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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2개 · 1 / 1쪽 · 한 쪽 20개

담배꽁초 하나에서 번지는 대형산불

설교자는 수백만 평, 수천만 평에 이르는 거대한 숲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대형산불을 먼저 떠올립니다. 사람들은 이런 큰 불이 엄청난 폭발이나 거대한 번개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설교자는 실제로는 등산객이 무심코 버린 작은 담배꽁초 하나나 캠프파이어 자리에 남은 미세한 불씨 하나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합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던 그 작은 불씨는 바람을 타는 순간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온 산림과 마을을 집어삼킵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꺼내며 우리 몸속에도 이와 같은 불씨가 숨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혀라고 말합니다. 그는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는 입술이 가장 거룩한 찬양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마음에 큰 상처의 불을 지를 수 있는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어 야고보서 3장 5절과 6절을 읽으며,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지, 혀가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른다는 말씀을 소개합니다. 설교자의 메시지는 혀가 작은 지체라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말 한마디의 불씨가 가정과 공동체 전체로 번질 수 있으므로 말의 불씨를 깊이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기 전에 불씨를 꺼야 하듯, 말이 번지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적용으로 그는 이 설교의 방향을 엽니다.

김살렘 · 2026-10-19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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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네. 다시 한번 기도의 자리 가운데 나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수백만 평 혹은 수천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숲을 한 순간의 제더미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형산불일 것입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가끔 보는 그런 거대한 숲도 한 순간에 제더미로 만드는 대형산불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정말 대형산불이기 때문에 뭔가 큰 폭발이나 거대한 번개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대형산불은 등등상객이 무심코 버린 작은 담배꽁초 하나, 혹은 캠프파이어 자리에 남은 미세한 불씨 하나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작은 불씨가 바람을 타는 순간,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온 산림과 마을을 집어삼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야고보서 3장은 우리의 몸속에 바로 이런 불씨가 숨어 있다고 말해 줍니다. 야고보서 3장 5절과 6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리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술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샘에서 나는 짠물과 단물의 자연 비유

설교자는 야고보서 3장 11절과 12절에 나오는 샘의 비유를 소개합니다. 한 샘의 구멍에서 단물과 쓴물이 함께 나올 수 없고, 무화과나무가 감을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먼저 짚습니다. 설교자는 이를 통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한다는 말씀이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를 말한다고 설명합니다. 짠물이 솟는 샘에게 단물을 내라고 명령하고 결심을 아무리 강하게 해도, 근원이 짠물이라면 물은 계속 짠물일 뿐입니다. 설교자는 이 비유를 우리 인생에 적용하며, 타락하여 짠물과 독을 뿜어내는 사람이 스스로 단물을 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간의 의지와 결단, 도덕적 훈련만으로는 말이 바뀔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말이 달라지려면 겉의 행동을 고치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그 뿌리와 근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설교자의 메시지입니다.

김살렘 · 2026-10-19

설교 내 6–6문단 · 예화 2

본문 발췌 보기

오늘 본문은 11절과 12절에 이르러 결정적인 자연의 비유를 듭니다. '샘의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나무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짠물이 단물을 낼 수 없다는 것은 본질의 문제를 말합니다. 짠물을 내는 샘에게 아무리 단물을 내라고 법을 가하고 결심을 하더라도, 근원이 짠물이라면 물은 계속 짠물일 뿐입니다. 타락해서 짠물과 독을 뿜어내는 우리 인생은 어떻게 단물을 낼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의지와 결단, 도덕적 훈련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그 근원이, 그 뿌리가 바뀌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