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상선약수 비유
설교자는 물이 어떤 더러운 물도 받아들이고 바다에서 정화되어 다시 맑은 물로 비에 실려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물은 구정물이나 흙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결국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모습을 노자가 말한 최고의 선이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에 빗댑니다. 물처럼 온갖 이로움을 끼치면서도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삶이 최고의 선이라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가르침을 현대 사회의 경쟁 문화와 대비합니다.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경쟁해 높은 자리에 오르고, 그 자리에서 남의 것을 털어먹으려 하며, 서울로 가려는 욕망도 그런 데서 나온다고 비판합니다. 설교자는 삭개오와 바디메오처럼 예수님이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을 찾아가 친구가 되어 주셨다는 점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설교 내 78–79문단 · 예화 9
본문 발췌 보기
지난번에 한 번 말씀드렸죠. 유교 문화라든지 오늘 현대 한국 문화라는 것은 죽기 살기로 경쟁해서 높은 데 올라가서 남의 것을 털어먹고 짜먹고 편하게 놀고먹고 이런 걸 하잖아. 반면에 유교가 아니고 도가 같은, 노자, 장자 이런 사람을 따라갔던 사람은 높은 데 올라가는 거 안 가고 아래로 내려가고, 물처럼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면서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요. 여러분, 물을 봐요. “구정물은 안 돼. 흙물은 안 돼.”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떤 물도 좋아. 가져와라. 그리고는 바다까지 가서 소금 있는 데까지 가서 정화해서 또다시 맑은 물로 비에 실어서 여기까지 가져오는 거 봐요. 그래서 노자가 가장 고차원적인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 상선약수라, 물과 같이 온갖 이로움을 끼치면서도 끝없이 아래로 내려간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