. 그러니까 지금도, 그건 불법인데 불법 복제품이 요즘은 유에스비에 담겨서 돌아가는데 온 세계를 돌아다니는 거예요. 우루과이, 파라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더반 같은 데까지 가서, 발도 없는데 거기 날아다니는 거예요.
얼마 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우리 설교를 들으시는 분이 있어 가지고 네팔 선교 헌금을 보내 온 분도 있는 거예요. 그런 분들을 보면 심화 과정을 듣고 성경이 안 보이다가 성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분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