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5개 · 1 / 1쪽 · 한 쪽 20개
중국 왕 회장의 6대 신앙 계보
설교자는 언어인팅에서 중국 CBMC의 왕 회장님을 만난 일을 소개합니다. 왕 회장님은 여성 분이었고, 스스로 6대째 크리스천이라고 밝혔습니다. 설교자가 최초의 조상이 누구에게 예수를 믿었는지 묻자, 그분은 허드슨 테일러에게 복음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설교자는 영국에서 중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한 허드슨 테일러가 OMF를 만들었다는 배경을 덧붙입니다. 이어서 설교자는 한국에도 언더우드나 셀라 같은 선교사들이 와서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우고 여성 해방 운동도 펼쳤던 역사를 떠올립니다. 그 과정에서 최초의 세례자들이 생겨났고, 그 복음이 이어져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설교자의 이해입니다. 설교자는 이 흐름을 예수님이 앞으로 믿게 될 사람들을 기억하며 중보 기도하신 일과 연결합니다. 그래서 이 기도가 제자들만이 아니라 지금의 여러분과 나에게도 직접 해당된다고 적용합니다.
하용조 · 2026-10-24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본문 발췌 보기
요한복음 17장은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기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장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중보 기도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과거형으로만 알고 있지, 믿음으로 현재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재형이고, 은혜는 과거형입니다. 이미 만들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능력을 믿음으로 받는 채널이 있는데, 그 채널이 바로 기도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기도의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기면 은혜가 폭발합니다. 이미 주어진 은혜가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잠금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참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된 신앙은 거짓된 기도를 합니다. 허황된 기도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를 아예 할 수 없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절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어떤 기도냐에 따라 진짜 참 믿음이냐, 가짜 믿음이냐가 여러분의 기도 속에 다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이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는 세 가지 대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 보면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로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첫 번째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여 나에게 믿음을 주시사, 아버지여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옷입히시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복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자신,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를 따라다녔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같이 읽을까요? 시작.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예수님의 그 기도 속에 '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이 내게 주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도 있고,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가르쳐 제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특별히 이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다섯 가지 기도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여 저들이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연합과 일치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아버지여 저들도 나와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되게 하옵소서.' 두 번째 기도는 12절인데요. '주여 저들을 지켜 주십시오.' 보존해 주십시오. 보호와 인도와 양육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세 번째 '주여 저들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쁨과 감동과 능력의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기도는 '악에게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제자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주여 저들이 악에게 빠지지 말고 시험에 들지 말고, 사탄과 싸워서 이기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17절에 있는 말씀인데요. '주여 저들로 하여금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비전을 위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런 기도는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계속 이 다섯 가지 기도를 하십니다. '저들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보존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저들이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 제자들을 향한 기도가 다 여러분에게 응답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분열하지 말고 하나되십시오. 아멘. 여러분 당황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호와 양육과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기쁨과 감동과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이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거 다 외우세요. 예. 다음에 신문에 이거 나오면 다 외우세요. 왜냐하면 이게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기도였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예수님의 기도는 아주 중요하고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방향이 있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뭐냐면, 이제 세 번째로 예수님이 중보 기도의 대상을 바꿔요. 첫째는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고요.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셨다면, 세 번째 대상은 무엇인가?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할 텐데, 전도하면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 터인데, 앞에서는 아니지만 앞으로 예수 믿게 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게 굉장히 놀랍습니다. 앞으로 예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 예수님은 그걸 염두해 두셨어요. '너희들이 나가서 이제 나를 증거할 터인데, 내 증거를 받고 누군가 어느 민족인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20절이 그 말씀입니다. 20절 함께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내가 비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을 위함이다.' 자, 제자들만으로서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서 예수님을 전하면, 저희 말로 인하여 나를 믿게 될 사람들이 생길 터인데,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염두에 두면서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그 사람이 누굴까요? 여러분과 나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잖아요. 사도들이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200년 동안 전도하다가 그 복음이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 있는 선교사님들이, 물론 영국에서 토마스도 왔고 다 왔지만, 주로 선교사님들이 100년 전에 한국에 오셔서 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 주었지요. 제가 이번에 언어인팅에서 중국의 CBMC 회장님을 만났는데, 왕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여자분이세요. 그분이 6대 크리스천이에요. 그 당신의 최초의 조상이 누구한테 예수 믿었냐고 물으니, 허드슨 테일러한테 복음을 받았대요. 그 6대째인 사람이 크리스천이에요. 어, 그분이 이번에 오셨어요. 그니까 영국에서 허드슨 테일러라는 사람이 OMF를 만들었는데, 영국 가서 중국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예수 믿은 사람이 우리나라 같은 면은 언더우드나 셀라 이런 사람들이 오셨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고, 이런 걸 많이 여성 해방 운동도 하고 다 그러셨어요. 그때 최초의 세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다 예수 믿어서 오늘 누구까지 이루는 거예요? 나까지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마음에 계산하시고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게 오늘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이 기도는 여러분하고 나하고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놓고 생각을 해 보면,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예수 믿기의 망정이지. 예수 믿기 전에 굉장한 분들 많잖았어요. 그렇죠? 여러분이 예수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박담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박담 목사님 친구분을 내가 저기 저저기서 만났어요. 그 화랑 있는 데서 만났다. 박담 목사님이 목사 됐더니까 쇼크를 먹더라고요. 아니,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됐냐고. 그 사람이 목사되면 내가 하나님 믿어야 된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목사님이랑 둘이 같이 웃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나는 도대체 예수를 믿을 것 같지가 않다. 우리 가정의 배경이나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배경에서 보면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기적적으로 내가 예수를 믿게 됐어요. 그게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 때문도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전도해 준 사람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당신한테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됐다는 결론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 한국이 예수 믿은 것도 바로 그런 거예요. 제가 오래 전에 한번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만은, 제가 80년대 영국에 한 3년 가서 살았을 때, 거기에 마이클 그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예배드리러 갔다가, 거기에 머리 허연 70이 넘으신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분을 만나 버렸어요. 그래서 그 노인 어 할머니를 내가 만났더니 한국에서 왔다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뭐 그냥 죽은 사람 만났듯이 내 손 잡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냐고 물으니, 이분이 625 전쟁 때부터 한국을 위해 기도했대요. 그래서 어떻게 당신이 한국을 위해서 전도해 기도하냐고 물으니, 625 전쟁 때 뉴스 난 걸 보고 자기가 기도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럼 한국 가 보셨느냐고 물으니, 가 본 적 없대요. 한국 한 번도 안 가 보신 분이 지금까지 평생 코리아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아유, 그냥 몸이 엇싸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아, 한국이 예수 잘 믿고, 한국이 그 지옥 같은 그 일제 시대와 유기요화와 버리고개와 가난 속에서도 이렇게 이만큼 살만하게 된 게 바로 이 할머니의 기도 때문이구나. 그래서 이 사람은 한국에 와 본 적도 없고, 한국의 친구도 없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그 자체 하나 때문에 저를 굉장히 환영해 줬던 그런 기억이 있어요.
한 번도 한국에 가 보지 않은 영국 할머니
설교자는 80년대 영국에서 3년간 살던 때 마이클 그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던 일을 전합니다. 그곳에서 머리가 허연 70대 이상의 할머니를 만났는데, 설교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할머니는 죽은 사람을 만난 듯 기뻐하며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설교자가 이유를 묻자, 할머니는 625 전쟁 때부터 한국을 위해 기도해 왔다고 답했습니다. 전쟁 뉴스를 보고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한국에 가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설교자는 한국에 친구도 없고 직접 와 본 적도 없는 분이 평생 한국을 위해 기도해 온 사실에 깊이 감동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이 예수를 잘 믿고, 일제 시대와 가난을 지나 이만큼 살만하게 된 것이 이 할머니 같은 분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할머니는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설교자를 따뜻하게 환영했다고 회상합니다.
하용조 · 2026-10-24
설교 내 1–1문단 · 예화 3
본문 발췌 보기
요한복음 17장은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기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장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중보 기도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과거형으로만 알고 있지, 믿음으로 현재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재형이고, 은혜는 과거형입니다. 이미 만들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능력을 믿음으로 받는 채널이 있는데, 그 채널이 바로 기도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기도의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기면 은혜가 폭발합니다. 이미 주어진 은혜가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잠금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참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된 신앙은 거짓된 기도를 합니다. 허황된 기도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를 아예 할 수 없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절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어떤 기도냐에 따라 진짜 참 믿음이냐, 가짜 믿음이냐가 여러분의 기도 속에 다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이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는 세 가지 대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 보면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로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첫 번째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여 나에게 믿음을 주시사, 아버지여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옷입히시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복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자신,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를 따라다녔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같이 읽을까요? 시작.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예수님의 그 기도 속에 '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이 내게 주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도 있고,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가르쳐 제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특별히 이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다섯 가지 기도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여 저들이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연합과 일치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아버지여 저들도 나와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되게 하옵소서.' 두 번째 기도는 12절인데요. '주여 저들을 지켜 주십시오.' 보존해 주십시오. 보호와 인도와 양육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세 번째 '주여 저들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쁨과 감동과 능력의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기도는 '악에게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제자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주여 저들이 악에게 빠지지 말고 시험에 들지 말고, 사탄과 싸워서 이기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17절에 있는 말씀인데요. '주여 저들로 하여금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비전을 위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런 기도는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계속 이 다섯 가지 기도를 하십니다. '저들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보존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저들이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 제자들을 향한 기도가 다 여러분에게 응답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분열하지 말고 하나되십시오. 아멘. 여러분 당황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호와 양육과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기쁨과 감동과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이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거 다 외우세요. 예. 다음에 신문에 이거 나오면 다 외우세요. 왜냐하면 이게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기도였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예수님의 기도는 아주 중요하고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방향이 있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뭐냐면, 이제 세 번째로 예수님이 중보 기도의 대상을 바꿔요. 첫째는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고요.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셨다면, 세 번째 대상은 무엇인가?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할 텐데, 전도하면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 터인데, 앞에서는 아니지만 앞으로 예수 믿게 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게 굉장히 놀랍습니다. 앞으로 예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 예수님은 그걸 염두해 두셨어요. '너희들이 나가서 이제 나를 증거할 터인데, 내 증거를 받고 누군가 어느 민족인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20절이 그 말씀입니다. 20절 함께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내가 비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을 위함이다.' 자, 제자들만으로서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서 예수님을 전하면, 저희 말로 인하여 나를 믿게 될 사람들이 생길 터인데,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염두에 두면서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그 사람이 누굴까요? 여러분과 나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잖아요. 사도들이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200년 동안 전도하다가 그 복음이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 있는 선교사님들이, 물론 영국에서 토마스도 왔고 다 왔지만, 주로 선교사님들이 100년 전에 한국에 오셔서 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 주었지요. 제가 이번에 언어인팅에서 중국의 CBMC 회장님을 만났는데, 왕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여자분이세요. 그분이 6대 크리스천이에요. 그 당신의 최초의 조상이 누구한테 예수 믿었냐고 물으니, 허드슨 테일러한테 복음을 받았대요. 그 6대째인 사람이 크리스천이에요. 어, 그분이 이번에 오셨어요. 그니까 영국에서 허드슨 테일러라는 사람이 OMF를 만들었는데, 영국 가서 중국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예수 믿은 사람이 우리나라 같은 면은 언더우드나 셀라 이런 사람들이 오셨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고, 이런 걸 많이 여성 해방 운동도 하고 다 그러셨어요. 그때 최초의 세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다 예수 믿어서 오늘 누구까지 이루는 거예요? 나까지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마음에 계산하시고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게 오늘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이 기도는 여러분하고 나하고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놓고 생각을 해 보면,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예수 믿기의 망정이지. 예수 믿기 전에 굉장한 분들 많잖았어요. 그렇죠? 여러분이 예수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박담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박담 목사님 친구분을 내가 저기 저저기서 만났어요. 그 화랑 있는 데서 만났다. 박담 목사님이 목사 됐더니까 쇼크를 먹더라고요. 아니,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됐냐고. 그 사람이 목사되면 내가 하나님 믿어야 된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목사님이랑 둘이 같이 웃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나는 도대체 예수를 믿을 것 같지가 않다. 우리 가정의 배경이나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배경에서 보면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기적적으로 내가 예수를 믿게 됐어요. 그게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 때문도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전도해 준 사람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당신한테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됐다는 결론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 한국이 예수 믿은 것도 바로 그런 거예요. 제가 오래 전에 한번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만은, 제가 80년대 영국에 한 3년 가서 살았을 때, 거기에 마이클 그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예배드리러 갔다가, 거기에 머리 허연 70이 넘으신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분을 만나 버렸어요. 그래서 그 노인 어 할머니를 내가 만났더니 한국에서 왔다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뭐 그냥 죽은 사람 만났듯이 내 손 잡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냐고 물으니, 이분이 625 전쟁 때부터 한국을 위해 기도했대요. 그래서 어떻게 당신이 한국을 위해서 전도해 기도하냐고 물으니, 625 전쟁 때 뉴스 난 걸 보고 자기가 기도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럼 한국 가 보셨느냐고 물으니, 가 본 적 없대요. 한국 한 번도 안 가 보신 분이 지금까지 평생 코리아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아유, 그냥 몸이 엇싸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아, 한국이 예수 잘 믿고, 한국이 그 지옥 같은 그 일제 시대와 유기요화와 버리고개와 가난 속에서도 이렇게 이만큼 살만하게 된 게 바로 이 할머니의 기도 때문이구나. 그래서 이 사람은 한국에 와 본 적도 없고, 한국의 친구도 없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그 자체 하나 때문에 저를 굉장히 환영해 줬던 그런 기억이 있어요.
무디를 위한 두 사람의 회심
설교자는 무디가 두 사람을 위해 평생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설교자는 '그런 얘기가 있다'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무디가 죽기 한 달 전에 예수를 믿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무디가 죽고 난 한 달 뒤에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이 일화를 들어, 기도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기도는 응답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청중에게 전도하면 사람은 반드시 믿는다는 확신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설교자는 안 믿는 사람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전도하라고 강하게 격려합니다. 그는 이 말을 비유적으로 강조하며, 그만큼 복음의 결실을 확신하라는 뜻을 전합니다. 설교자는 기도가 응답된다는 사실을 믿고 계속 기도하라는 메시지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하용조 · 2026-10-24
설교 내 10–10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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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그 사람은 꼭 믿습니다. 전도하면 믿어요. 아멘. 안 믿으면 다리 하나 불어 뜨려 가지고도 믿게 하세요. 꼭 믿습니다.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무디가 두 사람을 위해서 평생 기도했는데, 한 사람은 무디가 죽기 한 달 전에 예수를 믿었고, 한 사람은 무디가 죽고 난 한 달 후에 믿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런 얘기가 있어요. 당신이 죽어도 그 기도는 응답돼요.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와 기도하는 성도들
설교자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분노하신 하나님 손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설교를 전했을 때 큰 깨달음이 일어났던 일을 소개합니다. 그는 그 결과가 놀라운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그 설교의 힘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며칠 전에 모여 설교할 목사를 위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기를 기도했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그들의 기도가 에드워즈의 설교에 힘을 주었고, 그 결과 죄인들이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이야기를 기도가 사역의 열매를 가져온다는 근거로 사용합니다. 그는 마을과 도시를 품고 진심으로 기도한다면, 지금은 아무 열매가 없어 보이는 일에도 하나님께서 성공을 주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씨를 뿌리지만 싹이 나지 않는 목사들도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그는 격려합니다. 설교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 간구한 이들은 그 신비를 풀어낼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조용히 빈 그릇을 기름이 흘러내리는 곳 아래 놓는 것과 같아서, 아무 소리 없이 그릇이 채워진다는 비유로 이 적용을 마무리합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1
설교 내 24–24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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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에도 이 원칙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구원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빈 그릇들처럼 여겨야 합니다. 당신은 저를 빈 그릇으로 보고, 하늘의 기름으로 채워달라고 기도해 주기를 원합니다. 사역의 은혜를 기대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무익합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교회들이 목회자에게 무엇을 투입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즉, 그들이 목사님을 위해 많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많은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집에 가서 영혼이 채워지기를 기대하면서도, 한 번도 목사님을 도와주시고 설교에 복을 주시기를 기도하지 않은 이들은 은혜의 방문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목사님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모든 일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빈 그릇으로 여겨 주님께 채워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식들과 친족들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자식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일부 경우는 우리가 그들을 제대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들을 기도로 하나님 앞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믿지 않고 세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왜 놀라겠습니까? 빈 그릇들을 채우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구들아, 당신 집안의 미신자들을 생각해 보세요. 아직 구원받지 않은 친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로 자주 기억하고, 기도를 멈추지 마세요. 그리스도의 은혜는 결코 흐르지 않는 것이 없고, 기도의 능력은 결코 고갈되지 않습니다. 가족 모두가 회개할 때까지, 하나의 빈 그릇도 남지 않을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마세요. 우리는 이웃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열심인가요? 우리가 사는 지역이 기도 중에 더 자주 마음속에 떠오른다면, 런던에서 얼마나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분노하신 하나님 손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설교로 일어난 큰 깨달음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설교는 결과적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설교의 힘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몇 일 전에 모여, 설교할 목사를 위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것을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도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마을, 도시, 도시들을 가지고 진심으로 기도한다면, 지금은 축복이 없는 일에 하나님께서 성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리지만 결코 싹이 나지 않는 목사님들은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 간구한 이들은 이 신비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마치 조용히 빈 그릇을 기름이 흘러내리는 곳 아래에 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그릇이 채워집니다.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보자. 망설이십니까? 하늘의 열쇠를 허리에 차고 계신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의 보물을 우리의 믿음에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소홀로 이 은혜를 방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기 당신의 완전한 자유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하면 주어질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입을 넓게 벌리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두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어떤 일에 합의하면, 그것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왜 우리는 즉시 합의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께서 서명하셨고 당신을 위해 비워두신 이 체크를 작성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 앞에 무한한 보물을 열어 놓으셨는데, 거기에 페니나 적은 금액을 쓰겠습니까?
감옥에 갇힌 바울의 기도 생활
설교자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사실에서 말씀을 시작합니다. 원수는 감방의 문을 잠그고 사슬을 채우며 창문에 쇠창살을 달 수 있지만, 겸손한 믿는 자의 마음에서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막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이 진리가 세계 곳곳에서 감옥이나 수용소에 갇힌 기독교인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병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도 무능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고 적용합니다. 설교자는 바울이 감옥에서도 여러 교회와 그 안의 개인들을 끊임없이 기도로 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헝가리와 다른 나라의 기독교인들을 위해 우리가 매일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묻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그 시간을 이 기도에 바치라고 권면합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1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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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여러분의 주의를 끌고 싶은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서 3장 14절과 15절에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의 에베소서 3장 14절과 15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무릎을 꿇어 기도하노니,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가족이 이름을 받은 분이시니라.’ 이제, 수정역이나 개정 표준역을 보고 계신 분들은 이 공인역에 있는 몇몇 단어들이 수정역에는 없는 것을 알아차리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므로 내가 아버지께 무릎을 꿇어 기도하노니,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가족이 이름을 받은 분이시니라.’라고 읽으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이 장의 시작 부분에서 이미 다루려던 주제를 다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첫 번째 절을 살펴보았을 때, 그 절이 ‘이러므로’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14절 역시 ‘이러므로’로 시작됩니다. 그는 15절 이후로 이어지는 말씀을 하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묘사하면서, 사도로서의 부르심에 대해 장엄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다루는 삽입문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그는 13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고난을 인하여 실망하지 않기를 원하노라, 이는 너희 영광이 됨이니라.’라고 말하며 그 삽입문을 시작했습니다. 이 삽입문은 우리가 보았듯이 매우 가치 있었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도가 이 편지에서 이 시점에서 가졌던 주된 목적과 의도에서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삽입문을 마친 후, 그는 다시 처음에 말하려던 내용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14절의 ‘이러므로’는 1절의 ‘이러므로’처럼, 두 번째 장의 말미에 이르렀던 말씀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부터 살펴볼 이 말씀을 설명할 때, 이전에 말했던 내용과의 연결을 잘 고려해야 합니다. 기억하실 것이지만, 그 핵심 내용은 이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과 완전한 단일성을 이루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전에는 완전히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공동체로부터 이방인이었고, 약속의 언약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희망이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19절에서 그는 ‘이제 너희는 이방인이나 낯선 자가 아니며,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노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머리석이 되셨으니, 그 안에서 모든 건물이 잘 맞물려 성령 안에서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고, 너희도 거기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로 이러한 높은 개념과 묘사입니다. 이제 ‘이러므로’는 그 진리에 비추어 사도가 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 연결고리입니다. 이 관계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가 이전에 말했던 내용을 이해하지 않는 한, 지금 말하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새로운 진리는 이 에베소 교인들이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며, 하나님의 집의 구성원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고,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그들의 위치에서 비롯된 기도입니다.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둔 채, ‘이러므로’ 사도는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그는 그들에게 기도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무릎을 꿇어 기도하노라.’ 이제 오늘 아침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사도가 이 거대한 기도를 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제시할 때, 그가 어떻게 이 기도를 소개하는지를 몇 가지 주석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제가 강조해야 할 첫 번째 점은 그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맥락에서 이는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교훈입니다.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때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는 그의 감옥서신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로마에 갇혀 있었을 것입니다. 어디에 갇혔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그가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한 적이 그를 붙잡아 가두고, 에베소에 가서 설교하거나 다른 곳으로 가서 전도할 수 없게 만든다고 해서, 그의 육체적 활동과 사역에 많은 제약을 가하더라도, 적이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가 기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적은 그를 감방에 가두고 문을 잠그고, 문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문에 사슬을 채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