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한국군 증오비와 민간인 희생
설교자는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이 30만 명 넘게 파병되어 5,099명이 숨졌다고 말합니다. 부상자가 11만 명에 이르고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사람도 십몇만 명이 넘는다고 전합니다. 설교자는 파병이 미국의 인정을 받으려는 뜻에서 이루어졌고, 그 대가로 경제 지원과 무기 교체를 약속받았다는 취지로 설명합니다. 또한 베트남의 여러 마을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를 언급하며, 밝혀진 것만 해도 민간인 1,773명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 젊은이가 남의 나라에서 죽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이 파병을 생명을 희생시킨 악한 선택으로 비판합니다.
설교 내 53–55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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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닦은 거, 박정희 없어도 잘 닦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지금 박정희 없는데 왜 고속도로를 잘 닦는 거예요?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거예요. 박정희도 자기가 남로당 군사 총책으로 있었던 신분 세탁을 하기 위해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서 자기가 베트남에 군사를 파송하겠다. 그래 가지고 ‘이 사람 공산주의에서 벗어났는가 보다’ 하고 인정받으려고 30만 명 이상을 베트남에 보내서 5,099명이 죽었어요. 5,099명이 죽었고 부상당한 사람이 11만 명에다가, 그다음에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사람이 십몇 만 명이 넘어. 그 비극을. 그래서 돈 좀 받아 가지고 브라운 각서를 통해 경제 지원을 좀 해 주겠다, 그리고 한국군 총을 카빈총이나 엠원 같은 구닥다리 총에서 현대 무기인 엠십육으로 바꿔 주겠다고. 그런 것을 위해 생명을 희생한다고? 그때니까 그냥 반대 못 하는 시대라 그런지 몰라도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을 겁니다. 베트남에 가면 이게 지금 베트남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한국군을 증오한다는 비석이 한 50군데 정도 서 있는데, 이게 지금 1966년도 10월 9일부터 여기서 빈득사라는, 이 ‘사’는 아마 절 같아요. 151명이 죽었고, 빈호아사에서 430명이 제일 많이 죽었는데, 거기 증오비가 서 있는, 이게 바로 그 증오비야. 빈안사, 빈꺼사, 빈호아사, 크럼촌, 북빈촌, 빈박촌, 지엔촌, 비록촌, 하다위촌,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많이 죽여 가지고, 여기서 한국 사람에게 학살당한 양민들이 1,773명, 밝혀진 것만 그래. 밝혀진 것만. 우리 한국 군대 기록만. 그런데 베트남 군대에서 아마 조사하면 이보다 열 배나 더 나올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