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
설교자는 요한복음 5장의 베데스다 못가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못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한 사람만 낫는 구조였고, 설교자는 이를 경쟁이 필수인 땅의 나라에 빗대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가운데 38년 된 병자, 곧 가장 뒤처진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꼴찌가 1등이 되는 반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준비가 부족해 다다르지 못한 사람도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낮게 보이는 자라도 먼저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적용했습니다. 사람의 나라에서 밀린 사람이 자기 가치를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과 대비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각자 자기 삶을 살도록 해 준다고 강조했습니다.
설교 내 3–3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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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연약함과 죄를 인정하고 구원하는 나라입니다. 사람의 나라는 판단하고 정죄하는 나라죠. 그런 나라입니다. 요한복음 4장 13절,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리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내가 주는 물은 여기서 여기서 이 물이라. 물리적 물이지만 비유한다면, 야곱이 주는 물,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주는 물을 말한다고 보면 됩니다. 사람이 주는 칭찬, 인정, 사랑 속에서 결국 사람들은 서로를 요구하죠. 서로 사랑받기를 원하고, 이해받기를 바라지만, 사람의 것을 받으면 다시 목마르게 됩니다. 사람의 칭찬을 받기 시작하면, 칭찬은 좋긴 하지만 그것에 매여 버립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인정을 먹으면 그 하나로 충분합니다. 다른 걸 필요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의 칭찬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예수님의 인정 속에서 살아가는 것, 사람의 인정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는 어떤 사회가 있을까요? 사람에게 매여 있으면 결국 자기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인정 속에 살아가면 오히려 자유로워지고, 자기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세계는 각 사람이 자유롭게 자기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가 큽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요한복음 5장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 되었음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가 고치겠느냐? 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때에 나를 넣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먼저 내려가라. 베데스다 못가에서는 제일 먼저 들어가는 한 사람만 나옵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경쟁이 필수입니다. 예전에 한때 포요가 있었는데, 이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나오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고치셨나요? 제일 꼴찌에 있는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꼴찌가 1등이 되게 한 것입니다. 꼴찌의 반란이라는 말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세계에서는 가장 뒤쳐진 사람을 오히려 가장 앞세울 수 있는 세계입니다. 준비는 많이 했지만 다다라지 못한 사람도, 내놓고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는 다릅니다. 사람이 사람의 나라에서만 살면, 밀리기 시작하면 정말 어렵습니다. 자기 존재와 가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무가치한 존재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38년 된 병자처럼 가장 낮게 보이는 자라도 가장 먼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각자가 자기 삶을 살도록 해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물과 성령으로 난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성령이 주체가 되어 성령의 존재를 낳는 것입니다. 아기가 나올 때 누가 나옵니까? 엄마가 나와야 합니다. 엄마가 힘을 주고 아기를 낳습니다. 성령이 힘을 주어 영적인 존재를 태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노력하기보다는, 성령이 한 사람을 하나님의 세계로 밀어넣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믿고 기대하고 바라보면 됩니다. 태어난다는 것은 니고데모에게는 아기가 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자기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법과 전통을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살아온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태어나면 그것들은 모두 없어지고, 완전히 새로 출발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세계로 완전히 새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세계를 새롭게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스림을 받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항상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가능할까요? 새롭게 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그대로 고집하거나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항상 아기처럼, 모르는 것을 알고 배우는 태도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출발점입니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모험 소설이나 영화처럼,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가던 길로 가는지, 모험을 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요한복음 3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영의 나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나라와 땅의 나라가 있지만, 결국 사람의 나라는 경쟁 사회이고, 1등만 기억하는 세계일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뒤쳐지는 그런 세계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예수님의 세계에서는 가장 뒤쳐진 자가 가장 먼저 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세계와 땅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 영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역사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시 찾아오시고, 성령이 주체가 되어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람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역사를 이루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풍성하며 생명을 얻으며 사랑을 알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는 은혜가 풍성하도록 축복하여 주소서. 각 사람에게 항상 말씀이 임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