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오두막의 늑대와 예수님
설교자는 죽음을 숲으로 이어지는 문에 비유한 상상의 장면을 들려줍니다. 한 사람이 숲속 오두막에 혼자 있으며 죽어 가고 있고, 그 문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가 한 걸음씩 문 쪽으로 다가가자, 거대하고 잔인한 늑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눈을 번쩍이며 달려듭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문을 통과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때 성령께서 그의 눈을 열어 주시고, 늑대 뒤에 예수님께서 서 계신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태양처럼 빛나고 계시며, 그분은 늑대를 보지도 않으시고 미소를 지으시며 손을 내미십니다. 그가 놀라 '주님, 그 늑대를 보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왼손에 든 철사 손잡이를 드리우셨고 그 철사는 늑대의 목에 걸려 있습니다. 그가 문턱을 넘는 순간 예수님께서 늑대를 집어 던지시고, 문과 길이 열리며 그곳에는 예수님만 계십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이 죽음의 순간에 성령께서 진정한 적인 죽음 위의 승리를 보게 하시는 모습이라고 설명합니다.
설교 내 6–6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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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은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 이처럼 죽음이 무엇을 시도하고 있는지를 보라. 죽음은 스테판을 위협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아름다운 햇살을 빼앗을 것이다. 너는 그분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나무에 피어난 새싹들을 빼앗을 것이며, 너의 피부에 느껴지는 따뜻함을 빼앗을 것이다. 밤하늘도 빼앗을 것이다. 너의 삶에서 사랑하는 모든 것을 빼앗아 영광을 빼앗아 버릴 것이다.” 그가 입을 열어 말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 속에서 나타나신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이 영광은 모든 영광의 근원이다. 봄 아침, 나무에 피는 새싹, 피부에 느껴지는 따뜻함, 밤하늘의 별들까지도 이 영광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죽음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죽음이 스테판을 위협한다. 그가 아내를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혼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죽음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그녀, 그녀의 자식들, 친구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네가 끝났다. 네가 그 설교로 모든 것을 망쳤다. 너무 지나쳤다. 그가 다음에 보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모습이다.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 “스테판, 들어와라. 내가 인정한다. 물론 그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나는 인정한다. 내가 너를 맞을 준비를 했다.” 죽음이 스테판에게 종으로 변하는 첫 번째 방식은 하늘로 이어지는 창문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성령은 스테판이 죽음 너머로 예수님과의 교제를 볼 수 있도록 하신다. 즉 죽음은 단지 영광의 창문이 아니라, 영광의 문이 되는 것이다. 59절을 보자. 돌로 죽음을 당하는 스테판이 기도했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성령께서 스테판의 눈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의 승리를 보게 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에서 보게 하셨다. 또한 예수님의 환한 얼굴과 아마도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게 하셔서,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라는 기도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죽음 너머로 주님 예수님과의 교제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죽음 속에서 성령의 승리를 이렇게 상상한다. 숲속의 오두막에서 혼자 있고, 숲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다. 너는 죽어가고, 그 문이 바로 죽음이다. 한 걸음씩 문 쪽으로 다가간다. 문이 열리고 너가 문 쪽으로 다가가자, 거대하고 잔인한 늑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눈을 번쩍이며 너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인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문을 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령께서 네 눈을 열어 주신다. 늑대 뒤에 예수님께서 서 계시고, 그분의 얼굴은 태양처럼 빛나고 계신다. 예수님은 그 잔인한 생물을 보지도 않고 미소를 지으시며 손을 네 쪽으로 내미신다. 너는 놀라며 말한다. “주님, 그 늑대를 보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은 너를 바라보시고, 왼손에 철사가 있는 손잡이를 드리우고 있다. 그 철사는 늑대의 목에 걸려 있다. 예수님은 너를 문 쪽으로 기다리고 계신다. 너는 그분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쥐어짜며 문턱을 넘는 순간, 예수님께서 늑대를 집어 던져 버리신다. 문이 열리고 길이 열린다. 거기에는 예수님만 계신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순간에 성령께서 진정한 적인 죽음 위에 이긴 승리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성령께서 죽음을 스테판의 종으로 삼아 그가 죽음의 순간에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형상이 되게 하셨다. 60절을 보자. 그는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기도했다. “주님,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이야기를 아시는 분이라면 루가는 분명히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려 했을 것이다. 루가는 실수한 것이 아니라, 루가복음 23장 34절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 그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이 얼마나 의미 있는가? 마귀의 죽음에 대한 계획은 단지 몸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파괴하는 것이다. 거룩함을 파괴하고 선함을 파괴하며 그리스도의 형상도 파괴한다. 마귀가 죽음으로부터 네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너를 실망시키고 희망을 잃게 하며 쓴 맛을 느끼게 하고 자책하며 분노하게 하려는 것이다. 간호사, 의사, 약, 가족, 부모, 하나님까지 모든 사람에게 분노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되면 마귀는 얼마나 성공할까? 그러나 하나님의 죽음에 대한 계획은 완전히 다르다. 그분은 적을 끌어다가 묶고 입을 막는다. 그 적을 목줄로 묶어 놓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쓴 맛, 분노, 분노, 자책이 아닌 “아버지, 그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주님,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소서.”와 같은 말을 나오게 하신다. 사탄은 얼마나 분노할까? “그게 내가 원했던 게 아니잖아. 내가 의도했던 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