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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3개 · 1 / 1쪽 · 한 쪽 20개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한 이야기

설교자는 여리고에 살던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 준 이유를 본문 16절의 고백으로 설명합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요단 저편의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을 전멸시킨 일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여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녹았고, 라합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라고 정탐꾼들에게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여리고 백성들이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라합에게만 그것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졌다고 강조합니다. 이어 히브리서 11장 31절을 인용하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여 순종하지 않은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는 본문을 읽습니다. 설교자는 라합의 순종을 정탐꾼을 영접한 행동으로 보며, 요즘으로 치면 다른 나라의 간첩을 숨겨 주는 일과 같다고 빗대어 설명합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한 것은 이스라엘이 들어오면 여리고가 멸망하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풀어 줍니다. 설교자는 믿음이 들음에서 나며, 말씀이 마음에 받아들여지면 그것이 실제 삶의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적용합니다. 말씀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순서이고 행위는 그 말씀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이 이 예화의 메시지입니다.

김재형 · 2026-10-25

설교 내 16–19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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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히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자마음이 녹고, 너희의 고로 사람이 아닌 신을 잃었노라. 하나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 이건 정탐꾼을 만났을 때 라합이 했던 얘기거든요. 그래서 라합이 그 정탐꾼을 숨겨 준 이유가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냥 숨겨 준 게 아니죠. 여리고에서 살던 라합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이스라엘이 어떤 이스라엘인가 하면,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건져내시고,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구원해 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광야에서 여러 나라들과 싸웠는데, 하나님께서 그 왕들을 다 물리치고 이겼다는 얘기입니다. 그 이야기들을 여리고에 있으면서 들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우리가 들었다. 여리고 성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다 녹아 버렸고, 너희의 연고로 우리가 정신을 잃었다. 그 하나님의 일하심, 그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다 정신이 혼미해졌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뭐예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 맞다. 그걸 라합이 그 사람들에게 고백한 거죠. 정탐꾼들에게 고백한 겁니다. 여리고 성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그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듣고 그들의 간담도 다 녹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다른 어떤 누구에게는 없었지만, 라합에게만 그 이야기를 듣고, "아, 그 하나님, 너희 하나님이 정말이 세상에 유일하신 하나님이구나"라는 것을 라합이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라는 거예요. 히브리서에 보면, 라합의 믿음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히브리서 11장 31절에 보면,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라합의 믿음을 한 단어로 표현을 하는데, 순종이라고 이야기해요. 왜냐면 다른 사람들은 순종치 않았기 때문에 다 멸망당했는데, 랍은 순종했다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그 순종한 게 뭐냐면, 정탐꾼들을 영접했기 때문에 그걸 순종이다라고 본 거예요. 그런데 이 라합의 이야기를 보니까, 라합이 그 정탐꾼들을 받아들인 것은, 누구를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세상의 신이시구나. 아, 그분만이 참된 하나님이시구나라는 것을 라합이 믿었다라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고, 그 들음이 라합 안에 믿음으로 역사하게 된 거예요. 그걸 정탐꾼들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건, 그 순종이라는 건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기에 앞서서, 어떤 일이 먼저 있게 되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는 것. 이게 먼저 있게 되는 거예요. 그걸 우리가 믿음이다라고 이야기해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생기냐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제 실제가 되는 것들이 나타나게 된다고요. 그니까 우리가 자꾸 순서를 바꿔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 말씀은 우리 안에 실제의 삶으로 나타나게 돼요. 그걸 순종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숨긴 이야기

설교자는 라합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예를 듭니다.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들었고, 애굽 군대를 물리치신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신 여호와라는 것을 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그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그 믿음이 선물로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이 왔을 때 라합의 믿음은 계속 일했고,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아주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정탐꾼들을 숨겼습니다. 설교자는 이 행동이 라합의 고백이 행위로 온전하게 되는 모습이었다고 봅니다. 그 결과 라합은 구원받았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설교자는 이 예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노력과 애를 쓴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점점 더 순종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임만세 · 2026-10-21

설교 내 2–2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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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일을 하지 않으니까 헛되고 무익하고 소용 없는 이런 뜻을 갖게 됩니다. 원어의 의미를 살려서 다시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아, 헛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가 믿음을 받아서 그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해야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우리 안에 받은 그 믿음이 일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이 게으른 믿음을 가지고 진정성 없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일하기 싫어하는 이 믿음, 게으른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그리고 저의 믿음이 행위로 온전하게 자라가는데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 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믿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고 정말 결심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 해서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구주께서 주신 그 믿음이라는 선물이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그 믿음이 점점 더 잘 작동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고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원리예요. 그래서 두 가지 예를 보여 주는데 하나의 예가 아브라함이고 또 다른 예가 라합입니다. 아브라함을 먼저 보실까요?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핵심적인 원인을 뭐라고 얘기하는지 한번 보시죠. 22절입니다. 우리 22절 한번 읽어 볼까요?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됐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어요. 그리고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태가 다 죽은 자신의 몸 그리고 사라의 몸에서 기적처럼 성령으로 이삭 아들을 주셨죠. 그 믿음이 계속해서 이랬더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요구, 너의 사랑하는 독자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 그 일하던 믿음이 "아들 바쳐도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다"는 믿음으로 이르게 했고, 그 믿음이 결국은 아들을 바치게 했던 거죠. 어, 믿음이 온전해진 겁니다.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었던 순종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갖게 되는 거죠.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결심으로,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어떤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주신 그 믿음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자라갈 때 그 일이 일어납니다. 라합도 마찬가지예요. 라합은 들었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애굽 군대를 물리치신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키시고 홍해를 가르신 여호와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이스라엘 군대가 왔을 때 그 정탐꾼이 왔을 때 그 믿음이 계속 일하니,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그런 아주 위험천만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정탐꾼들을 숨기고 자신의 그 고백이 행위로 온전하게 되는 일을 보여 주었죠. 그리고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하나로 그렇게 들어가게 된 영광을 누리게 되었죠. 저와 여러분도 동일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우리가 강하게 하고자 이런저런 일을 하고 어떤 노력과 애를 쓴다고 해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일하기 시작할 때 그 믿음이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꾸준히 우리를 인도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점점 더 순종하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저와 여러분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오늘이 밤에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주신 그 믿음이 우리 삶에서 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 신기하게요. 말씀을 들을 때는 알 것 같은데 일상을 살다 보면 그 믿음이 다 어디로 갔는지, 세상의 논리로, 우리의 경험으로, 우리의 생각으로 살아가죠. 저도 똑같습니다. 너무너무 똑같습니다. 저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참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그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진실함이 회복되는 것이죠. 진실함이. 오전에 우리 남득현 목사님이 그렇게 설교하셨더라고요. 머리로 하는 믿음은 입술로 나오지만, 마음으로 하는 신앙은 삶의 행동으로 나온다.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웃음] 여러분,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이 진실함을 회복하게 해 달라는 그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신 그 믿음이 진실해지도록 정말 믿도록, 정말 믿도록, 내가 이렇게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이 결코 잃는 것이 아니라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갈 때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남들도 살리고 나도 살고, 부요한 그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정말 믿어야 하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믿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서, 정말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부활의 소망이 우리 눈에 보일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되는 거 아닙니까? 정말 중요한 건 우리의 믿음이 진짜여야 하는 거예요. 정말 우리 마음에 진실함이 묻어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드리는 기도와 예배가 우리의 말이 행동이 누군가를 상처, 하나님의 영광을, 교회의 영광을, 그리스도의 영광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도구로 믿음이 있노라. 우리는 정말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정말 확인하게 될 거예요. 그 믿음이 우리를 온전케 하고, 우리를 정말 의롭다하게 하는 그런 복됨을 우린 누리게 될 겁니다. 사랑하는 남서울교회 성도 여러분, 이 우리 주님 앞에 머리 숙이고 기도합시다. 번지르 말로만이 아니라, 하나님 진짜 믿음을 좀 주십시오. 정말 우리 자녀를 기를 때, 믿음으로 기르는 믿음으로 기른다고 하고서 똑같이 하는 거 말고, 정말 믿음으로 길러내는 교회를 섬길 때, 정말 믿음으로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대로 믿음으로 할 수 있도록, 하나님 진실한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그리스도가 영광 받으시는 귀한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정탐꾼을 숨긴 라합의 고백

설교자는 기생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겨 준 사건을 소개합니다. 여리고 성에 살던 이방 여인인 라합은 그 일이 발각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지만 정탐꾼들을 숨겼습니다. 설교자는 여호수아 2장 10절과 11절을 읽으며, 라합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께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요단 저편 아모리 두 왕에게 행하신 일을 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사람들이 정신을 잃을 만큼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라합은 여호와가 위로 하늘에서도, 아래로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설교자는 라합이 모든 일을 직접 보고 들었기에 믿음의 고백을 정탐꾼들에게 전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행함 뒤에는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먼저 일하셨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통해 우리의 믿음에서 나오는 행함도 하나님께서 먼저 행하신 은혜 위에 서 있음을 적용합니다.

박진우 · 2026-10-18

설교 내 2–2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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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믿음을 가지고 오늘 하나님을 끌어앉는 그런 행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에게서 세 번째로 살펴볼 믿음은 하나님이 살리시는 믿음입니다. 오늘 21절부터의 말씀을 쭉 보면요. 야고보서는 두 명의 인물을 등장시키는데요. 첫 번째는 아브라함이고요. 두 번째는 라합입니다. 아브라함과 라합은 너무나 유명한 두 인물이죠.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이었고, 언약의 약속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반면에 라합은 여리코 성에 살던 이방 여인이었고, 기생이었습니다. 너무나 다른 인생을 살아가던 두 인물을 야고보서는 같은 원리 아래 뒀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살펴볼까요?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그의 믿음이 완성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알 수 있죠. 일례로, 야고보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였던 사라를 어떻게 합니까? 누이라고 속입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아브라함이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우리가 알 수 있죠. 그런데 오늘 23절을 한번 볼까요? 23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창세기 15장 6절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를 의로 여기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디서 드러내십니까? 창세기 22장의 말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이었던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그 장면을 통하여서 그 행함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의로 이루어졌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목표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아브라함은 100세가 넘어서 신이 얻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을까요? 히브리서 11장 19절의 말씀인데요. 이 말씀 우리 한번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웃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멘. 아브라함은 계산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아들 이삭이 죽으면 얼마나 슬플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계산을 뛰어넘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아브라함에게는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계산에 하나님을 넣은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습니다.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주지 않습니다. 숨겨주지 않습니까? 그 숨겨준 사실을 걸리면 죽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긴 이유에 대해서 라합은 이렇게 고백을 하는데요. 여호수아 2장 10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것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온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하신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라.' 아멘. 라합이 고백합니다. 모든 일들을 다 본 겁니다. 그리고는 하늘로나 땅으로나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믿음의 고백을 정탐꾼들에게 합니다. 오늘 이 두 사람의 행함 뒤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우리가 알게 되죠. 하나님이 먼저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셨고, 하나님이 먼저 일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뭐라고 부르십니까? 자신의 누를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였던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보면서 하나님의 벗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생 라합은 하나님의 족보, 그리스도의 족보에 하나님께서 올려두게 됩니다. 이 모든 스토리에 대해 하나님의 놀라운 행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 뒤에 우리가 이 믿음이 행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먼저 행하심 가운데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 우리 함께 다 같이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행함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역시도 하나님을 향한 큰 행함과 순종을 행할 수 있는 줄을 믿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면서, '나의 믿음이 살아 있지 않는 것 같다. 나의 믿음이 죽어 있는 것 같다'라는 주저함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 십자가 앞에 오늘도 무릎 꿇고 나아가며 기도하는 그 복된 걸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기꺼이 순종할 때에 그 순종하는 삶 위에 하나님이 그 인생을 책임지실 것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고보서 2장 26절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여기서의 '영혼'이라는 것은 숨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은 몸은 스스로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몸은 숨을 쉬지요. 그러나 그 공기와 산소 역시도 외부로부터 들어올 때에 숨을 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신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을 때에, 사람이 비로소 살아났던 것처럼, 죽어 있던 우리의 믿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생기와 숨과 성령을 불어넣으실 때에 살아 움직이는 믿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시간, 그 믿음의 고백 위에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기도하는 우리 모든 이의 복된 성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하여서 우리가 어제 또 많은 순간에 '기도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시면서, 전심으로 한 명, 한 명, 한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내가 행할 수 있는 것, 이미 나에게 주신 그 부요함을 베풀어내는 은혜가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같이 들었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 우리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 믿음을 드러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 제목 가지고, 또 우리가 가지고 온 기도 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다가 삶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우리를 복된 예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