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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3개 · 1 / 1쪽 · 한 쪽 20개

베트남전쟁과 68혁명 이야기

설교자는 1968년 무렵 소위 68혁명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시작해 프랑스, 독일, 미국, 멕시코를 거쳐 일본까지 번졌다고 전합니다. 그 배경에는 베트남전쟁의 장면들이 텔레비전 카메라에 담겨 전 세계에 공개되면서, 전쟁을 신문 글자가 아니라 실제 사람의 죽음으로 보게 된 일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독일의 젊은이들이 미국의 전쟁을 부도덕하다고 여기며 반전 시위를 벌였고, 공산주의자인 호찌민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고 전합니다. 설교자는 이 흐름을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자유를 주장한 움직임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생명을 해치는 전쟁과 정권은 지지할 수 없다는 적용으로 이어 갑니다.

노우호 · 2026-10-23

설교 내 63–64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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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도에 소위 68혁명이라는 바람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프랑스로, 독일로, 미국으로, 멕시코로 해서 일본까지 한 바퀴 돕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그전에는 전쟁 이야기를 신문의 글자로 읽었는데, 68년도에는 베트남전쟁 장면들,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텔레비전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온 세계에 공개됩니다. 그것을 보더니 이십 대 정도의 청년들이, 늙은 사람들은 사고가 굳어서 안 되는가 봐요, 젊은 사람들이 ‘이게 뭐야? 미국이 저렇게 부도덕한 전쟁을 한다고?’ 해서 독일, 서독에서부터 베트남전쟁 반대를 하며 호찌민 편을 들어요. 호찌민은 공산주의자인데 그래도 미국보다는 호찌민이 더 옳다고 해서, 독일 땅에서 젊은 애들이 피켓을 들어요. 호찌민의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데 수많은 청년들이 나와서 “호, 호, 호, 호, 호, 호, 호찌민! 호, 호, 호, 호, 호찌민!” 이렇게 하며 68혁명이 일어납니다. 그 혁명이 온 세계를 다 돌면서 낡아 빠진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진정한 자유를 주장하는데, 어디까지 와서 끝나느냐? 일본까지 와서 끝나요.

1950년 대전형무소 학살과 보도연맹 학살

설교자는 1950년 6월 28일 이승만 정권이 대전형무소에 갇힌 4천여 명의 재소자를 재판 없이 학살해 대전 산내면 골령골에 묻었다고 말합니다. 6월 25일 전쟁이 난 직후 감옥 문이 열리면 재소자들이 적군에 가담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명령이 내려졌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목포형무소를 포함해 전국 형무소의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었다고 전합니다. 또한 각 군의 보도연맹원들이 군마다 네다섯 곳에서 순식간에 학살되어 묻혔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산청의 내공리 등 지역의 아픈 역사도 함께 짚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생명을 해친 정치의 예로 제시하며 이승만 정권의 책임으로 연결합니다. 아무리 다른 업적이 있어도 생명을 함부로 죽인 정치는 악이라는 것이 설교자의 메시지입니다.

노우호 · 2026-10-21

설교 내 46–49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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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도 좀요. 제가 이승만을 싫어하는 이유는요, 이승만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어. 그때는 어렵고, 이승만이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고 한 것도 없어. 아무것도. 그런데 지금 여기는 남한에 있는 군 이름들인데 봐요. 이 군이 133개 군이야. 이승만 당시에 133개 군인데, 1950년 6월 28일에 대전에 와서 대전형무소에 갇혀 있는 4천 명이 넘는 재소자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학살해 가지고 대전시 산내면 골령골에 세계에서 제일 긴 무덤에 묻었다. 최근에 그거 다 발굴돼 나온 거야. 그걸 처음으로 해 가지고, 6월 25일에 전쟁이 났는데 6월 28일에 대전에 와서 명령을 내려 가지고 형무소에 있는 것부터, 전쟁 나서 김일성의 군대가 와서 감옥 문을 열어 버리면 다 김일성의 군대가 돼서 나한테 칼을 들고 덤빌 놈들이다, 해 가지고 다 죽여라. 목포형무소를 해 가지고 전국에 있는 모든 형무소에 있는 사람을 전부 다 척살합니다. 재판도 없이 그냥 막 척살하는 거예요. 그리고 각 군의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 133개 군마다 한 군에 네 군데, 다섯 군데에다가 보도연맹원들을 다 잡아다가 순식간에 학살해서 묻어 버린 거예요. 우리 산청에는 내공리라고 있어요. 덕산 하면 내공리, 거기에 산청군, 단성 이런 데 사람들을 전부 갖다가 묻었다고. 그리고 아시는 대로 방곡리 가서 봤잖아요. 705명 죽은 거. 제가 지금 인터넷 방송을 보고 계시는 분들,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여러분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어떤 군 이름을 타이핑하고 그 뒤에다가, 만약에 함양 같으면 함양군, 거창이면 거창군, 합천이면 합천군 쓰고 그 뒤에 양민 학살, 다른 거 쓰지 말고 ‘합천군 양민 학살’ 해 가지고 구글에 검색해 보세요. 무슨 군 이름을 치고 그 뒤에 양민 학살을 붙여서 검색하면 보통 죽은 게 200명, 300명, 50명, 100명 해 가지고 한 군당 네 군데, 다섯 군데에 학살지를 만들어서 파묻었다고. 그때가 모내기할 때인데, 6월 달이니까. 6월 말에서 9월까지 한 두세 달 동안에 동민들에게 이름을 부르면서 삽이나 곡괭이를 가져오라. 홍수 준비하는 일이라고 해서 바쁜 농번기인데 가지고 갔어요. 구덩이를 파라는 거예요. 다 파니까 그 구덩이에 들어가라는 거예요. 다 들어가자 총으로 긁어 가지고 확인 사살하고, 기름을 뿌려서 다 태운 거예요. 북한에서 군대가 내려왔는데 자국민들을 그렇게 죽여 줬다니까. 이승만 정권이, 이승만이 직접 명령한 거예요. 전부 다. 그래서 전국에 그렇게 죽인 학살지가 700곳이 넘어요. 이런 사람을 존경하라고? 이걸 국부라고? 국가의 아버지라고? 국가의 부패자야. 이거는 완전히 코리안 킬링 필드야.

베트남 전쟁 한국군 증오비와 민간인 희생

설교자는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이 30만 명 넘게 파병되어 5,099명이 숨졌다고 말합니다. 부상자가 11만 명에 이르고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사람도 십몇만 명이 넘는다고 전합니다. 설교자는 파병이 미국의 인정을 받으려는 뜻에서 이루어졌고, 그 대가로 경제 지원과 무기 교체를 약속받았다는 취지로 설명합니다. 또한 베트남의 여러 마을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를 언급하며, 밝혀진 것만 해도 민간인 1,773명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 젊은이가 남의 나라에서 죽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이 파병을 생명을 희생시킨 악한 선택으로 비판합니다.

노우호 · 2026-10-21

설교 내 53–55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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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닦은 거, 박정희 없어도 잘 닦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지금 박정희 없는데 왜 고속도로를 잘 닦는 거예요?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거예요. 박정희도 자기가 남로당 군사 총책으로 있었던 신분 세탁을 하기 위해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서 자기가 베트남에 군사를 파송하겠다. 그래 가지고 ‘이 사람 공산주의에서 벗어났는가 보다’ 하고 인정받으려고 30만 명 이상을 베트남에 보내서 5,099명이 죽었어요. 5,099명이 죽었고 부상당한 사람이 11만 명에다가, 그다음에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사람이 십몇 만 명이 넘어. 그 비극을. 그래서 돈 좀 받아 가지고 브라운 각서를 통해 경제 지원을 좀 해 주겠다, 그리고 한국군 총을 카빈총이나 엠원 같은 구닥다리 총에서 현대 무기인 엠십육으로 바꿔 주겠다고. 그런 것을 위해 생명을 희생한다고? 그때니까 그냥 반대 못 하는 시대라 그런지 몰라도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을 겁니다. 베트남에 가면 이게 지금 베트남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한국군을 증오한다는 비석이 한 50군데 정도 서 있는데, 이게 지금 1966년도 10월 9일부터 여기서 빈득사라는, 이 ‘사’는 아마 절 같아요. 151명이 죽었고, 빈호아사에서 430명이 제일 많이 죽었는데, 거기 증오비가 서 있는, 이게 바로 그 증오비야. 빈안사, 빈꺼사, 빈호아사, 크럼촌, 북빈촌, 빈박촌, 지엔촌, 비록촌, 하다위촌,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많이 죽여 가지고, 여기서 한국 사람에게 학살당한 양민들이 1,773명, 밝혀진 것만 그래. 밝혀진 것만. 우리 한국 군대 기록만. 그런데 베트남 군대에서 아마 조사하면 이보다 열 배나 더 나올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