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선교사님 한 분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10년 전 한 의사 선생님이 모처 선교지로 떠나려 하자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하필 당신이 가야 하느냐", "의사로서 돈 많이 벌어 교회 장로로 섬기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하며 그를 핍박했습니다. 또 "편하고 쉬운 길도 얼마 있지 않느냐", "좀 폼나게 믿으면 안 좋겠느냐"라는 말도 들었다고 설교자는 전했습니다. 설교자는 이런 만류가 특히 부모에게서 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좋아할 부모는 없기에 못 가게 막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설교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이 십자가를 피할 방법은 없습니까?"라고 기도하신 모습과 연결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쉽고 편하지 않으며, 욕을 먹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좁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우리도 십자가를 내려놓고 피해 가려는 유혹을 받는다고 적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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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중보 기도를 하셨는데, 제자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시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중보 기도의 하나의 특징입니다. 사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병든 사람을 도울 수 없고, 내가 은혜를 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어떻게 끼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먼저 여러분들이 은혜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차고 넘쳐야 남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다른 사람한테 신세지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 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이 십자가를 짐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영화롭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의 중보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는 1절과 5절에 두 번 나타나는데, "하나님 아버지여, 아들을 영화롭게 하여 주시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들을 영화롭게 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5절에서 좀 더 발전된 기도를 하십니다. "그 아들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누렸던 그 영화로 아들을 영화롭게 하여 주옵소서." 하늘의 권세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주셨는데, 그 권세로 자기 이익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데 사용하게 해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은혜를 받고 믿음이 생겨서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고 편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좁은 길입니다. 욕 먹는 길이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길입니다. 선교사로 사람들이 떠날 때, "왜 그 좋은 직장을 놔두고, 왜 그 편한 생활을 놔두고 그렇게 고생스러운 길을 스스로 가느냐?"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부모님들은 그렇습니다. 자기 자식이 고생하는 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못 가게 합니다. 저희 교회 선교사님 한 분이 10년 전에 의사 선생님이 모처 선교지로 갔을 때, 주변에서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왜 하필 당신이 가야 되냐? 당신이 의사로서 돈 많이 벌어서 교회 장로로 섬기면 됐지, 왜 당신이 거길 가야 하느냐?"라고 말하며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꼭 이렇게 예수를 믿어야 되느냐?" "편하고 쉬운 길도 얼마 있지 않느냐?" "예수 믿지 말자는 게 아니다. 좀 폼나게 믿으면 안 좋겠는가?" "명생을 내고 믿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이런 말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도 내 입장에서 보면 알 거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꾸 십자가를 피해 가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내려놓고 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이런 마음이 있으셨어요. "이 십자가를 내가 꼭 져야 합니까?" 다 지기로 해 놓고 기도까지 다 끝나놓고도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다. "이 십자가를 피할 방법은 없습니까?" 얼마나 그 기도가 힘이 들었든지, 땀이 피가 될 정도였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게 해 주십시오." "이 길을 계속 가게 해 주십시오." 고통스러운 길, 어려운 길, 힘든 길이지만, 이 길을 계속 가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는 것은, 유혹과 시험에서 벗어나,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좁은 길을 피하지 않고 계속 이 길을 가도록 요청하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이런 시험이 있는 걸 압니다. 이런 유혹이 있어요. 좀 쉬운 길을 가고, 편한 길을 가고, 어 좀 예수를 믿어도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이 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꼭 찬물 산물에 내 손을 담궈야 되느냐, 시공창에 내 발을 넣어야 되느냐 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 기도를 하셨어요. 그리고 그 기도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기도를 마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은 두 번째,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또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제자들은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준을 따라오지를 못했습니다. 영적으로 깨달음이 없는 미숙한 사람들이었고, 실수 투성이었고, 허점 투성이인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할 때까지도 철이 안 났습니다. 참 어려운 건, 철 안난 사람하고 사는 게 참 어렵습니다. 부부도요. 철 안난 남편, 또 철 안난 아내하고 사는 게 참 어렵고요. 철 안난 자녀들하고 사는 거 참 쉽지 않습니다. 버릴 수도 없고, 그만둘 수도 없고,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열심히 따라다니고, 죽기까지 하겠다고 하지만은, 보면 아직도 미숙하고, 뭘 모르고,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제자들을 끼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혹시 철 안난 사람하고 끼고 사는 사람은 용기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들을 사랑했다는 거예요. 사랑했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그들이 변하고 새로워지고 알아듣기를 원했습니다. 설명을 또 하고 설명을 또 하고,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또 하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6절에 보면, 신통치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도대체 어떤 존재냐, 어떤 사람이냐에 대해서 먼저 예수님이 이 내용을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6절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내가 아버지와 아들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좀 깊이 생각할 것은, 예수님이 소위 말하면 철라지 않은, 신통치 않은, 항상 이상한 짓들만 하는 그 제자들을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6절에 보면, 첫째, 제자란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 제자들이에요. 여기 보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안 들지만,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내 사람이다. 이 자식이 마음에 안 들지만, 내 자식이라는 걸 알 때, 우리는 자식을 위해서 눈물도 흘리고 고통을 겪지만, 이 자식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예수님의 첫 번째 생각은,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라고 했던 것이죠. 두 번째,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람이지만, 내게 속하기 전에 하나님이 택해서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었다라고 예수님이 생각하신 것입니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 온데 내게 주셨으며" 이렇게 됐습니다. 이 내게 주셨는데, 나하고 같이 사는데, 근데 사실은 이 사람이 내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 사람을 선택해서 나한테 보내 준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이게 결혼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에요. 현재는 나하고 같이 사는데, 사실은 이 사람이 하나님이 택해서 나한테 보내 준 사람이었다라고 생각하는 게 결혼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에 속해 있지만, 이 자녀는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이 불러서 나한테 맡겨 주셨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게 예수님의 사고 방식이에요. 이 제자들은 내 것인데, 나한테 보내 주었는데, 사실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고,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었는데, 나한테 이 사람을 맡겨 주신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정체성이 정의를 먼저 확실하게 하면, 시험 안 받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 제자들이 하나님의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위해 보내 주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깨우쳤다는 것입니다. 여기 제자 훈련의 요체입니다. 제자 훈련이란 뭐냐면, 내가 가르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사람을 양육시키는 것을 제자 훈련이라고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7절 시작.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예수님은 한 번도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신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에게만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 사복음서를 다 보시고, 신약을 다 보시고, 예수님에 대해서 여러분이 연구를 다 해 보세요. 자기를 위해서 말하는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기도, 예수님의 능력은 전부 하나님에게로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우리들의 문제가 뭐냐면, 예수 믿으면서 우리가 왜 이렇게 고민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느냐? 우리들의 문제는 모든 초점이 나에게로 집중돼 있어요. 내 생각, 내 주장, 내 의견, 내 비전, 내 문제예요. 이게 내니까 갈등이 많은 겁니다.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하는 뜻은 뭐냐? 옛사람인 나는 죽고, 새 사람인 내가 다시 태어난 것을 거듭났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게 어떤 사람이 죽긴 죽었는데, 아직 덜 죽었으면 문제예요. 예. 죽지 않고 기절했어요. 애들. 그래서 깨어나면 또 내가 있는 거예요. 또 내가 옛 사람이 또 있는 거예요. 이게 죽으면 간단한 문제를, 이게 살아 있어서 내가 자꾸 살아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가 느낀 건 뭐냐면, 내 안에 있는 옛사람 내가 빠졌다는 거예요. 죽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내 안에 사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