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명장말씀을 찾고, 설교를 읽다명장 게시판 홈

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8개 · 1 / 1쪽 · 한 쪽 20개

김선태 목사와 점자 성경 공부

설교자는 성경학교에서 이 년간 공부하던 시절 특강을 하러 온 강사 김선태 목사를 소개합니다. 김선태 목사는 시각 장애인이었지만 성경을 매우 많이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그가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고 전하며, 비장애인인 자신들이 눈으로 읽고 지나가는 것과 대비합니다. 김 목사는 점자를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더듬어 읽었기 때문에 훨씬 정밀하고 세밀하게 말씀을 읽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눈이 안 보이니 휙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를 더듬어 기억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는 정전이 되어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그가 우리에게 '당신들은 점점 어두워지는 눈을 갖고 있으나 자기는 더 밝아지는 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6

설교 내 19–20문단 · 예화 3

본문 발췌 보기

제가 처음에 진주에 있는 성경학교에서 이 년을 공부할 때 어떤 특강하는 강사가 오셨는데, 김선태라고 하는 목사예요. 김선태 목사가 시각 장애인인데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 여러분, 성경을 아마 다 외우다시피 하는 것 같아. 우리는 눈이 보이니까 그냥 스르르 읽어 지나가거든요. 이 사람들은 점자를 가지고 손으로 한 자 한 자 더듬어 읽으니까 굉장히 정밀하게, 세밀하게 읽고 그걸 생각하면서 읽어요. 눈이 안 보이니까 휙 지나가는 게 아니고 한 자를 더듬어서 기억하는 거예요. 성경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자기는 정전돼도 아무 상관이 없대. 정전된 거나 전기 들어온 거나 똑같으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하는 말이, 당신들은 점점 어두워지는 눈을 갖고 있으나 자기는 더 밝아지는 눈을 갖고 있대요. 얼마나 밝은 눈을 갖고 있느냐? 착착착착 해서 계단을 올라서 어디 몇 걸음 딱딱 가서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탁 꽂으면요. 요즘은 번호 키를 하지만 옛날에는 열쇠 구멍 있잖아요. 바로 쏙 하는 거예요. 더듬지도 않고 착착착 하면 돼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 보고 하는 말이 “당신들은 점점 어두워지는 눈을 갖고 있는데 자기는 점점 더 밝아지는 눈을 갖고 있다.” 정전돼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다섯 가지 인생 유형과 바디메오·삭개오

설교자는 오래전 성경을 보다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몇 가지 유형이 있다고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 쓴 책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구약편과 신약편으로 나뉘어 있다고 소개합니다. 설교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한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사람, 처음이 어렵고 나중이 좋은 사람, 처음은 좋았으나 끝이 나쁜 사람, 변덕이 심해 끝을 알 수 없는 사람의 다섯 유형을 나눕니다. 그중 처음에는 어렵다가 나중에 좋아진 대표적인 사람으로 바디메오와 삭개오를 듭니다. 바디메오는 선천적으로 불행을 타고났고, 삭개오는 후천적으로 돈을 좇다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끝이 좋았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경험도 나눕니다. 그는 어린 시절 학업을 중단했다가 스물아홉 살에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동창들과 비교해 볼 때 하나님을 알게 된 후 나중에 나아졌다고 고백합니다.

노우호 · 2026-10-26

설교 내 30–31문단 · 예화 4

본문 발췌 보기

그래서 이 세 번째, 처음에 어렵다가 나중에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처음부터 시종일관 좋으면 제일 좋죠. 그런데 여기 처음에 잘된 사람 누가 있어요? 나부터 처음에 참 불행했어. 너무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서 공부를 하다가 그만둬 버렸거든요. 초등학교 하다가 때려치우고 삼 학년까지 가고, 그다음에 중학교 하고 또 때려치우고, 그래서 스물아홉 살 때 고등학교를 갔어요. 열여섯 살에 고등학교를 가야 되는데 스물아홉 살에 고등학교에 가니까 다른 사람보다 십삼 년이나 둘러서 학교에 가는 거예요. 그래도 나중에 제가 동창회에 가 보니까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안 그럴 수 있는데 나는 내가 볼 때 내가 제일 잘된 것 같아.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의 잘 몰라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우리 동기 동창, 초등학교 동창들, 중학교 동창들 가 보니까 몇 사람 안 돼. 초등학교 동창 중에 한두 사람, 중학교 동창 중에 한두 사람, 그게 다야. 그래서 저도 어쩌면 처음보다 나중에 조금 나아졌지 않느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정말 나중이 좋아진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박 집사의 극동방송 질문 일화

설교자는 창원에 살던 시절 극동방송에서 진행한 생방송 성경 질문 프로그램을 회상합니다. 청취자가 전화로 질문하면 아나운서와 함께 답하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그중 부산에서 전화를 걸어오던 박 집사라는 청취자가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박 집사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늘 질문을 두 가지씩 가져왔고, 질문의 수준도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어떤 질문은 설교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어서 당황했지만, 집에 돌아와 다시 생각해 보니 틀린 대답은 아니었다고 설교자는 전합니다. 설교자는 박 집사의 전화가 올 때마다 긴장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점자로 공부하며 한 글자씩 더듬어 생각했기 때문에 허술한 답을 쉽게 넘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일화는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묻는 신앙의 자세를 보여 주는 예로 소개됩니다.

노우호 · 2026-10-26

설교 내 56–57문단 · 예화 5

본문 발췌 보기

제가 전에 극동방송, 창원에 살 때 “성경에 대해서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해서 생방송으로 전화로 질문이 들어오면 아나운서하고 같이 대답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했는데, 부산에서 어떤 박 집사라는, 이름은 잘 모르겠고 박 집사입니다. 전화가 오는데 꼭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달리 한 가지만 못 해. 꼭 질문 두 가지를 갖고 와요. 그리고 질문 수준이 제일 높아. 정말 물어볼 만한 걸 묻고, 어떤 경우는 내가 그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 했던 질문이 푹 나왔는데 제가 당황했어요. 어떻게 둘러대고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까 틀린 대답은 아니다, 그런 정도였어요. 그 사람은 자주 전화가 오는데 그 사람 전화가 오면 내가 긴장이 돼요. 또 무슨 뾰족한 걸 물어서 나를 궁지에 빠뜨릴까? 왜 그러냐? 다른 사람들은 눈으로 보니까 대충 지나가는데, 아까 말했듯이 점자 한 자 한 자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서 생각하면서 공부했기 때문에 조금 잘못한 걸 또 더듬어 보고 이렇게 재미를 보는 거예요.

부산 병원 근처 야구 함성과 최무룡·김지미 공연 이야기

설교자는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때의 경험을 나눕니다. 병원 옆 야구장에서 함성이 얼마나 크게 울렸는지 병원 창문이 떨릴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평생 야구장이나 축구장에 가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유명 야구 선수가 오면 여고생들이 그가 묵는 호텔에 몰려가 이름을 부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합니다. 또 산청 공회당에 배우 최무룡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육칠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고, 김지미가 온다고 해도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그때 자신의 마음이 메말라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면서 청년들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인간성이 남아 있는 좋은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삭막했던 마음과 대비하며,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삭개오의 간절함과 이어진다고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6

설교 내 62–64문단 · 예화 7

본문 발췌 보기

저는 한 번 부산의 어떤 병원에 가 있는데 옆 야구장에서 야구를 하면서 함성 소리가 병원 창이 막 떨릴 정도로 나는 거예요. 나는 내 평생 한 번도 야구 보러 간 적이 없어요. 야구장에 간 적도 없고 축구 보러 간 적도 없고 그런 거 보러 간 적이 없는데, 그때 야구 선수 누가 오고 하면 그 앞에 여고생들이 그 선수가 자는 호텔에 떼로 몰려와서 이름을 부르고 그런다네. 참 희한하다. 한편으로 그때 나는 인정도 메마르고 눈물도 없고, 그런 배우나 이런 사람도 보고 싶지가 않아요. 산청에 보면 옛날에 극장이 있었어요. 공회당이라 하는 데가 있었는데 거기에 최무룡이 오셨다는 거예요. 오시면 내가 거기 가 볼 일이 뭐 있어? 보면 내 것도 아니고 내가 왜 가? 거기를 가려면 육 킬로미터, 칠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돼. 그걸 보러 간다고? 그걸 보면 뭘 한대? 또 김지미가 온대. 김지미가 온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제가 그렇게 마음이 메말라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내가 이렇게 마음이 메말라서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아서 되겠나? 저는 그때 청년들, 학생들 하는 게 더러 마음에 안 들고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건 참 좋은 마음이라고 봐요. 저는 누구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없으니까 얼마나 내 마음이 삭막한지요.

질 브리스코의 고백

설교자는 여성 사역자 질 브리스코의 고백을 인용하며,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는 만족을 보여 줍니다. 그녀는 오래 전 누구에게서도 만족을 얻지 않으려 했다고 말하며,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나 필요로 하는 아이도 자신을 충분히 채울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이 글이 남편이 세 달간 전도 여행을 떠나 집에 돌아오지 않던 상황에서 쓰였다고 소개합니다. 그 글에서 그녀는 며칠 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채우실 것이라고 결심했다고 적습니다. 그녀는 어떤 직업이나 경험도 충분히 보상하거나 만족시킬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그렇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 고백을 다시 읽으며 좋은 말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어서 그는 요한이 전한 그리스도 안의 새 피조물 고백을 연결하고, 세상이 그리스도인의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차이는 외적인 것보다 결혼 전의 순결, 결혼 안의 충성, 돈과 권력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고백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만족의 본보기로 제시합니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19

설교 내 10–11문단 · 예화 7

본문 발췌 보기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들과 함께 가는 것을 생각하려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지난 20년간 목회자들 사이에서 나타난 많은 도덕적 실패가 1티모테오 6장 6절 이후의 말씀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겪은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물건을 사랑하게 되었고, 물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물건은 이전에는 결코 가지지 않았던 곳으로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환경과 그 사람들 속에서 그는 방황하는 눈, 산만한 발, 통제되지 않은 손을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깨끗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 한 분의 말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질 브리스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래 전에 저는 누구에게서도 만족을 얻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도, 아무리 필요로 하는 아이도 저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어떤 직업도 나를 충분히 보상해 줄 수 없고, 어떤 경험도 나를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렇습니다."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은 참 좋습니다. "며칠 전 저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채워 주실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이 말은 그녀의 남편이 세 달간 전도 여행을 떠나 집에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서 쓴 것입니다. "어떤 남자도 나를 충분히 사랑해 줄 수 없습니다. 어떤 자녀도 나를 충분히 필요로 해 줄 수 없습니다. 어떤 직업도 나를 충분히 보상해 줄 수 없습니다. 어떤 경험도 나를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렇습니다." 요한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 피조물이라, 옛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오늘날에 어떤 큰 영향을 미치려 한다면, 이교도 세상은 우리가 뚜렷한 차이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외적인 것에서 그런 차이를 기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침에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모두 물가 근처의 오두막으로 가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생활도 그런 시도를 했지만, 결국 많은 수도사들이 어떻게 끝났는지 보세요. 그러나 우리의 핵심 태도에서 차이를 보여야 합니다. 즉, 결혼 전의 순결과 결혼 내의 충성심에 대한 태도, 그리고 돈과 권력에 대한 태도에서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화는 몸, 머리, 돈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몸을 가지고 있거나, 올바른 몸을 가진 사람과 함께 있는지, 당신이 올바른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사람들을 둘러싼 그룹에 속해 있는지, 그리고 당신이 자신의 지위를 확보할 만큼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판단됩니다.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에 자랑하지 말며, 힘센 자는 힘에 자랑하지 말며, 부한 자는 재물에 자랑하지 말라." 즉,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못생겼고, 가난하고, 멍청이야"라고 말하지 마세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못생기지도 않았고, 가난하지도 않고, 멍청이도 아닙니다. 그게 해결책이 아닙니다. 해결책은 그걸 자랑거리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너는 정말 예쁘구나"라고 말하지 마세요. 아이들의 성품에 집중하세요. 자원이 있다면 밤새 세는 일은 그만두고, 그걸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을지 생각하세요. 지적 능력이 있다면, 큰 단어를 써서 사람들을 인상 주려 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당신의 마음을 드리고 섬기세요. 그리고 세상이 새 피조물, 변화된 삶의 차이를 볼 수 있도록 하세요. 특히 여러분 젊은이들, 앞으로 삶이 펼쳐지고, 많은 도전이 닥쳐오고, "너는 이런 모습이어야 하고, 이런 생각을 해야 하고, 이런 차를 타야 한다"는 소비주의적 요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말 힘듭니다.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내가 앞서 인용한 짧은 노래는 제가 자주 마음속에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좋아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 제 죄를 깨끗이 제거해 주소서. 죄는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힘을 주소서. 저는 혼자서는 힘이 없습니다. 유혹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음 덫에 걸릴 것입니다. 저는 끝장난 사람입니다. 주님, 제 안에 힘을 주소서. 주님, 저를 그대로 받아 주시고, 저를 완전히 주님의 소유로 만드소서. 주님, 날마다 저를 주님의 지배 아래 두어 주소서. 제 마음을 주님의 성전과 왕좌로 삼아 주소서. 저는 돈을 벌든 안 벌든, 유명하든 은둔생활을 하든, 제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가든 무엇을 희생하든, 주님께서 이 일을 하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은, 이 말을 진심으로 말하고 실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결코 부당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릇이 없는 자에게는 좋은 것을 결코 거두지 않으시리라." 오늘 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이 짧은 노래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셔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방황하며 어리석고 해로운 욕망에 빠져 있는 분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파멸로 떨어뜨리기 전에 붙잡아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사천 예배당 철거 위기와 면장의 도움

설교자는 사천 예배당 건축 과정에서 생긴 위기를 전한다. 땅이 대지와 농지로 나뉘어 있었는데, 예배당의 앞마당을 넓히려고 사택 쪽 경계를 조금 넘어 한 미터 정도 더 지었다. 그 땅은 곧 대지로 바뀔 땅이었지만 지목 변경 전이라 사천군청이 문제를 삼았다. 그해 8월에는 태풍이 두 차례 지나가 큰 피해가 있었고, 이후 군에서 복구를 위해 굴착기가 올라와 잘못 지은 부분을 뜯겠다고 연락했다. 설교자는 블록을 살 때 시멘트를 제대로 넣어 단단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일을 떠올리며 마음이 타들어 갔다. 그는 날짜가 다가오는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고, 면장 이영우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면장도 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애썼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이 피격되는 혼란 속에서 면장이 이곳이 원래 집이 있던 곳이라는 서류를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 결과 포클레인은 돌아갔고 예배당은 지금까지 서 있게 되었다. 설교자는 자신이 그 사건을 기도로 일으킨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하며, 다만 예배당이 부서지지 않기만 기도했다고 말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55–60문단 · 예화 6

본문 발췌 보기

예나 지금이나 제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 안 할 수 있습니까? 내 힘으로 안 되는데. 기도하게 되면 예기치 않은 일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1979년도에 제가 사천에, 아까 이야기한 그곳에 있을 때 예배당을 지으면서 조금 무리한 일을 했어요. 땅이 두 필지가 있는데 한 필지는 대지고 한 필지는 농지인 거야. 농지에는 사택을 지을 수 있어. 주택은. 그래서 농지에 주택을 짓고, 앞에 길가 쪽에 있는 예배당 지을 땅은 길 쪽으로 앞마당을 좀 많이 남기기 위해서, 어차피 사택을 지은 그 땅도 곧 대지로 변경될 것이기 때문에, 앞에 마당을 남기느라 사택 쪽으로 경계를 넘어서 조금 침범해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다 내 땅이고 결국 그 땅도 대지로 될 것이고, 농지로 보존되는 땅은 아닙니다. 지목이 아직 변경 전이고 농지인데 예배당을 거기에 한 1미터 더 지었거든. 그걸 사천군청에서 문제 삼아 가지고. 그해 8월에 태풍이 두 개 왔어요. 어빙호라는 태풍하고 주디라는 태풍이 한 달에, 8월 초에 한 번, 8월 중순에 한 번, 두 번 할퀴고 지나가면서. 그때 태풍이 얼마나 무서웠느냐? 한 130명이 죽었다는 거야, 당시에. 우리 성경 강좌하는 모임도 안 되고, 교통이 다 두절돼서 길이 끊겨 차가 못 다닐 정도로 무시무시한 태풍이 지나갔는데. 군에서 또 연락이 뭐였느냐?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해 굴착기 같은 것이 그쪽에 올라갈 텐데, 올라간 김에 우리가, 내가 잘못 지은 것을 뜯는다는 거야. 아이고, 저는 여간해서는 금식 안 하고 철야 잘 안 하는데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말라요. 어떻게 지은 집이냐. 제가 사천에 가서 블록 공장에 가 가지고 보니까 블록에 시멘트가 너무 적게 들어갔어. 보통 블록 살 때 깎아 달라고 하잖아요. 저는 얼마 더 쳐 드릴 테니까 시멘트를 제대로 넣어서 단단한 블록을 만들어 달라 하니까 사장이 쳐다보더라고요. 보통 깎자고 그러잖아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이건 보통 사람 집을 짓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집을 지을 것이기 때문에 블록에 시멘트를 제대로 섞어서 찍어 달라. 정말 가서 보니까 다른 것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멘트가 기가 막히게 들어간 거야. 때려 보니까 쇳소리가 나.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내 손으로 다 쌓아 올려서 지붕만큼 올라갔어. 진주노회 안에 블록 한 장씩 보내 주세요 해 가지고 모금한 거잖아. 그걸 다 쌓아 올렸는데 포클레인으로 와서 밀어 버린다고. 여러분, 기도 안 하겠어요? 기도하다가 면장을 찾아가고. 면장은 법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다 해 주려고 하는데 법이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 이영우라는 면장,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는데 이분이 저를 참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애가 나보다 더 타는 거라. 날짜가 바짝바짝 다가오는데, 그해 태풍이 연달아 두 개나 왔기 때문에 사천에서 고성 사이 경계, 제일 먼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 가지고. 포클레인으로 밀어 버리는 걸 보고 내가 어떻게 견뎌 낼 것인가? 잠이 안 오고 밤이 두렵고, 진짜 살맛이 없어지는 거야. 10월 29일인가 포클레인이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에 뭐가 있었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거야. 그때는 박정희가 곧 나라이고 나라가 박정희야, 그냥. 그런데 박정희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온 나라가 질서도 없고 세상 끝난 것 같았어요. 그때 이영우 면장이 군에 가 가지고, 여기가 원래 사실 공부상에는 없어도 원래 집이 있던 곳이다, 해 가지고 서류를 만들어 통과시켜. 그래서 포클레인 가지고 오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도 예배당이 서 있습니다. 그 뒤에 있는 농지로 돼 있던 땅은 빨리 지목 변경해 가지고 완전무결하게 처리된 거예요.

시카고 이민과 영적 생일

설교자는 20대 초반 시카고로 이민을 간 경험을 나눕니다. 그곳은 가장 밑바닥의 상황이었고, 그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매달리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은혜를 누리기 시작한 출발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3월 15일 시카고로 이민 간 그날을 영적 생일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합니다. 만약 미국에 가지 않았고 그 절망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자신은 목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도 나가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시기를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이 간증은 고난의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적용으로 이어집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6–6문단 · 예화 5

본문 발췌 보기

우리 마음이 점점 매말라가고, 감사가 사라지고, 삶의 의욕은 없어지고, 기쁨도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뭐 있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 주시는데." 이런 원망이 넘쳐나는 여러분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를 혼미하게 하는 그 영역을 벗어나려고 애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려고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그 아이처럼 가스 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해야 회복이 일어나듯이, 우리의 신앙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곳을 배회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 생활은 청산하지 않으면서, 제가 돌아보면은요. 목사들인데도 어릴 때 항상 하나님 없어. 하나도 안 도와줘. 그걸 제가 많이 불평한 기억이 나거든요. 도와줄 수 없는 불신앙의 자리에 머물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했다고요. 20대 초반에 시카고로 이민 가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 상황에서 진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제가 은혜를 누리기 시작한 출발이 되는 거예요. 저는 가끔씩요. 저는 3월 15일 날 시카고로 이민을 갔는데, 그 날이 영적으로 내 생일이라고 얘기를 해요. 제가 미국에 안 갔으면, 시카고에 가지 않았으면, 그 절망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절대로 목사가 안 됐습니다. 교회도 안 나갈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 인격적으로 제가 애쓰지도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뭘 강조하고 싶은 겁니까? 여러분, 이런 점에서 저는 기독교 변증가거든요. CS 루이스라는 분. 여러분, 신앙생활 처음 하시거나, 오늘 초대 오신 분들, CS 루이스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십시오. 어떤 책이라도 괜찮아요. 이분이 정말 대단한 분인데요. 이분이 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우리가 그냥 내 힘을 의지하여 전도해 보면, 그런 분들이 옛날에 많았습니다. "난 주먹을 믿어. 난 내 주먹을 믿지. 난 하나님 없어도 돼." 너무나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려고 바둥바둥 그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 종이 신문이 있을 때, 신문 보내라고 몰입하고 있으면, 아내가 처음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로 "식사하세요. 밥 먹으라고요." 안 들려요. 신문에 내가 몰입하고 있으면, 밥 먹으라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거든요. 오늘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풍요로운 삶을 원하세요. 계속 말씀하십니다. "진짜 얘들아, 땅이 다가 아니라고, 왜 그렇게 바둥바둥 그리냐고." 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영혼이 없다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설명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 반통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안 그렇던가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건 전부이고, 나는 영혼이 없는 짐승하고 똑같이, 나 우리 강아지를 보면서, 이 강아지가 어떨 때는 나하고 차이가 뭐지? 걔도 모든 흰혈구를 다 갖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동물들하고 저하고의 결정적인 차이는, 저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 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려요. 그리고 집에 가서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땅이 끝이라고 한다면,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잖아요. 설명이 안 되는 그 많은 일들이, 왜 이후에 연장되는 그 부분을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은 계속 그 말씀을 해 주세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참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본문에서 "다 배불리 먹고" 이런 결과가 이제 결론이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놀라운 결론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어땠는 줄 아십니까? 자, 15절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마태복음 14장 15절입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두 대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빈 들은 결핍의 상징 아닙니까? 게다가 제자들이 관찰한 그대로, 이미 밤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구할 수 없다. 그 이야기를 지금 고백한 거거든요. 그래서 빈 들이요. 이거가 어떻게 다 배불리 먹고의 재료가 됐나? 이게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결핍의 상징인 빈 들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기에 지금 밤까지 찾아왔는데, 놀라운 건 그게 역설적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배불리 먹게 된 원인이었다는 거예요. 다른 데서 그날 군중들 먹일 수 있는 양식을 구해 왔으면, 예수님의 기적에 음식은 나오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요. 결핍이 기적을 만든 재료가 된 거거든요. 빈 들이 다 배불리 먹고, 이 풍요로움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누가 저한테, "아니 그 장소가 빈 들이었는데, 거기는 결핍이었는데,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저한테 물으시면, 저는 대답 간단하게 다 그거요. 정답은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결핍이 재료가 된 겁니다. 오늘 초대받아 오신 분들과 우리 교회 오래 다니지만 복음이 뭔지 모르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핵심이 이거거든요. 여러분, 살다 보면 빈 들이 오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차원의 빈 들이 오고, 관계적으로 배신당해서 상처받는 빈 들이 오고,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마음을 나눌 길이 없어 가지고 막 절망하고, 이게 인생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이 그때 이미 분당 우리 교회 만 명에 단임 목사로 딱 계획을 하고 계셔 가지고, 저희에게 빈 들을 좀 빨리 보내 주셨어요. 저는 20대 초에 인생의 빈 들, 인생의 쓴맛을 본 거거든요. 지금도 기억해요. 절망적인 제 상황, 환경은요. 아니, 내가 한국 살다가 미국 갔는데, 그때 경제 격차가 미국하고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이만큼 우리나라가 낙후가 됐는데, 세상에, 난 미국이라고 갔는데, 미국에서 저 화장실 가는데 새벽에 불을 켜면은 바퀴벌레들이 막 놀라가고, 이것 왜 일찍 일어나서 그러면서 막 바퀴벌레가 도망가는 그 그거, 아, 내가 한국에도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이 목조 건물, 막 미국에 낡아 빠진 100년된 목조 건물에 제가 사는데, 하여튼 한심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셨죠. 온 남매 중에 뚝 떨어지는 막내죠. 대학교 2학년 맞추고 이민을 갔는데, 거기서 다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학비를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이게 절망이 온 거죠. 빈 들이 찾아왔죠. 자꾸 좌절이 겹치니까, 그냥 죽고 싶더라고요. 조금만 더 제가 용감했으면, 뭐 도전했을지 모르죠. 무서워서 못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에요. 그 빈 들들이 저로 하여금 놀랍게도 배불리 먹고, 이 인생을 만들어 준 거 아닙니까? 배불리 먹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한테, 아 참, 저희 교회가요, 지금도 자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힘듭니다. 그 오연을 하지 말아 주세요. 얼마나 주 목사가 욕심이 많아 가지고, 나까지 신도 만들려고 그냥 저렇게 쓴다고 그러는데, 진짜 오해하세요. 저희는요, 일만 소도 파송 운동으로 만 명 이상을 다 파송한 교회예요. 이 오해만 가지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왜 그 영화 한편 참 재밌는 거 보고 나면, 막 진짜 우리에 보고, 너 그거 봐야 된다. 말 안 들어, 너 진짜 이 영화는 봐야 된다. 아직도 안 봤니? 같이 가져 나오고, 이런 영화가 있잖아요. 최근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이 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한 거예요. 여러분이 마음 말고는 다른 거 없습니다. 바로 어제인데요.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 마음을 울린 찬양, 이게 참, 원래부터 잘 아는 곡인데, 하나님은 때에 따라 새롭게 은혜를 주세요. 광야를 지나며, 이런 제목의 찬양인데, 가사가 이렇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써 있네." 제가 이 가사가 너무 어제 와닿 가지고요. 왜 시카고에 만 명 때 저를 보는 거 같으니까요. "왜 나를 깊은 어둠에 가두어 두느냐고, 막 떼지를하고, 당신이 신이냐고, 막 이렇게 무능한 시기냐고, 막 되들고 그랬거든요." 그때 땅이 가사 그대로예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광야가 어떤 곳이냐?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제가 이 곡을 선분 검색을 해 보니까요, 여성분인데요, 저하고 좀 환경이 비슷하더라고요.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 그것도 비슷해요. 그리고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아직 그 어린 학생인데, 자기가 벌어서 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얼마나 그 광야 그 길이 심했겠냐고요. 그 고백을 쭉 하면서, 아까 여기에 저는 과거형으로 썼는데, 저는 단수로 여러분께 설명했던 게 뭐였죠? 왜 나를 다시 한번 보세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그리고 결론에 있는 그다음 가사가 너무 중요합니다. "주께서 나를 사,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고,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고,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 곳, 그 광야에 내가 서 있네." 이 찬양 아닙니까? 이 부분은 다음 주일 날 제가 또 설명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제가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요. 오늘은 설교를 끝내지 않고 마치리라. 요렇게 설교를 끝내려고요. 지금 여러분 생각에, 우리 목사님 스타일을 보니까, 아직 서론하고 있는데, 폴로는 도대체 언제 하는 거야? 두려워하고 있는데, 폴로는 다음 주일 할 거예요. 이 설교 끝났습니다. 요렇게 설교를 제가 끝내고요.

광야를 지나며 찬양의 간증

설교자는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양을 소개합니다. 그는 이 곡의 가사를 처음에는 원망하는 마음으로 불렀지만, 과거를 돌아보니 광야가 주님만 도움이 되시고 빛이 되시며 친구가 되시는 자리였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가사의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라는 구절을 자신의 시카고 시절과 연결합니다. 그 시절 그는 왜 깊은 어둠에 가두시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말합니다. 또 설교자는 찬양을 검색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린 나이에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한 여성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고 나눕니다. 가사의 결론처럼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정결케 하시려고 택하여 보내신 곳이 광야라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찬양의 의미를 다음 주일에 이어서 설명하겠다고 예고합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6–6문단 · 예화 8

본문 발췌 보기

우리 마음이 점점 매말라가고, 감사가 사라지고, 삶의 의욕은 없어지고, 기쁨도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뭐 있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 주시는데." 이런 원망이 넘쳐나는 여러분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를 혼미하게 하는 그 영역을 벗어나려고 애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려고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그 아이처럼 가스 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해야 회복이 일어나듯이, 우리의 신앙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곳을 배회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 생활은 청산하지 않으면서, 제가 돌아보면은요. 목사들인데도 어릴 때 항상 하나님 없어. 하나도 안 도와줘. 그걸 제가 많이 불평한 기억이 나거든요. 도와줄 수 없는 불신앙의 자리에 머물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했다고요. 20대 초반에 시카고로 이민 가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 상황에서 진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제가 은혜를 누리기 시작한 출발이 되는 거예요. 저는 가끔씩요. 저는 3월 15일 날 시카고로 이민을 갔는데, 그 날이 영적으로 내 생일이라고 얘기를 해요. 제가 미국에 안 갔으면, 시카고에 가지 않았으면, 그 절망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절대로 목사가 안 됐습니다. 교회도 안 나갈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 인격적으로 제가 애쓰지도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뭘 강조하고 싶은 겁니까? 여러분, 이런 점에서 저는 기독교 변증가거든요. CS 루이스라는 분. 여러분, 신앙생활 처음 하시거나, 오늘 초대 오신 분들, CS 루이스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십시오. 어떤 책이라도 괜찮아요. 이분이 정말 대단한 분인데요. 이분이 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우리가 그냥 내 힘을 의지하여 전도해 보면, 그런 분들이 옛날에 많았습니다. "난 주먹을 믿어. 난 내 주먹을 믿지. 난 하나님 없어도 돼." 너무나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려고 바둥바둥 그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 종이 신문이 있을 때, 신문 보내라고 몰입하고 있으면, 아내가 처음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로 "식사하세요. 밥 먹으라고요." 안 들려요. 신문에 내가 몰입하고 있으면, 밥 먹으라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거든요. 오늘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풍요로운 삶을 원하세요. 계속 말씀하십니다. "진짜 얘들아, 땅이 다가 아니라고, 왜 그렇게 바둥바둥 그리냐고." 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영혼이 없다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설명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 반통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안 그렇던가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건 전부이고, 나는 영혼이 없는 짐승하고 똑같이, 나 우리 강아지를 보면서, 이 강아지가 어떨 때는 나하고 차이가 뭐지? 걔도 모든 흰혈구를 다 갖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동물들하고 저하고의 결정적인 차이는, 저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 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려요. 그리고 집에 가서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땅이 끝이라고 한다면,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잖아요. 설명이 안 되는 그 많은 일들이, 왜 이후에 연장되는 그 부분을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은 계속 그 말씀을 해 주세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참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본문에서 "다 배불리 먹고" 이런 결과가 이제 결론이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놀라운 결론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어땠는 줄 아십니까? 자, 15절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마태복음 14장 15절입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두 대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빈 들은 결핍의 상징 아닙니까? 게다가 제자들이 관찰한 그대로, 이미 밤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구할 수 없다. 그 이야기를 지금 고백한 거거든요. 그래서 빈 들이요. 이거가 어떻게 다 배불리 먹고의 재료가 됐나? 이게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결핍의 상징인 빈 들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기에 지금 밤까지 찾아왔는데, 놀라운 건 그게 역설적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배불리 먹게 된 원인이었다는 거예요. 다른 데서 그날 군중들 먹일 수 있는 양식을 구해 왔으면, 예수님의 기적에 음식은 나오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요. 결핍이 기적을 만든 재료가 된 거거든요. 빈 들이 다 배불리 먹고, 이 풍요로움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누가 저한테, "아니 그 장소가 빈 들이었는데, 거기는 결핍이었는데,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저한테 물으시면, 저는 대답 간단하게 다 그거요. 정답은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결핍이 재료가 된 겁니다. 오늘 초대받아 오신 분들과 우리 교회 오래 다니지만 복음이 뭔지 모르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핵심이 이거거든요. 여러분, 살다 보면 빈 들이 오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차원의 빈 들이 오고, 관계적으로 배신당해서 상처받는 빈 들이 오고,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마음을 나눌 길이 없어 가지고 막 절망하고, 이게 인생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이 그때 이미 분당 우리 교회 만 명에 단임 목사로 딱 계획을 하고 계셔 가지고, 저희에게 빈 들을 좀 빨리 보내 주셨어요. 저는 20대 초에 인생의 빈 들, 인생의 쓴맛을 본 거거든요. 지금도 기억해요. 절망적인 제 상황, 환경은요. 아니, 내가 한국 살다가 미국 갔는데, 그때 경제 격차가 미국하고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이만큼 우리나라가 낙후가 됐는데, 세상에, 난 미국이라고 갔는데, 미국에서 저 화장실 가는데 새벽에 불을 켜면은 바퀴벌레들이 막 놀라가고, 이것 왜 일찍 일어나서 그러면서 막 바퀴벌레가 도망가는 그 그거, 아, 내가 한국에도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이 목조 건물, 막 미국에 낡아 빠진 100년된 목조 건물에 제가 사는데, 하여튼 한심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셨죠. 온 남매 중에 뚝 떨어지는 막내죠. 대학교 2학년 맞추고 이민을 갔는데, 거기서 다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학비를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이게 절망이 온 거죠. 빈 들이 찾아왔죠. 자꾸 좌절이 겹치니까, 그냥 죽고 싶더라고요. 조금만 더 제가 용감했으면, 뭐 도전했을지 모르죠. 무서워서 못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에요. 그 빈 들들이 저로 하여금 놀랍게도 배불리 먹고, 이 인생을 만들어 준 거 아닙니까? 배불리 먹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한테, 아 참, 저희 교회가요, 지금도 자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힘듭니다. 그 오연을 하지 말아 주세요. 얼마나 주 목사가 욕심이 많아 가지고, 나까지 신도 만들려고 그냥 저렇게 쓴다고 그러는데, 진짜 오해하세요. 저희는요, 일만 소도 파송 운동으로 만 명 이상을 다 파송한 교회예요. 이 오해만 가지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왜 그 영화 한편 참 재밌는 거 보고 나면, 막 진짜 우리에 보고, 너 그거 봐야 된다. 말 안 들어, 너 진짜 이 영화는 봐야 된다. 아직도 안 봤니? 같이 가져 나오고, 이런 영화가 있잖아요. 최근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이 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한 거예요. 여러분이 마음 말고는 다른 거 없습니다. 바로 어제인데요.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 마음을 울린 찬양, 이게 참, 원래부터 잘 아는 곡인데, 하나님은 때에 따라 새롭게 은혜를 주세요. 광야를 지나며, 이런 제목의 찬양인데, 가사가 이렇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써 있네." 제가 이 가사가 너무 어제 와닿 가지고요. 왜 시카고에 만 명 때 저를 보는 거 같으니까요. "왜 나를 깊은 어둠에 가두어 두느냐고, 막 떼지를하고, 당신이 신이냐고, 막 이렇게 무능한 시기냐고, 막 되들고 그랬거든요." 그때 땅이 가사 그대로예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광야가 어떤 곳이냐?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제가 이 곡을 선분 검색을 해 보니까요, 여성분인데요, 저하고 좀 환경이 비슷하더라고요.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 그것도 비슷해요. 그리고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아직 그 어린 학생인데, 자기가 벌어서 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얼마나 그 광야 그 길이 심했겠냐고요. 그 고백을 쭉 하면서, 아까 여기에 저는 과거형으로 썼는데, 저는 단수로 여러분께 설명했던 게 뭐였죠? 왜 나를 다시 한번 보세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그리고 결론에 있는 그다음 가사가 너무 중요합니다. "주께서 나를 사,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고,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고,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 곳, 그 광야에 내가 서 있네." 이 찬양 아닙니까? 이 부분은 다음 주일 날 제가 또 설명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제가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요. 오늘은 설교를 끝내지 않고 마치리라. 요렇게 설교를 끝내려고요. 지금 여러분 생각에, 우리 목사님 스타일을 보니까, 아직 서론하고 있는데, 폴로는 도대체 언제 하는 거야? 두려워하고 있는데, 폴로는 다음 주일 할 거예요. 이 설교 끝났습니다. 요렇게 설교를 제가 끝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