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명장말씀을 찾고, 설교를 읽다

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4개 · 1 / 1쪽 · 한 쪽 20개

전도사 시절 화평회와 변유복 전도사의 최선

설교자는 전도사 시절의 경험을 먼저 꺼냅니다.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4천 명이 모이는 교회에 갔을 때, 곁에서 손을 잡아 주거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도사 네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한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화평회'를 가졌습니다. 규칙이나 격식은 없었고, 목회와 가정, 생활의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해결된 것은 기억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었고, 피곤한 사람은 먼저 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자유로운 모임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이어서 같은 모임에 있던 분이 광양에서 은퇴한 뒤, 평촌교회에 부임했던 변유복 전도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변 전도사는 교회에 사람이 나오든 말든 동네를 찾아다니며 인사했고, 열매가 뚜렷하지 않아도 열심히 한 만큼은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그 말에 백 번 옳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잘 실천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를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8

설교 내 7–8문단 · 예화 1

본문 발췌 보기

제가 전도사 시절,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전도사로 4천 명이 모이는 교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 있을 때 제 손을 잡아 주는 사람도 없고, 곁에서 충고나 지도나 어드바이스를 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배울 만한 단임 목사 밑에서 훈련받은 것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전적으로 맡겨졌습니다. 뭘 알아야 뭘 하지, 그래서 전도사 네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한 사람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함께 지냈습니다. 이런저런 사역의 여담을 나누고, 고민도 나누고, 해결되든 말든 그 고민을 털어놓고, 나름대로 해결점을 얻곤 했습니다. 네 사람이 모여서 화평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화평회'라고 불렀는데, 특별한 규칙이나 격식도 없었습니다. 너무 외롭고 서로 부족하니까 만나서 목회의 고민, 가정의 고민, 생활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딱히 해결된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었어요. 네 사람 모두 그랬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그 모임이 없어졌는데, 지금도 그때 모임에서 개인적인 목회의 고충을 다 털어놓고, 이제 그만 누워서 자자, 이제 그만합시다 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피곤한 사람은 먼저 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더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참 자유로운 모임이었습니다. 그때 거기 있던 분이 나중에 광양에 가서 은퇴하셨는데, 대원사를 가다 보면 반머리를 쭉 가고, 반머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면 대원로가 나옵니다. 그 삼거리에 교회가 있어요. 평촌교회라는 교회인데, 거기에 부임해 온 전도사가 변유복 전도사라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는 것도 많고 기도도 넓었고, 또 열심이었어요. 특히 이 사람은 교회에 누가 나오든 말든, 동네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부지런히 찾아다녔습니다. 평촌에는 동네가 크지 않아서 한두 개, 세 개 정도의 작은 동네가 있는데, 그곳을 찾아가 인사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때 그분이 한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대학생을 전도도 잘하지 못하고, 그렇게 다닌다고 열매가 있고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그렇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야 되지 않느냐, 최선을 다해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열매도 없고 전도가 잘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 만큼은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과가 어떻든 일단 계속 집 저 집을 찾아다니고 만나며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24살 교육전도사를 맞이한 목장 어르신들의 섬김

설교자는 15년 전 24살에 신학대학원을 다니며 교육전도사로 첫 사역을 시작했던 이야기를 꺼냅니다. 유년부를 맡으러 갔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사역을 맡게 되었고, 그중 하나는 연세 있는 성도들이 모인 목장의 목자로 파송되는 일이었습니다. 함께 사무실을 쓰던 여전도사님은 "가서 사랑 많이 받겠네"라고 말씀하셨는데, 설교자는 그 뜻을 가서 알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목장의 막내 성도는 77세, 첫째 언니 성도는 83세였고, 설교자는 당시 24살이었으니 어르신들 눈에는 아기 같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방문할 때마다 어르신들은 두꺼운 방석을 깔아 주며 "우리 전도사님 오셨다"며 앉으라고 하셨고, 여름에도 방석을 깔아 주셨습니다. 모임이 늘 점심시간과 겹쳐 식사 준비가 부담되실까 봐 설교자는 밥을 먹고 방문했는데, 이를 말씀드리자 모임과 예배가 끝난 3시쯤 어르신들은 저녁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젊은 사람이 돌도 씹어서 소화시킬 나이에 못 먹냐"는 말씀도 들었다고 합니다. 이번 말씀을 준비하며 설교자는 그 성도들이 자신에게 아론과 훌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은 칼을 들고 싸우던 여호수아 같았는데, 성도들은 자신을 세우고 성장하도록 기도해 주셨고 "큰 목사님 되라"고 격려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그 성도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설교자는 고백합니다.

이원희 · 2026-10-21

설교 내 3–5문단 · 예화 2

본문 발췌 보기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첫 사역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여러분, 제가 15년 전에 처음 사역을 시작을 했어요. 24살에 이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을 했는데요. 신학 대학원을 다니면서 주중에 공부를 하면서 한 부서의 유년부라는 부서의 책임자로 교육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근데 저는 유년부 사역을 하러 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사역을 정말 많이 맡기시더라고요. 어떤 일을 맡겼냐면 이런 일을 맡겼습니다. 이 교회에, 우리로 따지면 다락방이죠. 이곳은 목장이라는 곳이 있었는데요. 교역자가 이 목장에 목자로 파송이 되는 거예요. 근데 모든 목장은 아니었고요.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 아마도 제 기억엔 우리 행복한 모임 성도님들 연세쯤 되시는 목장에 저를 파송을 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사무실을 같이 쓰는 전도사님, 여전도사님께서 "아이고, 가서 사랑 많이 받겠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요. 가서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우니까 사진은 좀 내려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네. 예. 사진이 안 내려가나요? 네. 예. 저희 목장에 제일 막내 성도님께서 77세셨습니다. 첫째 언니 성도님이 83세셨어요. 딱 우리 행복한 모임 성도님들 연세였습니다. 근데 제가 그때 24살이었으니까, 그분들이 볼 때 얼마나 그냥 아기 같았겠습니까? 근데도 제가 방문을 하면, 집집마다 방문을 하는 시기였어요. 방문을 하면 어떤 가정이든지 꼭 두꺼운 방석을 깔고, "아이고, 우리 전도사님 오셨다"고, "우리 전도사님 오셨다"고 여기 앉으시라고 하시는 거예요. 겨울에야 따뜻해서 너무 좋았지만, 여름에도 꼭 그 두꺼운 방석을 이렇게 깔아 주시더라고요. 뭐 식사 하셨냐고 물어보시면서, 모임이 항상 2시였거든요. 꼭 점심 시간이 겹쳐 있었어요. 근데 항상 가면은 또 식사 준비하시랴 이런 게 부담되실까 봐 제가 밥을 먹고 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임에 가서 "오늘은 제가 밥을 먹고 왔어요"라고 이야기를 드렸더니, 모임이 탁 끝나고 한 3시쯤 되니까 예배를 드리고 3시쯤 되니까 저녁 드셔야죠 하면서 3시에 저녁을 준비를 하시더라고요. "아우, 젊은 사람이 뭐 돌도 씹어서 소화시킬 나이에 못 먹냐"라고 하시더라고요. 거기 나오시는 성도님들 중에서 초신자 성도님들도 굉장히 많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분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는데, [콧방귀]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걸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그 성도님들이 저에게 아론과 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냥 어설프게 칼을 들고 르비딘 골짜기에서 싸우고 있던 여호수아였고, 저를 세워 주시고 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물론 이렇게 큰 목사, 작은 목사 이런 건 없지만, 꼭 항상 그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아유, 큰 목사님 되라고." 저는 이미 뭐 키가 다 컸는데, 얼마나 더 크라고 하는지, 큰 목사님 되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또 그 성도님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느헤미야의 대응과 앤의 사례

설교자는 느헤미야가 성벽을 세울 때 산발랏, 도비아, 게셈 같은 적대 세력을 만난 장면을 소개한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 한다거나 자기 욕심으로 일을 벌인다고 비난했고, 느헤미야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답했다. 설교자는 이 대응을 오늘날의 상황으로 옮겨 설명한다. 그는 이어서 앤이라는 교인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앤은 음악을 싫어한다고 썼고, 설교자는 앤과 그녀의 남편 닉을 좋아하지만 그 글에 느헤미야 6장 8절의 답변을 적용했다고 말한다. 즉, 당신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설교자는 바울도 인간 재판소의 판단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죄를 뜻하지 않는다고 말했음을 떠올린다. 그래서 설교자 역시 무죄를 주장하거나 높은 자리에서 말하지 않고, 그저 그 비판이 전부 헛소리라고 분명히 말하는 태도를 취한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21

설교 내 19–20문단 · 예화 6

본문 발췌 보기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는 고통에 대비하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의사들이 항상 그러하듯이, 그들은 당신을 불러들여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는 말합니다. "이제 이건 좀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는 고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이 그 고통을 미리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팀오테오에게 바울이 말하는 것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세우던 때처럼, 산발랏, 도비아, 게셈과 같은 악한 세력과 마주쳤을 때의 반응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당신은 단지 큰 성벽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21세기로 옮겨 말하면, "우리는 당신이 성소를 확장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기가 누군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단지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느헤미야 6장 8절의 대답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찾지 마세요. 제가 말해드리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당신은 단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자주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다. 앤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앤과 그녀의 남편 닉을 좋아하지만, 그녀는 음악을 싫어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번 주일은 아마도 제가 겪은 가장 나쁜 주일 중 하나입니다. 음악은 디디-디디-덤 같은 것입니다." 음악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앤에게, 느헤미야 6장 8절, 당신의 목사이자 친구 알리스터에게서. 당신이 말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당신은 단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을 기억하시겠습니까? "내가 당신이나 어떤 인간 재판소에 의해 판단받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 양심은 깨끗하지만, 그것이 내가 무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높은 입장을 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말합니다. "들으세요, 그건 전부 헛소리입니다."

사천 예배당 개척과 할머니들의 예배

설교자는 1977년 7월 10일 신학 공부 중 강사 목사님의 권유로 사천의 작은 예배당에 파송된 경험을 나눈다. 그곳은 26년간 유지되어 왔으나 교역자가 공석인 날이 많았고, 세례 교인이 15명에 못 미쳐 교회에서 기도처로 격하될 위기에 있었다. 교인은 할머니 두 사람과 남자 집사 한 명 정도였고, 교회학교 학생도 몇 명뿐이었다. 설교자가 머문 집은 80세가 넘은 할머니 집이었는데, 벽에서 곰팡이와 흙냄새가 났고 벽지가 떨어져 나왔으며 지네가 자주 나왔다. 음식에는 파리가 꼬였고 냉장고와 전기도 없어 설교자는 자주 금식하며 견뎠다. 온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지만 예배당과 할머니 집에만 전기가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변소간만도 못하다고 비웃었다. 설교자는 그 말 앞에서 전도할 수 없다고 느끼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강사 목사님은 그저 엎드려 기도하라고 권했고, 얼마 뒤 장로님이 산을 팔아 마련한 돈을 가져와 동네 입구 땅을 계약하게 되었다. 이후 노회에 청원했으나 두 차례 기각되었고, 세 번째 청원에서 블록을 한 장씩 모금하는 방식이 허락되었다. 각 교회의 도움으로 예배당과 사택, 교육관이 지어졌고, 설교자는 이를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 증거로 말한다. 설교자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믿음을 강조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15–28문단 · 예화 1

본문 발췌 보기

여러분 중에서 들은 분도 계시겠는데, 오래전 50년 전에 제가 사천이라는 곳에 갔는데, 조그만 예배당을 건축해서 예배를 드리며 한 26년간 유지되다가, 그것도 교역자가 공석으로 있는 날이 절반, 교역자가 있는 날이 절반인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교역자가 와서 살아갈 수 있는 재정이 아예 안 되는 그런 곳인데, 26년간 유지해 오다가 폐쇄한 거라. 안 된다, 이 교회가 안 된다 해 가지고. 교회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세례 교인 15명 이상이 있어야 되고, 그게 떨어진 채 2년, 3년 가면 등급이 격하돼 가지고 교회가 아니고 그냥 기도처, 이렇게 한 급 내려옵니다. 기도처 정도도 안 되고, 할머니 두 사람하고 남자 집사라고 하는 분이 한 분, 서리 집사 되겠고 여자 집사 한둘 있고, 그게 다예요. 교회학교 학생 몇 사람 있고. 그래도 여러분, 세상의 어떤 단체라면 벌써 흐지부지되고 사라지고 할 텐데 교회는 좀 다른 데가 있어요. 그래도 유지가 되는 거예요. 목회자도 없고 해도 어떻게든 거기 모여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때는 할머니 둘만 나와 가지고 예배하는 거야. 그런데 할머니 둘이 성경도, 성경 구절도 몰라. 그러니까 뭘 하면 되겠어요? 모르는 할머니 둘이 주일날 예배하면 뭘 하면 되겠습니까? 생각을 안 해 보신 거지. 사도신경 합시다. 그건 다 외웠거든요. 사도신경하고, 아는 찬송을 하나 꺼내야 돼. 그런데 또 안 맞아. 그걸 모르니까 둘이 하면 이부, 셋이 하면 삼부고 그래. 성경은 모르니까 읽을 수도 없고, 주기도문 합시다. 그럼 끝이라. 예배가 그게 끝인데, 그렇게 교회가 힘이 없어도 기도하고 할머니들이 유지를 하는데, 제가 신학 공부할 때 저를 가르치는 강사 목사님이 나보고 거기 가라는 거예요. 1977년도 7월 10일에 거기로 간 거예요. 가 가지고 어렵사리, 80이 넘은 할머니는 큰방에 자고 나는 작은방에 자는데, 벽에 곰팡이 냄새, 흙내 냄새가 나고, 풀하고 흙벽에다가 벽지를 자꾸 바르니까 벽지가 두껍고 뻣뻣해 가지고 자꾸 떨어져 나와. 서로 내밀어. 바람 불면 벽지가 푹 나왔다가 붙었다가, 풍구질을 해 가지고 얼마나 냄새나는지. 그게 또 대밭 밑에 있어 가지고 걸핏하면 지네가 나와. 그런데 할머니가 밥을 차려 주는데 파리가 먹다가 빨다가, 밥은 소화가 된 것 같아. 파리가 얼마나 빨았던지. 냉장고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갔으니까. 그걸 내놓는데 먹어야 돼요, 안 먹어야 돼요? 지금도 모르겠어. 그래도 전도사가 온다고, 전도사가 없는 게 절반이니까 온다 하니 할머니가 정성이 있어 가지고 갈치를 사다가 구웠는데, 구운 건지 삶은 건지 하여튼 그것도 파리가 얼마나 냄새를 좋아해 가지고. 그걸 갖다 내놓는데 이것도 먹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고민인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제가 금식 중입니다. 금식이 아니고, 금식이죠, 금식. 그러니까 자주 금식을 했어요, 덕분에. 금요일 저녁에 가 가지고 토요일 금식하고, 끓여 먹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거의 밥을 못 먹다시피 하는 거죠. 그때 그걸 내가 어떻게 견뎌 냈는지 지금도요. 그래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전도한다고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데, 온 동네에 다 전기가 들어왔는데 길가에 있는 외딴집, 예배당하고 할머니 집만 전기가 안 들어온 거야. 할머니 혼자, 80세 넘은 분이 혼자 사니까 집을 손볼 수도 없고, 그야말로 기침만 거기 하면 집이 날아갈 것 같아. 무너질 것 같아요. 전도하러 갔더니 뭐라고 하느냐? 야, 우리 화장실만도 못한, 변소간만도 못한 거기에 우리더러 가란 말이냐, 오란 말이냐, 그러더라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전도하러 못 나가겠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사실이거든요. 당시만 해도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어 가지고 집마다 지붕 개량도 하고 페인트도 칠하고,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겉으로 좀 번질하게 하는데, 온 동네 전기가 들어왔는데 예배당하고 할머니 집에는 전기가 안 들어온 거라. 거기다가 비포장도로 큰길가에, 진주하고 고성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직행버스가 지나가는 길가에 있었으니까,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를 덮어씌우고 하니까 정말 가서 보니 눈물 나는 거예요. 지금도 내가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멍청해서 그런지, 그걸 무시하지 못하고. 전도하려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 반응이 그렇다는 거야. 그때 기도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 전도하려고 하니까 예배당이나 전도사 꼴이 이래 가지고 어떻게 전도하겠습니까? 차라리 없으면 모르겠는데 있다는 게 온 마을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밖에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지어야 되겠는데, 예배당을 지으려면 돈이 있어야 되고 땅을 사야 되고, 또 어디서 건축비를 마련해 가지고. 돈 이야기를 어떻게 해요? 저는 늦게 믿어 가지고 인맥이 없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아무도 저에게 손잡아 주고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기도해야 돼.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그 예배당에 사람 나오라고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봐도. 그때부터 전도를 못 하겠더라고.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창피하게 들리는지. 그래서 학교에 와 가지고 나를 보낸 강사 목사님에게 도저히 이래 갖고 못 하겠다고 하니까, 무슨 소리냐며 그냥 엎드려 있으라, 기도하고 있으라는 거예요. 엎드려 있어도 하늘에서 벽돌이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눈앞이 캄캄하고 그래요. 그런데 얼마 있었더니 한 장로님이, 나를 가라고 한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 장로님인데, 강월상이라는 장로님이 산을 하나 팔아 가지고 돈을 싸 들고 온 거야. 그러니까 나를 보낸 분은 나름대로 도우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했던 것 같아요. 나는 순종해서 간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동네 제일 입구의 반듯한 땅 하나를 계약하고. 그런데 땅만 가지고 예배당이 됩니까? 기초를 해 가지고 벽돌을 올려야 될 거 아니야. 뭐가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기도도 하지만 노회에 청원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50년 전이니까 진주노회 안의 교회가 한 60, 70개 됐을 텐데, 재정적으로 목회자 생활비라도 줄 수 있는 교회가 아마 열 교회도 안 될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노회에 청원서를 내는데 노회 재정이 없는 건 상식적으로 아니까, 경남 진주노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한 사람당 블록, 우리 여기 말로 블록 한 장씩을 보내 주시면 제가 목수 일 한 경험이 있으니까 제 손으로 지어 보겠습니다. 기도하고 그걸 보냈어요. 그런데 노회에서 보더니 이런 청원이 다 있느냐면서 그냥 기각시켜 버린 거예요. 6개월 있다가 또 보냈어. 날짜만 고쳐 가지고 똑같은 문구 그대로, 안 고치고 보냈어. 이 사람이 이거 또 보내? 또 기각. 오기가 생기더라고. 내가 번거롭게 하리라, 이 과부처럼 내가 번거롭게 하리라. 세 번째 보내니까 노회 임원들이 이 사람 또 보냈네, 계속 보낼 모양인데, 그래서 상정해 가지고 노회에서 결의한 거예요. 정치하는 목사, 장로들이 얼마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그렇게 모아서 모금해 주는 게 아니고 그런 방식으로 모금하는 걸 허락하기로. 자기들은 책임 안 지는 거야. 그런 방식으로 모금하는 걸 허락하기로 결의해서 통과됐어. 그래 가지고 허락받았다 하면서 각 교회에, 노회 안에 교회 주소가 있으니까 다 보내 가지고, 노회에서 허락받았다, 예배당은 내 손으로 지을 테니까, 내가 건축 경험이 있으니까 벽돌만 보내 주면 내가 쌓아 올리겠다. 그 간단한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해 가지고, 그렇게 모인 돈으로 예배당을 다 짓고 사택 다 짓고 교육관 짓고, 제가 그 교회에 5년 있다가 떠나오는데 그때 돈으로 100만 원 정도 남겨 놓고 왔다고. 예산을 남겨 놓고.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아,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들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