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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2개 · 1 / 1쪽 · 한 쪽 20개

배고픈 형제에게 빈말만 한 사람

설교자는 야고보서 2장의 장면을 떠올리며 한 사람이 옷과 음식이 부족한 형제를 만나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그 사람은 '가거라. 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 추우면 따뜻하고 배불리 먹기를 바란다'라고 말만 할 뿐, 실제 필요를 채우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마치 그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어 떡과 생선을 만들어 주는 듯한 모습에 비유하며,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보여 줍니다. 그는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이 범하는 일이 아니며, 바울이 말한 믿음도 아니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진 믿음도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런 믿음은 단지 공허한 감정일 뿐이며, 행위와 분리될 때 본질적으로 불완전함을 드러낸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선한 행위로 나타나야 하며, 그것이 기억에 남는 믿음의 모습이라고 적용합니다.

에린 프라이 · 2026-10-23

설교 내 3–3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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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당신 안에서 작동하는 것은 항상 외적인 행동으로 즉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속 깊은 영역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믿음의 일은 시작되어, 성숙한 신앙인을 만들어냅니다. 바울이 이후 에베소서 4장에서 여행하며 쓴 말씀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은 더 이상 믿음의 어린아니라고 압니다. 그는 물결에 흔들리며, 과학의 바람이나 사람의 교활함과 속임수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이신 머리로 향해 자라납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일은 당신과 나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최근 주일학교에서 히브리서 5장 12~14절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한 신앙인은 이제 젖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단지 젖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단한 음식을 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신과 서로를 위해 모두가 믿음에서 성숙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일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 성숙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진척을 측정하고자 한다면, 믿음이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선한 행위와 행동으로 표현되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야고보서 2장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옷이나 음식이 부족한 형제를 만났을 때 단지 빈말로 대답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거라. 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 추우면 따뜻하고 배불리 먹기를 바란다.” 마치 그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어 떡과 생선을 몇 개 만드는 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숙한 신앙인이 범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사람 안에서 의로움을 낳는 믿음의 일이 아닙니다. 이는 바울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단지 공허한 감정일 뿐입니다. 믿음이 행위와 분리되어 있을 때,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약 그렇다면,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믿음의 고백과 그 믿음이 드러내는 실천 사이의 대조는 기억에 남는 믿음이 무엇이 아닌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희생 없이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일과 단순한 활동이나 직업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둘을 구분하는 주요 특징은 감사입니다. 섬기는 사람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하러 가서 일을 하고 나서 갑자기 불평하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는 가장 영광스럽지 않은 순간입니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감사에서 행동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일을 할 때 믿음을 주었습니까? 이는 단순히 쓴 맛이나 이기심을 낳을 뿐입니다. “그들이 나를 제대로 감사하지 않았다. 나는 X, Y, Z를 해야 한다.”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도 이러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진심으로 기도하고, 피곤하거나 완전히 지쳐 있거나, 주의가 산만한 마음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세요. 이러한 것들이 당신의 예배에서 진심을 추구하는 것을 막지 않도록 하세요. 저는 이것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이 일을 어렵게 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단지 흙덩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피로함을 아시는 것을 아십니다. 우리는 위대한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피로함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계속 간구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고,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으세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들의 행위가 믿음의 내용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러한 선한 행위를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일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배우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일했습니다. 그들은 사랑이 그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견뎠습니다. 믿음의 일, 사랑의 노동,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굳건한 소망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입니다. 존 칼뱅은 이 삼중 구조를 믿음이 일하는 것, 사랑이 일하는 것, 소망이 견딘 것을 짧게 참된 기독교의 정의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배타적인 기독교의 정의가 아닙니다. 참된 기독교의 정의는 우리가 하늘에서 이 일을 완벽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주님과 영광과 소망과 함께 있을 때 믿음이 무엇이 필요한가요? 상상해 보세요. 그분이 바로 거기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소망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영적 거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린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박해를 겪었습니다. 그들은 전환되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그들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드렸습니다. 우리는 믿는 자로서, 우리의 믿음 있는 일은 우리 몸이나 이웃의 필요를 섬기는 것일 수도 있고, 믿음을 위해 고난을 겪는 자들을 돕는 것일 수도 있고, 박해받는 자들을 지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가 됩니다. 이 선한 일에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자주 비판하는 대신, 진정한 변화의 길은 사람을 더 잘 사랑하는 것입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숨긴 이야기

설교자는 라합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예를 듭니다.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들었고, 애굽 군대를 물리치신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신 여호와라는 것을 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그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그 믿음이 선물로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이 왔을 때 라합의 믿음은 계속 일했고,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아주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정탐꾼들을 숨겼습니다. 설교자는 이 행동이 라합의 고백이 행위로 온전하게 되는 모습이었다고 봅니다. 그 결과 라합은 구원받았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설교자는 이 예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노력과 애를 쓴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점점 더 순종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임만세 · 2026-10-21

설교 내 2–2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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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일을 하지 않으니까 헛되고 무익하고 소용 없는 이런 뜻을 갖게 됩니다. 원어의 의미를 살려서 다시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아, 헛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가 믿음을 받아서 그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해야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우리 안에 받은 그 믿음이 일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이 게으른 믿음을 가지고 진정성 없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일하기 싫어하는 이 믿음, 게으른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그리고 저의 믿음이 행위로 온전하게 자라가는데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 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믿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고 정말 결심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 해서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구주께서 주신 그 믿음이라는 선물이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그 믿음이 점점 더 잘 작동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고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원리예요. 그래서 두 가지 예를 보여 주는데 하나의 예가 아브라함이고 또 다른 예가 라합입니다. 아브라함을 먼저 보실까요?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핵심적인 원인을 뭐라고 얘기하는지 한번 보시죠. 22절입니다. 우리 22절 한번 읽어 볼까요?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됐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어요. 그리고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태가 다 죽은 자신의 몸 그리고 사라의 몸에서 기적처럼 성령으로 이삭 아들을 주셨죠. 그 믿음이 계속해서 이랬더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요구, 너의 사랑하는 독자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 그 일하던 믿음이 "아들 바쳐도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다"는 믿음으로 이르게 했고, 그 믿음이 결국은 아들을 바치게 했던 거죠. 어, 믿음이 온전해진 겁니다.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었던 순종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갖게 되는 거죠.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결심으로,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어떤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주신 그 믿음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자라갈 때 그 일이 일어납니다. 라합도 마찬가지예요. 라합은 들었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애굽 군대를 물리치신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키시고 홍해를 가르신 여호와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이스라엘 군대가 왔을 때 그 정탐꾼이 왔을 때 그 믿음이 계속 일하니,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그런 아주 위험천만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정탐꾼들을 숨기고 자신의 그 고백이 행위로 온전하게 되는 일을 보여 주었죠. 그리고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하나로 그렇게 들어가게 된 영광을 누리게 되었죠. 저와 여러분도 동일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우리가 강하게 하고자 이런저런 일을 하고 어떤 노력과 애를 쓴다고 해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일하기 시작할 때 그 믿음이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꾸준히 우리를 인도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점점 더 순종하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저와 여러분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오늘이 밤에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주신 그 믿음이 우리 삶에서 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 신기하게요. 말씀을 들을 때는 알 것 같은데 일상을 살다 보면 그 믿음이 다 어디로 갔는지, 세상의 논리로, 우리의 경험으로, 우리의 생각으로 살아가죠. 저도 똑같습니다. 너무너무 똑같습니다. 저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참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그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진실함이 회복되는 것이죠. 진실함이. 오전에 우리 남득현 목사님이 그렇게 설교하셨더라고요. 머리로 하는 믿음은 입술로 나오지만, 마음으로 하는 신앙은 삶의 행동으로 나온다.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웃음] 여러분,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이 진실함을 회복하게 해 달라는 그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신 그 믿음이 진실해지도록 정말 믿도록, 정말 믿도록, 내가 이렇게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이 결코 잃는 것이 아니라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갈 때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남들도 살리고 나도 살고, 부요한 그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정말 믿어야 하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믿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서, 정말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부활의 소망이 우리 눈에 보일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되는 거 아닙니까? 정말 중요한 건 우리의 믿음이 진짜여야 하는 거예요. 정말 우리 마음에 진실함이 묻어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드리는 기도와 예배가 우리의 말이 행동이 누군가를 상처, 하나님의 영광을, 교회의 영광을, 그리스도의 영광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도구로 믿음이 있노라. 우리는 정말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정말 확인하게 될 거예요. 그 믿음이 우리를 온전케 하고, 우리를 정말 의롭다하게 하는 그런 복됨을 우린 누리게 될 겁니다. 사랑하는 남서울교회 성도 여러분, 이 우리 주님 앞에 머리 숙이고 기도합시다. 번지르 말로만이 아니라, 하나님 진짜 믿음을 좀 주십시오. 정말 우리 자녀를 기를 때, 믿음으로 기르는 믿음으로 기른다고 하고서 똑같이 하는 거 말고, 정말 믿음으로 길러내는 교회를 섬길 때, 정말 믿음으로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대로 믿음으로 할 수 있도록, 하나님 진실한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그리스도가 영광 받으시는 귀한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