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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6개 · 1 / 1쪽 · 한 쪽 20개

에스플린 선교사의 은혜를 알아보는 눈

설교자는 필리핀 민다나오 일리간시에서 우리 선교사로 섬기는 에스플린 선교사를 실제 사례로 소개합니다. 설교자와 아내 노엘은 그녀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에 놀랐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은혜의 표지를 알아보는 좋은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설교자는 그녀에게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고정된 채 보는 정적인 위기의 사고방식이 없어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무언가 극적인 일이 일어나 회심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방식과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에스플린 선교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소외된 존재로 보면서도, 그들을 움직이고 과정 가운데 있는 존재로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경험 속에서 행하시는 여러 일들이 그들을 움직이고 준비시킨다고 여깁니다. 설교자는 그 모습에서 놀라운 소망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우리가 사람들을 바로잡으려는 성향을 내려놓고, 친절한 눈과 기쁜 마음으로 함께 들어가 그 불길을 부채질해야 한다고 적용합니다.

존 파이퍼 · 2026-10-28

설교 내 6–7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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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성경적인 멘토는 은혜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좋은 눈과 기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좋은 눈과 기쁜 마음입니다. 11장 23절입니다. 상황을 아실 겁니다. 스데반의 박해 이후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고, 그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졌습니다. 이 교회는 이교도의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연합을 확보하고 몸을 보존하기 위해 누군가를 그곳에 보내야 합니다. 누구를 보내야 할까요? 한 사람이 응답합니다. 바나바입니다. 그는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그를 보내자. 그래서 바나바가 떠나고, 그의 사역은 놀랍도록 성공적입니다. 그는 선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많은 사람이 주님께 더해졌습니다. 그러나 23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는 도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을 때 기뻐했습니다. 그는 보았고 기뻐했습니다. 그는 은혜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좋은 눈과 기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교회는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젊은 교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교회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멘토에게는 열 감지기가 있습니다. 멘토에게는 열 감지기가 있고, 그것을 세밀하게 조정하여 새로운 상황에 들어갔을 때 불어서 살릴 수 있는 은혜의 불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양동이가 있습니다. 비판의 양동이입니다. 축축하고 차가운 비판입니다. 그들은 상황에 들어가지만 감지기가 필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잿더미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함의 잿더미입니다. 그래서 불씨는 사그라듭니다. 지도자를 훈련하는 사람들은 은혜의 불꽃을 향해 따뜻한 눈과 기쁜 마음을 가집니다. 제가 아는 이 은사의 가장 좋은 예는 필리핀 민다나오의 일리간 시에서 우리 선교사로 섬기는 밥 에스플린입니다. 그녀는 이전에 여기 와 있었고, 노엘과 저는 그저 놀라서 지켜보았습니다. 우리가 본 것을 이 여성에게서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아직 모든 것을 제대로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은혜의 표지를 알아보는 좋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사고방식을 복음 전도자, 설교자, 선교사들 사이에서 흔한 것과 대비해 보겠습니다. 그녀에게는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고정된 채 보고, 그들의 특성 속에 얼어붙은 것처럼 보는 그 정적인 위기의 사고방식이 없어 보입니다. 무언가 극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그래야 그들이 회심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방식입니다. 이건... 그녀가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식이 결코 아닙니다. 그 대안은, 이것을 설명할 말을 찾느라 애를 먹었는데, 이것일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분명히 하나님에게서 참으로 소외되어 있고 참으로 회심이 필요한 존재로 보지만, 정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더 역동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정되어 있거나 가만히 멈춰 있는 존재가 아니라, 움직이고 과정 가운데 있는 존재로 봅니다. 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경험 속에서 행하시는 천 가지 다른 일들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 일들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고, 변화시키고, 드러내고, 확신하게 하고,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바브 에스플린이 말하는 모든 사람은 믿음의 길 위에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멀리 뒤처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있을 수도 있고 저기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브 에스플린은 그들의 삶이나 그들의 삶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움직이는 은혜의 표지로 봅니다. 그가 전도에 대해 말할 때 놀라운 소망이 느껴집니다. 반면에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을 "바로잡으려" 하는 성향이 아주 강합니다. 믿지 않고, 완고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기지요. 하지만 그들을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향력으로 둘러싸고 계셔서 그들을 움직이시고, 변화시키시고, 준비시키고 계신다고 보는 대신, 우리가 그들을 볼 때마다 친절한 눈과 기쁜 마음으로 그저 함께 들어가 그 불길을 부채질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설교자가 받은 인도 의료 선교 제안 편지

설교자는 약 30년 전 자신이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끼며 복음을 전하려 하던 때의 일을 회상합니다. 그 무렵 외국 선교사단의 총무가 편지를 보내어, 그가 영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대신 인도의 병원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하라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그 자리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고, 편지를 보낸 이는 설교자가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여겼습니다. 설교자는 그 제안의 동기가 훌륭했고 그에게 깊이 공감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편지를 쓴 사람에게 성경적인 부르심의 교리를 믿는지, 주님께서 여전히 사람을 선택하시고 어디로 보낼지 결정하신다고 믿는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고 전합니다. 설교자는 자신이 그 점을 믿었기 때문에 인도에 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그 일을 해야 한다고 권하는 것 자체가 정신적인 무례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교회나 필요가 사람을 특정 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적용합니다. 그는 사람을 어디로 보낼지 결정하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5

설교 내 5–5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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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나에게 다른 일을 하라고 하실 수도 있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하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 우리는 이 성경에 어긋난 생각, 즉 필요가 부름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는 주님만이 직접 부름을 주신다는 이 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말하겠는데, 교회는 부름을 주지 않으며, 교회가 사람을 특정한 일에 직접 부르는 일은 결코 교회의 일이 아닙니다. 이는 제 생각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우리 사랑하는 주님과 구주께서 직접 말씀하신 말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사도가 여기서 말한 바를 뒷받침하고, 그 바탕을 세우고, 지지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어졌으니, 그 은혜는 그리스도의 은사의 양에 따라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직접 어떤 사람을 사도로, 어떤 사람을 선지자로, 어떤 사람을 전도사로, 어떤 사람을 목사와 교사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을 들어 보세요. 마태복음 9장 37절과 38절에 있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확실히 수확할 것이 풍성하나, 일꾼은 적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교회가 사람의 손을 얹어 수확장에 내보내야 할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수확할 것이 풍성하나, 일꾼은 적으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님, 수확장에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우리가 그들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보내시고, 우리가 할 일은 그분께 그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우리 사이에서 비극적으로 잊혀져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부르는 것이 우리의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젊은 남자들에게 이 일을 하라, 저 일을 하라, 이거나 저거나 하라고 제안합니다. 이는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우리가 누가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제안할 권리가 어디 있습니까? 이는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로 사역하게 된 이유는 단지 어떤 나이 든 목사나 다른 누군가, 혹은 집사가 그들에게 '당신은 목회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며 설득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약 30년 전, 저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부름을 받았다고 느끼며 이 방식으로 사역에 들어가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느꼈을 때, 외국 선교사단의 총무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서 그는 제가 이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대신 인도에서 의료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에게는 당시 인도의 병원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고, 저는 그 자리에 딱 맞는 인물이라고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영국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이었고, 그는 제가 인도의 그 자리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동기는 훌륭했고, 저는 그분에게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단순히 한 가지 질문만 했습니다. "당신은 성경적인 부름의 교리에 대해 믿습니까? 주님께서 여전히 사람을 선택하시고, 어디로 보낼지 결정하신다고 믿습니까? 저는 그 점을 믿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인도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거의 무례한 요소가 있습니다. 정신적인 무례 말입니다. 우리가 누가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아는 자격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일에서도 실수를 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라고 서론을 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교회가 사람에게 제안하는 일은 결코 교회의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은 더더욱 교회의 일이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필요성이 강조되고 젊은이들에게 강하게 인상될 때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 다음 "누가 자원할 사람인가?"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친구 여러분, 저는 이 문제를 이론적인 관심사로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서 비극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로 인해 망가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들어보세요. 모든 젊은 기독교인의 의무는 선교장에 가는 것입니다. 부름 따위는 신경 쓰지 마세요. 필요가 곧 부름입니다.'

한 번도 한국에 가 보지 않은 영국 할머니

설교자는 80년대 영국에서 3년간 살던 때 마이클 그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던 일을 전합니다. 그곳에서 머리가 허연 70대 이상의 할머니를 만났는데, 설교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할머니는 죽은 사람을 만난 듯 기뻐하며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설교자가 이유를 묻자, 할머니는 625 전쟁 때부터 한국을 위해 기도해 왔다고 답했습니다. 전쟁 뉴스를 보고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한국에 가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설교자는 한국에 친구도 없고 직접 와 본 적도 없는 분이 평생 한국을 위해 기도해 온 사실에 깊이 감동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이 예수를 잘 믿고, 일제 시대와 가난을 지나 이만큼 살만하게 된 것이 이 할머니 같은 분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할머니는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설교자를 따뜻하게 환영했다고 회상합니다.

하용조 · 2026-10-24

설교 내 1–1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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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은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기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장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중보 기도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과거형으로만 알고 있지, 믿음으로 현재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재형이고, 은혜는 과거형입니다. 이미 만들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능력을 믿음으로 받는 채널이 있는데, 그 채널이 바로 기도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기도의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기면 은혜가 폭발합니다. 이미 주어진 은혜가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잠금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참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된 신앙은 거짓된 기도를 합니다. 허황된 기도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를 아예 할 수 없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절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어떤 기도냐에 따라 진짜 참 믿음이냐, 가짜 믿음이냐가 여러분의 기도 속에 다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이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는 세 가지 대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 보면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로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첫 번째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여 나에게 믿음을 주시사, 아버지여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옷입히시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복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자신,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를 따라다녔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같이 읽을까요? 시작.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예수님의 그 기도 속에 '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이 내게 주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도 있고,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가르쳐 제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특별히 이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다섯 가지 기도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여 저들이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연합과 일치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아버지여 저들도 나와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되게 하옵소서.' 두 번째 기도는 12절인데요. '주여 저들을 지켜 주십시오.' 보존해 주십시오. 보호와 인도와 양육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세 번째 '주여 저들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쁨과 감동과 능력의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기도는 '악에게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제자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주여 저들이 악에게 빠지지 말고 시험에 들지 말고, 사탄과 싸워서 이기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17절에 있는 말씀인데요. '주여 저들로 하여금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비전을 위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런 기도는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계속 이 다섯 가지 기도를 하십니다. '저들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보존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저들이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 제자들을 향한 기도가 다 여러분에게 응답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분열하지 말고 하나되십시오. 아멘. 여러분 당황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호와 양육과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기쁨과 감동과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이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거 다 외우세요. 예. 다음에 신문에 이거 나오면 다 외우세요. 왜냐하면 이게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기도였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예수님의 기도는 아주 중요하고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방향이 있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뭐냐면, 이제 세 번째로 예수님이 중보 기도의 대상을 바꿔요. 첫째는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고요.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셨다면, 세 번째 대상은 무엇인가?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할 텐데, 전도하면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 터인데, 앞에서는 아니지만 앞으로 예수 믿게 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게 굉장히 놀랍습니다. 앞으로 예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 예수님은 그걸 염두해 두셨어요. '너희들이 나가서 이제 나를 증거할 터인데, 내 증거를 받고 누군가 어느 민족인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20절이 그 말씀입니다. 20절 함께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내가 비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을 위함이다.' 자, 제자들만으로서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서 예수님을 전하면, 저희 말로 인하여 나를 믿게 될 사람들이 생길 터인데,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염두에 두면서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그 사람이 누굴까요? 여러분과 나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잖아요. 사도들이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200년 동안 전도하다가 그 복음이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 있는 선교사님들이, 물론 영국에서 토마스도 왔고 다 왔지만, 주로 선교사님들이 100년 전에 한국에 오셔서 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 주었지요. 제가 이번에 언어인팅에서 중국의 CBMC 회장님을 만났는데, 왕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여자분이세요. 그분이 6대 크리스천이에요. 그 당신의 최초의 조상이 누구한테 예수 믿었냐고 물으니, 허드슨 테일러한테 복음을 받았대요. 그 6대째인 사람이 크리스천이에요. 어, 그분이 이번에 오셨어요. 그니까 영국에서 허드슨 테일러라는 사람이 OMF를 만들었는데, 영국 가서 중국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예수 믿은 사람이 우리나라 같은 면은 언더우드나 셀라 이런 사람들이 오셨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고, 이런 걸 많이 여성 해방 운동도 하고 다 그러셨어요. 그때 최초의 세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다 예수 믿어서 오늘 누구까지 이루는 거예요? 나까지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마음에 계산하시고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게 오늘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이 기도는 여러분하고 나하고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놓고 생각을 해 보면,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예수 믿기의 망정이지. 예수 믿기 전에 굉장한 분들 많잖았어요. 그렇죠? 여러분이 예수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박담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박담 목사님 친구분을 내가 저기 저저기서 만났어요. 그 화랑 있는 데서 만났다. 박담 목사님이 목사 됐더니까 쇼크를 먹더라고요. 아니,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됐냐고. 그 사람이 목사되면 내가 하나님 믿어야 된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목사님이랑 둘이 같이 웃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나는 도대체 예수를 믿을 것 같지가 않다. 우리 가정의 배경이나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배경에서 보면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기적적으로 내가 예수를 믿게 됐어요. 그게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 때문도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전도해 준 사람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당신한테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됐다는 결론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 한국이 예수 믿은 것도 바로 그런 거예요. 제가 오래 전에 한번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만은, 제가 80년대 영국에 한 3년 가서 살았을 때, 거기에 마이클 그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예배드리러 갔다가, 거기에 머리 허연 70이 넘으신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분을 만나 버렸어요. 그래서 그 노인 어 할머니를 내가 만났더니 한국에서 왔다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뭐 그냥 죽은 사람 만났듯이 내 손 잡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냐고 물으니, 이분이 625 전쟁 때부터 한국을 위해 기도했대요. 그래서 어떻게 당신이 한국을 위해서 전도해 기도하냐고 물으니, 625 전쟁 때 뉴스 난 걸 보고 자기가 기도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럼 한국 가 보셨느냐고 물으니, 가 본 적 없대요. 한국 한 번도 안 가 보신 분이 지금까지 평생 코리아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아유, 그냥 몸이 엇싸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아, 한국이 예수 잘 믿고, 한국이 그 지옥 같은 그 일제 시대와 유기요화와 버리고개와 가난 속에서도 이렇게 이만큼 살만하게 된 게 바로 이 할머니의 기도 때문이구나. 그래서 이 사람은 한국에 와 본 적도 없고, 한국의 친구도 없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그 자체 하나 때문에 저를 굉장히 환영해 줬던 그런 기억이 있어요.

톰 스카이너 목사의 어바나 선교 컨퍼런스 설교

설교자는 1970년 일리노이주 어바나 선교 컨퍼런스에서 톰 스카이너 목사가 전한 설교를 테이프로 들었다고 밝힙니다. 그는 당시 새신자였고 그 설교가 너무 좋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스카이너 목사가 바라바를 체제를 무너뜨리고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인물로 묘사했다고 전합니다. 스카이너 목사에 따르면 바라바를 원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위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당국은 바라바가 시위나 폭동을 일으켜도 경비대와 전차로 진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총도 전차도 없는 예수님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설교자는 그들이 예수님을 지금 당장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분을 죽여 묻어버렸다고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러나 스카이너 목사는 3일 뒤 예수님께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적 승리를 이루셨다고 선언합니다. 설교자는 이 인용으로 예수님의 정치가 세상 권력의 방식과 다르다는 점을 청중에게 제시합니다.

팀 켈러 · 2026-10-24

설교 내 21–22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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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톰 스카이너 목사는 이 놀라운 설교를 마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라바는 체계를 무너뜨릴 사람입니다. 바라바는 그들을 태워버릴 것입니다. 바라바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왜 바라바를 원하겠습니까? 바라바는 종교 지도자들을 쏘아죽일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체제의 일부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왜 바라바를 요청하겠습니까? 그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바라바를 풀어주면 또 다른 시위나 폭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언제든 국가 경비대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의 동네에 몇 대의 전차만 몰아넣으면, 그가 벌이는 일을 언제든 진압할 수 있습니다. 그가 총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찾아내고, 그의 아파트를 압수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동부 마을에 있을 것입니다. 네, 그가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언제든 바라바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총도 없고, 전차도 없고, 탄약도 없는 남자가 어떻게 로마 제국 전체를 흔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의 답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그를 없애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지금 당장. 바라바를 없애야 합니다. 바라바는 언제든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그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묻어버렸고, '이 이상 그 혁명가를 듣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톰 스카이너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3일 뒤, 예수님께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적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유대인의 왕이십니까?' '네.' 기도합시다.

2008년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의 확산

설교자는 건강이 나빠지던 2008년에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을 남기려는 마음으로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구약을 4박 5일씩 두 차례, 신약을 한 차례 강의했고, 이를 녹음해 엠피쓰리 파일로 만들어 시디에 담아 보급했습니다. 설교자는 이 자료가 자신이 죽어도 계속 하나님 말씀을 들려줄 것이며, 한국 교회에 남기는 유언처럼 남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그 작업을 마치자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졌고, 당뇨 등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회고합니다. 설교자는 이 자료가 생각보다 많이 팔려 이후 여러 시설을 마련하는 데 보탬이 된 것 같다고 돌아봅니다. 현장에 있던 오일주 집사는 광주 월광교회 세미나와 관련해 이 자료를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소개됩니다. 설교자는 불법 복제본이 유에스비에 담겨 여러 나라로 퍼졌다고 말하며, 필라델피아에서는 설교를 듣던 한 분이 네팔 선교 헌금을 보내왔다고 전합니다.

노우호 · 2026-10-20

설교 내 73–76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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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에 제가 건강이 조금 안 좋아지면서, 내가 이러다가는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보지도 못하고 내 생이 끝나는 거 아닌가? 2008년도에는 뭘 했느냐? 에스라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구약을 4박 5일, 4박 5일 두 번, 그리고 신약을 또 한 번, 그렇게 해서 녹음해서 엠피쓰리 파일로 만들어서 그때는 유에스비가 아니고 시디에 담아 보급하게 됐는데, 나는 죽어도 내 시디는 살아 있어서 계속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들려줄 것이다. 그걸 해 놓고 나면 내가 한국 교회에 남기는 유언처럼 남아 있으리라 하고 만들었어요. 그걸 만드니까 조금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당뇨도 있고 여러 가지가 힘들었는데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그런데 그렇게 반응이 일어날 줄 몰랐어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2008년도 이후에 여기 우리가 땅을 장만하거나 이렇게 하는 거 보면 전부 다 그게 너무 많이 나가서, 심화 과정이 엄청나게 많이 나간 거예요. 우리 상상을 넘어설 만큼 많이 나가서 이런 시설도 만들어지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다른 거는 만들어도 별로 많이 안 나갔는데 그 심화 과정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 주고. 오늘 여기 앉아 계시는 오일주 집사님, 최근에 알았는데, 제가 오래전에 광주 월광교회에 가서 세미나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이분이, 그걸 최근에 얘기 듣고. 그러니까 지금도, 그건 또 불법인데 불법 복제품이 요즘은 유에스비에 담겨서 돌아다니는데 온 세계를 돌아다니는 거예요. 우루과이, 파라과이, 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더반, 이런 데 가서, 발도 없는데 거기 날아다니는 거예요. 얼마 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우리 설교를 들으시는 분이 있어서 네팔 선교 헌금을 보내온 분도 있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보면 심화 과정을 듣고 성경이 안 보이다가 성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분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진심을 담아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게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건 즉시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생각, 우리 조급한 사람 생각보다는 조금 더디 응답되는 수가 많아요.

선교지로 떠난 의사 선생님을 향한 주변의 반대

설교자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선교사님 한 분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10년 전 한 의사 선생님이 모처 선교지로 떠나려 하자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하필 당신이 가야 하느냐", "의사로서 돈 많이 벌어 교회 장로로 섬기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하며 그를 핍박했습니다. 또 "편하고 쉬운 길도 얼마 있지 않느냐", "좀 폼나게 믿으면 안 좋겠느냐"라는 말도 들었다고 설교자는 전했습니다. 설교자는 이런 만류가 특히 부모에게서 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좋아할 부모는 없기에 못 가게 막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설교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이 십자가를 피할 방법은 없습니까?"라고 기도하신 모습과 연결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쉽고 편하지 않으며, 욕을 먹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좁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우리도 십자가를 내려놓고 피해 가려는 유혹을 받는다고 적용했습니다.

하용조 · 2026-10-19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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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중보 기도를 하셨는데, 제자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시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중보 기도의 하나의 특징입니다. 사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병든 사람을 도울 수 없고, 내가 은혜를 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어떻게 끼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먼저 여러분들이 은혜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차고 넘쳐야 남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다른 사람한테 신세지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 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이 십자가를 짐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영화롭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의 중보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는 1절과 5절에 두 번 나타나는데, "하나님 아버지여, 아들을 영화롭게 하여 주시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들을 영화롭게 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5절에서 좀 더 발전된 기도를 하십니다. "그 아들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누렸던 그 영화로 아들을 영화롭게 하여 주옵소서." 하늘의 권세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주셨는데, 그 권세로 자기 이익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데 사용하게 해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은혜를 받고 믿음이 생겨서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고 편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좁은 길입니다. 욕 먹는 길이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길입니다. 선교사로 사람들이 떠날 때, "왜 그 좋은 직장을 놔두고, 왜 그 편한 생활을 놔두고 그렇게 고생스러운 길을 스스로 가느냐?"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부모님들은 그렇습니다. 자기 자식이 고생하는 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못 가게 합니다. 저희 교회 선교사님 한 분이 10년 전에 의사 선생님이 모처 선교지로 갔을 때, 주변에서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왜 하필 당신이 가야 되냐? 당신이 의사로서 돈 많이 벌어서 교회 장로로 섬기면 됐지, 왜 당신이 거길 가야 하느냐?"라고 말하며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꼭 이렇게 예수를 믿어야 되느냐?" "편하고 쉬운 길도 얼마 있지 않느냐?" "예수 믿지 말자는 게 아니다. 좀 폼나게 믿으면 안 좋겠는가?" "명생을 내고 믿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이런 말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도 내 입장에서 보면 알 거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꾸 십자가를 피해 가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내려놓고 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이런 마음이 있으셨어요. "이 십자가를 내가 꼭 져야 합니까?" 다 지기로 해 놓고 기도까지 다 끝나놓고도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다. "이 십자가를 피할 방법은 없습니까?" 얼마나 그 기도가 힘이 들었든지, 땀이 피가 될 정도였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게 해 주십시오." "이 길을 계속 가게 해 주십시오." 고통스러운 길, 어려운 길, 힘든 길이지만, 이 길을 계속 가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는 것은, 유혹과 시험에서 벗어나,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좁은 길을 피하지 않고 계속 이 길을 가도록 요청하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이런 시험이 있는 걸 압니다. 이런 유혹이 있어요. 좀 쉬운 길을 가고, 편한 길을 가고, 어 좀 예수를 믿어도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이 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꼭 찬물 산물에 내 손을 담궈야 되느냐, 시공창에 내 발을 넣어야 되느냐 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 기도를 하셨어요. 그리고 그 기도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기도를 마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은 두 번째,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또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제자들은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준을 따라오지를 못했습니다. 영적으로 깨달음이 없는 미숙한 사람들이었고, 실수 투성이었고, 허점 투성이인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할 때까지도 철이 안 났습니다. 참 어려운 건, 철 안난 사람하고 사는 게 참 어렵습니다. 부부도요. 철 안난 남편, 또 철 안난 아내하고 사는 게 참 어렵고요. 철 안난 자녀들하고 사는 거 참 쉽지 않습니다. 버릴 수도 없고, 그만둘 수도 없고,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열심히 따라다니고, 죽기까지 하겠다고 하지만은, 보면 아직도 미숙하고, 뭘 모르고,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제자들을 끼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혹시 철 안난 사람하고 끼고 사는 사람은 용기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들을 사랑했다는 거예요. 사랑했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그들이 변하고 새로워지고 알아듣기를 원했습니다. 설명을 또 하고 설명을 또 하고,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또 하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6절에 보면, 신통치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도대체 어떤 존재냐, 어떤 사람이냐에 대해서 먼저 예수님이 이 내용을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6절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내가 아버지와 아들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좀 깊이 생각할 것은, 예수님이 소위 말하면 철라지 않은, 신통치 않은, 항상 이상한 짓들만 하는 그 제자들을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6절에 보면, 첫째, 제자란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 제자들이에요. 여기 보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안 들지만,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내 사람이다. 이 자식이 마음에 안 들지만, 내 자식이라는 걸 알 때, 우리는 자식을 위해서 눈물도 흘리고 고통을 겪지만, 이 자식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예수님의 첫 번째 생각은,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라고 했던 것이죠. 두 번째,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람이지만, 내게 속하기 전에 하나님이 택해서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었다라고 예수님이 생각하신 것입니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 온데 내게 주셨으며" 이렇게 됐습니다. 이 내게 주셨는데, 나하고 같이 사는데, 근데 사실은 이 사람이 내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 사람을 선택해서 나한테 보내 준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이게 결혼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에요. 현재는 나하고 같이 사는데, 사실은 이 사람이 하나님이 택해서 나한테 보내 준 사람이었다라고 생각하는 게 결혼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에 속해 있지만, 이 자녀는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이 불러서 나한테 맡겨 주셨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게 예수님의 사고 방식이에요. 이 제자들은 내 것인데, 나한테 보내 주었는데, 사실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고,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었는데, 나한테 이 사람을 맡겨 주신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정체성이 정의를 먼저 확실하게 하면, 시험 안 받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 제자들이 하나님의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위해 보내 주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깨우쳤다는 것입니다. 여기 제자 훈련의 요체입니다. 제자 훈련이란 뭐냐면, 내가 가르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사람을 양육시키는 것을 제자 훈련이라고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7절 시작.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예수님은 한 번도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신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에게만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 사복음서를 다 보시고, 신약을 다 보시고, 예수님에 대해서 여러분이 연구를 다 해 보세요. 자기를 위해서 말하는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기도, 예수님의 능력은 전부 하나님에게로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우리들의 문제가 뭐냐면, 예수 믿으면서 우리가 왜 이렇게 고민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느냐? 우리들의 문제는 모든 초점이 나에게로 집중돼 있어요. 내 생각, 내 주장, 내 의견, 내 비전, 내 문제예요. 이게 내니까 갈등이 많은 겁니다.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하는 뜻은 뭐냐? 옛사람인 나는 죽고, 새 사람인 내가 다시 태어난 것을 거듭났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게 어떤 사람이 죽긴 죽었는데, 아직 덜 죽었으면 문제예요. 예. 죽지 않고 기절했어요. 애들. 그래서 깨어나면 또 내가 있는 거예요. 또 내가 옛 사람이 또 있는 거예요. 이게 죽으면 간단한 문제를, 이게 살아 있어서 내가 자꾸 살아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가 느낀 건 뭐냐면, 내 안에 있는 옛사람 내가 빠졌다는 거예요. 죽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내 안에 사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