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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19개 · 1 / 1쪽 · 한 쪽 20개

시각을 대신한 청각으로 믿음을 얻은 맹인 바디메오

설교자는 바디메오가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듣는 감각이 매우 발달했다고 말합니다. 시각 장애인은 모든 정보를 청각과 촉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듣는 능력이 민감해진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시각 장애인 김선태 목사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김선태 목사는 점자로 성경을 한 자 한 자 더듬어 읽으며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고 소개됩니다. 설교자는 바디메오도 그런 청각을 통해 여러 소문과 말씀을 듣고 판단하는 힘을 길렀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모두 '나사렛 예수'라고 부를 때, 그는 들은 내용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해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설교자는 여기서 믿음이 보는 데서 나지 않고 들음에서 나며, 이 믿음이 그를 구원으로 이끌었다고 적용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에 쉽게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과 대비해, 잘 듣고 깊이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노우호 · 2026-10-26

설교 내 18–22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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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는 볼 때 이 시각 장애인 바디메오가 비록 눈은 보지 못하지만 우리보다 더 발달된 기관이 있는데 청각이야. 청각, 듣는 감각.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정보가 청각과 촉각, 만져 보는 것, 듣는 것, 이런 기능이 굉장히 민감하게 발달해요. 제가 처음에 진주에 있는 성경학교에서 이 년을 공부할 때 어떤 특강하는 강사가 오셨는데, 김선태라고 하는 목사예요. 김선태 목사가 시각 장애인인데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 여러분, 성경을 아마 다 외우다시피 하는 것 같아. 우리는 눈이 보이니까 그냥 스르르 읽어 지나가거든요. 이 사람들은 점자를 가지고 손으로 한 자 한 자 더듬어 읽으니까 굉장히 정밀하게, 세밀하게 읽고 그걸 생각하면서 읽어요. 눈이 안 보이니까 휙 지나가는 게 아니고 한 자를 더듬어서 기억하는 거예요. 성경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자기는 정전돼도 아무 상관이 없대. 정전된 거나 전기 들어온 거나 똑같으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하는 말이, 당신들은 점점 어두워지는 눈을 갖고 있으나 자기는 더 밝아지는 눈을 갖고 있대요. 얼마나 밝은 눈을 갖고 있느냐? 착착착착 해서 계단을 올라서 어디 몇 걸음 딱딱 가서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탁 꽂으면요. 요즘은 번호 키를 하지만 옛날에는 열쇠 구멍 있잖아요. 바로 쏙 하는 거예요. 더듬지도 않고 착착착 하면 돼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 보고 하는 말이 “당신들은 점점 어두워지는 눈을 갖고 있는데 자기는 점점 더 밝아지는 눈을 갖고 있다.” 정전돼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굉장히 촉각이 민감하고, 걸음도 우리보다 실족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매번 더듬어서 가니까. 우리는 까불다가 넘어지고 자빠지고 빠지고 하는데 이분은 범사에 조심조심하고, 듣는 걸 굉장히 민감하게 듣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은 뭐냐면 보는 데서 나는 게 아니고 들으면서 나는 거예요. 잘 듣는다는 거예요. 이 바디메오도 눈이 안 보이는 대신에 귀가 많이 발달했어요. 눈에 보이면 자꾸 생각이 보이는 대로 바뀌니까 우리 마음이 길바닥처럼 되는데, 보이는 게 없으니까 그런 걸 가지고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판단 기준으로 볼 때,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데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거예요.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한 이야기

설교자는 여리고에 살던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 준 이유를 본문 16절의 고백으로 설명합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요단 저편의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을 전멸시킨 일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여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녹았고, 라합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라고 정탐꾼들에게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여리고 백성들이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라합에게만 그것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졌다고 강조합니다. 이어 히브리서 11장 31절을 인용하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여 순종하지 않은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는 본문을 읽습니다. 설교자는 라합의 순종을 정탐꾼을 영접한 행동으로 보며, 요즘으로 치면 다른 나라의 간첩을 숨겨 주는 일과 같다고 빗대어 설명합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한 것은 이스라엘이 들어오면 여리고가 멸망하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풀어 줍니다. 설교자는 믿음이 들음에서 나며, 말씀이 마음에 받아들여지면 그것이 실제 삶의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적용합니다. 말씀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순서이고 행위는 그 말씀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이 이 예화의 메시지입니다.

김재형 · 2026-10-25

설교 내 16–19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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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히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자마음이 녹고, 너희의 고로 사람이 아닌 신을 잃었노라. 하나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 이건 정탐꾼을 만났을 때 라합이 했던 얘기거든요. 그래서 라합이 그 정탐꾼을 숨겨 준 이유가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냥 숨겨 준 게 아니죠. 여리고에서 살던 라합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이스라엘이 어떤 이스라엘인가 하면,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건져내시고,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구원해 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광야에서 여러 나라들과 싸웠는데, 하나님께서 그 왕들을 다 물리치고 이겼다는 얘기입니다. 그 이야기들을 여리고에 있으면서 들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우리가 들었다. 여리고 성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다 녹아 버렸고, 너희의 연고로 우리가 정신을 잃었다. 그 하나님의 일하심, 그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다 정신이 혼미해졌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뭐예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 맞다. 그걸 라합이 그 사람들에게 고백한 거죠. 정탐꾼들에게 고백한 겁니다. 여리고 성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그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듣고 그들의 간담도 다 녹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다른 어떤 누구에게는 없었지만, 라합에게만 그 이야기를 듣고, "아, 그 하나님, 너희 하나님이 정말이 세상에 유일하신 하나님이구나"라는 것을 라합이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라는 거예요. 히브리서에 보면, 라합의 믿음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히브리서 11장 31절에 보면,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라합의 믿음을 한 단어로 표현을 하는데, 순종이라고 이야기해요. 왜냐면 다른 사람들은 순종치 않았기 때문에 다 멸망당했는데, 랍은 순종했다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그 순종한 게 뭐냐면, 정탐꾼들을 영접했기 때문에 그걸 순종이다라고 본 거예요. 그런데 이 라합의 이야기를 보니까, 라합이 그 정탐꾼들을 받아들인 것은, 누구를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세상의 신이시구나. 아, 그분만이 참된 하나님이시구나라는 것을 라합이 믿었다라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고, 그 들음이 라합 안에 믿음으로 역사하게 된 거예요. 그걸 정탐꾼들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건, 그 순종이라는 건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기에 앞서서, 어떤 일이 먼저 있게 되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는 것. 이게 먼저 있게 되는 거예요. 그걸 우리가 믿음이다라고 이야기해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생기냐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제 실제가 되는 것들이 나타나게 된다고요. 그니까 우리가 자꾸 순서를 바꿔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 말씀은 우리 안에 실제의 삶으로 나타나게 돼요. 그걸 순종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박담 목사님 친구의 놀람

설교자는 교회의 박담 목사님 친구분을 우연히 만났던 일을 전합니다. 설교자는 그 만남이 화랑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기억합니다.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 친구분은 크게 놀라며 쇼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친구분은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되었다면 자기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설교자는 목사님과 함께 웃었다고 회상합니다. 설교자는 청중에게 여러분이 예수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분들이 많지 않느냐고 물으며 공감을 구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가정 배경이나 살아온 삶으로 보면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았지만 기적적으로 믿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그 이유가 여러분이나 전도한 사람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중보 기도 때문이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래서 전도의 열매는 결국 기도에서 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용조 · 2026-10-24

설교 내 1–1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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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은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기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장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중보 기도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과거형으로만 알고 있지, 믿음으로 현재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재형이고, 은혜는 과거형입니다. 이미 만들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능력을 믿음으로 받는 채널이 있는데, 그 채널이 바로 기도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기도의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기면 은혜가 폭발합니다. 이미 주어진 은혜가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잠금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참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된 신앙은 거짓된 기도를 합니다. 허황된 기도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를 아예 할 수 없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절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어떤 기도냐에 따라 진짜 참 믿음이냐, 가짜 믿음이냐가 여러분의 기도 속에 다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이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는 세 가지 대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 보면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로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첫 번째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여 나에게 믿음을 주시사, 아버지여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옷입히시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복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자신,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를 따라다녔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같이 읽을까요? 시작.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예수님의 그 기도 속에 '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이 내게 주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도 있고,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가르쳐 제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특별히 이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다섯 가지 기도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여 저들이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연합과 일치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아버지여 저들도 나와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되게 하옵소서.' 두 번째 기도는 12절인데요. '주여 저들을 지켜 주십시오.' 보존해 주십시오. 보호와 인도와 양육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세 번째 '주여 저들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쁨과 감동과 능력의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기도는 '악에게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제자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주여 저들이 악에게 빠지지 말고 시험에 들지 말고, 사탄과 싸워서 이기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17절에 있는 말씀인데요. '주여 저들로 하여금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비전을 위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런 기도는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계속 이 다섯 가지 기도를 하십니다. '저들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보존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저들이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 제자들을 향한 기도가 다 여러분에게 응답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분열하지 말고 하나되십시오. 아멘. 여러분 당황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호와 양육과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기쁨과 감동과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이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거 다 외우세요. 예. 다음에 신문에 이거 나오면 다 외우세요. 왜냐하면 이게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기도였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예수님의 기도는 아주 중요하고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방향이 있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뭐냐면, 이제 세 번째로 예수님이 중보 기도의 대상을 바꿔요. 첫째는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고요.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셨다면, 세 번째 대상은 무엇인가?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할 텐데, 전도하면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 터인데, 앞에서는 아니지만 앞으로 예수 믿게 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게 굉장히 놀랍습니다. 앞으로 예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 예수님은 그걸 염두해 두셨어요. '너희들이 나가서 이제 나를 증거할 터인데, 내 증거를 받고 누군가 어느 민족인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20절이 그 말씀입니다. 20절 함께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내가 비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을 위함이다.' 자, 제자들만으로서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서 예수님을 전하면, 저희 말로 인하여 나를 믿게 될 사람들이 생길 터인데,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염두에 두면서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그 사람이 누굴까요? 여러분과 나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잖아요. 사도들이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200년 동안 전도하다가 그 복음이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 있는 선교사님들이, 물론 영국에서 토마스도 왔고 다 왔지만, 주로 선교사님들이 100년 전에 한국에 오셔서 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 주었지요. 제가 이번에 언어인팅에서 중국의 CBMC 회장님을 만났는데, 왕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여자분이세요. 그분이 6대 크리스천이에요. 그 당신의 최초의 조상이 누구한테 예수 믿었냐고 물으니, 허드슨 테일러한테 복음을 받았대요. 그 6대째인 사람이 크리스천이에요. 어, 그분이 이번에 오셨어요. 그니까 영국에서 허드슨 테일러라는 사람이 OMF를 만들었는데, 영국 가서 중국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예수 믿은 사람이 우리나라 같은 면은 언더우드나 셀라 이런 사람들이 오셨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고, 이런 걸 많이 여성 해방 운동도 하고 다 그러셨어요. 그때 최초의 세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다 예수 믿어서 오늘 누구까지 이루는 거예요? 나까지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마음에 계산하시고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게 오늘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이 기도는 여러분하고 나하고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놓고 생각을 해 보면,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예수 믿기의 망정이지. 예수 믿기 전에 굉장한 분들 많잖았어요. 그렇죠? 여러분이 예수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박담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박담 목사님 친구분을 내가 저기 저저기서 만났어요. 그 화랑 있는 데서 만났다. 박담 목사님이 목사 됐더니까 쇼크를 먹더라고요. 아니,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됐냐고. 그 사람이 목사되면 내가 하나님 믿어야 된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목사님이랑 둘이 같이 웃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나는 도대체 예수를 믿을 것 같지가 않다. 우리 가정의 배경이나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배경에서 보면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기적적으로 내가 예수를 믿게 됐어요. 그게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 때문도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전도해 준 사람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당신한테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됐다는 결론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 한국이 예수 믿은 것도 바로 그런 거예요. 제가 오래 전에 한번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만은, 제가 80년대 영국에 한 3년 가서 살았을 때, 거기에 마이클 그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예배드리러 갔다가, 거기에 머리 허연 70이 넘으신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분을 만나 버렸어요. 그래서 그 노인 어 할머니를 내가 만났더니 한국에서 왔다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뭐 그냥 죽은 사람 만났듯이 내 손 잡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냐고 물으니, 이분이 625 전쟁 때부터 한국을 위해 기도했대요. 그래서 어떻게 당신이 한국을 위해서 전도해 기도하냐고 물으니, 625 전쟁 때 뉴스 난 걸 보고 자기가 기도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럼 한국 가 보셨느냐고 물으니, 가 본 적 없대요. 한국 한 번도 안 가 보신 분이 지금까지 평생 코리아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아유, 그냥 몸이 엇싸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아, 한국이 예수 잘 믿고, 한국이 그 지옥 같은 그 일제 시대와 유기요화와 버리고개와 가난 속에서도 이렇게 이만큼 살만하게 된 게 바로 이 할머니의 기도 때문이구나. 그래서 이 사람은 한국에 와 본 적도 없고, 한국의 친구도 없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그 자체 하나 때문에 저를 굉장히 환영해 줬던 그런 기억이 있어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인용

설교자는 조지 엘리엇의 소설 『미들마치』에서 인용한 문장을 마지막으로 소개합니다. 인용문은 세상이 나아지는 데에는 역사에 남지 않은 작은 행동들이 부분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하지 않은 것은 은밀히 믿음으로 살아가며 묵직한 무덤에 묻힌 수많은 이들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우리가 역사에 한 줌의 발자국조차 남기지 못할지라도 이 연약함과 일시적인 존재의식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권합니다. 그는 바로 이 연약함과 일시성 속에서 진정한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적용합니다. 설교자는 바울의 삶을 보며 '나는 경주를 마쳤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입니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24

설교 내 11–11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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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방법 중 하나는 우리의 연약함을 다시 상기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충분함 안에서 쉬게 됩니다. 말을 마치며, 우리가 이 말을 피하지 말자고 요청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모습, 즉 오래된 진흙 항아리라는 사실을요. 우리 모두가 평범함을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에서 인용한 말을 드리겠습니다. '세상이 나아지는 데에는 역사에 남지 않은 작은 행동들이 부분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은밀히 믿음으로 살아가며 묵직한 무덤에 묻힌 수많은 이들의 덕분입니다.' 우리가 역사에 한 줌의 발자국조차 남기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가족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일지라도, 이 연약함과 일시적인 존재의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바로 이 연약함과 일시적인 존재의식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목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마침내 '나는 경주를 마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믿음을 잃지 않게 도와주소서. 나는 싸움을 했습니다. 아마도 다음 며칠 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배우며, 누군가가 '나는 수요일까지 견디고 집에 가서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만큼 지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9살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꽤 흥미롭습니다. 지금은 『진리로 사는 삶』 주말 특집, 알리스터 벡 목사와 함께합니다. 곧 다시 돌아와 오늘 방송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모든 나이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위로받아야 합니다. 특히 50대나 60대 분들, 또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 중에 그러한 분이 있다면, 특별히 추천드릴 책이 있습니다. 제목은 『노년도 아니고 젊음도 아닌, 끝나지 않은 시기: 예수님을 따르는 50대와 60대』입니다. 저자는 크리스토퍼 애시이며, 이 책은 이 시기의 삶을 성경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실용적인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 시기는 단순히 은퇴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지속적인 성장과 열매 맺는 섬김을 위한 시간임을 배우게 됩니다. 이 책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웹사이트 truthforlife.org를 방문해 주세요. 다시 알리스터 벡 목사의 말씀을 들려드립니다.

아브라함이 알지 못하고 나아간 믿음

설교자는 본문에 등장하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1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말하는 모습을 가져옵니다. 이들은 시간과 장소, 기간, 결과까지 자신이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사람들에게 내일을 알지 못하며 생명은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 대목에서 히브리서 11장의 아브라함을 떠올립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나아갔는데, 그 '알지 못했다'는 동사가 본문의 '알지 못할 것이다'와 같은 단어라고 설명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르고 나아가고 장사하는 사람은 다 안다고 여기며 나간다는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습니다. 설교자는 그래서 우리가 내일 일을 아는 것처럼 반드시 이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권합니다. 계획과 준비는 해야 하지만 그 앞에 '주의 뜻이면'이라는 고백이 붙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적용입니다.

양석효 · 2026-10-22

설교 내 4–4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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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런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일을 너희가 알지 못할 것이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다."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알지 못한다. 내일을 당장 알지 못한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알지 못했다’는 것이 똑같은 동사입니다. 아브라함 믿음의 사람은 알지 못하고 나갑니다. 근데 장사를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나갑니다. 이 아이러니가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일의 생명은 너희가 알지 못할 것이다." 내일의 생명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 너희 인생은 마치 안개와도 같다. 내일 일을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됩니다. 마치 내일 일일 아는 것처럼 이거 안 되면 안 되고, 저거 아니면 큰일 나고, 반드시 저거는 돼야 되고, 저건 반드시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돼야지 우리가 성공할 거야. 그게 돼야지 내 인생이 잘 풀릴 거야. 그런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마치 안개와 같아서 모든 일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행동하지만, 우리는 한도 모릅니다. 당장 한 시간 뒤에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됩니다.

옛 전쟁의 깃발과 여호와 니시라

설교자는 출애굽기 17장 15절의 "그 이름을 여호와 니시라 하고"를 함께 읽으며, 여호와 니시라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임을 풀어 줍니다. 옛날 전쟁에서 깃발은 군대가 모이는 중심이었기에, 깃발이 서 있으면 군대가 버티고 깃발이 쓰러지면 군대가 쓰러졌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모세가 이 승리가 자신의 힘도, 아론과 훌의 도움도 아니라 하나님이 깃발이 되셨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팔이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는 순간에도 승리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를 든 손을 드는 일 자체가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이라는 믿음의 선포였다고 짚으며, 이를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으로 적용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 단어인 깃발은 우리의 승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라고 전합니다.

이원희 · 2026-10-21

설교 내 7–7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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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세 번째 단어는 깃발입니다. 여호와 니시라. 출애굽기 17장 15절 말씀 밑에 있는 말씀 함께 읽을까요? 시작. "그 이름을 여호와 니시라 하고." 아멘. 여러분, 여호와 니시라의 뜻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전쟁에서 깃발은 군대가 모이는 중심이었습니다. 깃발로 표시를 하는 것이죠. 깃발이 서 있으면 군대가 버티고, 깃발이 쓰러지면 군대가 쓰러졌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긴 것은 내 힘이 아니라, 아론과 훌도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의 깃발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팔이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는 그 순간에도 결국 승리를 가져다 주신 분은 누구라는 것이죠? 하나님. 맞습니다.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원지 땅을 40일 안에 잔금 치른 이야기

설교자는 원지에서 남은 땅 한 필지를 사게 된 경위를 말합니다. 그 땅은 동네 한복판에 남아 있던 땅이었고, 단성고등학교 앞에서 대를 쪼개는 일을 하던 사람의 소유였습니다. 그 주인은 노름으로 큰 빚을 졌고, 설교자는 그 빚 때문에 땅이 나왔다고 돌아봅니다. 설교자에게는 한 푼도 없었지만 기도하며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보통 한 달인 계약 기간 중 잔금 마련이 어려울 것 같아 설교자는 기간을 40일로 늘려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동안 잠이 오지 않았고, 돈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가장 어려워하는 설교자는 아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걱정이 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40일 안에 잔금을 치르고 이전 등기를 마쳤고, 그 땅에 사택과 예배당을 지을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설교자는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미련한 일인지 믿음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노우호 · 2026-10-20

설교 내 25–28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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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다음에 바로 1982년도 9월에 여기 원지에 왔는데, 원지에 와서는 간이 좀 커졌어요. 지난번에 벽돌 한 장 했는데 이번에는 시멘트 한 포로 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멘트 한 포씩 보내 주시면 예배당 짓겠습니다 했더니요. 돈을 모아 주면 되는데 어떤 목사는 시멘트를 한 차 사서 싣고 왔어. 생초에 있던 목사님인데. 예배당을 지으려면 땅을 사서 기초를 하고 그 이후에 시멘트도 사용할 텐데 시멘트부터 사면 어떻게 해? 그러면 시멘트가 굳어서 못 쓸 텐데. 돈을 가져오면 될 텐데 시멘트를 사 와서, 그런 일도 있고. 그렇게 해서 원지에서도 원지 한복판에, 원지에서 남은 땅이 딱 한 개 있어. 남아 있을 땅이 아닌 거야. 동네 한복판인데 거기 남아 있어서 그게 나온 거야. 나온 땅의 임자가 누구냐면 여기 단성고등학교 앞에 가면 대 쪼개는 데, 대 쪼개는 그 사람이라. 그 사람 땅인데 노름을 해서 빚을 엄청나게 진 거야, 노름빚을. 노름빚이 아니었으면 안 팔 텐데 그 사람이 노름하는 바람에 우리가 그 땅을 사게 되는 거예요. 한 푼도 없이 또 기도했는데 계약 날짜를 보통 계약하고 중도금하고 잔금 치르는 걸 한 달로 하는데,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한 달 안에 잔금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40일로 해 달라고 졸라서 40일로 했어요. 그리고는 잠이 안 와. 40일 안에 잔금을 치러야 하니까. 잔금만 치르고 나면 그다음에 땅은 뒤에 팔아도 그 가치는 갖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잔금을 치르는 게 목표인 거예요.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잔금을, 내가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 가서 치러요? 그런데 어떻든 이래저래 해서, 제가 어디 가서 돈 문제를 가지고 도와 달라는 말을 제일 하기 어려워서 잘 못하는 입장인 거야. 그걸 못 하겠어. 돈을 도와 달라, 이걸 잘 못하는 거예요. 어떻든 여러분, 그렇게 해서 40일 안에 잔금을 치르고 이전 등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택을 짓고 예배당을 짓고 그렇게 해냈거든요. 지금 보면 그게 미련한 건지 믿음인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의 25년 기다림

설교자는 아브라함이 75세에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 모래같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아들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25년이 걸렸고, 설교자는 그동안 낙심될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봅니다. 사라의 생리가 끊어지자 이는 자신을 통해서는 아니라는 판단이었다고 설명하며, 그래서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방에 들였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90세 가까이 되었을 무렵에는 생리적으로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설교자는 추측합니다. 자연적으로 생명이 탄생하기 거의 불가능해 보일 때 이삭이 약속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이 보기에 더딘 것 같아도 가장 적합한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적용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다는 점도 함께 강조합니다.

노우호 · 2026-10-20

설교 내 32–36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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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아브라함 같은 경우는 아시는 대로 부족한 게 없어요. 다 만족한데 아들이 없는 거예요. 75세 때에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 모래같이 될 것이다. 아니, 하늘의 별은 놔두고 바다의 모래는 놔두고 하나나 주세요. 그냥 하나라도. 하나도 안 주면서 하늘의 별같이. 여러분,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거야. 하나님께서 하실 거다. 믿었는데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 여기셨다. 여러분, 이 세상에 우리가 죄도 하나도 없고 허물도 없고 약점도 없고 이런 의는 없어요. 하나님께서 어떤 걸 의로 여기시기로 했냐면 믿는 것. 믿어지지 않는 걸 믿는다는 건 아직 어딘가 인격 속에 순진한 구석이 좀 남아 있어야 뭘 믿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참 못된 놈이고 늘 거짓말하고 늘 속이고 하는 사람이 너도 나 같겠지 해서 아무것도 못 믿습니다. 아무것도 못 믿고 누구도 못 믿어. 그건 나쁜 사람이야. 아무것도 안 믿고 누구도 안 믿고 하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 없습니다. 더러 실수도 하고 부족함도 있고 해도 잘 믿는 사람은 자기가 순진하거나 아직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어서 믿는 거거든요. 남도 자기 같은 줄 알고 믿는 거야. 그래서 아무리 봐도 잘 믿다 보면 속을 때 속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잘 믿는 사람이 아무도,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보다 좀 낫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거예요.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 모래같이 네 자손이 많게 될 것이다 했는데, 이삭 하나를 하나님께서 약속해 놓고 얼마만큼 지나서 주시냐? 25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영원 속에 사시는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25년도 잠깐 같으나 사람에게 25년은 긴 세월이죠. 그동안에 낙심될 만한 일이 몇 번 있었어요? 사라의 생리가 끊어졌어. 그러니까 나를 통해서는 아니구나 해서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 방에 들여보낸 거거든요. 그다음에 내가 볼 때 한 90세 이렇게 넘어가면서 아마도 그때는 아브라함이 나도 생리적으로 애를 못 낳는 거 아닌가 싶었을 거라. 다시 말하면 사라나 아브라함이나 자연적인 생명 탄생은 거의 불가능하다 싶을 때쯤 돼서 정말 약속의 자녀, 생물학적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로 이삭이 태어나는 거예요.

조지 뮬러의 고아원과 기도 일기

설교자는 영국의 목회자 조지 뮬러를 소개합니다. 뮬러는 젊은 시절 도둑질, 거짓말, 도박, 사기 등으로 교도소에 갇히기도 했으나, 독일 할레대학에서 기도회에 함께 가 본 뒤 회심했다고 전해집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는 버려지거나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많았고, 뮬러는 고아들을 거두어 먹이고 입히려 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재정적 도움을 부탁한 적이 없다고 말하며, 필요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다렸습니다. 뮬러는 기도한 내용과 응답을 일기처럼 기록했고, 그 기록에 응답된 기도가 오만 번 이상이라고 설명됩니다. 한번은 고아들을 식탁에 앉혔는데 빵이 없었지만, 그는 빵을 주심을 감사한다고 기도했고 곧 빵 실은 차가 들어왔습니다. 설교자는 사고로 빵을 전달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덧붙이며, 이것이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다는 증거라고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0

설교 내 45–52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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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또 한 분을, 기도라는 말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림을 보셨죠? 이 그림 누구 아세요? 보통 식당 같은 데 붙어 있고 할 텐데, 조지 뮬러라고 하는 영국의 목회자예요. 독일에 가서 할레대학에서 공부하다가, 그때까지는 도둑질하고 못된 짓 다 하고 그렇게 살던 사람인데, 독일의 할레대학에서 공부하다가 누가 권해서 기도회에 한번 같이 가 보겠느냐? 가자고 하니까 갔대요. 여기 보면 성경책과, 입에 풀칠한다고 수프 한 잔하고 빵 한 개, 참 소박한 기도 같아요. 그러고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데, 얼마나 기도해서 얼마나 응답받았는지 책이 있어요. 오만 번 기도해서 응답받은 사람, 조지 뮬러. 어떻게 해서 이분이 오만 번이나 응답받았느냐? 1805년에 태어나서 1898년까지 영국의 목회자였는데 고아의 아버지라고. 이분이 왜 그렇게 기도를 하게 되냐면 고아를 한 삼십여 명의 여자아이들 중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영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떼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들은 가난해져서 버려진 아이라든지 부모 없는 아이가 너무 많아. 그래서 그런 아이들 중에서 여자아이를 거두어서 먹이고 입혀야 되는데, 자기가 목사로서 가진 게 있어야 말이지. 그런데 이분도 자기 경험이 뭐냐면 한 번도 누구를 찾아가서 내가 고아원을 하고 있으니까 재정적으로 좀 도와 달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냥 기다리고 있어. 더 놀라운 것은 왜 이분이 오만 번이냐? 기도한 것마다 일기를 써요, 기도 일기를. 몇 년도 몇 월 며칠 몇 시에 무슨 기도를 했다. 그리고 응답되면 응답된 기도를 다 쓰고 그렇게 한 거예요. 옛날 젊은 시절에는 도둑질, 거짓말, 도박, 사기 등으로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던 방탕아 중에 방탕아인데, 할레대학에서 기도회에 참여해서 회심하게 돼요. 그리고 신학 공부해서 전도자로 살았는데, 영국으로 건너와서 브리스톨 지역에서 기드온 채플하고 베데스다 채플이라고 하는 교회를 운영하면서 고아들을 거두고 챙기고 섬기는데 오만 번이나 응답을 받았대요. 어떤 때는 때가 되어서 고아들을 다 식탁에 앉으라고 해. 빵 없어, 지금. 지금 먹으려고 침을 삼키면서 김칫국 마시고 있는데 빵이 없어. 제가 그 책을 읽어서 놀랐던 게 빵이 지금 없는데 감사해요. 빵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입장이 곤란해요. 빵이 없는데 빵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기도하는데 빵차가 들어온 거야, 빵 실은 차가. 그 내용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어떤 경우는 사고가 나서 빵을 가져갈 수가 없어. 배달될 곳에 못 가는 거야. 갖다 내버릴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가져왔다 그러면서 가져온 거예요. 그런 식으로. 그렇다고 하나님이 교통사고를 낸 건 아닙니다. 자칫하면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그러니까 오만 번 중에는 그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란 말이야. 그래서 고아들을 챙기는 일은 누군가, 하나님이 하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직접 못 하니까 누군가 하나님 대신에 해야 될 일이고, 뮬러 목사가 하는 일은 하나님 보실 때 하나님이 하실 일인 거야. 뮬러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고. 그리고 자기 자신은 얼마나 검소하게 살았는지 아까 봤죠? 빵하고 수프 하나하고 그렇게 검소하게 살고, 70이 넘어서 87세까지 40개국을 다니면서 전도해서 300만 명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는 거예요. 내가 살아온 내 삶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두려움

설교자는 결혼을 앞두고 느꼈던 두려움을 솔직하게 나눕니다. 그는 결혼이 마치 누군가가 물 위를 걸어 보라고 요청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물에 빠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스스로를 내던질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결혼할 상대보다 이 모든 과정을 이끄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그를 이곳까지 인도하셨고, 두 사람 모두를 통해 일하시며 완전함으로 이끌어 주실 분이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믿음 덕분에 두려움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이야기는 결혼을 앞둔 이들이 '만약에'라는 두려움에 마비되지 않도록 격려하는 적용으로 이어집니다.

데이팍 레디, 게이릿 켈, 헤일리 수트럼 · 2026-10-19

설교 내 2–2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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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에는 충분히 아는 만큼 앞으로 나아가서 결심하거나 완수해야 할 때가 옵니다. 이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성경 말씀을 주세요. 네, 예레미야서나 에스라서 같은 말씀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누군가의 삶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에클레시아스 11장 4절을 드리고 싶습니다. '바람을 지켜보는 자는 씨를 뿌리지 아니하며,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맥락상 이 말씀은 '이 시점이 맞는가?' '이 시점이 맞는가?' '이 시점이 맞는가?' 하고 계속 상황을 재고하는 사람을 묘사합니다. 즉, 씨를 뿌리지 않고 계속 망설이는 사람입니다. 씨를 뿌리고, 그 후에 일어날 일을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저는 때때로 이 말씀이 좋은 경고가 됩니다.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거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때로는 그냥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무모하게 나아가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마음 깊이 신뢰해야 합니다. 자신의 판단에 의지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조언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녹색 신호가 뜬다면, 감사드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즐기는 과정을 경험해야 합니다. 저는 결혼한 지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내에게서 새롭고 달콤한 보물을 발견합니다. 저는 '만약에'라는 두려움에 결코 마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혼할 때 믿음을 건네는 대상은 결국 주님이라는 점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결혼에 대해 매우 두려워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물 위를 걷으라고 요청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제가 물에 빠질 것 같은 상황에 스스로를 놓게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저는 결혼할 사람보다는 이 모든 것을 이끌어 주신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곳까지 인도하신 분이시며, 두 사람 모두를 통해 일하시고 완전함으로 이끌어 주실 분이십니다. 저는 이 믿음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좋습니다. 두 번째 오해는 '모든 선택지를 열어두기'입니다. 이 진실에 대해 설명해 주실 분이 계신가요? 어떤 딜레마가 있는지, 그리고 진실은 무엇인지요? 저는 우리가 '다음 코너에서 누군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눈을 열어두고 있거나, 사실은 다른 곳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누군가를 만나면서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혼이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믿습니다. 완벽한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선택하고, 그 사람을 결혼 생활 내내 사랑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결혼 서약을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충성심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에 기반합니다. 게이릿, 혹은 데이팍, 추가로 말씀해 주실까요? 저는 단지 FOMO, 즉 '중요한 것을 놓치는 두려움'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항상 주위를 둘러보고, '나는 적절한 선택을 하고 있는가? 더 나은 선택이 곧 나타날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문제의 또 다른 측면은 '선택의 신'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문화는 우리가 가진 모든 기회를 즐기도록 가르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나 슈퍼마켓에서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가졌는지 생각해 보세요. 평균적인 슈퍼마켓의 시리얼 코너에는 256개의 브랜드가 있습니다. 시리얼 코너만 봐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것에 익숙해졌고, 만족하지 못하면 더 나은 것을 선택합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소비주의적 태도와 교육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비자로 훈련받았고, 이는 그리스도의 정신 속에서 헌신의 개념을 약화시킵니다. 우리는 파트너를 맞춤형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이런 눈을 원하고, 이런 볼을 원하고, 성경을 이렇게 읽는 사람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모델링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훈련받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세대가 지난 수십 년간 이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요일 저녁 설교가 있었는데, 이는 '열린 선택의 신'이라는 제목의 기사로도 발표되었습니다. 아마도 링크를 추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열왕기 상 18장에서,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향해 바알과 여호와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며 '너희가 두 발로 떨어지며 걷는 것은 언제까지인가?'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라면 그분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이 말씀을 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왼쪽으로 스크롤하며 다른 것을 찾지 마세요. 항상 다른 사람, 더 나은 사람, 더 잘 보이는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 사람은 주님께서 인도하신 사람인가?'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이 불완전하지만 올바른 사람을 겸손하게 섬기고, 희생하고, 따를 수 있는가?'입니다. 이 불완전한 사람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가?

욥, 다윗, 히즈키야의 고통

설교자는 욥과 다윗, 히즈키야가 고통을 겪었던 사실을 예로 들어, 하나님의 백성이 병드는 일이 낯선 일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는 먼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도 여전히 사람이기 때문에 보통의 필요와 약점에서 면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인간의 약점으로부터 우리를 면제시키지 않으며, 은혜의 언약도 결핵이나 풍습성 관절염, 천식으로부터 면제되는 증명서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바울이 육체에 있는 자들이 모두 고통스럽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훈련하신다는 말씀도 덧붙입니다. 그는 병원 복도에서 차례가 온다고 놀랄 필요가 없다는 비유적 질문을 던지며, 청중이 자신의 병을 예상된 일로 받아들이도록 격려합니다. 또한 이 병이 종종 우리에게 큰 유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기억하면, 병든 상황에서도 놀라지 않고 차분히 주님 앞에 설 수 있다고 적용합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19

설교 내 4–4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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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병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단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의 보통 필요와 약점으로부터 우리를 면제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사람입니다. 은혜의 언약은 결핵, 풍습성 관절염, 천식으로부터 면제되는 증명서가 아닙니다. 육체의 병은 우리의 육체를 통해 우리에게 찾아와 무덤까지 우리를 따라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육체에 있는 자들이 모두 고통스럽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은 특별한 훈련을 받기 때문에 더 자주 병들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그분이 훈련하시고, 모든 아들을 그분이 징계하신다.” 어떤 형태의 고통이든지 하나님이 인정하는 자녀의 표징 중 하나이며, 종종 병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병원 복도에서 우리의 차례가 온다고 놀라야 할까요? 요브와 다윗, 히즈키야가 고통을 겪었으니, 우리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병으로 인해 종종 우리에게 큰 이익이 생긴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병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아야 합니다.

요한 세례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시신을 예수께 가져간 일

설교자는 요한 세례자의 제자들이 스승이 머리 베인 뒤 그 시체를 들고 예수님께 알린 장면을 소개합니다. 그는 이들이 슬픔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주님께 소식을 전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근거로, 어떤 어려움이든 예수님께 메시지를 보내고 자신의 불행을 감추지 말라고 권합니다. 예수님께는 억누를 필요가 없으며, 차갑게 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잔혹하게 배신하지 않으실 분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우리를 결코 배신하지 않는 믿음직한 분이시며 거절하지 않는 친구이시므로, 모든 것을 말씀드리면 좋은 희망이 있다고 격려합니다. 마음이 약해질 때 예수님께 찬송을 부르고 모든 것을 말씀드리라는 권면으로, 주님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신앙의 자세를 강조하며 이 대목을 맺습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19

설교 내 6–6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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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고 자랑스럽거나 말 많은 젊은 소녀들은 병으로 인해 자비롭고 온화해지며, 예수님의 발 앞에서 앉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시인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고난을 당함으로 주의 계명을 배우는 것이 좋았도다.' 그러므로 존경받고 복된 여인들조차도 마음 깊은 곳에 칼이 찔리는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이 병들고 죽는 일은 종종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이익이 됩니다. 라자로는 사도들이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 병들고 죽었습니다. 그의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라자로의 병이 있은 지 19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든 믿는 자들이 그로부터 이익을 얻었으며, 오늘날 우리는 그의 병과 죽음으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은 선한 자들의 고난으로부터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관심한 자들이 깨어나고, 의심하는 자들이 확신을 얻으며, 악한 자들이 회개할 수 있습니다. 병 중에 우리가 전하는 증언을 통해 슬퍼하는 자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통과 약함을 피하려 하겠습니까? 우리가 친구들이 우리에 대해 '주님, 보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겠습니까? 그러나 본문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두 번째로 그 사실에 대한 메시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동생들이 예수님께 알리기 위해 보냈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주님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해질 때 예수님께 찬송을 부르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말해야 합니다. 기쁨이든 불평이든, 예수님은 우리를 아시지만, 그분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요한 세례자의 제자들이 그 선생이 머리 베인 것을 보고 시체를 들고 예수님께 알렸을 때, 그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든 예수님께 메시지를 보내고, 자신의 불행을 감추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는 억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차갑고 자랑스럽게 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잔혹하게 배신하지 않으실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결코 배신하지 않으시는 믿음직한 분이시며, 우리를 거절하지 않는 친구이십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말하면 좋은 희망이 있으며, 그분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지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서 '전능하신 주님, 내가 왜 병들었는지 알려 주소서'라고 묻는다면, 내가 건강할 때는 유용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왜 그런지 예수님께서는 알려 주실 수도 있습니다. 만약 알려 주지 않으신다면, 그분께서는 이유를 알지 못하더라도 주님의 뜻을 인내심 있게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리를 통해 당신을 격려하고, 당신의 임재로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예상치 못한 위로를 보내거나 고난 속에서 영광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서 마음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마리아와 마르타가 예수님께 경고를 보냈다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얼굴을 찾는 것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치유를 주실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사와 약을 거부하면서 허황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치 도살장이나 옷감 장인을 해고하고 믿음만으로 먹고 입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주님을 아예 잊고 사람만 의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육체와 영혼의 치유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약물을 사용하지만, 그 약물은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고통, 점점 사라지는 힘, 그리고 약해지는 기침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에 대해 하나님께 묻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머리가 아프면 예수님께 그 아픔을 치유해 달라고 감히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세셨으니, 머리 속의 맥박과 압력을 완화시키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큰 일은 크신 하나님께는 작고, 우리의 작은 일은 더 작을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자녀들 중 누구의 가장 작은 고통이나 필요를 잊지 않으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지혜와 크기의 증거입니다. 숨쉬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예수님께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폐와 생명을 주셨으시기 때문입니다. 시력이 약해지고, 귀가 들리지 않는 것도 예수님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가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은 무릎, 고름이 생긴 손가락, 뻐근한 목, 또는 삐진 발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몸의 모든 부위를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을 속량하셨으며, 그 모든 것을 무덤에서 일으키실 것입니다. 즉시 가서 '주님, 보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라자로의 사건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마리아와 마르타가 예수님께 소식을 보낼 때, 그들은 메신저가 예수님께 도착하자마자 라자로가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틀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고, 라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야야 유대지방으로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아시면서도 무관심해 보이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치유를 위한 기도가 항상 응답받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친구나 가족, 지인이 기도해 주는 모든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살장과 옷감 장인을 해고하는 비유

설교자는 의사와 약을 거부하고 허황된 믿음만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는 이를 도살장이나 옷감 장인을 해고해 놓고 믿음만으로 먹고 입기를 기대하는 것에 비유합니다. 이 비유는 믿음과 실제적인 돌봄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태도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날카롭게 보여 줍니다. 설교자는 그러면서도 주님을 아예 잊고 사람만 의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덧붙입니다. 그에 따르면 육체와 영혼의 치유는 하나님께 구해야 하며, 약물을 사용하더라도 그 약물은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설교자는 이 비유를 통해 약을 쓰는 일과 하나님께 구하는 일이 함께 가야 한다는 적용을 전합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19

설교 내 6–6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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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고 자랑스럽거나 말 많은 젊은 소녀들은 병으로 인해 자비롭고 온화해지며, 예수님의 발 앞에서 앉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시인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고난을 당함으로 주의 계명을 배우는 것이 좋았도다.' 그러므로 존경받고 복된 여인들조차도 마음 깊은 곳에 칼이 찔리는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이 병들고 죽는 일은 종종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이익이 됩니다. 라자로는 사도들이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 병들고 죽었습니다. 그의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라자로의 병이 있은 지 19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든 믿는 자들이 그로부터 이익을 얻었으며, 오늘날 우리는 그의 병과 죽음으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은 선한 자들의 고난으로부터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관심한 자들이 깨어나고, 의심하는 자들이 확신을 얻으며, 악한 자들이 회개할 수 있습니다. 병 중에 우리가 전하는 증언을 통해 슬퍼하는 자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통과 약함을 피하려 하겠습니까? 우리가 친구들이 우리에 대해 '주님, 보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겠습니까? 그러나 본문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두 번째로 그 사실에 대한 메시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동생들이 예수님께 알리기 위해 보냈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주님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해질 때 예수님께 찬송을 부르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말해야 합니다. 기쁨이든 불평이든, 예수님은 우리를 아시지만, 그분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요한 세례자의 제자들이 그 선생이 머리 베인 것을 보고 시체를 들고 예수님께 알렸을 때, 그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든 예수님께 메시지를 보내고, 자신의 불행을 감추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는 억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차갑고 자랑스럽게 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잔혹하게 배신하지 않으실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결코 배신하지 않으시는 믿음직한 분이시며, 우리를 거절하지 않는 친구이십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말하면 좋은 희망이 있으며, 그분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지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서 '전능하신 주님, 내가 왜 병들었는지 알려 주소서'라고 묻는다면, 내가 건강할 때는 유용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왜 그런지 예수님께서는 알려 주실 수도 있습니다. 만약 알려 주지 않으신다면, 그분께서는 이유를 알지 못하더라도 주님의 뜻을 인내심 있게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리를 통해 당신을 격려하고, 당신의 임재로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예상치 못한 위로를 보내거나 고난 속에서 영광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서 마음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마리아와 마르타가 예수님께 경고를 보냈다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얼굴을 찾는 것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치유를 주실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사와 약을 거부하면서 허황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치 도살장이나 옷감 장인을 해고하고 믿음만으로 먹고 입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주님을 아예 잊고 사람만 의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육체와 영혼의 치유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약물을 사용하지만, 그 약물은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고통, 점점 사라지는 힘, 그리고 약해지는 기침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에 대해 하나님께 묻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머리가 아프면 예수님께 그 아픔을 치유해 달라고 감히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세셨으니, 머리 속의 맥박과 압력을 완화시키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큰 일은 크신 하나님께는 작고, 우리의 작은 일은 더 작을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자녀들 중 누구의 가장 작은 고통이나 필요를 잊지 않으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지혜와 크기의 증거입니다. 숨쉬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예수님께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폐와 생명을 주셨으시기 때문입니다. 시력이 약해지고, 귀가 들리지 않는 것도 예수님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가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은 무릎, 고름이 생긴 손가락, 뻐근한 목, 또는 삐진 발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몸의 모든 부위를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을 속량하셨으며, 그 모든 것을 무덤에서 일으키실 것입니다. 즉시 가서 '주님, 보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라자로의 사건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마리아와 마르타가 예수님께 소식을 보낼 때, 그들은 메신저가 예수님께 도착하자마자 라자로가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틀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고, 라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야야 유대지방으로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아시면서도 무관심해 보이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치유를 위한 기도가 항상 응답받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친구나 가족, 지인이 기도해 주는 모든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라서의 아브라함 찬양

설교자는 약 200년 전에 쓰인 지혜서 시라서 44장을 인용합니다. 이 본문은 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위대한 아버지로 찬양하며, 그가 가장 높으신 분의 율법을 지키고 언약을 맺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시험을 받았을 때 충성스러운 자로 입증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설교자는 구약과 신약 사이의 시기인 간성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위대한 본보기로 여겼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에게 아브라함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율법을 지킨 선구자이자 충성의 모범이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행위와 충성을 강조하는 방향이었다고 설교자는 짚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브라함을 율법을 지키고 충성으로 축복받은 좋은 유대인의 본보기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대신 바울은 아브라함을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된 불신앙스러운 죄인과 연관지었다고 적용합니다.

케빈 드영 · 2026-10-19

설교 내 9–9문단 · 예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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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보여주며,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잔치를 나타냅니다. 작은 요리법을 기억해 보세요. 의롭다 하심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죄를 사하시고,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며 받아들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바라보실 때, 당신의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께서 “자, 눈을 감고 거기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꾸미겠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좋아, 보이지 않네. 들리지도 않네. 좋아, 좋아, 좋아, 천국에 가겠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바라보시는 긍정적인 시선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의롭게 여기시며 받아들이십니다. 이는 제하야 3장에서 천사가 대제사장 예수의 더럽힌 옷을 벗기고 깨끗한 옷을 입히는 장면처럼,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께서 더럽힌 옷을 입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잠깐은 그냥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게”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영적 상황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불신앙스러운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복된 아름다운 의로 덮여 있다고 계산하신다는 교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얼마나 좋아하는 찬송가의 내용입니까? “이제 저는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네. 예수님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저는 살아 계신 머리, 신앙의 의로 덮인 자입니다. 그가 나팔 소리로 오실 때, 저는 그분 안에서 그분의 의로만 덮여져서, 책망 없는 자로 보좌 앞에 설 것입니다. 저는 제 구속자 예수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나니, 그분께서 죄와 죽음의 능력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제 의로 되신 성결한 재판장님 앞에서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예수님, 당신의 피와 의는 제 아름다움과 영광의 옷입니다. 타오르는 세상과 그 안에 있는 자들 속에서도 저는 기꺼이 머리를 들고 있습니다. 죽음의 흙에서 일어나 하늘의 거처를 받을 때, 그때도 제 의롭다 하심은 예수님께서 제 대신 살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재판장님 앞에 설 때, “당신의 변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오직 한 가지 변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 대신 살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기억해 보세요. 지난 주에 우리가 말했듯이, 간성기(간성기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시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위대한 본보기로 여겼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브라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기억해 보세요.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200년 전에 쓰인 지혜서인 시라 44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위대한 아버지였다.”라고 합니다. 그의 영광은 누구도 같지 않았으며, 그는 가장 높으신 분의 율법을 지키고 그분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는 육체로 언약을 세웠고, 시험을 받았을 때 충성스러운 자로 입증되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문헌인 시라서가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 대해 무엇을 알아차렸는지 기억하세요.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았고, 충성스러운 자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그들의 민족의 선구자로 보았습니다.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율법을 지켰던 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의 영웅이었고, 그는 좋은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을 지키고 충성의 본보기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먼저 신학을 설명했고, 그 부분이 길었습니다. 이제 본문을 보고 바울의 논리를 따라가 보세요. 3절에서 바울은 창세기 15장 6절을 인용합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에 대해 개발한 다른 견해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리고 4절로 이어집니다. 그는 비유를 제시합니다. “임금에 대해 말해 보자”고 합니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임금은 선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기억하세요. 3장 초반에 바울은 구원이 선물이라는 것을 이미 확립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유대인들도 이 사실을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선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약간 어색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을 제거합니다. 구원은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묻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그것이 선물이라면, 그 선물은 무엇을 포함합니까?” 왜냐하면 임금은 당신이 정당하게 받을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임금은 선물이 아니라, 그가 일한 대가입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한 달 말에 고용주는 당신에게 돈을 빚지고 있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했고, 계약이 있습니다. 고용주는 당신에게 시간당 20달러나 연간 10만 달러를 동일한 분할금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받지 못한다면, 법원에 가는 법적 권리도 있습니다. 이미 제공된 서비스에 대한 지급을 하지 않는 것은 계약 위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그것은 임금입니다. 당신은 “나는 당신을 위해 일했습니다. 당신은 돈을 빚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일과 임금에 감사하지만, “오, 대단하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직접 입금을 받을 때마다 감사의 편지를 보내나요? “이 선물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나요? 당신은 선물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당신은 계약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아브라함, 만약 구원이 선물이라면, 그것은 행위에 의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했는지 주목해 보세요. 바울은 아브라함을 율법을 지키고 충성으로 축복받은 좋은 유대인의 본보기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바울은 아브라함을 신앙을 통해 의롭게 된 불신앙스러운 죄인과 연관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신앙을 강조할 때, 신앙은 임금이 아님을 기억하세요.

하나님께서 죄를 세지 않으신 천상의 회계 장면

설교자는 천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행적을 확인하는 장면을 상상해 설명합니다. 천사는 보상이 필요한 선한 행적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죄에 대해 물으면 기록은 페이지가 가득하며, 주간, 일일, 분 단위, 초 단위 목록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목록이 더 늘어나기 전에 충분하다고 하시며, 이 모든 죄를 세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다음으로 남은 것이 무엇인지 묻자 천사는 믿음뿐이라고 답합니다. 천사가 그 사람이 불의한 자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그의 믿음을 의롭다고 여기겠다고 말씀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믿음 자체가 공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적용합니다. 죄는 잊히고 다시 기억되지 않는다는 복음의 선언이 이 장면의 핵심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케빈 드영 · 2026-10-19

설교 내 11–11문단 · 예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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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세금을 대신 내주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겠죠. 우주적인 계산의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실제로 천사가 하나님께 도움을 드리는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하나님 앞에 설 때나,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아, 가브리엘, 마이클, 성 베드로, 이 사람의 행적에 대해 기록된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천사가 대답할 것입니다. "아니요, 주님.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업이요? 아닙니다. 보상이 필요한 선한 행적이 없습니다. 신의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떠넘길 만한 행적이 있을까요? 천사가 대답합니다. "아니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는 어때요? 이 책에 기록되어 있나요?" "네, 많습니다." 페이지가 가득합니다. 천사가 목록을 읽기 시작합니다. "잠깐, 잠깐, 어느 나이부터 시작할까요?" "주간 목록, 일일 목록, 분 단위 목록, 초 단위 목록을 드릴까요?" 목록이 계속 늘어나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충분합니다. 이 모든 죄를 하나도 세지 않겠습니다. 책을 닫으세요." "그 외에 무엇이 있나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만입니다, 주님." 믿음, 평안, 신뢰. 이 사람이나 여인에 대해 더 말할 것은 없습니다. "정말로, 주님, 그는 불의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믿음을 의롭다고 여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책, 죄책감, 죄, 불의—하나도 세지 않겠습니다. 잊혀질 것입니다. 다시는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은 자체적으로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통합시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사람을 죄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나의 눈앞에서 의롭게 여기시기를 원합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좋은 소식에 반응해야 할까요? 이 좋은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시편 31을 더 읽어보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대답이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의 나머지 부분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침묵했을 때, 내 뼈가 마르고 말았다. 하루 종일 울며불며, 낮과 밤 내게 무거운 손길이 놓였다. 여름의 더위로 내 힘이 말라갔다." 다윗이 말하고 있는 것을 들으셨나요? 어떤 죄든, 아마 바트세바일 수도 있고, 다른 죄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정말로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왕 다윗은 죄목록이 길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침묵했을 때, 내 힘이 약해졌다. 내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당신께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뼈가 지치고, 탄식했습니다. 나는 내 죄를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나는 내 불의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는 내 죄를 주님께 고백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내 죄의 죄책감을 사셨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말한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각자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각자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께서 찾을 수 있을 때, 모든 경건한 자들이 기도하라. 큰 물이 넘치더라도 그는 닿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나의 은신처이시며,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기쁨으로 나를 둘러싸십니다. 회개하고 믿으세요. 고백하세요.

사천 예배당 개척과 할머니들의 예배

설교자는 1977년 7월 10일 신학 공부 중 강사 목사님의 권유로 사천의 작은 예배당에 파송된 경험을 나눈다. 그곳은 26년간 유지되어 왔으나 교역자가 공석인 날이 많았고, 세례 교인이 15명에 못 미쳐 교회에서 기도처로 격하될 위기에 있었다. 교인은 할머니 두 사람과 남자 집사 한 명 정도였고, 교회학교 학생도 몇 명뿐이었다. 설교자가 머문 집은 80세가 넘은 할머니 집이었는데, 벽에서 곰팡이와 흙냄새가 났고 벽지가 떨어져 나왔으며 지네가 자주 나왔다. 음식에는 파리가 꼬였고 냉장고와 전기도 없어 설교자는 자주 금식하며 견뎠다. 온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지만 예배당과 할머니 집에만 전기가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변소간만도 못하다고 비웃었다. 설교자는 그 말 앞에서 전도할 수 없다고 느끼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강사 목사님은 그저 엎드려 기도하라고 권했고, 얼마 뒤 장로님이 산을 팔아 마련한 돈을 가져와 동네 입구 땅을 계약하게 되었다. 이후 노회에 청원했으나 두 차례 기각되었고, 세 번째 청원에서 블록을 한 장씩 모금하는 방식이 허락되었다. 각 교회의 도움으로 예배당과 사택, 교육관이 지어졌고, 설교자는 이를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 증거로 말한다. 설교자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믿음을 강조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15–28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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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서 들은 분도 계시겠는데, 오래전 50년 전에 제가 사천이라는 곳에 갔는데, 조그만 예배당을 건축해서 예배를 드리며 한 26년간 유지되다가, 그것도 교역자가 공석으로 있는 날이 절반, 교역자가 있는 날이 절반인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교역자가 와서 살아갈 수 있는 재정이 아예 안 되는 그런 곳인데, 26년간 유지해 오다가 폐쇄한 거라. 안 된다, 이 교회가 안 된다 해 가지고. 교회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세례 교인 15명 이상이 있어야 되고, 그게 떨어진 채 2년, 3년 가면 등급이 격하돼 가지고 교회가 아니고 그냥 기도처, 이렇게 한 급 내려옵니다. 기도처 정도도 안 되고, 할머니 두 사람하고 남자 집사라고 하는 분이 한 분, 서리 집사 되겠고 여자 집사 한둘 있고, 그게 다예요. 교회학교 학생 몇 사람 있고. 그래도 여러분, 세상의 어떤 단체라면 벌써 흐지부지되고 사라지고 할 텐데 교회는 좀 다른 데가 있어요. 그래도 유지가 되는 거예요. 목회자도 없고 해도 어떻게든 거기 모여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때는 할머니 둘만 나와 가지고 예배하는 거야. 그런데 할머니 둘이 성경도, 성경 구절도 몰라. 그러니까 뭘 하면 되겠어요? 모르는 할머니 둘이 주일날 예배하면 뭘 하면 되겠습니까? 생각을 안 해 보신 거지. 사도신경 합시다. 그건 다 외웠거든요. 사도신경하고, 아는 찬송을 하나 꺼내야 돼. 그런데 또 안 맞아. 그걸 모르니까 둘이 하면 이부, 셋이 하면 삼부고 그래. 성경은 모르니까 읽을 수도 없고, 주기도문 합시다. 그럼 끝이라. 예배가 그게 끝인데, 그렇게 교회가 힘이 없어도 기도하고 할머니들이 유지를 하는데, 제가 신학 공부할 때 저를 가르치는 강사 목사님이 나보고 거기 가라는 거예요. 1977년도 7월 10일에 거기로 간 거예요. 가 가지고 어렵사리, 80이 넘은 할머니는 큰방에 자고 나는 작은방에 자는데, 벽에 곰팡이 냄새, 흙내 냄새가 나고, 풀하고 흙벽에다가 벽지를 자꾸 바르니까 벽지가 두껍고 뻣뻣해 가지고 자꾸 떨어져 나와. 서로 내밀어. 바람 불면 벽지가 푹 나왔다가 붙었다가, 풍구질을 해 가지고 얼마나 냄새나는지. 그게 또 대밭 밑에 있어 가지고 걸핏하면 지네가 나와. 그런데 할머니가 밥을 차려 주는데 파리가 먹다가 빨다가, 밥은 소화가 된 것 같아. 파리가 얼마나 빨았던지. 냉장고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갔으니까. 그걸 내놓는데 먹어야 돼요, 안 먹어야 돼요? 지금도 모르겠어. 그래도 전도사가 온다고, 전도사가 없는 게 절반이니까 온다 하니 할머니가 정성이 있어 가지고 갈치를 사다가 구웠는데, 구운 건지 삶은 건지 하여튼 그것도 파리가 얼마나 냄새를 좋아해 가지고. 그걸 갖다 내놓는데 이것도 먹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고민인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제가 금식 중입니다. 금식이 아니고, 금식이죠, 금식. 그러니까 자주 금식을 했어요, 덕분에. 금요일 저녁에 가 가지고 토요일 금식하고, 끓여 먹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거의 밥을 못 먹다시피 하는 거죠. 그때 그걸 내가 어떻게 견뎌 냈는지 지금도요. 그래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전도한다고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데, 온 동네에 다 전기가 들어왔는데 길가에 있는 외딴집, 예배당하고 할머니 집만 전기가 안 들어온 거야. 할머니 혼자, 80세 넘은 분이 혼자 사니까 집을 손볼 수도 없고, 그야말로 기침만 거기 하면 집이 날아갈 것 같아. 무너질 것 같아요. 전도하러 갔더니 뭐라고 하느냐? 야, 우리 화장실만도 못한, 변소간만도 못한 거기에 우리더러 가란 말이냐, 오란 말이냐, 그러더라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전도하러 못 나가겠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사실이거든요. 당시만 해도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어 가지고 집마다 지붕 개량도 하고 페인트도 칠하고,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겉으로 좀 번질하게 하는데, 온 동네 전기가 들어왔는데 예배당하고 할머니 집에는 전기가 안 들어온 거라. 거기다가 비포장도로 큰길가에, 진주하고 고성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직행버스가 지나가는 길가에 있었으니까,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를 덮어씌우고 하니까 정말 가서 보니 눈물 나는 거예요. 지금도 내가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멍청해서 그런지, 그걸 무시하지 못하고. 전도하려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 반응이 그렇다는 거야. 그때 기도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 전도하려고 하니까 예배당이나 전도사 꼴이 이래 가지고 어떻게 전도하겠습니까? 차라리 없으면 모르겠는데 있다는 게 온 마을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밖에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지어야 되겠는데, 예배당을 지으려면 돈이 있어야 되고 땅을 사야 되고, 또 어디서 건축비를 마련해 가지고. 돈 이야기를 어떻게 해요? 저는 늦게 믿어 가지고 인맥이 없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아무도 저에게 손잡아 주고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기도해야 돼.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그 예배당에 사람 나오라고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봐도. 그때부터 전도를 못 하겠더라고.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창피하게 들리는지. 그래서 학교에 와 가지고 나를 보낸 강사 목사님에게 도저히 이래 갖고 못 하겠다고 하니까, 무슨 소리냐며 그냥 엎드려 있으라, 기도하고 있으라는 거예요. 엎드려 있어도 하늘에서 벽돌이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눈앞이 캄캄하고 그래요. 그런데 얼마 있었더니 한 장로님이, 나를 가라고 한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 장로님인데, 강월상이라는 장로님이 산을 하나 팔아 가지고 돈을 싸 들고 온 거야. 그러니까 나를 보낸 분은 나름대로 도우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했던 것 같아요. 나는 순종해서 간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동네 제일 입구의 반듯한 땅 하나를 계약하고. 그런데 땅만 가지고 예배당이 됩니까? 기초를 해 가지고 벽돌을 올려야 될 거 아니야. 뭐가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기도도 하지만 노회에 청원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50년 전이니까 진주노회 안의 교회가 한 60, 70개 됐을 텐데, 재정적으로 목회자 생활비라도 줄 수 있는 교회가 아마 열 교회도 안 될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노회에 청원서를 내는데 노회 재정이 없는 건 상식적으로 아니까, 경남 진주노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한 사람당 블록, 우리 여기 말로 블록 한 장씩을 보내 주시면 제가 목수 일 한 경험이 있으니까 제 손으로 지어 보겠습니다. 기도하고 그걸 보냈어요. 그런데 노회에서 보더니 이런 청원이 다 있느냐면서 그냥 기각시켜 버린 거예요. 6개월 있다가 또 보냈어. 날짜만 고쳐 가지고 똑같은 문구 그대로, 안 고치고 보냈어. 이 사람이 이거 또 보내? 또 기각. 오기가 생기더라고. 내가 번거롭게 하리라, 이 과부처럼 내가 번거롭게 하리라. 세 번째 보내니까 노회 임원들이 이 사람 또 보냈네, 계속 보낼 모양인데, 그래서 상정해 가지고 노회에서 결의한 거예요. 정치하는 목사, 장로들이 얼마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그렇게 모아서 모금해 주는 게 아니고 그런 방식으로 모금하는 걸 허락하기로. 자기들은 책임 안 지는 거야. 그런 방식으로 모금하는 걸 허락하기로 결의해서 통과됐어. 그래 가지고 허락받았다 하면서 각 교회에, 노회 안에 교회 주소가 있으니까 다 보내 가지고, 노회에서 허락받았다, 예배당은 내 손으로 지을 테니까, 내가 건축 경험이 있으니까 벽돌만 보내 주면 내가 쌓아 올리겠다. 그 간단한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해 가지고, 그렇게 모인 돈으로 예배당을 다 짓고 사택 다 짓고 교육관 짓고, 제가 그 교회에 5년 있다가 떠나오는데 그때 돈으로 100만 원 정도 남겨 놓고 왔다고. 예산을 남겨 놓고.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아,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들으신다.

원지 땅 계약과 40일 잔금 마련

설교자는 원지에서 교회 건축을 위해 시멘트 한 포씩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일부 목사님은 시멘트를 한 차 사 와서 싣고 왔지만, 설교자는 시멘트가 굳어 버릴 수 있다며 돈을 모아 오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동네 한복판에 남은 땅이 하나 있었는데, 그 땅의 주인은 노름빚 때문에 팔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설교자는 땅을 계약하면서 보통 한 달인 잔금 기한을 40일로 늘려 달라고 졸랐다. 돈이 전혀 없었기에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걱정했지만, 기도하며 기한 안에 잔금을 치르고 이전등기를 마쳤다. 이후 사택과 예배당을 짓게 되었다. 설교자는 돈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가장 어려워했다고 고백하면서도, 이 경험을 통해 돈 문제는 사람 문제보다 하나님께 어렵지 않다고 적용한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하지 못한 일은 거의 없었다고 돌아본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29–33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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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바로 1982년도 9월에 여기 원지에 왔는데, 원지에 와서는 간이 좀 커졌어요. 지난번에 벽돌 한 장 했는데 이번에는 시멘트 한 포로 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멘트 한 포씩 보내 주시면 예배당을 짓겠습니다, 했더니 돈으로 모아 주면 될 텐데 어떤 목사님은 시멘트를 한 차 사 가지고 싣고 왔어. 생초에 있던 목사님인데. 아니, 예배당을 지으려면 땅을 사서 기초를 하고 그 이후에 시멘트도 사용할 텐데, 시멘트부터 사면 어떻게 해. 놔두면 시멘트 굳어서 못 쓸 텐데. 돈을 가져오면 될 텐데 시멘트를 사 와 가지고. 원지에서도 원지 한복판에 남은 땅이 딱 한 개 있었어요. 남을 땅이 아닌 거야. 동네 한복판인데 남아 있어 가지고 나온 거야. 그 땅의 임자가 누구냐 하면 여기 단성고등학교 앞에 가면 대 쪼개는 데, 대 쪼개는 그 사람들 땅인데 노름을 해서 빚을 엄청나게 진 거야, 노름빚을. 노름빚이 아니었으면 안 팔 텐데 그 사람이 노름하는 바람에 우리가 그 땅을 사게 되는 거예요. 한 푼도 없이 또 기도했는데, 보통 계약하고 중도금하고 잔금 치르는 것을 한 달 정도로 하는데,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한 달 안에 잔금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40일로 해 달라고 졸라 가지고 40일로 했어요. 그리고는 잠이 안 와. 40일 안에 잔금을 치러야 하니까. 잔금만 치르고 나면 그다음에 땅은 되팔아도 그 가치는 갖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잔금을 치르는 게 목표인 거예요.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아는 사람도 없는데 잔금을 어디서 처리해요? 어떻게든 이래저래 해 가지고, 제가 어디 가서 돈 문제를 가지고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제일 하기 어려워서 잘 못하는 입장이에요. 그걸 못 하겠어. 돈을 도와 달라는 걸 잘 못하는 거예요. 어떻든 여러분, 그렇게 해서 40일 안에 잔금을 치르고 이전등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택을 짓고 예배당을 짓고 그렇게 해냈거든요. 저걸 보면 그게 미련한 건지 믿음인지 모르지만, 그리고 여기 지금 여러분 아시는 대로 에스라하우스 땅을 장만하고 집을 짓고 저쪽 건물 짓고. 내가 돈이 있었느냐? 진짜 내 생활비하고 아이들 교육비도 안 되는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계약해 가지고 이루어 왔는지, 지금도 돌아보면 상상이 잘 안 돼요. 그래서 내가 볼 때 돈 문제는 하나님께 간단한 것 같다. 안 어려운 것 같아요. 뭐가 어려우냐? 사람. 사람은 하나님도 애를 먹어. 사람은 참 어려운데 돈은 그렇게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경험상. 지금까지 제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가지고 못 해 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다메섹 엘리에셀의 빠른 기도 응답

설교자는 아브라함의 종 다메섹 엘리에셀이 주인의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하러 밧단아람에 간 이야기를 소개한다. 동네가 가까워졌을 때 그는 막중한 사명을 앞에 두고 사람을 알아볼 방법이 없어 구체적으로 기도했다.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온 처녀에게 물을 청했을 때 그가 약대에게도 물을 길어 주겠다고 대답하면 그 여인을 이삭의 아내로 믿겠다는 내용이었다.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브두엘의 딸 리브가가 나왔고, 그녀는 낯선 사람에게 물을 주고 약대를 위해서도 물을 길어 주었다. 약대는 많은 물을 마시기 때문에 그 일은 쉽지 않았지만, 엘리에셀은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는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 설교자는 이를 빠른 응답의 예로 들며, 기도가 곧 그 사람의 믿음을 드러낸다고 말하고 종의 믿음이 아브라함보다 탁월하다고 평가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44–48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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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어떤 사람의 기도는 굉장히 빨리 응답됩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 집의 청지기 다메섹 엘리에셀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가 존경하는 주인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위해서 배필을 구하려고 아브라함의 본토 밧단아람으로 가요. 그 동네가 가까워지니까 자기가 막중한 사명을 띠고, 한 가문을 이어갈 만한 좋은 며느릿감을 구해야 되는데, 사람 보고 이력서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다메섹 엘리에셀이 동네가 가까워질 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동네 입구에 가서 우물가에 물 길으러 오는 처녀들이 있을 텐데, 제가 어떤 처녀를 보고 소녀야, 내게 물 좀 다오 하면, 예, 제가 마시게 해 드리리다 하고 당신의 약대를 위해서도 내가 물을 길으리이다 하고 대답하는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가 이삭의 아내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줄 제가 믿겠나이다.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아주 굉장히 구체적이에요.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니고 당장 그날 응답되는 걸 봐야 될 텐데. 기도 끝나고 눈을 떠 보니까 바로 어떤 처녀가 나와. 브두엘의 딸, 라반의 여동생 리브가야. 오길래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길으려 하는데 소녀야, 물을 좀 마시게 다오 하니까, 그 처녀가 낯선 사람에게 못 본 체하지 않고 예, 제가 마시게 해 드리리다 하고 당신의 약대를 위해서도 내가 물을 길으리이다. 우리나라처럼 물을 긷기 쉬운 우물이 아니고 틀면 나오는 그런 게 아니고, 우물이 상당히 깊어 가지고 물을 길으려면 상당히 힘도 들여야 돼요. 또 사람이야 한 잔이면 목마른 것이 해갈되는데 약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약대가 물을 마시면 많이 마시거든요. 한 번 충분히 마시면 15일간 물 안 마시고 갈 수 있어. 그래서 약대를 위해 물을 길으리이다 할 때는 약대에게 물 한 잔 주고 끝내지 않았을 거라. 물을 계속 길어서 붓고, 약대가 다 마시면 또 붓고 하는 걸 다메섹 엘리에셀이 묵묵히 보고 있는 겁니다. 보다가 다메섹 엘리에셀이 땅에 엎드려요. 종의 기도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빨리 들어주시다니 하면서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는 거예요. 여기 보면 기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 응답됐다는 거예요.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오래전에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어찌 보면 다메섹 엘리에셀의 믿음이 아브라함보다 더 탁월하다. 대단한 믿음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 사람의 기도가 그 사람의 믿음이거든.

조지 뮬러의 5만 번 기도와 고아원

설교자는 영국의 목회자 조지 뮬러를 소개한다. 그는 독일 할레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기도회에 참여해 회심했고, 젊은 시절의 도둑질과 도박 같은 방탕한 삶에서 돌아섰다. 이후 영국 브리스톨에서 기드온 채플과 베데스다 채플을 운영하며 버려진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는 누구에게도 재정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다렸고, 기도한 내용과 응답을 일기로 기록했다. 설교자는 그 기록에 따라 5만 번의 응답을 받았다고 전한다. 한번은 고아들이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 빵이 없었지만 뮬러는 빵 주심을 감사한다고 기도했다. 그때 빵을 실은 차가 도착했는데, 사고로 배달될 곳에 가지 못해 가져온 것이었다. 설교자는 하나님이 교통사고를 내신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뮬러는 자신은 검소하게 살았고, 70세가 넘어 40개국을 다니며 3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설교자는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적용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50–54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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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림을 보셨죠? 이 그림 누구인지 아세요? 보통 식당이라든지 붙어 있을 텐데, 조지 뮬러라고 하는 영국의 목회자예요. 독일에 가서 할레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그때까지는 도둑질하고 못된 짓 하고 그렇게 살던 사람인데, 독일의 할레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누가 권해 가지고 기도회에 한번 같이 가 보겠느냐? 가자 하니까 갔대요. 여기 보면 성경책과 돋보기 같은 것, 입에 풀칠한다고 수프 한 잔하고 빵 한 개, 참 소박한 것 같아.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데 얼마나 기도해서 얼마나 응답받았어요? 5만 번 기도해서 응답받은 사람, 조지 뮬러. 어떻게 이분이 5만 번이나 응답받았느냐? 1805년에 태어나 가지고 1898년까지, 영국의 목회자인데 고아의 아버지라고. 이분이 왜 그렇게 기도하게 됐느냐 하면,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영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떼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들은 가난해져 가지고 버려진 아이, 부모 없는 아이가 너무 많아. 그런 아이들 중에서 여자아이 한 30명을 거두어 가지고 먹이고 입혀야 되는데 자기가 목사로 가진 게 뭐 있어요. 그런데 이분의 경험이 뭐냐 하면 한 번도 누구를 찾아가서 내가 고아원을 하고 있으니까 재정적으로 좀 도와 달라고 말해 본 적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냥 기다리고 있어. 더 놀라운 것은 왜 이분이 5만 번이라고 쓰고 있느냐? 기도한 것마다 일기를 써요. 기도 일기를. 몇 년도 몇 월 며칠 몇 시에 무슨 기도를 했다, 그리고 응답되면 응답된 기도를 다 쓰고 그렇게 한 거예요. 젊은 시절에 도둑질, 거짓말, 도박, 사기 등으로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던 방탕아 중의 방탕아인데, 할레 대학에서 기도회에 참여해 가지고 회심하게 돼요. 신학 공부를 해서 전도자로 살았는데 영국으로 건너가 브리스톨 지역에서 기드온 채플하고 베데스다 채플이라고 하는 교회를 운영하면서 고아들을 거두고 챙기고 섬기는데, 5만 번이나 응답받은 거예요. 어떤 때는 때가 돼 가지고 고아들이 다 식탁에 앉아 있어. 빵이 없어, 지금. 먹으려고 침을 삼키면서 김칫국 마시고 있는데 빵이 없어. 제가 그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거예요. 빵이 없는데 감사를 해요. 빵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입장이 곤란해요. 빵이 없는데 빵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기도하는데 빵차가 들어온 거야, 빵 실은 차가. 그 내용을 다 이야기할 수 없고, 어떤 경우는 사고가 나 가지고 빵을 가져갈 수가 없어, 배달될 곳에 못 가는 거야. 갖다 내버릴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가져왔다고 하면서 가져온 거예요. 그런 식으로. 그렇다고 하나님이 교통사고를 내신 건 아닙니다. 자칫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5만 번 중에는 그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란 말이야. 그래서 고아들을 챙기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직접 하지 않으니까 누군가 하나님 대신 해야 될 일이고, 뮬러 목사가 하는 일은 하나님 보실 때 하나님의 일인 거예요. 뮬러가 자기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얼마나 검소하게 살았는지 아까 봤죠. 빵하고 수프 하나 하고 그렇게 검소하게 살고, 70세가 넘어서 40개국을 다니면서 전도해 가지고 300만 명에게 하나님을 전했다는 거예요. 내가 살아온 내 삶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