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4개 · 1 / 1쪽 · 한 쪽 20개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모습
설교자는 야고보서 5장 7절의 농부를 길이 참음의 본보기로 소개합니다. 유대 농경 배경에서 농부는 가을 무렵 씨를 뿌리고 봄 무렵 수확하는데, 씨를 뿌릴 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오랫동안 씨가 자라기를 고대합니다. 설교자는 이 모습이 '길이 참으라'는 말씀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합니다. 길이 참는다는 것은 스스로 서둘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인정하며 판단을 유보하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본문에서 '길이 참으라'가 세 번 반복되고, '굳건하게 하라'는 말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의 굳건한 마음과 같은 단어라고 짚습니다. 이를 근거로 설교자는 인내가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기다림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가 인내로 시작해 인내로 마무리되고, 인내를 통해 신앙의 여러 요소가 균형 있게 세워져 부족함이 없게 된다는 점도 덧붙입니다. 그래서 성도도 농부가 열매를 바라보듯 재림의 때를 바라보며 인내의 열매를 맺어 가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조시환 · 2026-10-23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본문 발췌 보기
토요 묵상 말씀은 야고보서 5장 7절에서 12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눈밖에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면하라. 아멘.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큰 일교 차이에 우리 성도 여러분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오늘을 견디는 소망의 인내'라는 제목으로 함께 야고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는 오늘을 살아가며 미래를 소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낸다고 말을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말씀 다 아시죠, 여러분? 그래서 그 믿음, 그 오늘과 미래의 사이에 있는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바로 믿음인데요. 그 믿음의 대표적인 행함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인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5장에는 앞절 말씀에 보면 의인이 가난한 종이 착취받고 억압받는 부자에 의해서 핍박받는 일들을 우리가 보게 되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그런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인내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인내는 주권자 하나님을 향한 능동적인 기다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7절 8절 말씀을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길이 참으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길이 참다는 것은 스스로 바로바로 적시적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면서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바라보는 것이 바로 길이 참으라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길이 참을 때에 농부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길이 참는 자들의 좋은 예가 되는 사람이 바로 농부들인 것이죠. 농부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따라서 그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있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죠. 이 유대 어 배경에서 농부들은 파종기 그러니까 우리나라 계절로 따지면 한 10월쯤 됩니다. 10월 전으로 해서 씨를 뿌리는 시기가 있고요. 그리고 수확기 한 4월쯤 됩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그때 전으로 수확을 하게 되는데 씨를 뿌릴 때에 그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씨가 그 비에 의해서 자라나기를 고대하는 농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농부가 그렇게 기다리고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길이 참으라라고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말씀을 보면 시작할 때 인내와 기도의 말씀으로 시작했다가 또 마지막도 오늘 인내의 말씀이고 내일 또 나눌 말씀인 야고보서 다음 장의 말씀은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라고 말씀을 했었죠. 1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리하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이다라고 이렇게 설명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에 또 이렇게 인내에 관한 말씀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인내는 그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한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면 신앙에 여러 요소들이 있거든요. 신앙에도 여러 요소들이 이렇게 나눠져 있는데 그 모든 요소들을 균형 있게 온전하게 세워진다는 설명입니다.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온전함으로 나아간다는 말이죠. 성을 향해서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온전하게 준비되어진다는 말입니다. 부족함이 없게 된다는 말씀으로는 그렇죠.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부어 주실 뭐 좀 편하게 설명하자면 복받을 그릇이라고 해야 될까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한량 없는 충만함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데 인내를 통해서 그 받을 그릇이 더 넓어지고 빈틈 없어지고 하는 일들이 바로 인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라고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길이 참으라. 오늘 두 점 말씀에서 무려 세 번이나 길이 참으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굳건하게 되어서 굳건하게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직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굳건한 마음으로 올라갔다는 그 단어와 같은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보하게 되어서 마음을 고정시키는 단어. 그것이 바로 굳건하게 한다는 단어입니다. 그렇게 고정시켜서 확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마음이죠. 그래서 이 인내는 여러분, 소극적이거나 그냥 수동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아주 적극적인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사랑의 열매 우리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에 보면 첫 번째 해당되는 것이 사랑은 오래 참고 다른 것 많이 있지만 첫 번째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견드리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 말씀에 보면 그 성령의 열매 중에서 네 번째 해당되는 말씀이 바로 오래참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여러 가지 열매들이 많이 있지만 오래참음의 열매, 오래참음이 바로 인내가 바로 열매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참음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은 오래 참는 상황은 그렇게 결과를 좋은 결과를 맺어지는 때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죠. 시험을 앞둔 수험생 오래 참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를 앞두고 인내의 그런 시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는 아주 힘겹고 또 많은 수고가 요구되어지는 그러한 과정 중에 있는 단계가 바로 인내 오래 참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열매라고 말씀을 합니다. 지금 말씀을 듣는 많은 분들 중에서 인내의 열매 과정 중에 있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금이 시간도 열매 맺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농부가 최종적인 귀한 열매를 바라보는 것처럼 최종 시간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공의가 세워지고 모든 정의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때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많은 성도들처럼 우리는 길이 참으며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마음을 가지고 인내의 열매를 맺어가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 두 번째는 인내는 오늘 야고보서에 보면 많은 언어의 교훈도 많이 하고 있는데요.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의 표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내는 입술로 말하는 것이 아닌데 제가 언어의 표현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금하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데요. 첫 번째가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원망하지 말라라는 단어는 9절에 보면 나와 있는데요. 그 단어는 한탄하다. 또 두 주변 사람에게 비탄을 고백하는 그런 단어입니다. 원망, 불평, 좌절이라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일들을 설명하는 것이죠. 우리가 여기 오늘 본문 문맥상으로 보면 어떤 부자에게 그런 원통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원통함을 가지고 주의 형제들에게 와서 원망, 불평, 힘든 말,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형제들 내에서는 또한 마음을 상하게 하고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원망하지 말라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 원망하는 마음, 그 한탄하는 마음, 비탄하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것이죠.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다 헤아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는 바로 원망이 아니라 있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백성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을 그랬고요. 25년 동안 출산되지 못하게 하다가 25년 후에 열매 맺지 않습니까? 모세도 40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던 그 모세를 40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원망 불평로만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원망을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입술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인내로 버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 말씀, 우리 12절 말씀을 한번 읽어 볼까요?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면하라. 여러분, 맹세하는 것은 또 다른 그 원망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미래를 하나님 앞에서 쉽게 내가 재단을 하려고 하는 유혹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미래를 내가 재단하려고 하는 교만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미래를 하나도 우리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재단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앞장 4장 말씀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한 사람이 어느 마을로 가서 장사하여 1년 후에는 많은 이익을 보리라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씀하시죠? 4장 14절 말씀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침에 안개가 자욱합니다. 그런데 그 안개는 몇 시간 지나면 오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는 그런 안개와 같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죠. 원망을 하지 말고 맹세를 하지 말라.
아브라함과 모세가 오래 기다린 시간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많은 백성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셨던 성경의 인물들을 예로 듭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자녀를 얻지 못하다가 25년 후에 열매를 맺었다고 설명합니다. 모세 역시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40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 기다림이 그냥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결국 열매로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기다림의 과정에서 원망과 불평을 입술로 쏟아내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인내로 버티며 나아가야 한다고 적용합니다. 원망을 쉽게 주변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마음의 한탄과 비탄을 하나님께 가져갈 때 그분이 그 마음을 헤아려 주신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합니다. 설교자는 이것이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조시환 · 2026-10-23
설교 내 1–1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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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묵상 말씀은 야고보서 5장 7절에서 12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눈밖에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면하라. 아멘.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큰 일교 차이에 우리 성도 여러분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오늘을 견디는 소망의 인내'라는 제목으로 함께 야고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는 오늘을 살아가며 미래를 소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낸다고 말을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말씀 다 아시죠, 여러분? 그래서 그 믿음, 그 오늘과 미래의 사이에 있는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바로 믿음인데요. 그 믿음의 대표적인 행함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인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5장에는 앞절 말씀에 보면 의인이 가난한 종이 착취받고 억압받는 부자에 의해서 핍박받는 일들을 우리가 보게 되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그런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인내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인내는 주권자 하나님을 향한 능동적인 기다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7절 8절 말씀을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길이 참으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길이 참다는 것은 스스로 바로바로 적시적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면서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바라보는 것이 바로 길이 참으라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길이 참을 때에 농부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길이 참는 자들의 좋은 예가 되는 사람이 바로 농부들인 것이죠. 농부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따라서 그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있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죠. 이 유대 어 배경에서 농부들은 파종기 그러니까 우리나라 계절로 따지면 한 10월쯤 됩니다. 10월 전으로 해서 씨를 뿌리는 시기가 있고요. 그리고 수확기 한 4월쯤 됩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그때 전으로 수확을 하게 되는데 씨를 뿌릴 때에 그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씨가 그 비에 의해서 자라나기를 고대하는 농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농부가 그렇게 기다리고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길이 참으라라고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말씀을 보면 시작할 때 인내와 기도의 말씀으로 시작했다가 또 마지막도 오늘 인내의 말씀이고 내일 또 나눌 말씀인 야고보서 다음 장의 말씀은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라고 말씀을 했었죠. 1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리하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이다라고 이렇게 설명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에 또 이렇게 인내에 관한 말씀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인내는 그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한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면 신앙에 여러 요소들이 있거든요. 신앙에도 여러 요소들이 이렇게 나눠져 있는데 그 모든 요소들을 균형 있게 온전하게 세워진다는 설명입니다.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온전함으로 나아간다는 말이죠. 성을 향해서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온전하게 준비되어진다는 말입니다. 부족함이 없게 된다는 말씀으로는 그렇죠.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부어 주실 뭐 좀 편하게 설명하자면 복받을 그릇이라고 해야 될까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한량 없는 충만함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데 인내를 통해서 그 받을 그릇이 더 넓어지고 빈틈 없어지고 하는 일들이 바로 인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라고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길이 참으라. 오늘 두 점 말씀에서 무려 세 번이나 길이 참으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굳건하게 되어서 굳건하게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직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굳건한 마음으로 올라갔다는 그 단어와 같은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보하게 되어서 마음을 고정시키는 단어. 그것이 바로 굳건하게 한다는 단어입니다. 그렇게 고정시켜서 확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마음이죠. 그래서 이 인내는 여러분, 소극적이거나 그냥 수동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아주 적극적인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사랑의 열매 우리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에 보면 첫 번째 해당되는 것이 사랑은 오래 참고 다른 것 많이 있지만 첫 번째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견드리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 말씀에 보면 그 성령의 열매 중에서 네 번째 해당되는 말씀이 바로 오래참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여러 가지 열매들이 많이 있지만 오래참음의 열매, 오래참음이 바로 인내가 바로 열매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참음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은 오래 참는 상황은 그렇게 결과를 좋은 결과를 맺어지는 때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죠. 시험을 앞둔 수험생 오래 참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를 앞두고 인내의 그런 시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는 아주 힘겹고 또 많은 수고가 요구되어지는 그러한 과정 중에 있는 단계가 바로 인내 오래 참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열매라고 말씀을 합니다. 지금 말씀을 듣는 많은 분들 중에서 인내의 열매 과정 중에 있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금이 시간도 열매 맺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농부가 최종적인 귀한 열매를 바라보는 것처럼 최종 시간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공의가 세워지고 모든 정의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때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많은 성도들처럼 우리는 길이 참으며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마음을 가지고 인내의 열매를 맺어가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 두 번째는 인내는 오늘 야고보서에 보면 많은 언어의 교훈도 많이 하고 있는데요.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의 표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내는 입술로 말하는 것이 아닌데 제가 언어의 표현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금하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데요. 첫 번째가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원망하지 말라라는 단어는 9절에 보면 나와 있는데요. 그 단어는 한탄하다. 또 두 주변 사람에게 비탄을 고백하는 그런 단어입니다. 원망, 불평, 좌절이라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일들을 설명하는 것이죠. 우리가 여기 오늘 본문 문맥상으로 보면 어떤 부자에게 그런 원통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원통함을 가지고 주의 형제들에게 와서 원망, 불평, 힘든 말,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형제들 내에서는 또한 마음을 상하게 하고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원망하지 말라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 원망하는 마음, 그 한탄하는 마음, 비탄하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것이죠.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다 헤아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는 바로 원망이 아니라 있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백성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을 그랬고요. 25년 동안 출산되지 못하게 하다가 25년 후에 열매 맺지 않습니까? 모세도 40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던 그 모세를 40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원망 불평로만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원망을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입술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인내로 버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 말씀, 우리 12절 말씀을 한번 읽어 볼까요?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면하라. 여러분, 맹세하는 것은 또 다른 그 원망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미래를 하나님 앞에서 쉽게 내가 재단을 하려고 하는 유혹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미래를 내가 재단하려고 하는 교만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미래를 하나도 우리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재단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앞장 4장 말씀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한 사람이 어느 마을로 가서 장사하여 1년 후에는 많은 이익을 보리라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씀하시죠? 4장 14절 말씀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침에 안개가 자욱합니다. 그런데 그 안개는 몇 시간 지나면 오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는 그런 안개와 같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죠. 원망을 하지 말고 맹세를 하지 말라.
아브라함의 25년 기다림
설교자는 아브라함이 75세에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 모래같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아들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25년이 걸렸고, 설교자는 그동안 낙심될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봅니다. 사라의 생리가 끊어지자 이는 자신을 통해서는 아니라는 판단이었다고 설명하며, 그래서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방에 들였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90세 가까이 되었을 무렵에는 생리적으로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설교자는 추측합니다. 자연적으로 생명이 탄생하기 거의 불가능해 보일 때 이삭이 약속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이 보기에 더딘 것 같아도 가장 적합한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적용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다는 점도 함께 강조합니다.
노우호 · 2026-10-20
설교 내 32–36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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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아브라함 같은 경우는 아시는 대로 부족한 게 없어요. 다 만족한데 아들이 없는 거예요. 75세 때에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 모래같이 될 것이다. 아니, 하늘의 별은 놔두고 바다의 모래는 놔두고 하나나 주세요. 그냥 하나라도. 하나도 안 주면서 하늘의 별같이. 여러분,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거야. 하나님께서 하실 거다. 믿었는데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 여기셨다.
여러분, 이 세상에 우리가 죄도 하나도 없고 허물도 없고 약점도 없고 이런 의는 없어요. 하나님께서 어떤 걸 의로 여기시기로 했냐면 믿는 것. 믿어지지 않는 걸 믿는다는 건 아직 어딘가 인격 속에 순진한 구석이 좀 남아 있어야 뭘 믿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참 못된 놈이고 늘 거짓말하고 늘 속이고 하는 사람이 너도 나 같겠지 해서 아무것도 못 믿습니다. 아무것도 못 믿고 누구도 못 믿어. 그건 나쁜 사람이야. 아무것도 안 믿고 누구도 안 믿고 하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 없습니다.
더러 실수도 하고 부족함도 있고 해도 잘 믿는 사람은 자기가 순진하거나 아직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어서 믿는 거거든요. 남도 자기 같은 줄 알고 믿는 거야. 그래서 아무리 봐도 잘 믿다 보면 속을 때 속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잘 믿는 사람이 아무도,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보다 좀 낫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거예요.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 모래같이 네 자손이 많게 될 것이다 했는데, 이삭 하나를 하나님께서 약속해 놓고 얼마만큼 지나서 주시냐? 25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영원 속에 사시는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25년도 잠깐 같으나 사람에게 25년은 긴 세월이죠. 그동안에 낙심될 만한 일이 몇 번 있었어요? 사라의 생리가 끊어졌어. 그러니까 나를 통해서는 아니구나 해서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 방에 들여보낸 거거든요.
그다음에 내가 볼 때 한 90세 이렇게 넘어가면서 아마도 그때는 아브라함이 나도 생리적으로 애를 못 낳는 거 아닌가 싶었을 거라. 다시 말하면 사라나 아브라함이나 자연적인 생명 탄생은 거의 불가능하다 싶을 때쯤 돼서 정말 약속의 자녀, 생물학적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로 이삭이 태어나는 거예요.
아브라함과 이삭의 약속 성취
설교자는 아브라함이 75세에 자손의 약속을 받았지만 아들이 없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이삭을 약속하셨으나 실제로 주신 것은 25년이 지난 뒤였다. 설교자는 그 사이 낙심할 만한 일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라의 생리가 끊어지자 사람들은 약속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여겼고, 그래서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냈다. 아브라함이 90세를 넘기면서는 자연적인 출산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길 만한 때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삭은 생물학적 출생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로 태어났다. 설교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사람의 판단보다 늦게 보일 수 있으나, 가장 적합한 때에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믿음이 낙심을 이기고 기다리는 힘이라고 적용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36–40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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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아브라함 같은 경우는 아시는 대로 부족한 게 없어요. 다 만족한데 아들이 없는 거예요. 75세 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 모래같이 될 것이다. 아니, 하늘의 별은 놔두고 바다의 모래는 놔두고 하나나 주세요. 그냥 하나라도. 하나도 안 주면서 무슨 하늘의 별같이. 그런데 그래도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거야. 하나님께서 하실 거다. 믿었는데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 여기셨다.
여러분, 세상에 우리가 죄도 하나도 없고 허물도 없고 약점도 없고 이런 의는 없어요. 하나님께서 어떤 걸 의로 여기시기로 했느냐 하면 믿는 것. 믿어지지 않는 걸 믿는다는 건 아직 어딘가 그 인격 속에 순진한 구석이 좀 남아 있어야 뭘 믿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참 못된 놈이고 늘 거짓말하고 늘 속이고 하는 사람은 네놈도 내놈 같겠지 해 가지고 아무것도 못 믿습니다. 아무것도 못 믿고 누구도 못 믿어. 그건 나쁜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안 믿고 누구도 안 믿고 하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 없습니다.
비록 실수도 하고 부족함도 있어도 잘 믿는 사람은 자기가 순진하거나 아직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거나 해서 믿는 거거든요. 남도 자기 같은 줄 알고 믿는 거야. 잘 믿다 보면 속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잘 믿는 사람이 아무도,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보다 좀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거예요.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 모래같이 네 자손이 많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삭 하나를 하나님께서 약속해 놓고 얼마만큼 지나서 주시느냐? 25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영원 속에 사시는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25년도 잠깐이지만 사람에게 25년은 긴 세월이죠. 그동안 낙심될 만한 일이 몇 번 있었어? 사라의 생리가 끊어졌어. 그러니까 나를 통해서는 아니구나. 그래서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 방에 들여보낸 거거든요.
그다음에 내가 볼 때 90세 이렇게 넘어가면서 아마도 그때는 아브라함이 나도 생리적으로 애를 못 낳는 거 아닌가 그랬을 거라. 다시 말하면 사라나 아브라함이나 자연적인 생명 탄생은 거의 불가능하다 싶을 때쯤 돼 가지고, 정말 약속의 자녀, 생물학적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로 이삭이 태어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