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 청원을 세 번 보내 예배당 건축 기금을 얻은 사천 교회 이야기
설교자는 1977년 7월 10일 신학 공부 중 강사 목사의 권유로 사천의 작은 예배당에 파견되었다고 회고합니다. 그 예배당은 26년간 유지되다 폐쇄된 곳이었고, 교역자가 없는 날이 많았으며, 남은 교인은 할머니 두 사람과 몇몇 집사뿐이었습니다. 집은 흙벽에 곰팡이 냄새가 났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마을 사람들은 예배당을 변소만도 못하다고 비웃었습니다. 설교자는 예배당을 지을 돈과 인맥이 없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노회에 블록 한 장씩을 보내 달라는 청원을 냈습니다. 노회는 이를 기각했고 설교자는 날짜만 고쳐 같은 문구로 6개월 뒤 다시 보냈습니다. 세 번째 청원에서 노회 임원들이 이 방식의 모금을 허락하기로 결의했고, 설교자는 이를 각 교회에 알려 벽돌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헌금으로 예배당과 사택, 교육관이 세워졌고, 설교자는 5년 뒤 떠날 때 약 100만 원의 예산을 남겨 두었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 경험을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확신의 근거로 나눕니다.
설교 내 9–24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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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서 들은 분도 계시겠는데, 오래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50년 전에 제가 사천이라는 곳에 갔는데, 조그만 예배당을 건축해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지 26년간 유지되다가 폐쇄한 거라. 그것도 교역자가 공석으로 있는 날이 절반, 교역자가 있는 날이 절반, 이런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교역자가 와서 살아갈 수 있는 재정이 아예 안 되는 그런 곳인데 26년간 유지해 오다가 폐쇄한 거라. 이 교회가 안 된다고 해서. 이제 교회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세례 교인 15명 이상이 있어야 되고, 그게 떨어진 채 2년, 3년 가면 등급이 격하돼서 교회가 아니고 그냥 기도처, 이렇게 한 급 내려옵니다. 그건 기도처 정도도 안 되고, 할머니 두 사람하고 남자, 소위 집사라고 한 분이 서리 집사로 되어 있고 여자 집사 한둘이 있고, 그게 다예요. 교회학교 학생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런데도 여러분, 세상에 어떤 단체든 이런 식이면 벌써 흐지부지되고 사라지고 할 텐데 교회는 좀 다른 데가 있어요. 그래도 유지가 되는 거예요. 목회자도 없고 뭐 해도 어떻든 거기 모여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때는 할머니 둘만 나와서 예배하는 거야. 그런데 할머니 둘이 성경도, 성경 글자도 몰라. 그러니까 뭘 하면 되겠어요? 여러분, 그 모르는 할머니 둘이서 주일날 예배하면 뭘 하면 되겠습니까? 생각을 안 해 보신 거지. 사도신경 합시다. 그러면 그건 다 외웠거든요. 사도신경하고 찬송을 아는 걸 하나 꺼내야 돼. 그런데 또 안 맞아. 둘이 해도 그걸 모르니까 둘이 하면 이부 합창을 하고 그래. 그리고 성경은 모르니까 읽을 수도 없고, 주기도문 합시다. 그게 끝이라. 예배가 그게 끝인데, 그렇게 교회가 힘이 없어도 기도도 하고 할머니들이 유지를 하는데, 우리가 신학 공부할 때 저를 보고 그 강사 목사님이 거기를 가라는 거예요. 1977년 7월 10일에 거기를 간 거예요. 가서 어렵사리 그 할머니, 80이 넘은 할머니는 큰방에 자고 나는 작은방에. 그런데 벽에 곰팡이 냄새, 흙냄새가 나고 흙벽에다가 벽지를 자꾸 바르니까 벽지가 두껍고 뻣뻣해져서 자꾸 떨어져 나와. 서로 내미니까 바람 불면 벽지가 푹 나왔다가 들어갔다 합니다. 풍구질을 해서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그게 또 대밭 밑에 있어서 거름 냄새가 나요. 그런데 할머니가 밥을 차려 주는데, 하여튼 파리가 먹다가 빨다가 반은 소화가 된 것 같아. 파리가 얼마나 빨았는지. 냉장고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갔으니까. 그런데 그걸 내놓는데 그걸 먹어야 돼요, 안 먹어야 돼요?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전도사가 없는 게 절반이니까, 전도사가 온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정성을 들여서 갈치를 사서 구웠는데, 구운 건지 삶은 건지 하여튼 그것도 파리가 얼마나 냄새를 좋아하는지. 그걸 갖다 내놓는데 이것도 먹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고민인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제가 금식 중입니다. 금식이 아니고 뭐 금식이죠, 금식. 그러니까 자주 금식을 했어요, 덕분에. 금요일 저녁에 가서 토요일 금식하고, 끓여 먹을 수도 없고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거의 밥을 못 먹다시피 하는 거죠. 지금 나는 그때 그걸 어떻게 견뎌 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 전도한다고 우리가 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교회 나오라고 하니까, 온 동네가 다 전기가 들어왔는데 길가에 있는 외딴집 예배당하고 그 할머니 집만 전기가 안 들어온 거야. 그리고 80세 넘은 할머니 혼자 사니까 집을 손볼 수도 없고, 그야말로 기침만 하면 집이 날아갈 것 같아, 무너질 것 같아요. 전도하러 갔더니 뭐라고 하느냐? 야, 우리 화장실만도 못한 거, 변소간만도 못한 거, 우리가 거기 가란 말이냐, 오란 말이냐 그러더라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전도하러 못 나가겠어요. 그 말 듣고 나니까 사실이거든요. 그 당시만 해도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어서 집마다 지붕 개량도 하고 페인트도 칠하고, 속은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 좀 번지르르하게 하는데 온 동네 전기도 들어오는데 예배당하고 할머니 집에는 전기도 안 들어온 거라. 거기다가 비포장도로 큰길가, 진주하고 고성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직행 버스가 지나가는 길가에 있으니까 버스 지나갈 때마다 먼지를 막 덮어씌우고 하니까, 정말 가서 보니까 눈물 나는 거예요. 지금도 내가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멍청해서 그런지, 그걸 무시하지 못하고 그래도 전도하려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 반응이 그렇다는 거야. 그때 기도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 전도하려고 하니까 예배당이나 전도사 꼬락서니가 이래서 어떻게 전도를 하겠습니까? 차라리 없으면 모르겠는데 있다는 게 온 마을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밖에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지어야 되겠는데 예배당을 지으려면 돈이 있어야 되고 땅을 사야 되고, 어디서 건축비를 말해서 돈을 어떻게 말을 해요? 저는 늦게 믿어서 인맥이 없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아무도 저에게 손잡아 주고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기도를 해야 돼.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그리고 그 예배당에다가 사람 나오라고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봐도. 그때부터 전도를 못 하겠더라고.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창피하게 들리는지. 그래서 학교에 와서 나를 보낸 강사 목사님에게 도저히 이래서는 못 하겠다고 하니까, 무슨 소리냐며 화를 버럭 내면서 그냥 엎드려 있으라, 기도하고 있으라는 거예요. 엎드려 있어도 하늘에서 벽돌이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눈앞이 캄캄하고 그래요. 그런데 얼마 있었더니 한 장로님이, 나를 가라고 한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의 강월상이라는 장로님이 산을 하나 팔아서 돈을 싸 들고 온 거야. 그러니까 나를 보낸 분은 나름대로 저를 도우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했던 것 같아요. 나는 순종해서 간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동네 제일 입구의 반듯한 땅을 사기로 해서 계약을 하고. 그런데 땅 가지고 예배당이 됩니까? 기초를 하고 벽돌을 올려야 될 거 아니야. 뭐가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기도도 하지만 노회에다가 청원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50년 전이니까 진주노회 안에 교회가 한 육칠십 개 됐을 텐데, 거기에 재정적으로 목회자 생활비라도 줄 수 있는 교회가 아마 열 교회도 안 될 거다. 그렇게 어려웠어요. 노회에 청원서를 내는데 노회 재정이 없는 건 제가 상식적으로 아니까요. 경남 진주노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한 사람당 블록, 우리 여기 말로죠, 블록 한 장씩을 보내 주시면 제가 목수 일을 한 경험이 있으니까 내 손으로 지어 보겠습니다. 기도하고 그걸 보냈어요. 그런데 노회에서 보니까 이런 청원이라고 하면서 그냥 기각시켜 버린 거야. 6개월 있다가 또 보냈어요. 날짜만 고쳐서 똑같은 문구 그대로, 한 자도 안 고치고 보냈어요. 이 사람이 또 보냈네 하고 또 기각. 오기가 생기더라고. 내가 번거롭게 하리라. [웃음] 이 과부처럼 내가 번거롭게 하리라. 세 번째 보내니까 노회 임원들이 이 사람이 또 보냈네, 이것도 계속 보낼 모양인데, 그래서 그걸 상정해서 노회에서 결의를 한 거예요. 정치하는 목사, 장로들이 얼마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그렇게 모아서 모금을 해 주는 게 아니고 그런 방식으로 모금하는 걸 허락하기로. 자기들 책임은 안 되는 거야. 그런 방식으로 모금하는 걸 허락하기로 결의해서 통과됐어요. 그래서 허락받았다고 하면서 각 교회에, 노회 안에 주소가 있으니까 다 보냈어요. 노회에서 허락받았다, 예배당을 내 손으로 지을 테니까, 내가 건축 경험이 있으니까 벽돌만 보내 주면 내가 쌓아 올리겠다. 그 간단한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렇게 모인 돈으로 예배당을 다 짓고 사택 다 짓고 교육관 짓고, 내가 그 교회에서 5년 있다가 떠나오는데 그때 돈으로 100만 원 정도 남기고 왔다고, 예산을 남겨 놓고.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아,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들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