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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2개 · 1 / 1쪽 · 한 쪽 20개

자전거 위 어깨 사이에 누운 개

설교자는 여행 중 작은 마을 길가에서 본 장면을 전합니다. 머리가 긴 청년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개는 주인의 어깨뼈 사이에 누워 있었고 앞발은 주인의 앞에서 교차되어 있었습니다. 동행한 수는 자전거가 거리를 달리는데도 개가 그렇게 신뢰하는 모습이 놀랍다고 말했습니다. 개는 한 번도 놀라거나 움직이지 않고 편히 쉬고 있었습니다. 20분쯤 뒤 다른 곳에서 같은 남자와 자전거, 개를 다시 보았는데 똑같은 장면이었습니다. 한 시간쯤 뒤에는 산책로에서 그들과 다시 마주쳤고, 남자가 다가와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개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습니다. 수가 강아지 때부터 키웠는지 묻자, 남자는 개가 꽤 나이가 들었을 때 보호소에서 구조해 왔고 그때부터 줄곧 자신을 믿고 따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설교자는 이 모습에서 신명기 33장 12절의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그분 안에서 안전히 거하리니'라는 말씀을 떠올립니다. 그 개가 핏불이었다고 밝히며, 살기를 내뿜고 살인을 일삼던 다소 사람 사울이 구원받아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어깨 위에 안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연결합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을 알기에 완전한 안전 속에서 살 수 있다고 적용합니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28

설교 내 24–27문단 · 예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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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와 제가 지난 몇 주 동안 여행하면서 많은 다른 것들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작은 어느 마을의 길가에 서 있었을 때 둘 다 동시에 이것을 알아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머리가 길었습니다. 그것이 특별히 눈에 띈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결국 눈에 띈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에 띈 것은 개가 있던 위치였습니다. 그는 자전거에 앉아 있었고, 개는 그의 어깨뼈 사이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 사람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제 자전거이고, 여기 제 개가 있고, 그의 머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콧소리] 뒤에서 보면 제 개의 등이 제 어깨뼈 사이에 누워 있고, 뒷발은 이렇게 아래로 내려와 있으며, 꼬리는 그 사이에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개의 머리 앞쪽에는 발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주인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의 앞발은 이렇게 그의 앞에서 교차되어 있었습니다. 수가 제게 말했습니다. '개가 그렇게 신뢰할 수 있다니 놀랍다. 특히 자전거가 거리를 달리고 있을 때 말이야.' 그 개는 한 번도 놀라거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냥 쉬고 있었습니다. 20분쯤 뒤, 우리가 걷던 다른 곳에서 같은 남자, 같은 자전거, 같은 개를 다시 만났습니다. 똑같은 장면이었죠. 저것 좀 보세요. 그로부터 한 시간쯤 뒤, 우리는 자전거와 그 남자, 그리고 그 개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계획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우리는 산책로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오고 있습니까? 바로 그 남자와 개입니다. 그가 다가와서,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다른 사람에게 멈춰 서서 말을 겁니다. 그리고 개는 저렇게 가만히 있습니다. 그때 수가 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개가 당신에게 그렇게 몸을 맡기고 그토록 편안하게 누워 있다니 정말 놀랍네요. 강아지 때부터 키우셨나요?」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이 녀석이 꽤 나이가 들었을 때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보호소에서 구조해 왔더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저를 믿고 따릅니다.」 그 말을 듣고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신명기 33장의 그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아, 제가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그 개가 어떤 종류였는지 궁금하시죠?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말씀드리면, 핏불이었습니다. 핏불이요. 제가 핏불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이것이 바로 다소 사람 사울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불을 뿜듯 위협과 살기를 내뿜으며 살인을 일삼던 핏불 같은 사람이, 구원받아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분의 어깨 위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와 생명을 아버지께 맡김

설교자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남기신 마지막 말씀을 떠올립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2장 23절은 예수님이 욕을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실 때에도 맞대어 욕하지 않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다고 전합니다. 설교자는 그 말씀을 따라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기도를 인용합니다. 그는 주님을 의지하는 인생이란 곧 내 생명을 아버지께 맡기는 인생이라고 설명합니다. 세상에는 내가 가진 것과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아서, 그것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본문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의 손에 맡겨라'고 말씀하신다고 적용합니다. 설교자는 고난 가운데서도 인간적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부탁하며 살아가자고 권면합니다.

양석효 · 2026-10-22

설교 내 8–8문단 · 예화 4

본문 발췌 보기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썩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는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여러분, 고대 동방에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재산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창고의 곡식이고, 두 번째는 옷이며, 세 번째는 쌓아둔 금과 은이었습니다. 창고의 곡식도 있고, 좋은 옷도 있고, 금과 은도 쌓여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보면서 만족하고 사는 인생입니다. '이 정도면 내 인생 괜찮은 거지', '이 정도면 잘 사는 거지' 이렇게 만족하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하나님 없이도 자기가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 곡식은 썩을 것이고, 옷은 썩을 것이고, 금과 은은 녹이 슬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금과 은은 원래 녹이 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금과 은이 녹이 슬 거야. 이렇게 얘기합니다. 다 사라질 거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 말씀을 보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헛된 것들이다라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많이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인스타를 많이 하지는 않는데, 인스타그램 같은 걸 보고 있으면 SNS를 보고 있으면 화려한 것, 좋아 보이는 것, 대단해 보이는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나 빼고는 다 잘 사는 것처럼 느껴져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죠. 저도 운동을 좋아해서 러닝이나 사이클 같은 걸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 보면 최근 러닝 붐이 일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기록을 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4분 30초로 뛰었다', '42.195km 일곱, 서브 3, 서브 4' 이렇게 보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뛰는 것처럼 보입니다.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나도 저기 도달해야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삽니다. 다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아이 펀런 하는 게 중요합니다. 펀런 죄송합니다. 영어 잘 못해서 펀런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들 보면 절대 펀런 하지 않습니다. 기록에 매어 가지고 인스타에 올라와 있는 기록 보고 나도 저기 도달해야지. 허상가도 같은 거죠. 그게 인생이 그런 것 같습니다. 부자들 보고 잘 사는 인생들 보면 그 뒤에 감춰져 있는 허상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 모습을 닮아가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이건 SNS죠. 그런데 정말 그런 것들이 우리 인생을 풍족하게 하고 책임져 주는 걸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부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는 뭐냐면, 그것들이 썩고 썩고 녹이 슬었다고 얘기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너를 책임져 주지 못할 것이다. 마음의 살진 자의 첫 번째 특징은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4절의 말씀입니다. 같이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삭기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귀에 들렸느니라.' 마음이 살진 자의 두 번째 특징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무관심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프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상관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재물이 부족해서 품삯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재물을 쌓아두고, 두었고, 그것으로 만족하니까 다른 사람이 고통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내 배를 채우기에 급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풍족하고 많은 것들을 누리고 많은 방탕한 삶을 살고 있는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울고 있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 재물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는 중요한데, 마땅히 돌아가야 될 그 삭이 돌아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마음이 살찌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리는 것에는 관심이 많은데, 다른 사람이 겪는 어려움에는 무감각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참 재미있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주지 않는 삭기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표현입니까?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주지 않는 삭기 소리를 지르고, 그 비명과 소리를 누가 듣고 있다고 얘기합니까? 하나님이 듣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그렇게 얘기합니다. 마음이 살진 자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이미 나의 부유함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고통당하는 것을 바라보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마음 상한 자의 소리를 듣고 있다. 이렇게 성경은 이야기를 합니다. 마음이 살진 세 번째 특징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심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5절 보니까 이렇습니다. '너희가 땅에서 사취하고 방종하여 살육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심판이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죽음 너머에 어떤 것이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을 생각해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끝이 있고, 그 끝 너머에 또 다른 삶이 있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 그 너머에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은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알고 있고, 그 죽음 너머의 생명도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살진 자들은 죽음 너머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내가 누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그것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음 너머의 그 인생에 대해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이 없는 인생은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끝을 넘어 영원히 사는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마음이 살 있다면 지금과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당장 하고 있는 그것에 집중해서, 그 이후의 삶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살찐 자들, 부한 자들은 그런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재물에 한물되어 있고, 그것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고, 두 번째는 내 주변에 아픈 그 신음 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무감각합니다. 세 번째로는 끝이 없이 지금 생애가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심판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첫 번째 장사하는 자, 두 번째 부자, 둘 다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삶을 살고 있지 못한 인생입니다. 오늘 세 번째 마지막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6절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의인을 정지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의인은 일차적으로는 당시 부자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던 가난한 성도들을 말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지 당했다'라는 것은 법정 용어거든요. 그러니까 부당하게 법정적으로도 부당한 어떤 수탈을 당해서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의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했냐면, 오늘 본문을 보니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않았다'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너무 좋을 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참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너무 안 좋고, 너무 어렵고, 너무 힘들 때 무엇을 하라고 성경 기록합니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하나님께 모든 것들을 맡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의 힘입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어떤 수단을 생각하고 이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은혜를 사모함으로 기다리고 참는다는 의미가 여기 포함되어 있습니다. 7절을 보니까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9절에 보니깐요. '심판주가 문 밖에서 계시니라.' 오늘을 살지만 우리는 내일을 기다리는 자들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강고하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인간적 방법을 생각해서 어떤 방법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해결하심을 기다리고 그 응답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게 의인이라고 오늘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의 모습을 말씀하시는데요. 제가 한번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실 때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대요.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했다고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마지막 말씀 기억합니까?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그 말씀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정말 주님을 의지한다면, 주님을 의지하는 인생은 내 생명을 아버지께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굉장히 많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정말 많고, 누릴 수 있는 것도 많고, 그것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 착각할 수 있는 그 너무 쉬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가운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손에 맡겨라'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의지합니까? 오늘 본문을 보시면서 나는 오늘 어떤 것을 의지하는지를 살펴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기도하실 때에, 어 나의 삶을 한번 좀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들, 내가 고집하고 있는 것들, 그것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오늘 기도하시면서 우리 인생을 한번 돌아보고, 정말 하나님께 모든 것들을 맡기는 인생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하면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