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째 초청하는 지인의 낙심
설교자는 자신이 아는 한 분의 사례를 들려줍니다. 그분은 10년째 세대 축제에 참석해 왔고, 이번에도 친구 두 명을 데려왔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교회에 오지 않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오랜 시간 초청을 이어 온 그분의 낙심이 얼마나 클지 헤아립니다. 그러면서 초청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입을 열기 어려운 성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런 현실이 초청을 쉽지 않게 만든다는 점을 나누며, 그 자리에서 성도들이 느끼는 무게를 함께 살핍니다.
설교 내 5–5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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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때, 내가 그 복음을 받아들었을 때 온유와 두려움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전할 때도 동일하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전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강압도 없다. 다음 주일에 어떻게 밧줄로 묶어 데려오라는 말도 아니고, 이날 안 오면 끊는다거나 제안하는 것도 아니다. 복음이 내 안에 장착될 때, 온유와 두려움으로 소망이 되어 장착된다면, 내가 가진 이 소망을 품은 복음을 누군가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전해야 한다. 때로는 그렇게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지 않을 때, 그 사람을 맡겨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완벽해진 다음에 누군가를 초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온유와 두려움을 품고, 내가 애했던 것, 기다렸던 것, 기도했던 것, 메시지를 전달했던 모든 것들을 통해 결국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신다는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우리가 버티면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선을 행하는 것과 한 영혼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한다면, 첫 번째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실 예수님의 존재이다. 18절을 함께 읽어보자.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분명히 고난을 받으셨다. 그러나 베드로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면서 겪는 고난이, 만약 그것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려는 고난이라면, 예수님의 고난이 한 생명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본이 된 것처럼, 우리의 고난도 한 생명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대의 축제를 앞두고 낙심하고 힘들 때, 하나님은 나의 고난과 아픔, 실족을 통해 한 생명이 하나님 앞으로 분명히 인도될 것을 믿는다. 예수님처럼 나의 고난도 사용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면 좋겠다. 우리가 버틸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승리가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21절과 22절은 이렇게 말한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이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베드로는 죽음이 끝이 아니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모든 권세 위에 높히 계신다고 말한다.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영광으로 이어졌고, 우리의 소망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고린도후서 1장 8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이 고난은 살 소망을 끊어뜨릴 정도였다. 그러나 바울은 9절에서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대의 축제를 보내면서, 정말 이렇게 초청되어 복음의 잔치, 천국의 잔치를 맛볼 수 있는 분들이 그 안에서 기쁨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은 천국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간절히 초대하고 싶은데 왜 안 되는지 고민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분은 10년째 축제에 참석했고, 친구 두 명을 이번에도 데려왔지만, 그분은 왜 모르겠는지 계속 오지 않는다. 그 낙심은 얼마나 큰가. 그 외에도 초청하고 싶은데 입도 뻥할 수 없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위로를 얻고 견디는 믿음의 소망을 바라보자. 그 소망은 내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도하셨고, 고난이 부활의 소망과 은혜로 이어졌다는 것을 바라보면서, 세대의 축제 기간을 귀한 시간으로 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