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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2개 · 1 / 1쪽 · 한 쪽 20개

루터가 자신을 고백한 말

설교자는 루터가 스스로를 돌아본 고백을 인용하며 그의 내면을 소개합니다. 루터는 자신이 훌륭한 수도사였고 규칙을 매우 엄격하게 지켰기에, 규율을 통해 천국에 갈 수 있는 수도사가 있다면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그는 늘 스스로를 의심했고, 바르게 행하지 않았다, 충분히 참여하지 않았다, 고해에서 빠뜨렸다는 생각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이처럼 불확실하고 약하며 고통받는 양심을 인간의 전통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은 노력할수록 더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루터가 매일 깨달았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이 깨달음이 바로 루터가 로마서 말씀을 붙들고 새로운 진리를 찾게 된 출발점이었다고 적용합니다.

김현관 · 2026-10-25

설교 내 4–4문단 · 예화 10

본문 발췌 보기

루터의 직접 고백인데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훌륭한 수도사였으며 규칙을 너무나 엄격하게 잘 지켜서, 만일 어떤 수도사가 규율들을 통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바로 그 수도사일 것이다." 그는 항상 의심하며 말했다. "너는 그 일을 바르게 행하지 않았다. 너는 충분히 참여하지 않았다. 너는 그것을 고해에서 빠뜨렸다." 불확실하고 약하며 고통받는 양심을 인간의 전통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은, 노력할수록 더 불확실하고 약하며 고통받는다는 것을 매일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을 붙들고, 루터가 비텐베르크 수도원에서 엄청나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영적 법민으로 지내던 그 시절에,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루터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느 날, 로마서 1장 17절, 오늘 함께 읽으신 그 구절을 읽을 때, 갑자기 루터에게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이걸 바로 '탑속의 체험'이라고 부르는데요. 실제로 비텐베르크에 가면, 어거스틴 수도원 안에 루터가 체험했던 그 장소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아이폰으로 찍어온 사진이거든요. 그때 루터의 고백을 보시면, "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 이 말씀의 의미를 밤낮 묵상하던 중에, 마침내 믿음으로 인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수동적 의를 깨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내가 새로 태어났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증오했었던 하나님의 의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바울 서신의 이 구절은 내게 바로 낙원의 문이 되었다. 바로 루터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로마서 1장 17절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의가 왜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고백하는 이신칭의의 교리입니다. 즉,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해진다는 성경의 진리가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 속에서 오랫동안 가리워져 있다가 다시금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 배경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워진다"라고 하는 생각을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생각을 당연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가치들을, 세상의 원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아무런 노력이나 공로 없이 무엇인가를 얻는 경우가 우리에게 얼마나 있습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든, 일을 열심히 하든,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인정받기 위해 우리는 노력합니다. 우리는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다는 원리를 배워 왔고,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는 어떻습니까? 너무나 중요하죠. 다른 모든 문제들은 이 세상 살다가 사라질 문제들입니다. 구원의 문제는 영혼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공로 없이, 자신의 어떤 의로운 행위 없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복락을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이라고 여러분들은 장담하고 확신하고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일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 앞에서 철저히 무너져 본 사람. 그래서 자신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이 요구하신 의를 도저히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어떤 고상한 행위나 선행으로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루터가 발견한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로마서 말씀을 붙들고 밤낮 주로 묵상하던 중에, 루터는 이러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의가 의인이 하나님의 선물,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그 의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믿음으로 인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수동적 의를 지시하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만족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실수하고 죄를 범하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만한 선행을 쌓아올 수도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획득하신 그 공로가 우리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그 옷을 입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가리워지고, 이제 하나님이 보실 때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복음이며, 우리에게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다윗도 시편에서 바로 이러한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노래합니다. 시편 32편 1절 말씀에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자신의 죄된 본성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 때문에, 우리의 죄된 본성이 가리워져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이며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평생 자신의 죄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양심의 자유를 얻게 되었을 때, 루터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래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 순간 즉각적으로 내가 새로 태어났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진짜 낙원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계십니까? 우린 때때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차고 넘쳐서, 그 존재도 의식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 채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매 순간 우리가 공기를 들이마시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인데, 항상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에 공기가 공짜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거저 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의와 그로 인해 그분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허락해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들을 마치 값이 없는 것처럼 여기며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값으로 획득해 내신 그 하나님의 의를 마치 자신들이 보관하고 마음대로 나눠 줄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인간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것인 것처럼 변질시킨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여, 종교 개혁자들이 피흘리며 싸웠기 때문에 이신칭의의 교리가 재발견되었고, 이 새로운 진리를 시대마다 지켜내고 간직해온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종교 개혁의 신앙을 고백하고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종교 개혁 기념주일을 맞아서, 다시 한번 우리 개신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이 구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을 이번 주간 깊이 묵상해 보시면서, 의인된 확신을 가지시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이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비텐베르크 수도원의 '탑 속의 체험' 현장

설교자는 루터가 비텐베르크 수도원에서 로마서 1장 17절을 묵상하던 중 일어난 변화를 '탑 속의 체험'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합니다. 루터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의 뜻을 밤낮으로 묵상하다가, 믿음으로 인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수동적 의를 깨닫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 그 순간 루터는 새로 태어난 느낌이 들었고,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전에는 증오했던 하나님의 의를 루터가 사랑하기 시작했고, 바울 서신의 이 구절이 낙원의 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설교자는 직접 촬영한 사진을 보여 주며, 비텐베르크 어거스틴 수도원 안에 그 장소가 아직 남아 있다고 전합니다. 이 체험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칭해진다는 이신칭의의 발견으로 이어졌다고 설교자는 강조합니다.

김현관 · 2026-10-25

설교 내 4–4문단 · 예화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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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직접 고백인데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훌륭한 수도사였으며 규칙을 너무나 엄격하게 잘 지켜서, 만일 어떤 수도사가 규율들을 통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바로 그 수도사일 것이다." 그는 항상 의심하며 말했다. "너는 그 일을 바르게 행하지 않았다. 너는 충분히 참여하지 않았다. 너는 그것을 고해에서 빠뜨렸다." 불확실하고 약하며 고통받는 양심을 인간의 전통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은, 노력할수록 더 불확실하고 약하며 고통받는다는 것을 매일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을 붙들고, 루터가 비텐베르크 수도원에서 엄청나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영적 법민으로 지내던 그 시절에,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루터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느 날, 로마서 1장 17절, 오늘 함께 읽으신 그 구절을 읽을 때, 갑자기 루터에게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이걸 바로 '탑속의 체험'이라고 부르는데요. 실제로 비텐베르크에 가면, 어거스틴 수도원 안에 루터가 체험했던 그 장소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아이폰으로 찍어온 사진이거든요. 그때 루터의 고백을 보시면, "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 이 말씀의 의미를 밤낮 묵상하던 중에, 마침내 믿음으로 인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수동적 의를 깨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내가 새로 태어났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증오했었던 하나님의 의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바울 서신의 이 구절은 내게 바로 낙원의 문이 되었다. 바로 루터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로마서 1장 17절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의가 왜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고백하는 이신칭의의 교리입니다. 즉,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해진다는 성경의 진리가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 속에서 오랫동안 가리워져 있다가 다시금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 배경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워진다"라고 하는 생각을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생각을 당연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가치들을, 세상의 원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아무런 노력이나 공로 없이 무엇인가를 얻는 경우가 우리에게 얼마나 있습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든, 일을 열심히 하든,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인정받기 위해 우리는 노력합니다. 우리는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다는 원리를 배워 왔고,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는 어떻습니까? 너무나 중요하죠. 다른 모든 문제들은 이 세상 살다가 사라질 문제들입니다. 구원의 문제는 영혼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공로 없이, 자신의 어떤 의로운 행위 없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복락을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이라고 여러분들은 장담하고 확신하고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일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 앞에서 철저히 무너져 본 사람. 그래서 자신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이 요구하신 의를 도저히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어떤 고상한 행위나 선행으로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루터가 발견한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로마서 말씀을 붙들고 밤낮 주로 묵상하던 중에, 루터는 이러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의가 의인이 하나님의 선물,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그 의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믿음으로 인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수동적 의를 지시하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만족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실수하고 죄를 범하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만한 선행을 쌓아올 수도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획득하신 그 공로가 우리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그 옷을 입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가리워지고, 이제 하나님이 보실 때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복음이며, 우리에게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다윗도 시편에서 바로 이러한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노래합니다. 시편 32편 1절 말씀에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자신의 죄된 본성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 때문에, 우리의 죄된 본성이 가리워져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이며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평생 자신의 죄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양심의 자유를 얻게 되었을 때, 루터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래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 순간 즉각적으로 내가 새로 태어났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진짜 낙원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계십니까? 우린 때때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차고 넘쳐서, 그 존재도 의식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 채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매 순간 우리가 공기를 들이마시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인데, 항상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에 공기가 공짜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거저 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의와 그로 인해 그분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허락해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들을 마치 값이 없는 것처럼 여기며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값으로 획득해 내신 그 하나님의 의를 마치 자신들이 보관하고 마음대로 나눠 줄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인간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것인 것처럼 변질시킨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여, 종교 개혁자들이 피흘리며 싸웠기 때문에 이신칭의의 교리가 재발견되었고, 이 새로운 진리를 시대마다 지켜내고 간직해온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종교 개혁의 신앙을 고백하고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종교 개혁 기념주일을 맞아서, 다시 한번 우리 개신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이 구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을 이번 주간 깊이 묵상해 보시면서, 의인된 확신을 가지시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이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