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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1개 · 1 / 1쪽 · 한 쪽 20개

율법 교사가 영생을 묻는 이야기 (누가복음 10장)

설교자는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율법 교사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고 되물으셨습니다. 교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대답했고, 예수님은 그 대답이 옳다며 이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사는 '내 이웃이 누굽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질문의 속내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는 데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율법을 갖추었으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여긴 그에게 영생은 자신을 더 빛나게 해 주는 액세서리처럼 비칩니다. 설교자는 이것을 하나님을 위해 수고했으니 하나님이 보상하셔야 한다고 여기는 기복 신앙과 연결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헌금하면 인생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지만, 축복이 주어지지 않을 때 그 관계 속에서는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구원이 나의 노력과 고행으로 얻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자격 없이 받은 은혜라고 강조합니다.

유재준 · 2026-10-18

설교 내 14–14문단 · 예화 1

본문 발췌 보기

이는 마치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던 질문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율법 교사가 뭐라고 했는지, 누가복음 10장 25절부터 29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내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셨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이웃이 누굽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어디 율법엔 이렇게 써 있는데, 그 이웃이 누군지 저한테 말만 해 보세요. 제가 얼마나 율법의 요구대로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지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29절 앞에 지문처럼 쓰여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 율법 교사에게 있어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단지 나를 옳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고,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더 멋진 사람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율법들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러한 것을 얻을 만한 자격과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나는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고, 도덕적으로 많은 것들이 이미 갖추어진 괜찮은 사람, 나를 옳게 보이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필요한 영생은 나를 더 빛나게 만들어 주는 액세서리와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해내었기 때문에, 마치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애쓰고 수고했으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한 채무를 갖고 계신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셔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의 형태를 기복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하나님 앞에서 '축복해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내가 주를 위해서 무언가 합당한 것을 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법적인 의무가 있다고 하나님 앞에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로 바꿔 보면, 내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여기에 예수까지 믿고,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착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간다면, 나는 더 멋지고 완벽하고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까지 믿으면 나는 더 잘될 수 있어. 교회를 다니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신앙생활하면, 하나님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주실 것이고, 성경에 약속된 축복이 나에게 다 주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신앙과 믿음에는 큰 오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약에 그러한 축복과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그 관계 속에서는 신앙에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생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무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수많은 것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에게 주셔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으신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을 주지 않겠다고 하시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은 이러한 프로세스가 절대 아닙니다. 어떠한 나의 노력, 고행, 수고, 애정과 같은 것들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이는 사실 복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았냐, 받지 않았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믿음은 무엇을 동반하는 믿음입니까? 사랑을 동반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복음의 은혜는 자격 없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는 우리가 무언가 애쓰고 노력하고 열심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삶을 자랑하는 삶, 나의 괜찮음을 증명하는 요구와 시도들로부터 벗어나, 오히려 자격 없는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나는 그러할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그럴 거 요구한 적도 없는데, 하나님이 나와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함께 해 주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의무가 없는 사람이 베푸는 사랑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와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자격 없이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격 없는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나보다 남을 더 낮게 여기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까지도 우리는 사랑하게 되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역을 통해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이러한 내용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완벽하고 능력 있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힘과 권세가 있으셔서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실 수 있는 영향력도 가지신 분이었지만, 그분은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대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셔서 왕권을 무너뜨리고 승리를 쟁취하실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진정한 복음의 참된 승리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믿음이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