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10개 · 1 / 1쪽 · 한 쪽 20개
전도사 시절 화평회와 변유복 전도사의 최선
설교자는 전도사 시절의 경험을 먼저 꺼냅니다.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4천 명이 모이는 교회에 갔을 때, 곁에서 손을 잡아 주거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도사 네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한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화평회'를 가졌습니다. 규칙이나 격식은 없었고, 목회와 가정, 생활의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해결된 것은 기억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었고, 피곤한 사람은 먼저 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자유로운 모임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이어서 같은 모임에 있던 분이 광양에서 은퇴한 뒤, 평촌교회에 부임했던 변유복 전도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변 전도사는 교회에 사람이 나오든 말든 동네를 찾아다니며 인사했고, 열매가 뚜렷하지 않아도 열심히 한 만큼은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그 말에 백 번 옳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잘 실천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를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8
설교 내 7–8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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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도사 시절,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전도사로 4천 명이 모이는 교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 있을 때 제 손을 잡아 주는 사람도 없고, 곁에서 충고나 지도나 어드바이스를 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배울 만한 단임 목사 밑에서 훈련받은 것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전적으로 맡겨졌습니다. 뭘 알아야 뭘 하지, 그래서 전도사 네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한 사람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함께 지냈습니다. 이런저런 사역의 여담을 나누고, 고민도 나누고, 해결되든 말든 그 고민을 털어놓고, 나름대로 해결점을 얻곤 했습니다. 네 사람이 모여서 화평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화평회'라고 불렀는데, 특별한 규칙이나 격식도 없었습니다. 너무 외롭고 서로 부족하니까 만나서 목회의 고민, 가정의 고민, 생활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딱히 해결된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었어요. 네 사람 모두 그랬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그 모임이 없어졌는데, 지금도 그때 모임에서 개인적인 목회의 고충을 다 털어놓고, 이제 그만 누워서 자자, 이제 그만합시다 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피곤한 사람은 먼저 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더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참 자유로운 모임이었습니다.
그때 거기 있던 분이 나중에 광양에 가서 은퇴하셨는데, 대원사를 가다 보면 반머리를 쭉 가고, 반머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면 대원로가 나옵니다. 그 삼거리에 교회가 있어요. 평촌교회라는 교회인데, 거기에 부임해 온 전도사가 변유복 전도사라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는 것도 많고 기도도 넓었고, 또 열심이었어요. 특히 이 사람은 교회에 누가 나오든 말든, 동네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부지런히 찾아다녔습니다. 평촌에는 동네가 크지 않아서 한두 개, 세 개 정도의 작은 동네가 있는데, 그곳을 찾아가 인사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때 그분이 한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대학생을 전도도 잘하지 못하고, 그렇게 다닌다고 열매가 있고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그렇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야 되지 않느냐, 최선을 다해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열매도 없고 전도가 잘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 만큼은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과가 어떻든 일단 계속 집 저 집을 찾아다니고 만나며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왕 회장의 6대 신앙 계보
설교자는 언어인팅에서 중국 CBMC의 왕 회장님을 만난 일을 소개합니다. 왕 회장님은 여성 분이었고, 스스로 6대째 크리스천이라고 밝혔습니다. 설교자가 최초의 조상이 누구에게 예수를 믿었는지 묻자, 그분은 허드슨 테일러에게 복음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설교자는 영국에서 중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한 허드슨 테일러가 OMF를 만들었다는 배경을 덧붙입니다. 이어서 설교자는 한국에도 언더우드나 셀라 같은 선교사들이 와서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우고 여성 해방 운동도 펼쳤던 역사를 떠올립니다. 그 과정에서 최초의 세례자들이 생겨났고, 그 복음이 이어져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설교자의 이해입니다. 설교자는 이 흐름을 예수님이 앞으로 믿게 될 사람들을 기억하며 중보 기도하신 일과 연결합니다. 그래서 이 기도가 제자들만이 아니라 지금의 여러분과 나에게도 직접 해당된다고 적용합니다.
하용조 · 2026-10-24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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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은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기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장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중보 기도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과거형으로만 알고 있지, 믿음으로 현재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재형이고, 은혜는 과거형입니다. 이미 만들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능력을 믿음으로 받는 채널이 있는데, 그 채널이 바로 기도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기도의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기면 은혜가 폭발합니다. 이미 주어진 은혜가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잠금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참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된 신앙은 거짓된 기도를 합니다. 허황된 기도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를 아예 할 수 없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절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어떤 기도냐에 따라 진짜 참 믿음이냐, 가짜 믿음이냐가 여러분의 기도 속에 다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이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는 세 가지 대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 보면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로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첫 번째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여 나에게 믿음을 주시사, 아버지여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옷입히시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복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자신,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를 따라다녔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같이 읽을까요? 시작.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예수님의 그 기도 속에 '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이 내게 주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도 있고,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가르쳐 제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특별히 이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다섯 가지 기도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여 저들이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연합과 일치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아버지여 저들도 나와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되게 하옵소서.' 두 번째 기도는 12절인데요. '주여 저들을 지켜 주십시오.' 보존해 주십시오. 보호와 인도와 양육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세 번째 '주여 저들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쁨과 감동과 능력의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기도는 '악에게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제자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주여 저들이 악에게 빠지지 말고 시험에 들지 말고, 사탄과 싸워서 이기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17절에 있는 말씀인데요. '주여 저들로 하여금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비전을 위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런 기도는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계속 이 다섯 가지 기도를 하십니다. '저들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보존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저들이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 제자들을 향한 기도가 다 여러분에게 응답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분열하지 말고 하나되십시오. 아멘. 여러분 당황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호와 양육과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기쁨과 감동과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이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거 다 외우세요. 예. 다음에 신문에 이거 나오면 다 외우세요. 왜냐하면 이게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기도였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예수님의 기도는 아주 중요하고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방향이 있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뭐냐면, 이제 세 번째로 예수님이 중보 기도의 대상을 바꿔요. 첫째는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고요.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셨다면, 세 번째 대상은 무엇인가?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할 텐데, 전도하면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 터인데, 앞에서는 아니지만 앞으로 예수 믿게 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게 굉장히 놀랍습니다. 앞으로 예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 예수님은 그걸 염두해 두셨어요. '너희들이 나가서 이제 나를 증거할 터인데, 내 증거를 받고 누군가 어느 민족인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20절이 그 말씀입니다. 20절 함께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내가 비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을 위함이다.' 자, 제자들만으로서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서 예수님을 전하면, 저희 말로 인하여 나를 믿게 될 사람들이 생길 터인데,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염두에 두면서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그 사람이 누굴까요? 여러분과 나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잖아요. 사도들이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200년 동안 전도하다가 그 복음이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 있는 선교사님들이, 물론 영국에서 토마스도 왔고 다 왔지만, 주로 선교사님들이 100년 전에 한국에 오셔서 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 주었지요. 제가 이번에 언어인팅에서 중국의 CBMC 회장님을 만났는데, 왕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여자분이세요. 그분이 6대 크리스천이에요. 그 당신의 최초의 조상이 누구한테 예수 믿었냐고 물으니, 허드슨 테일러한테 복음을 받았대요. 그 6대째인 사람이 크리스천이에요. 어, 그분이 이번에 오셨어요. 그니까 영국에서 허드슨 테일러라는 사람이 OMF를 만들었는데, 영국 가서 중국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예수 믿은 사람이 우리나라 같은 면은 언더우드나 셀라 이런 사람들이 오셨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고, 이런 걸 많이 여성 해방 운동도 하고 다 그러셨어요. 그때 최초의 세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다 예수 믿어서 오늘 누구까지 이루는 거예요? 나까지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마음에 계산하시고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게 오늘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이 기도는 여러분하고 나하고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놓고 생각을 해 보면,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예수 믿기의 망정이지. 예수 믿기 전에 굉장한 분들 많잖았어요. 그렇죠? 여러분이 예수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박담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박담 목사님 친구분을 내가 저기 저저기서 만났어요. 그 화랑 있는 데서 만났다. 박담 목사님이 목사 됐더니까 쇼크를 먹더라고요. 아니,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됐냐고. 그 사람이 목사되면 내가 하나님 믿어야 된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목사님이랑 둘이 같이 웃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나는 도대체 예수를 믿을 것 같지가 않다. 우리 가정의 배경이나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배경에서 보면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기적적으로 내가 예수를 믿게 됐어요. 그게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 때문도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전도해 준 사람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당신한테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됐다는 결론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 한국이 예수 믿은 것도 바로 그런 거예요. 제가 오래 전에 한번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만은, 제가 80년대 영국에 한 3년 가서 살았을 때, 거기에 마이클 그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예배드리러 갔다가, 거기에 머리 허연 70이 넘으신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분을 만나 버렸어요. 그래서 그 노인 어 할머니를 내가 만났더니 한국에서 왔다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뭐 그냥 죽은 사람 만났듯이 내 손 잡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냐고 물으니, 이분이 625 전쟁 때부터 한국을 위해 기도했대요. 그래서 어떻게 당신이 한국을 위해서 전도해 기도하냐고 물으니, 625 전쟁 때 뉴스 난 걸 보고 자기가 기도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럼 한국 가 보셨느냐고 물으니, 가 본 적 없대요. 한국 한 번도 안 가 보신 분이 지금까지 평생 코리아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아유, 그냥 몸이 엇싸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아, 한국이 예수 잘 믿고, 한국이 그 지옥 같은 그 일제 시대와 유기요화와 버리고개와 가난 속에서도 이렇게 이만큼 살만하게 된 게 바로 이 할머니의 기도 때문이구나. 그래서 이 사람은 한국에 와 본 적도 없고, 한국의 친구도 없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그 자체 하나 때문에 저를 굉장히 환영해 줬던 그런 기억이 있어요.
박담 목사님 친구의 놀람
설교자는 교회의 박담 목사님 친구분을 우연히 만났던 일을 전합니다. 설교자는 그 만남이 화랑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기억합니다.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 친구분은 크게 놀라며 쇼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친구분은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되었다면 자기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설교자는 목사님과 함께 웃었다고 회상합니다. 설교자는 청중에게 여러분이 예수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분들이 많지 않느냐고 물으며 공감을 구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가정 배경이나 살아온 삶으로 보면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았지만 기적적으로 믿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그 이유가 여러분이나 전도한 사람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중보 기도 때문이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래서 전도의 열매는 결국 기도에서 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용조 · 2026-10-24
설교 내 1–1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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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은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기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장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중보 기도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과거형으로만 알고 있지, 믿음으로 현재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재형이고, 은혜는 과거형입니다. 이미 만들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능력을 믿음으로 받는 채널이 있는데, 그 채널이 바로 기도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기도의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기면 은혜가 폭발합니다. 이미 주어진 은혜가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잠금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참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된 신앙은 거짓된 기도를 합니다. 허황된 기도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를 아예 할 수 없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절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어떤 기도냐에 따라 진짜 참 믿음이냐, 가짜 믿음이냐가 여러분의 기도 속에 다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이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는 세 가지 대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 보면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로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첫 번째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여 나에게 믿음을 주시사, 아버지여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옷입히시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복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자신,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를 따라다녔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같이 읽을까요? 시작.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예수님의 그 기도 속에 '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이 내게 주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도 있고,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가르쳐 제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특별히 이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다섯 가지 기도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여 저들이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연합과 일치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아버지여 저들도 나와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되게 하옵소서.' 두 번째 기도는 12절인데요. '주여 저들을 지켜 주십시오.' 보존해 주십시오. 보호와 인도와 양육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세 번째 '주여 저들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쁨과 감동과 능력의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기도는 '악에게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제자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주여 저들이 악에게 빠지지 말고 시험에 들지 말고, 사탄과 싸워서 이기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17절에 있는 말씀인데요. '주여 저들로 하여금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비전을 위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런 기도는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계속 이 다섯 가지 기도를 하십니다. '저들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보존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저들이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 제자들을 향한 기도가 다 여러분에게 응답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분열하지 말고 하나되십시오. 아멘. 여러분 당황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호와 양육과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기쁨과 감동과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이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거 다 외우세요. 예. 다음에 신문에 이거 나오면 다 외우세요. 왜냐하면 이게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기도였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예수님의 기도는 아주 중요하고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방향이 있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뭐냐면, 이제 세 번째로 예수님이 중보 기도의 대상을 바꿔요. 첫째는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고요.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셨다면, 세 번째 대상은 무엇인가?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할 텐데, 전도하면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 터인데, 앞에서는 아니지만 앞으로 예수 믿게 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게 굉장히 놀랍습니다. 앞으로 예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 예수님은 그걸 염두해 두셨어요. '너희들이 나가서 이제 나를 증거할 터인데, 내 증거를 받고 누군가 어느 민족인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20절이 그 말씀입니다. 20절 함께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내가 비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을 위함이다.' 자, 제자들만으로서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서 예수님을 전하면, 저희 말로 인하여 나를 믿게 될 사람들이 생길 터인데,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염두에 두면서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그 사람이 누굴까요? 여러분과 나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잖아요. 사도들이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200년 동안 전도하다가 그 복음이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 있는 선교사님들이, 물론 영국에서 토마스도 왔고 다 왔지만, 주로 선교사님들이 100년 전에 한국에 오셔서 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 주었지요. 제가 이번에 언어인팅에서 중국의 CBMC 회장님을 만났는데, 왕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여자분이세요. 그분이 6대 크리스천이에요. 그 당신의 최초의 조상이 누구한테 예수 믿었냐고 물으니, 허드슨 테일러한테 복음을 받았대요. 그 6대째인 사람이 크리스천이에요. 어, 그분이 이번에 오셨어요. 그니까 영국에서 허드슨 테일러라는 사람이 OMF를 만들었는데, 영국 가서 중국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예수 믿은 사람이 우리나라 같은 면은 언더우드나 셀라 이런 사람들이 오셨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고, 이런 걸 많이 여성 해방 운동도 하고 다 그러셨어요. 그때 최초의 세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다 예수 믿어서 오늘 누구까지 이루는 거예요? 나까지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마음에 계산하시고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게 오늘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이 기도는 여러분하고 나하고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놓고 생각을 해 보면,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예수 믿기의 망정이지. 예수 믿기 전에 굉장한 분들 많잖았어요. 그렇죠? 여러분이 예수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박담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박담 목사님 친구분을 내가 저기 저저기서 만났어요. 그 화랑 있는 데서 만났다. 박담 목사님이 목사 됐더니까 쇼크를 먹더라고요. 아니,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됐냐고. 그 사람이 목사되면 내가 하나님 믿어야 된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목사님이랑 둘이 같이 웃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나는 도대체 예수를 믿을 것 같지가 않다. 우리 가정의 배경이나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배경에서 보면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기적적으로 내가 예수를 믿게 됐어요. 그게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 때문도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전도해 준 사람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당신한테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됐다는 결론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 한국이 예수 믿은 것도 바로 그런 거예요. 제가 오래 전에 한번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만은, 제가 80년대 영국에 한 3년 가서 살았을 때, 거기에 마이클 그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예배드리러 갔다가, 거기에 머리 허연 70이 넘으신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분을 만나 버렸어요. 그래서 그 노인 어 할머니를 내가 만났더니 한국에서 왔다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뭐 그냥 죽은 사람 만났듯이 내 손 잡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냐고 물으니, 이분이 625 전쟁 때부터 한국을 위해 기도했대요. 그래서 어떻게 당신이 한국을 위해서 전도해 기도하냐고 물으니, 625 전쟁 때 뉴스 난 걸 보고 자기가 기도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럼 한국 가 보셨느냐고 물으니, 가 본 적 없대요. 한국 한 번도 안 가 보신 분이 지금까지 평생 코리아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아유, 그냥 몸이 엇싸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아, 한국이 예수 잘 믿고, 한국이 그 지옥 같은 그 일제 시대와 유기요화와 버리고개와 가난 속에서도 이렇게 이만큼 살만하게 된 게 바로 이 할머니의 기도 때문이구나. 그래서 이 사람은 한국에 와 본 적도 없고, 한국의 친구도 없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그 자체 하나 때문에 저를 굉장히 환영해 줬던 그런 기억이 있어요.
무디를 위한 두 사람의 회심
설교자는 무디가 두 사람을 위해 평생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설교자는 '그런 얘기가 있다'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무디가 죽기 한 달 전에 예수를 믿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무디가 죽고 난 한 달 뒤에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이 일화를 들어, 기도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기도는 응답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청중에게 전도하면 사람은 반드시 믿는다는 확신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설교자는 안 믿는 사람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전도하라고 강하게 격려합니다. 그는 이 말을 비유적으로 강조하며, 그만큼 복음의 결실을 확신하라는 뜻을 전합니다. 설교자는 기도가 응답된다는 사실을 믿고 계속 기도하라는 메시지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하용조 · 2026-10-24
설교 내 10–10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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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그 사람은 꼭 믿습니다. 전도하면 믿어요. 아멘. 안 믿으면 다리 하나 불어 뜨려 가지고도 믿게 하세요. 꼭 믿습니다.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무디가 두 사람을 위해서 평생 기도했는데, 한 사람은 무디가 죽기 한 달 전에 예수를 믿었고, 한 사람은 무디가 죽고 난 한 달 후에 믿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런 얘기가 있어요. 당신이 죽어도 그 기도는 응답돼요.
체육관에서 만난 믿는 신입생
설교자는 캠퍼스 체육관에서 운동하다가 한 신입생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이 학생은 자신을 믿는 사람이라고 먼저 말했지만,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설교자가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묻자, 학생은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친구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후 유튜브 동영상과 다른 자료를 보며 점차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주가 아름답고 질서정연하다는 사실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원인을 통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믿게 되었고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설교자에게 이 만남은 이미 믿는 청년에게 예수님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첫 성경을 건네며, 첫 교회에 함께 가는 일을 돕는 자리였습니다. 학생은 설교자의 말을 거의 반박하지 않고 받아들였으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만 질문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이 경험을 통해 이 세대가 성령님의 축복을 받고 영생의 은혜를 얻으며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적용합니다.
데릭 리쉬마와이 · 2026-10-22
설교 내 4–4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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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와서는 "오, 성경은 알파벳 순서인가요?"라고 묻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미시간 주립대학과 미시간 대학교의 대학 캠퍼스에서 봉사 활동을 함께 한 대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복음 전도와 봉사를 하게 되어 기뻐했고, 주님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밤, 제 젊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친구는 아마 20살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저는 그가 여전히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죽으셨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니요,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아니요,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래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그 친구의 이름이 마커스 보그였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그에게 사도신경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처럼 큰 지식의 공백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이런 상황을 마주치면 "우리는 카테키즘을 필요로 한다."라고 느끼게 됩니다. 네, 그렇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그건 정말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 점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아마 저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겠죠. 저는 잊어버렸습니다. 당신은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캠퍼스 사역에 대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현재 UC 아일랜드에서 RUF 캠퍼스 사역을 맡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은 제게 사역을 부르심 받게 된 중요한 시기였고, 제 삶 속에서 예수님과의 관계가 다시금 회복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한 사역은 고등학교 시절의 작은 그룹 친구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하기 전, 매주 토요일 아침에 부모님 집 식탁에서 함께 『하나님이 계신 이유』라는 책을 한 장씩 읽으며 커피와 Costco 머핀을 먹으며 나눈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은 사람들이 가장 깊은 질문을 던지고 가장 큰 전환을 겪는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후로도 어떤 형태로든 대학 사역을 해왔습니다. 그때 저는 아마 21살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여러 장소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현재 저는 UC 아일랜드에서 캠퍼스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학생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제네레이션 Z 세대와 함께 사역하는 것은 특별히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 점에 대해 여러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이 세대가 복음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최근 발표된 데이터와도 일치합니다. 제네레이션 Z에 대한 연구가 있었는데, 영국에서 발표된 "조용한 부흥"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6년 전에는 제네레이션 Z 남성 중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이 3~4%였지만, 지난 6년 사이에 이 비율이 20%, 21%로 증가했습니다.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UC 아일랜드의 졸업생으로서, 저는 그 대학의 체육관에서 운동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며 학생들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아, 형, 그 운동기구는 어때?" 같은 대화를 나누며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합니다. 저는 한 신입생을 만났습니다. 이 젊은이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했습니다. 첫째, 이 세대는 매우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예전에 가지고 있던 부담감이나 부정적인 인상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 친구들이 예전에는 "형, 당신은 뭐 하세요?"라고 묻고, 제가 "목사입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아, 멋지네요."라고 말했지만, 이 세대는 그 말을 비꼬는 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관심을 보입니다. 저는 이 젊은이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는 "아, 정말 멋지네요. 저는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요? 어디 교회 다니세요?"라고 묻자, 그는 "아니요, 저는 교회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흥미롭네요.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어요?"라고 묻자, 그는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친구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후 유튜브 동영상이나 다른 자료를 보며 점차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주가 아름답고 질서정연하다는 것이 사실이고, 그 아름다움과 원인을 보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믿게 되었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젊은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는 이미 믿는 사람으로서, 제 역할은 이제 예수님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그의 첫 번째 성경을 주고, 첫 번째 교회에 가는 것을 도와주며, 기본 신앙 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 말을 거의 반박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만 질문을 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세대는 성령님의 축복을 받고, 영생의 은혜를 얻으며,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형제단 친구가 복음을 소개한 스타벅스 장면
설교자는 캠퍼스에서 만난 한 학생이 형제단 친구를 불러 자신을 소개하던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 학생은 과거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열심히, 크게 '아, 여기 와봐. 이 친구는 데릭이야. 그는 목사야.'라고 말하며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두 사람은 스타벅스 같은 곳에 함께 있었고, 형제단 친구는 흥미를 보이며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반응을 통해 집단 전체에 열린 마음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것이 개인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통계로도 뒷받침된다고 덧붙이며, 특히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지지만 젊은 여성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에 비해 부담이나 무거움이 덜 느껴지는 이 시기가 꽤 재미있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말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줄어든 현장의 분위기를 그는 이 세대의 소망으로 제시합니다.
데릭 리쉬마와이 · 2026-10-22
설교 내 5–5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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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그와 캠퍼스에서 만났고, 그의 형제단 친구가 지나가는데, 그 친구는 형제단 출신이었고, 그가 말하길, "아, 여기 와봐. 이 친구는 데릭이야. 그는 목사야. 우리가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과거의 나의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훨씬 더 크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있었고, 그가 말하길, "아, 네, 우리는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그가 말하길, "아, 정말 멋지네. 흥미롭군요.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맞아요. 그래서 전체 집단 안에서 열린 마음이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통계도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이 현상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지만,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린 마음이 있는 이 시기, 과거보다는 부담감이나 무거움, 짐 같은 것이 덜 느껴지는 이 시기가 꽤 재미있는 시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료 음식 행사에 350명이 모인 미시시피 대학교
패널은 미시시피 대학교에서 진행한 행사의 결과를 소개합니다. 행사는 무료 음식을 제공하고, 다양한 캠퍼스 사역이나 다문화 활동과 협력하며, 그림 그리기나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으로 학생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이벤트였습니다. 그 결과 12시부터 1시까지 약 350명의 학생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중 300명이 캠퍼스 사역자와 앉아 복음을 듣고 싶다고 요청했고, 실제로 101명이 참여했습니다. 설교자는 이 숫자를 놀라운 결과로 보며, 다양한 배경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기독교가 주최한 행사에 모이면서 기독교인이 접근 가능한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가까움이 불안을 해소하고, 함께 모여 복음을 듣는 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을 인용하며, 서로를 사랑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연결과 공동체에 굶주린 세상을 향한 초대가 된다고 적용합니다.
데릭 리쉬마와이 · 2026-10-22
설교 내 10–10문단 · 예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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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절망감이나 손실감입니다. 특히 고립감 측면에서는 대학 캠퍼스에서 우리가 정말 유용하게 활용한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버드든 킴스테이트든 가나든 어디든,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료 음식을 제공합니다. 알겠죠? 그래서 우리는 치킨필-A나 칩otle 같은 무료 음식을 가져가고, 다양한 캠퍼스 사역이나 다문화 활동과 협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을 통해 학생들을 섬기고, 무료 음식을 제공하면서 함께 모이는 커뮤니티 이벤트도 진행합니다. 그 이벤트는 그림 그리기나 함께 문제를 해결해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다양한 배경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기독교가 주최한 행사에 모이게 되고, 기독교인들이 이제는 정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접근 가능한 존재가 되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가까움이 불안을 해소시켜 줍니다. 가까움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복음을 듣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최근 미시시피 대학교에서 진행한 행사의 결과는 약 350명의 학생이 12시부터 1시까지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 중 300명이 캠퍼스 사역자와 앉아 복음을 듣고 싶다고 요청했고, 그 중 101명은 실제로 참여했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이 주는 기회는 바로 공동체라는 점을 보았습니다. 주일에 함께 모이지 못하도록 말하는 성경 구절은 많지만,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연결과 공동체에 굶주린 세상에 주는 초대입니다. "교회에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기독교인들에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라고 말이죠. 저는 계속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실 몇 년 동안 우리가 느낀 것은 여러분의 질문이 우리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받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에 패널에게 직접 질문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먼저 말씀해 주세요. 교회를 보고 계십니까? 그리고 반대편으로, 정신 건강 문제의 증가를 보고 계십니까? 다시 말하면, 교회 간극이 줄어들고 있는지, 그리고 Gen Z 세대에서 정신 건강 문제의 급증을 보고 계십니까? 저는 후자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많이 있습니다. 네, 많이 있습니다. 네, 엄청난 수준의 불안과 다른 문제들이 있습니다. 틱톡이나 유튜브에 "자기 자신을 불안으로 진단하라"는 영상들이 많다는 점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맙소사, 그들을 빨리 소송해야 해."라고 말하던데, 저는 이미 했습니다. 계속해 주세요. 젊은 부부 간극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보셨나요? 우리 교회에서는 젊은 부부들이 나타나고 있고, 아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구 증가기가 맞나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표적인 사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젊은 부부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통계적으로 Gen Z 세대의 문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만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만나지 않으니까요. 이 점을 분명히 해야겠죠. 우리는 전혼성교에 반대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그런 설교도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네, 전혼성교는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만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나지 않는 것이 바로 교제와 약혼, 그리고 결혼으로 이어지는 전제 조건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표현을 써야겠네요. 하지만 저는 관계 회피가 성별 간의 두려움과 친구 관계까지도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젊은 여학생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어떤 남학생에 관심이 있다고 했는데, "하지만 친구 그룹이 어색해질까 봐 걱정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보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친구 그룹은 영원하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배우자는 오래 함께할 수 있습니다. 친구 그룹을 위험하게 감수하고 시도해 보세요." 그런데 그녀는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그게 약간은 어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있습니다.
권사님이 초청한 편모 가정 모녀의 변화
설교자는 지난 주일 세대 축제 때 만난 한 권사님의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권사님은 예배에 참석한 설교자를 보고 급히 달려와 편모 가정의 엄마와 딸을 초청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설교자는 상황을 들은 뒤 두 사람을 만나 기도했고, 딸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간 뒤 권사님과도 함께 기도했으며, 그날 오후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문자에는 자매가 3주 전부터 교회에 나와 치유와 회복을 얻고 있다는 말과 함께, 딸이 왕따로 힘들어했고 치료 센터도 효과가 없어 그만두려 한다는 사정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 딸의 얼굴이 밝아지고 웃음을 되찾았으며, 교회에 대한 호의와 예수님을 영접하려는 마음이 생겼다고 전해졌습니다. 설교자는 웃는 딸을 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평안했을지 생각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며, 그를 기다려 주는 마음, 위해 기도하는 마음, 예배의 자리로 초청하는 간절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설교자는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신다고 느꼈다고 나눕니다.
오경제 · 2026-10-21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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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시간, 당신은 무엇으로 버티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말씀을 시작하면서 지난 주일 세제 때 만났던 한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한 권사님이 예배를 오셨는데, 제가 있는 모습을 보고 막 뛰어오셨습니다. 그리고 한 분을 초청해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편모 가정의 엄마와 딸이 함께 오는 과정이었습니다. 몇 가지 상황을 듣고 기다리다 엄마와 딸을 만났습니다. 딸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는데, 부모로부터 상황을 듣고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돌아가고 나서 권사님과 함께 기도를 드렸고 예배를 드린 후, 오후에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그 문자를 읽어드리면, "목사님, 기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매님은 20년 전 순원의 친정 언니로, 영육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라 3주 전부터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며 치유와 회복을 얻고 있습니다. 특성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딸도 여기 왔으면 해서 오늘 오게 되었습니다. 딸은 왕따로 힘들었고, 최근에는 중동 문제로 치료 센터를 다녔지만 효과가 없어 그만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 후 얼굴이 밝아지고 웃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초청을 했기 때문에 초청자의 마음을 알잖아요. 예배 때 와서 하나님이 만져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교회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이 생기고, 예수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아이는 편모 가정에서 자라며 어려움을 겪고, 엄마의 마음이 위로받고 돌아가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돌아갔을 때, 아이의 얼굴이 웃는 얼굴로 변화되었고, 대화를 나누며 그 웃는 얼굴을 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평안했을까 생각하니, 저 또한 마음이 포근해졌던 주일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다시 보며 위로를 받고 기뻐하려고 했는데, 한 가지 생각이 먼저 났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참 거창한 일이 아니구나. 그분을 기다려 주는 마음, 그분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 초청하여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장에 와서 그 마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자를 계속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를 초대하고 사랑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브라보 시니어를 섬기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자녀의 신앙을 위해 오랫동래 기도하고 있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대 축제에 좋은 자리가 있지만, 그 자리에 초청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해 초청했음에도 거절당하거나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오래 지속되면 믿음을 가진 사람도 지칩니다. 누군가를 열심히 초청하려 노력하지만, 그분이 세대 축제 때 지쳐 있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세대 축제를 보내고 오후에는 많은 분들이 초청자들과 함께 복음을 경험하는 시간을 보내며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낙담한 성도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주에 또 기회가 있겠지만, "이번에 오지 않으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제 마음이 치졸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때로는 버티는 인생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의 제목을 "당신은 무엇으로 버티고 있습니까?"로 잡았습니다.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어떤 분들은 잘 산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어떤 분들은 지금 견디고 있고, 버티고 있습니다. 버티는 의미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견뎠는지 물어봤을 때, 어머니의 한마디가 제 마음속에 박혔습니다. "하나님 없었으면 나 그때 죽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예수님, 내 안에 내주하신 성령, 예배의 자리, 때로는 예배에 못 나오는 가나안 성도, 옛 추억, 찬양, 말씀 한 구절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낙담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세대 축제를 보내면서 제 마음속에 계속 찾아오는 생각은, "내가 지금 이 상태인데 누군가를 전도할 수 있을까?"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본이 되지 않는 모습인데,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가자고 말할 수 있을까? 내 모습이 떳떳하지 못한 것 같고, 믿음이 약한 것 같아 스스로 자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은 베드로전서입니다. 2,000년 전 소아시아의 한 마을에서, 오늘날과 비슷한 성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많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일상은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한 성도는 낮에는 평소처럼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가족 앞에서는 웃으며 믿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과 2장을 보면, 베드로가 성도들을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표현은 아름답습니다. 2장 9절에서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라고 극찬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성도들은 믿음 안에서 갈등하고, 때로는 믿음을 떨어뜨리는 이웃을 위로해야 했습니다. 신앙 상담을 받을 때, 내 믿음으로 설명하더라도 낙담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포기하고 믿음을 포기하면 좋은 세상이 열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로 한 게 정말 잘한 일일까?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왜 더 힘들어지는 걸까?"라고 하나님 앞에서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말을 한 인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전서를 보면, 실루아노를 통해 기록된 내용 중에 이름이 등장하는 사람도 있고, 소아시아 교회에 이름 없이 믿음을 지키려 하며 갈등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때로는 오해를 받고, 선을 행하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오히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점을 강조합니다. 세대 축제를 보내면서, 잘 초청된 분들도 있지만, 전도 대상자 명단은 적게는 900명, 많게는 1,300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교회에 오는 분은 주에 300명 내외입니다. 초청되지 못한 많은 분들에 대해 실망하고 넘어진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많을 것입니다.
십 년째 초청하는 지인의 낙심
설교자는 자신이 아는 한 분의 사례를 들려줍니다. 그분은 10년째 세대 축제에 참석해 왔고, 이번에도 친구 두 명을 데려왔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교회에 오지 않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오랜 시간 초청을 이어 온 그분의 낙심이 얼마나 클지 헤아립니다. 그러면서 초청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입을 열기 어려운 성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런 현실이 초청을 쉽지 않게 만든다는 점을 나누며, 그 자리에서 성도들이 느끼는 무게를 함께 살핍니다.
오경제 · 2026-10-21
설교 내 5–5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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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때, 내가 그 복음을 받아들었을 때 온유와 두려움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전할 때도 동일하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전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강압도 없다. 다음 주일에 어떻게 밧줄로 묶어 데려오라는 말도 아니고, 이날 안 오면 끊는다거나 제안하는 것도 아니다. 복음이 내 안에 장착될 때, 온유와 두려움으로 소망이 되어 장착된다면, 내가 가진 이 소망을 품은 복음을 누군가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전해야 한다. 때로는 그렇게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지 않을 때, 그 사람을 맡겨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완벽해진 다음에 누군가를 초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온유와 두려움을 품고, 내가 애했던 것, 기다렸던 것, 기도했던 것, 메시지를 전달했던 모든 것들을 통해 결국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신다는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우리가 버티면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선을 행하는 것과 한 영혼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한다면, 첫 번째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실 예수님의 존재이다. 18절을 함께 읽어보자.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분명히 고난을 받으셨다. 그러나 베드로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면서 겪는 고난이, 만약 그것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려는 고난이라면, 예수님의 고난이 한 생명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본이 된 것처럼, 우리의 고난도 한 생명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대의 축제를 앞두고 낙심하고 힘들 때, 하나님은 나의 고난과 아픔, 실족을 통해 한 생명이 하나님 앞으로 분명히 인도될 것을 믿는다. 예수님처럼 나의 고난도 사용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면 좋겠다. 우리가 버틸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승리가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21절과 22절은 이렇게 말한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이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베드로는 죽음이 끝이 아니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모든 권세 위에 높히 계신다고 말한다.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영광으로 이어졌고, 우리의 소망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고린도후서 1장 8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이 고난은 살 소망을 끊어뜨릴 정도였다. 그러나 바울은 9절에서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대의 축제를 보내면서, 정말 이렇게 초청되어 복음의 잔치, 천국의 잔치를 맛볼 수 있는 분들이 그 안에서 기쁨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은 천국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간절히 초대하고 싶은데 왜 안 되는지 고민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분은 10년째 축제에 참석했고, 친구 두 명을 이번에도 데려왔지만, 그분은 왜 모르겠는지 계속 오지 않는다. 그 낙심은 얼마나 큰가. 그 외에도 초청하고 싶은데 입도 뻥할 수 없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위로를 얻고 견디는 믿음의 소망을 바라보자. 그 소망은 내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도하셨고, 고난이 부활의 소망과 은혜로 이어졌다는 것을 바라보면서, 세대의 축제 기간을 귀한 시간으로 보내길 바란다.
기하학 정리와 복음 제시
설교자는 친구나 기독교인이 아닌 가족을 생각하는 상황에서 말씀을 풀어 갑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성경을 인용하고 이유를 설명하며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결과가 없을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설교자는 아무도 이성적 논증으로 기독교 생활에 이끌 수 없다고 말하며, 이유는 제시할 수 있어도 기하학의 정리처럼 증명할 수는 없다고 비유합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동안에는 성령이 그들을 준비시키고 마음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바울이 교리를 가르치면서도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구원에 관심이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적용합니다. 그리고 기도보다 가르침에만 의지한다면 그 일은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1
설교 내 3–3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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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말은 우리가 사도가 이 에베소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가 그분이 그들에게 설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분이 그들에게 기도하시는 것은 그분이 그들에게 설교할 수 없기 때문이지만, 저는 이 것이 그분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는 점을 똑같이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그분이 자유롭다면 여전히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그분이 그들을 직접 방문하거나 더 적극적으로 가르칠 수 없는 신체적 능력의 한계 때문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모두 어느 정도 간과하고 있는 또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만큼,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묵상합니다. 성경에 대한 책을 읽고, 주석서를 읽고, 교회사에 대한 책을 읽고, 교리에 대한 책을 읽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필수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르침이 필요하고, 계시가 필요합니다. 이 서신이 바로 그 목적을 가지고 에베소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쓰여졌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보았습니다. 사도는 교리가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가르침은 우선순위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그 지식과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단지 머릿속에 그만 머물지 않고, 그 지식이 우리의 마음을 잡고, 우리의 뜻을 굽히고, 우리의 전인을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저는 이 점이 여기서나 다른 모든 가르침에서도 매우 분명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식과 가르침과 기도는 항상 함께 가야 합니다. 결코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 것이 우리 자신에게 필수적이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제, 이 설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이 점입니다. 이 사도는 이처럼 풍부하고 깊은 교리를 쓰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그것을 읽고, 함께 연구하고, 함께 논의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 실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축복 없이는 결코 실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가르침도 성령이 그것을 붙잡고 적용하고 우리의 이해를 열고, 우리의 존재 속에 깊이 자리 잡게 하지 않는 한 무의미합니다. 이제 이 사도는 결코 이 점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첫 장에서 그분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이해력의 눈이 열리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들의 이해력을 열지 않는 한, 심지어 바울의 가르침도 완전히 무의미하고 헛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점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실용적인 교훈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독교인이 아닌 친구들이 있고, 그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고, 그들에게 이 일들을 말하고,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설명하고,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현재 상황에 대한 입장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이는 옳은 일입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만약 이 일을 단지 이 정도로만 끝낸다면, 그 결과가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무도 이성적으로 기독교 생활로 이끌 수 없습니다. 이유를 제시할 수는 있지만, 이성적으로 그들을 이끌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이 문제를 제시할 수는 있지만, 기하학의 정리처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이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동안,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이 그들을 다루고, 준비시키고, 그들을 열어 주지 않는 한,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도는 자신의 교리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이 에베소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그분이 그들에게 훌륭한 교리를 보내는 것만큼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과 나에게도 이 점을 결코 잊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과 그 사람의 구원에 관심이 있다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되고, 도와주고, 시간을 보내고, 그 사람에게 이 일들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이 점을 더 나아가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기도보다는 가르침에 더 의지한다면, 당신의 일은 아마 실패할 것입니다. 이제 이 점을 여러분 스스로에게 적용해 보세요.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보세요. 신약 성경의 가르침 속에서 중보 기도의 위치를 주목해 보세요. 이는 놀라운 일입니다. 매우 놀랍습니다. 이 위대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기도에 매우 의지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고린도서와 빌립보서에서 이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라고 그분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시고, 자유를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등등. 그분은 이 시기에 감옥에 갇혀 있었고, 당신들의 기도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