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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1개 · 1 / 1쪽 · 한 쪽 20개

쉐보레 광고 문구와 대자연 탐험

설교자는 미국 쉐보레가 트래벌스라는 큰 차를 광고하면서 '편안한 신뢰에서 대자연을 탐험하라'는 카피를 사용했던 일을 소개합니다. 듣기에는 좋은 문구지만, 설교자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대자연을 탐험하는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경험을 하기 때문인데, 편안한 실내에서 그런 탐험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차라리 TV를 보는 편이 낫다고 덧붙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교회를 광고하면서 '편안한 의자, 세련된 신뢰에서 예수님을 경험하세요'라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경험하는 본질을 놓친 광고라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신뢰 있는 공간에서 말씀을 나누는 것이 좋고 필요한 일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일은 편안한 신뢰의 자리에서 나와 삶의 현장으로 나갔을 때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어서 설교자는 야고보서 2장 15절과 16절을 인용합니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말로만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하고 실제로 쓸 것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설교자는 이를 믿음이 말에 머물지 않고 행함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적용으로 전합니다.

남득현 · 2026-10-21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본문 발췌 보기

우리 야고보서 말씀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14절 말씀을 보시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오늘 14절 말씀이 시작됩니다. 여러분, 오늘 14절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첫 번째는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에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행함이 없을 수 있다는 첫 번째 사실과, 두 번째 사실은 14절에서 발견되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그 믿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죠. 여러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는 ‘믿음’입니다. ‘믿는다’는 표현은 너무나 익숙하고 자주 사용됩니다. 신약성경에만 ‘믿음’, ‘믿으라’는 단어가 500회 가까이 기록됩니다. 신약 성경이 260장 정도인데, 거의 장마다 두 번씩은 믿음이나 믿으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이는 믿음이 우리 성도들의 삶과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에 보면, 초대교회가 시작될 때 성도들을 ‘믿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믿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은 ‘믿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익숙한 표현이지만,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우리가 ‘믿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믿는 사람인가? 이는 요한복음 20장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여기서 요한이 성경을 기록한 이유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며,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 예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하려 함이고,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전부입니다. 너무 간단하지요? 우리가 믿고 있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말하고 우리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이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시고, 믿고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바이며,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미국에 쉐보레라는 자동차 회사가 있습니다. 쉐보레 자동차 중에 트래벌스라는 큰 차가 있는데, 몇 해 전에 이 차를 광고하면서 ‘편안한 신뢰에서 대자연을 탐험하라’는 카피를 사용했습니다. 듣기만 해도 너무 좋은 말이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됩니다. 우리가 대자연을 탐험하는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편안한 실내에서 대자연을 탐험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TV를 보는 게 낫습니다. 교회를 광고한다고 해서 ‘편안한 의자, 세련된 신뢰에서 예수님을 경험하세요’라고 한다면, 이는 예수님을 경험하는 본질을 놓치는 광고입니다. 물론 우리가 신뢰 있는 공간에서 말씀을 나누는 것은 중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은 신뢰에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경험하는 것은 신뢰에서 나와야 됩니다. 물론 우리가 신뢰에서 말씀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한 과정이지만,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것은 신뢰에서 나갔을 때 가능합니다. 바로 오늘 15절과 16절에서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그냥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평안히 가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서도 실제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