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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2개 · 1 / 1쪽 · 한 쪽 20개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모습

설교자는 야고보서 5장 7절의 농부를 길이 참음의 본보기로 소개합니다. 유대 농경 배경에서 농부는 가을 무렵 씨를 뿌리고 봄 무렵 수확하는데, 씨를 뿌릴 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오랫동안 씨가 자라기를 고대합니다. 설교자는 이 모습이 '길이 참으라'는 말씀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합니다. 길이 참는다는 것은 스스로 서둘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인정하며 판단을 유보하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본문에서 '길이 참으라'가 세 번 반복되고, '굳건하게 하라'는 말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의 굳건한 마음과 같은 단어라고 짚습니다. 이를 근거로 설교자는 인내가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기다림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가 인내로 시작해 인내로 마무리되고, 인내를 통해 신앙의 여러 요소가 균형 있게 세워져 부족함이 없게 된다는 점도 덧붙입니다. 그래서 성도도 농부가 열매를 바라보듯 재림의 때를 바라보며 인내의 열매를 맺어 가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조시환 · 2026-10-23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본문 발췌 보기

토요 묵상 말씀은 야고보서 5장 7절에서 12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눈밖에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면하라. 아멘.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큰 일교 차이에 우리 성도 여러분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오늘을 견디는 소망의 인내'라는 제목으로 함께 야고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는 오늘을 살아가며 미래를 소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낸다고 말을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말씀 다 아시죠, 여러분? 그래서 그 믿음, 그 오늘과 미래의 사이에 있는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바로 믿음인데요. 그 믿음의 대표적인 행함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인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5장에는 앞절 말씀에 보면 의인이 가난한 종이 착취받고 억압받는 부자에 의해서 핍박받는 일들을 우리가 보게 되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그런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인내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인내는 주권자 하나님을 향한 능동적인 기다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7절 8절 말씀을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길이 참으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길이 참다는 것은 스스로 바로바로 적시적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면서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바라보는 것이 바로 길이 참으라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길이 참을 때에 농부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길이 참는 자들의 좋은 예가 되는 사람이 바로 농부들인 것이죠. 농부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따라서 그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있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죠. 이 유대 어 배경에서 농부들은 파종기 그러니까 우리나라 계절로 따지면 한 10월쯤 됩니다. 10월 전으로 해서 씨를 뿌리는 시기가 있고요. 그리고 수확기 한 4월쯤 됩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그때 전으로 수확을 하게 되는데 씨를 뿌릴 때에 그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씨가 그 비에 의해서 자라나기를 고대하는 농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농부가 그렇게 기다리고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길이 참으라라고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말씀을 보면 시작할 때 인내와 기도의 말씀으로 시작했다가 또 마지막도 오늘 인내의 말씀이고 내일 또 나눌 말씀인 야고보서 다음 장의 말씀은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라고 말씀을 했었죠. 1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리하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이다라고 이렇게 설명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에 또 이렇게 인내에 관한 말씀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인내는 그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한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면 신앙에 여러 요소들이 있거든요. 신앙에도 여러 요소들이 이렇게 나눠져 있는데 그 모든 요소들을 균형 있게 온전하게 세워진다는 설명입니다.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온전함으로 나아간다는 말이죠. 성을 향해서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온전하게 준비되어진다는 말입니다. 부족함이 없게 된다는 말씀으로는 그렇죠.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부어 주실 뭐 좀 편하게 설명하자면 복받을 그릇이라고 해야 될까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한량 없는 충만함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데 인내를 통해서 그 받을 그릇이 더 넓어지고 빈틈 없어지고 하는 일들이 바로 인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라고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길이 참으라. 오늘 두 점 말씀에서 무려 세 번이나 길이 참으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굳건하게 되어서 굳건하게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직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굳건한 마음으로 올라갔다는 그 단어와 같은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보하게 되어서 마음을 고정시키는 단어. 그것이 바로 굳건하게 한다는 단어입니다. 그렇게 고정시켜서 확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마음이죠. 그래서 이 인내는 여러분, 소극적이거나 그냥 수동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아주 적극적인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사랑의 열매 우리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에 보면 첫 번째 해당되는 것이 사랑은 오래 참고 다른 것 많이 있지만 첫 번째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견드리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 말씀에 보면 그 성령의 열매 중에서 네 번째 해당되는 말씀이 바로 오래참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여러 가지 열매들이 많이 있지만 오래참음의 열매, 오래참음이 바로 인내가 바로 열매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참음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은 오래 참는 상황은 그렇게 결과를 좋은 결과를 맺어지는 때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죠. 시험을 앞둔 수험생 오래 참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를 앞두고 인내의 그런 시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는 아주 힘겹고 또 많은 수고가 요구되어지는 그러한 과정 중에 있는 단계가 바로 인내 오래 참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열매라고 말씀을 합니다. 지금 말씀을 듣는 많은 분들 중에서 인내의 열매 과정 중에 있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금이 시간도 열매 맺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농부가 최종적인 귀한 열매를 바라보는 것처럼 최종 시간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공의가 세워지고 모든 정의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때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많은 성도들처럼 우리는 길이 참으며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마음을 가지고 인내의 열매를 맺어가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 두 번째는 인내는 오늘 야고보서에 보면 많은 언어의 교훈도 많이 하고 있는데요.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의 표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내는 입술로 말하는 것이 아닌데 제가 언어의 표현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금하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데요. 첫 번째가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원망하지 말라라는 단어는 9절에 보면 나와 있는데요. 그 단어는 한탄하다. 또 두 주변 사람에게 비탄을 고백하는 그런 단어입니다. 원망, 불평, 좌절이라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일들을 설명하는 것이죠. 우리가 여기 오늘 본문 문맥상으로 보면 어떤 부자에게 그런 원통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원통함을 가지고 주의 형제들에게 와서 원망, 불평, 힘든 말,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형제들 내에서는 또한 마음을 상하게 하고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원망하지 말라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 원망하는 마음, 그 한탄하는 마음, 비탄하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것이죠.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다 헤아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는 바로 원망이 아니라 있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백성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을 그랬고요. 25년 동안 출산되지 못하게 하다가 25년 후에 열매 맺지 않습니까? 모세도 40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던 그 모세를 40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원망 불평로만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원망을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입술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인내로 버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 말씀, 우리 12절 말씀을 한번 읽어 볼까요?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면하라. 여러분, 맹세하는 것은 또 다른 그 원망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미래를 하나님 앞에서 쉽게 내가 재단을 하려고 하는 유혹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미래를 내가 재단하려고 하는 교만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미래를 하나도 우리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재단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앞장 4장 말씀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한 사람이 어느 마을로 가서 장사하여 1년 후에는 많은 이익을 보리라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씀하시죠? 4장 14절 말씀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침에 안개가 자욱합니다. 그런데 그 안개는 몇 시간 지나면 오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는 그런 안개와 같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죠. 원망을 하지 말고 맹세를 하지 말라.

바울이 농부 비유를 쓴 이유에 대한 설명

설교자는 바울이 평생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오히려 도시 문화의 산물이었고, 도시에서 편안함을 느꼈으며, 그의 서신 대부분도 도시 교회들에게 보내졌습니다. 그래서 농부 비유가 그에게 직접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짚습니다. 로마 제국은 농업을 존중했지만 다른 직업보다 낮은 위치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성경이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바울은 좋은 군사, 규칙을 지키는 운동선수와 함께 열심히 일하는 농부를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 농부의 비유가 세 가지 비유 가운데 가장 인상 깊다고 말하며, 그림이 사역자의 헌신과 수고를 말한다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농부는 수확의 첫 몫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적용으로 제시합니다.

앨버트 몰러 · 2026-10-22

설교 내 17–17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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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준비를 하는 젊은이들은 이 세 가지 비유, 세 가지 그림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첫 번째는 전사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군인도 민간 사무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목표는 뽑아 준 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그리스도인 군사처럼 고난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군인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군중 속에서 누가 군인이고 누가 아닌지 알아보는 일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군인처럼 입고 있었고,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칼을 휘두르며 항상 모든 상황에 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고, 제국의 이름으로 정복하는 힘의 주체였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는지 분명히 보였습니다. 갑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은 질서를 유지하는 일은 거의 지루할 정도로 평범하지만, 가끔은 전혀 지루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제국의 상징이 되는 군인의 이미지를 선택한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는 군인의 비유를 선택함으로써 이 세상의 군인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비유는 운동선수입니다. 올림픽의 유래가 분명히 드러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운동선수는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지 않으면 관을 얻지 못한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즌에도, 제가 얼마나 뛰어난 스포츠 팬인지 아실 것입니다. 다음 경기를 기다리는 것이 참으로 설레는 일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규칙을 어긴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 벌이 결정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운동선수가 관을 얻으려면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과 디모데가 사상적으로 군인과 운동선수의 비유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세 번째 비유는 농부입니다. 이 비유는 가장 인상 깊은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농부는 수확물의 첫 번째 분배를 받아야 합니다. 이 서신은 짧은 편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평생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도시 문화의 산물이었고, 도시 문화에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그의 서신들은 대부분 도시 교회들에 보내졌습니다. 로마 제국은 농업을 존중했지만, 다른 직업보다 낮은 위치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군사가 되어라.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는 운동선수가 되어라. 열심히 일하는 농부를 본받아라." 매우 흥미로운 것입니다. 이 내용은 2장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복음의 진술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기사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억하여라. 다윗의 자손이신 분이시며, 나의 복음에 따라 내가 고난을 받고 죄인처럼 쇠사슬에 묶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묶이지 않았노라.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자들을 위하여 모든 일을 참고 견디노라.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서신의 15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로 자신을 온전히 드리려고 최선을 다하여라.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일꾼이 되어라.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다루어라." 이 말씀은 바로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올바르게 나누어라"는 고린도전서 14장 6절의 킹제임스 성경 표현에서 나는 기억입니다. 올바른 해석입니다. 따라서 운동선수가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해야 하듯이, 성경 해석자는 해석의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운동에서 실패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성경 해석에서의 실패는 훨씬 더 심각하고 중대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디모데에게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22절부터 젊은 시절의 열망을 피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며,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어보십시오. "어리석고 무지한 논쟁에는 끼지 말라. 그 논쟁은 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주님의 종은 다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며, 가르칠 줄 아는 자가 되어 악을 참아내며, 온유하게 반박해야 한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셔서 진리의 지식에 이르게 하시고, 그들이 깨달아 악마의 덫에서 벗어나 악마의 뜻대로 행동하던 채로 있던 것을 벗어나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3장에서 말하려는 내용으로 나아가는 전제입니다. 그리고 3장은 올바른 영어 번역으로 시작되지만, "이것을 이해하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즉,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