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10개 · 1 / 1쪽 · 한 쪽 20개
욥기 1장 하늘 법정의 사탄과 하나님
설교자는 욥기 1장의 하늘 장면을 먼저 소개합니다. 사탄이 여호와 앞에 나아와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묻고, 하나님이 울타리를 걷어내면 욥이 주를 욕하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조건으로 그의 소유물을 사탄의 손에 맡기십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이 어느 시대에나 해당하는 전형적인 상황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2장 31절의 '사탄이 너희를 요구하였다'도 같은 상황일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를 해하려면 먼저 하나님께 나아와야 하며, 그의 모든 능력은 허락받은 능력이라는 것이 설교자의 강조점입니다. 세상에 서로 동등한 두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권능은 하나님께 있다고 설교자는 말합니다. 이 말씀은 악한 세력이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우리 시대에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존 파이퍼 · 2026-10-26
설교 내 11–11문단 · 예화 1
본문 발췌 보기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전지하신 사령관으로 그려 본 하나님
설교자는 하나님을 자기 군대를 승리로 이끄시는 전지하신 사령관에 비유합니다. 이 사령관의 목적은 무한한 지혜와 전략적 능력으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는 방식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적을 단번에 짓밟지 않으시고, 진격하기도 하시고 물러서기도 하십니다. 물러서실 때 원수는 자기 안의 분노와 증오와 악을 감히 드러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에게 성공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셔서 그 안의 교만과 폭력이 드러나 참모습이 보이게 하신다고 설교자는 설명합니다. 이어서 설교자는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활동할 여지를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원수가 하나님을 향한 반항을 드러내며 일어나면 사람들은 선한 세력이 패배했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정확한 때에 하나님께서 치시고 모든 원수를 멸하실 것입니다. 설교자는 그때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전략적 능력이 나타나 아무도 의심하지 못하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주한 하나님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영광스러운 분이라는 것이 이 비유의 메시지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완전한 때에 승리하신다는 확신을 전합니다.
존 파이퍼 · 2026-10-26
설교 내 14–14문단 · 예화 2
본문 발췌 보기
저는 하나님을 이렇게 그려 봅니다. 자기 군대를 승리로 이끄시는 전지하신 사령관이십니다. 그분의 목적은 무한한 지혜와 전략적 능력으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는 방식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번에 적들을 짓밟아 버리시는 대신, 진격하기도 하시고 물러서기도 하십니다. 그분께서 물러서실 때 원수는 감히 자기 안의 모든 분노와 증오와 악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에게 성공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셔서 그 안에 있는 모든 교만과 폭력을 드러내게 하시고, 그것의 참모습이 보이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로 마지막을 이루실 완전한 때를 아십니다.
박담 목사님 친구의 놀람
설교자는 교회의 박담 목사님 친구분을 우연히 만났던 일을 전합니다. 설교자는 그 만남이 화랑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기억합니다.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 친구분은 크게 놀라며 쇼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친구분은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되었다면 자기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설교자는 목사님과 함께 웃었다고 회상합니다. 설교자는 청중에게 여러분이 예수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분들이 많지 않느냐고 물으며 공감을 구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가정 배경이나 살아온 삶으로 보면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았지만 기적적으로 믿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그 이유가 여러분이나 전도한 사람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중보 기도 때문이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래서 전도의 열매는 결국 기도에서 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용조 · 2026-10-24
설교 내 1–1문단 · 예화 2
본문 발췌 보기
요한복음 17장은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기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장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중보 기도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과거형으로만 알고 있지, 믿음으로 현재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재형이고, 은혜는 과거형입니다. 이미 만들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능력을 믿음으로 받는 채널이 있는데, 그 채널이 바로 기도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기도의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기면 은혜가 폭발합니다. 이미 주어진 은혜가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잠금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참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된 신앙은 거짓된 기도를 합니다. 허황된 기도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를 아예 할 수 없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절대 기도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어떤 기도냐에 따라 진짜 참 믿음이냐, 가짜 믿음이냐가 여러분의 기도 속에 다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이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는 세 가지 대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 보면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로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첫 번째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여 나에게 믿음을 주시사, 아버지여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옷입히시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복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자신,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를 따라다녔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같이 읽을까요? 시작.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예수님의 그 기도 속에 '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이 내게 주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도 있고,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가르쳐 제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특별히 이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다섯 가지 기도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여 저들이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연합과 일치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아버지여 저들도 나와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되게 하옵소서.' 두 번째 기도는 12절인데요. '주여 저들을 지켜 주십시오.' 보존해 주십시오. 보호와 인도와 양육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세 번째 '주여 저들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쁨과 감동과 능력의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기도는 '악에게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제자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주여 저들이 악에게 빠지지 말고 시험에 들지 말고, 사탄과 싸워서 이기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17절에 있는 말씀인데요. '주여 저들로 하여금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비전을 위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런 기도는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계속 이 다섯 가지 기도를 하십니다. '저들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보존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저들이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 제자들을 향한 기도가 다 여러분에게 응답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분열하지 말고 하나되십시오. 아멘. 여러분 당황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호와 양육과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기쁨과 감동과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이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거 다 외우세요. 예. 다음에 신문에 이거 나오면 다 외우세요. 왜냐하면 이게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기도였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예수님의 기도는 아주 중요하고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방향이 있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뭐냐면, 이제 세 번째로 예수님이 중보 기도의 대상을 바꿔요. 첫째는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고요.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셨다면, 세 번째 대상은 무엇인가?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할 텐데, 전도하면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 터인데, 앞에서는 아니지만 앞으로 예수 믿게 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게 굉장히 놀랍습니다. 앞으로 예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 예수님은 그걸 염두해 두셨어요. '너희들이 나가서 이제 나를 증거할 터인데, 내 증거를 받고 누군가 어느 민족인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20절이 그 말씀입니다. 20절 함께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내가 비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을 위함이다.' 자, 제자들만으로서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서 예수님을 전하면, 저희 말로 인하여 나를 믿게 될 사람들이 생길 터인데,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염두에 두면서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그 사람이 누굴까요? 여러분과 나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잖아요. 사도들이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200년 동안 전도하다가 그 복음이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 있는 선교사님들이, 물론 영국에서 토마스도 왔고 다 왔지만, 주로 선교사님들이 100년 전에 한국에 오셔서 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 주었지요. 제가 이번에 언어인팅에서 중국의 CBMC 회장님을 만났는데, 왕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여자분이세요. 그분이 6대 크리스천이에요. 그 당신의 최초의 조상이 누구한테 예수 믿었냐고 물으니, 허드슨 테일러한테 복음을 받았대요. 그 6대째인 사람이 크리스천이에요. 어, 그분이 이번에 오셨어요. 그니까 영국에서 허드슨 테일러라는 사람이 OMF를 만들었는데, 영국 가서 중국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예수 믿은 사람이 우리나라 같은 면은 언더우드나 셀라 이런 사람들이 오셨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고, 이런 걸 많이 여성 해방 운동도 하고 다 그러셨어요. 그때 최초의 세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다 예수 믿어서 오늘 누구까지 이루는 거예요? 나까지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예수님이 마음에 계산하시고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셨다는 게 오늘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이 기도는 여러분하고 나하고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놓고 생각을 해 보면,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예수 믿기의 망정이지. 예수 믿기 전에 굉장한 분들 많잖았어요. 그렇죠? 여러분이 예수 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박담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박담 목사님 친구분을 내가 저기 저저기서 만났어요. 그 화랑 있는 데서 만났다. 박담 목사님이 목사 됐더니까 쇼크를 먹더라고요. 아니, 박담 목사님이 목사가 됐냐고. 그 사람이 목사되면 내가 하나님 믿어야 된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목사님이랑 둘이 같이 웃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나는 도대체 예수를 믿을 것 같지가 않다. 우리 가정의 배경이나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배경에서 보면 예수를 믿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기적적으로 내가 예수를 믿게 됐어요. 그게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 때문도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전도해 준 사람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 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당신한테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됐다는 결론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 한국이 예수 믿은 것도 바로 그런 거예요. 제가 오래 전에 한번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만은, 제가 80년대 영국에 한 3년 가서 살았을 때, 거기에 마이클 그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예배드리러 갔다가, 거기에 머리 허연 70이 넘으신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분을 만나 버렸어요. 그래서 그 노인 어 할머니를 내가 만났더니 한국에서 왔다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뭐 그냥 죽은 사람 만났듯이 내 손 잡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냐고 물으니, 이분이 625 전쟁 때부터 한국을 위해 기도했대요. 그래서 어떻게 당신이 한국을 위해서 전도해 기도하냐고 물으니, 625 전쟁 때 뉴스 난 걸 보고 자기가 기도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럼 한국 가 보셨느냐고 물으니, 가 본 적 없대요. 한국 한 번도 안 가 보신 분이 지금까지 평생 코리아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아유, 그냥 몸이 엇싸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아, 한국이 예수 잘 믿고, 한국이 그 지옥 같은 그 일제 시대와 유기요화와 버리고개와 가난 속에서도 이렇게 이만큼 살만하게 된 게 바로 이 할머니의 기도 때문이구나. 그래서 이 사람은 한국에 와 본 적도 없고, 한국의 친구도 없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그 자체 하나 때문에 저를 굉장히 환영해 줬던 그런 기억이 있어요.
신약 인용과 바울이 기독교를 반대한 이유에 대한 설명
설교자는 바울이 기독교를 극렬히 반대한 이유를 자신의 자랑이 무너진 데서 찾습니다. 바울은 평생 바리새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유대교 동료들을 능가하려 애썼지만, 율법의 행위로는 공로가 없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의 가르침 때문에 그 삶이 무의미해졌다고 설명됩니다. 설교자는 필리피서 3장의 구절을 인용하며, 바울이 그래서 이 종교에 모든 힘을 다해 반대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는 바울이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파하려 했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이어서 설교자는 다마스쿠스로 떠나는 바울의 모습을 그리며, 너무 헌신적이고 공적인 인물이 마음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여겨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몰리 야드가 프로라이프 운동가가 되거나, 매달린 머리 머레이 오하이어가 예수님을 믿거나, 사담 후세인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선교사가 되는 가정적인 예를 듭니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에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하나님은 이런 사람도 변화시키실 수 있다고 결론짓습니다.
존 파이퍼 · 2026-10-22
설교 내 6–6문단 · 예화 3
본문 발췌 보기
오늘 아침에 여러분께 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구원하신 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신 방식은 오늘 여러분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나와 여러분을 위해 선택하셨다는 생각이 저에게는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 관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성경을 읽어보자고요. 1티모데 1장 15절 말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죄인 중에 죄인이 없으나, 이 까닭으로 내가 자비를 입었노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바울에게 자비를 베푸신 이유입니다. “내 안에서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분의 완전한 인내를 보여주셨으니, 이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바로 여러분을 가리킵니다. 네, 저는 여러분이 이 말씀에 해당한다고 믿습니다.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너희를 위해 행한 것이니, 너희가 이 증거를 보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아침에 제가 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인내와 오래 참으심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이 오래 참으심의 증거를 앞에 두고 있다면, 오늘 아침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분명히 바울과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 필요가 있음을 아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대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제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인내와 오래 참으심이 완전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바울의 전도를 바라보는 렌즈도 바로 이 관점입니다. 이제 사도행전 9장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렌즈를 통해 바울이 구원을 받은 것은 바로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울이 전도를 받은 것도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1991년 1월 9일, 저는 하나님의 인내와 오래 참으심에 대한 증거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삶의 어떤 부분이 오늘 이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삶의 어떤 부분이 오늘 이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부분을 알아차리고, 저는 최선을 다해 그 증거를 드리겠습니다. 1티모데 1:1을 통해 바라보는 이 전도에 대해 네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바울의 전도는 기독교에 대해 완전히 헌신한 반대자였던 사람의 전도였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완전히 헌신한 반대자였던 사람의 전도였습니다. 사도행전 8장 3절에 제가 성경을 펼치면 바로 이 구절이 나옵니다. “사울은 교회를 파괴하며 집집마다 들어가 남녀를 끌어내어 옥에 가두었노라.” 그리고 9장 1절과 2절에서 루가는 그가 단지 위협을 했던 것이 아니라, 위협을 숨 쉬었다고 기록합니다. 왜 루가는 그렇게 표현했을까요? 그는 위협을 숨 쉬었습니다. 이는 박해가 그가 숨 쉬는 공기와 같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단지 위협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위협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는 이 종교를 완전히 반대하고 뿌리뽑으려는 데 완전히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위협과 살인을 숨 쉬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기독교에 대해 그렇게 단호하고 극단적이었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그의 후에 쓴 서신들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즉, 기독교가 믿음으로 구원을 선포하고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런 공로가 없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그의 삶은 쓰레기와 같았습니다. 필리피서 3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의 삶은 쓰레기 더미일 뿐이다.” 사람들이 나의 삶을 쓰레기 더미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평생을 바라며 바리새인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유대교의 동료들을 능가하려고 노력한 삶이, 이 가치 없는 어부들이 나를 하나님과 화해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 때문에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바로 인해 저는 삶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종교에 대해 모든 힘을 다해 반대할 것입니다. 저는 유대교에서 의미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극단적으로 반대했던 이유입니다. 이 종교는 그의 자랑의 토대를 뽑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파하려 했습니다. 즉, 그는 정말로 이 종교에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마스쿠스로 150마일 떨어진 곳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는 이 종교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전도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런 사람을 전도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헌신적이기 때문에, 너무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공적으로 이 입장을 밝혔습니다. 수천 명이 그가 이 일에 헌신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이는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모두가 “아, 저 사람은 변덕스럽구나”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너무나 헌신적이며, 너무나 공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마음을 바꿀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몰리 야드가 프로라이프 운동가가 되어 퍼거에서 생명을 구한다면, 혹은 매달린 머리 머레이 오하이어가 예수님을 믿고 전국에 기도를 퍼뜨린다면, 혹은 가장 극단적인 예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기독교 선교사가 되었다면, 누군가 이 일을 위해 기도할까요? 이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 이 이야기,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이 명령은 우리에게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에 대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존 겐스탠드가 전한 캘리포니아 친구의 갑작스러운 회심
설교자는 존 겐스탠드가 첫 번째 예배 후 들려준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의 친구는 캘리포니아에 살며 기독교를 완전히 거부하고 모든 것을 배척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아침, 출근길 길가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셨고, 그는 심장 깊은 곳까지 감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친구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설교자는 이 친구가 출근할 때까지 부드러움이나 준비의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이후 그는 동료들과 대화를 시작했지만, 친구들은 그가 미쳤거나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 일이 그렇게 빨리 일어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설교자는 이 사례를 바울의 전도와 연결하며, 오래 준비되지 않은 회심도 실제로 일어난다는 증거로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청중은 사람의 상태를 보고 은혜의 가능성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적용을 받습니다.
존 파이퍼 · 2026-10-22
설교 내 14–14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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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저는 “성숙한” 사람들을 찾습니다. 수확할 준비가 된 사람들을 말입니다. “이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이 기도와 기대에 제한을 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존 겐스탠드가 첫 번째 예배 후 홀을 나가며 말했습니다. “이 바울의 전도 이야기는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몇 달이나 몇 년 전에 그 친구는 기독교에 대해 완전히 반대하며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었는데, 어느 아침 출근길에 길가에서 갑작스럽게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는 심장 깊숙이까지 감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났습니다.” 존 겐스탠드의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전혀 부드러움이나 준비의 징후도 없이 출근했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대화를 시작했고, 친구들은 그가 미쳤거나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이 그렇게 빨리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메섹 길에서 빛에 눈이 먼 바울
설교자는 사도행전의 다메섹 사건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의 첫 번째 증거를 설명합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하늘에서 빛이 나와 그를 둘러쌌고, 그는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눈이 멀기를 원하는지, 빛을 보도록 준비되었는지 묻지 않으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그냥 행하셨고, 바울은 세 날 동안 실명 상태에 머물렀다가 이후 치유되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실명이 바울이 자신이 눈먼 사람임을 깨닫게 하려는 뜻이었다고 해석합니다. 보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보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일이 바울의 허락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이 사람의 동의와 상관없이 역사하신다는 첫 번째 증거로 제시됩니다. 설교자는 이를 통해 청중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를 기대하도록 권면합니다.
존 파이퍼 · 2026-10-22
설교 내 17–17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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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하늘에서 빛이 나와 바울을 눈먼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묻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눈먼 상태가 되는 것을 원하십니까? 이 빛을 보는 것을 준비하셨습니까? 낙타에서 내리는 것을 준비하셨습니까?' 하신 말씀이 없습니다. 그냥 하셨습니다. 세 날 동안 눈먼 상태로 있게 하셨고, 그 후 치유하셨습니다. 묻지도 않고 그냥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신 만큼 그를 눈먼 상태로 있게 하셨고, 저는 그분이 바울을 눈먼 상태로 있게 하신 이유가 바울이 자신이 눈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보는 줄 알지만, 사실은 보지 못합니다. 당신은 눈먼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 날 동안 눈먼 상태로 있게 하여 당신이 눈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이 일을 하시기 위해 그의 허락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셨습니다.
옛 전쟁의 깃발과 여호와 니시라
설교자는 출애굽기 17장 15절의 "그 이름을 여호와 니시라 하고"를 함께 읽으며, 여호와 니시라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임을 풀어 줍니다. 옛날 전쟁에서 깃발은 군대가 모이는 중심이었기에, 깃발이 서 있으면 군대가 버티고 깃발이 쓰러지면 군대가 쓰러졌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모세가 이 승리가 자신의 힘도, 아론과 훌의 도움도 아니라 하나님이 깃발이 되셨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팔이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는 순간에도 승리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를 든 손을 드는 일 자체가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이라는 믿음의 선포였다고 짚으며, 이를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으로 적용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 단어인 깃발은 우리의 승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라고 전합니다.
이원희 · 2026-10-21
설교 내 7–7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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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세 번째 단어는 깃발입니다. 여호와 니시라. 출애굽기 17장 15절 말씀 밑에 있는 말씀 함께 읽을까요? 시작. "그 이름을 여호와 니시라 하고." 아멘. 여러분, 여호와 니시라의 뜻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전쟁에서 깃발은 군대가 모이는 중심이었습니다. 깃발로 표시를 하는 것이죠. 깃발이 서 있으면 군대가 버티고, 깃발이 쓰러지면 군대가 쓰러졌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긴 것은 내 힘이 아니라, 아론과 훌도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의 깃발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팔이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는 그 순간에도 결국 승리를 가져다 주신 분은 누구라는 것이죠? 하나님. 맞습니다.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키스 제라트의 고장난 피아노 콘서트
설교자는 1975년 독일 콜론에서 열일곱 살의 베라 브랜디스가 콘서트 프로모터가 되려는 꿈으로 기획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녀는 오페라 하우스를 빌려 오페라가 끝난 뒤 밤 11시 30분에 공연을 열기로 하고, 미국의 젊은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제라트를 초청했습니다. 제라트는 조건을 제시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보젠도르퍼 그랜드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콘서트 당일 그는 약 8시간을 차로 이동해 도착했지만, 이틀 동안 잠을 자지 못했고 등이 아파 여러 번 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스태프가 잘못된 피아노를 가져왔는데,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서 올라온 오래된 연습용 피아노였습니다. 설교자는 이 피아노가 보젠도르퍼이긴 했으나 건반이 고정되고 고음이 약하며 페달마저 고정되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제라트는 이 피아노로는 연주할 수 없다며 홀을 나가 버렸고, 브랜디스는 자신의 미래가 위태로워짐을 느끼고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델리카트슨에서 식사를 하며 그녀는 청중이 기다리고 티켓도 샀으니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제라트는 이 일을 그녀를 위해 한 것임을 기억하라고 말하며 밤 11시 30분에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는 고장난 건반을 고려해 즉석에서 연주 스타일을 바꾸었고, 중음역에 집중해 반복적인 음형과 강한 리듬을 왼손으로 연주했으며, 때로는 의자에서 일어나 피아노를 강하게 쳤습니다. 그 콘서트는 녹음되어 ECM 레코즈가 66분 분량의 음반으로 받아들였고, 이 앨범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피아노 앨범이 되었다고 설교자는 전합니다. 설교자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가 훌륭한 악기여서가 아니라, 그분이 창조자로서 우리를 무릅쓰고, 우리 주위에서,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적용을 전합니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21
설교 내 16–16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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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당신에게 의지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만족감은 목자로 사역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제공되며, 그것은 월급만큼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그보다 더 부패시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역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부끄러움 속에서도 이익을 얻기 위해 사역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적극적으로 사역합니다. 이 단어는 영의 적극성과 우리의 육체적 약함 사이의 뿌리를 공유합니다. 마가복음 26장 41절에서 베드로는 여기서 영적 갈망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성격 유형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이 점에서 쉽게 혼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사님들을 자주 듣습니다. 특히 설교 수업에서 제가 '당신은 몇 가지를 바꾸어야 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들은 '그게 그냥 저의 성격이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제 말을 듣게 됩니다. 이제 제 말을 들어보세요. 성격은 어떤 문제에도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성격은 문제입니다. 성화는 성령이 당신의 성격을 이기고 극복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말입니다, 성격은 당신의 직장에서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월급을 시간에 맞춰 지급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미안합니다. 저는 그냥 늦게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 그렇군요. 그게 당신이니까요.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아내에게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항상 바닥에 속옷을 떨어뜨리는데, 그게 그냥 저의 성격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녀는 '아, 저는 그게 귀여워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목양은 하나님의 영이 당신을 변화시키고 내면에서 당신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숨겨진 마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당신이 사역하는 방식, 방법, 동기—이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양떼는 당신에게 의미, 차이, 그리고 청중을 조용히 제공합니다. 이는 당신이 그들에게서 얻는 것이 당신의 동기라는 것을 잊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행동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당신을 통해, 그리고 당신과 상관없이 일하시는 것을 말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의 능력이나 성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문제입니다. 1975년 독일 콜롱에서 17세 소녀 베라 브랜디스는 콘서트 프로모터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녀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가 끝난 후 밤 늦게까지 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녀는 오페라가 끝난 후 11시 30분에 콘서트를 열기로 하고, 미국의 유명 젊은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제라트를 예약했습니다. 제라트는 이 특이한 밤 늦은 콘서트에 동의했지만, 계약서와 함께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가 반드시 보젠도르퍼 그랜드 피아노에서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몇 가지 조건도 모두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콘서트 당일, 제라트와 그의 매니저는 약 8시간의 차량 이동을 했습니다. 그는 이틀 동안 잠을 자지 못했고, 등이 아파서 차에서 여러 번 내려 쉬어야 했습니다. 그는 그 밤 콘서트를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도착했을 때, 오페라가 끝난 후 피아노를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은 스태프가 잘못된 피아노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서 올라온 오래된 연습용 피아노를 가져와 놓았습니다. 콘서트 시간이 되었고, 그는 준비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해 보았지만, 피아노 상태가 엄청나게 나빴습니다. 피아노는 보젠도르퍼이긴 했지만, 건반은 고정되어 있었고, 고음은 약했으며, 페달도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 피아노에서는 연주할 수 없다'고 말하며 홀에서 나가 버렸습니다. 베라 브랜디스는 자신의 미래가 위태로운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겨우 17세였고, 그녀는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은 델리카트슨에서 식사를 하며 그녀는 그에게 간청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와주셨는데, 청중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티켓도 샀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알겠습니다. 제가 이 일을 당신을 위해 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라고 말하며 밤 11시 30분에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는 고장난 건반을 고려하면서 즉석에서 연주 스타일을 바꾸었습니다. 중음역에 집중하며 반복적인, 홀리스토릭한 반복 음형과 강한 리듬을 왼손으로 연주했습니다. 때로는 의자에서 일어나 피아노를 강하게 치며 소리를 냈습니다. 그날 밤 콘서트는 녹음되었고, ECM 레코즈는 66분 분량의 음반을 받아들여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피아노 앨범이 되었습니다. 이 음반을 들어보면, 키스 제라트가 고장난 건반과 고정된 페달을 무시하고 66분 동안 쉬지 않고 즉흥 연주를 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예술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악기인지 때문이 아닙니다.
다니엘의 삶과 제국들의 교체
설교자는 다니엘이 믿음을 지키며 여러 제국의 왕들 아래에서 봉직했던 삶을 전합니다. 다니엘은 다른 사람들의 죄로 인해 자신의 땅에서 쫓겨났지만, 느부갓네살 왕 아래에서 봉직했습니다. 설교자는 느부갓네살이 정신을 잃었다가 주님께서 정신을 돌려주신 놀라운 이야기를 떠올리며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꿈을 해석했고, 벽에 쓰인 글을 해석했으며, 이후 메대-페르시아 시대에도 여전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메대의 다리오가 권력을 잡은 뒤에도 다니엘은 새로운 왕국을 섬겼고, 하나님은 사자 굴에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설교자는 다니엘이 말년에 유대인들이 그 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하는 일에도 관여했다고 전합니다. 제국들은 오고 갔지만 다니엘은 남아 있었다는 점을 설교자는 강조합니다. 그는 몇 년 전 다니엘 이야기를 설교했을 때도 이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나눕니다. 설교자는 세상의 불의를 슬퍼하는 것은 옳지만, 각자가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고 적용합니다.
아론 라이트 · 2026-10-20
설교 내 8–9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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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을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페터가 이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은 믿음 있는 사람이었고, 다른 젊은 히브리 사람들은 믿음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로 인해 그들의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 아래에서 봉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위대한 바벨론 왕 아래에서 봉직하며, 느부갓네살이 정신을 잃고 그 후에 주님께서 그의 정신을 돌려주셨다는 그 놀라운 이야기를 경험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주권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니엘은 그때 꿈을 해석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떠나고, 벨세바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벽에 쓰인 글을 다니엘이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메대-페르시아가 등장합니다. 메대의 다리오가 통치합니다. 다니엘은 여전히 거기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제 이 새로운 왕국을 봉직합니다. 다리오가 권력을 잡습니다. 다니엘은 이제 나이가 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삶에서 자신의 강력한 손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자 굴에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그의 삶의 말년에, 적어도 구약의 구스 왕 이야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이 그 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지도자들을 보세요. 이 땅에 존재했던 가장 강력한 군대를 통치했던 사람들입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지도자들은 오고 갔습니다. 황제들은 오고 갔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국들은 오고 갔지만, 여전히 주님께서는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 함께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삶 속에서도, 그 제국들 속에서도, 주님께서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몇 년 전 다니엘의 이야기를 설교했을 때, 이 사실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의 문화 속, 세상 속에는 실망스럽고 짜증 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지도자들이 더 다르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더 하나님의 법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통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법이 하나님의 법과 일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을 슬퍼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그곳에 존재하는 불의를 슬퍼하는 것은 좋습니다. 우리는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한 존재가 되라고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니엘의 삶을 보고 그분이 주님께 얼마나 충성스럽게 봉직했는지, 얼마나 믿음 있게 살았는지 보았습니다. 그분의 믿음은 이 위대한 제국들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믿음은 자신의 지위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여러 지위에 임명되었지만,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다니엘의 이야기를 보고, 믿음 있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삶을 보았을 때, 지금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통치를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서 적들 가운데서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각자에게는 삶 속에서 특정한 위치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분은 충성심을 보여야 합니다.
런던 남자와 익은 밀밭 외 역사 속 독재자 사례
설교자는 역사 속에서 큰 독재자가 세상을 휩쓸어 모든 민족을 놀라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든 장면을 떠올립니다. 천사들도 그 상황을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그 적들을 산산조각 내셨고, 그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습니다. 설교자는 이것이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시대에 가장 유익한 일은 역사책을 읽는 것이라고 권하면서, 다만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인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과 저런 일을 허락하시되 언제나 통제하고 계심을 볼 수 있으며, 주님은 왕이시고 항상 계시며 자기 때에 일으키신다고 적용합니다. 천사들도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감탄하고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덧붙입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19
설교 내 8–8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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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눈을 가진 자라면, 거기서 하나님의 지혜를 놀라운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꽃이라도 마음대로 골라서 해부해 보세요. 그 꽃이 확실한 계획과 확실한 설계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물의 가장 큰 특징은 언제나 간단한 패턴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깊이 생각해볼 만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간단한 방식으로, 간단한 패턴에 따라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잡하고 꼬여 보이는 꽃도 해부해 보면 결국 간단한 패턴으로 돌아옵니다. 보기에 복잡해 보이는 것은 그 간단한 패턴들이 모여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는 자연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 간단한 패턴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의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본질적인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의 능력과 천재성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항상 간단함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위대한 예술가가 하는 일은 항상 간단해 보입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번거롭게 굴며 일이 어렵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은, 사실은 일을 잘 못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어떤 직업이든, 어떤 부르심이든, 삶의 어떤 측면에서도 이는 적용됩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헤매고 있을 때, 전문가가 나타나서 이쪽저쪽 살짝 건드리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됩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예는, 우리 사랑하는 주님과 구주께서 말씀하실 때입니다. 그분은 깊은 진리를 다루셨지만, 그 본질적인 패턴은 항상 간단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삶 전반과 기독교 교회에서도 얼마나 잊혀졌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하고 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반대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거나 원칙을 뽑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혼란과 능력 부족의 표시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연 속에서 완벽하게 드러납니다. 천사들도 이 사실을 관찰해 왔습니다. 그들은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는 자연의 순리를 지켜보았습니다. 매년 똑같이 반복되며, 얼마나 간단한가요. 모든 것이 간단한 시작에서부터 자라나고 발전하며, 피어나고 꽃피우고 익어가고, 마침내 시들고 마르고 죽어갑니다. 항상 똑같은 패턴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간단한가요. 거기서 하나님의 지혜가 빛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역사를 통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역사 전체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민족들을 다루는 방식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큰 독재자가 세상을 휩쓸며 모든 민족을 놀라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 때, 천사들도 그 상황을 보며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그 적들을 산산조각 내시고,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 속의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일은 바로 역사책을 읽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적 시각으로 읽어야 합니다.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인 시각 없이 역사책을 읽는다면, 헤겔의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헤겔은 ‘역사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역사책을 읽는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뒤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저와를 허락하시되, 언제나 통제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왕이시며, 항상 계시고, 자기 때에 일으십니다. 천사들도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감탄하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유대 민족의 역사와 이야기를 특별히 지켜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 땅에 살고 있던 아브람이라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주변에는 이방인들이 가득했고,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왜 이 한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켜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자기 나라에서 데려내셔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땅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갔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점차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한 민족을 세우고, 자기 백성을 창조하고 계셨다는 것을 그들은 전부 지켜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