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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3개 · 1 / 1쪽 · 한 쪽 20개

이삭의 우물 이야기

설교자는 창세기의 이삭이 브엘세바 근방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께서 애굽에 가지 말고 이 땅에 머물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해 거부가 된 이야기를 전합니다. 목축에 우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한 뒤, 이삭이 우물을 팠지만 그랄 목자들이 와서 다투자 싸움을 피하기 위해 우물을 내주었다고 말합니다. 다른 곳에서 우물을 팠을 때 그랄 목자들이 다시 대적하려 하자 이삭은 또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팠습니다. 세 번째 우물에서는 물이 넉넉히 나와 풀밭과 양 떼가 불어나고 평화롭게 우물을 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그랄 목자들은 이삭에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는 것 같다고 말하며 사과하고 서로 침략하지 않는 약속을 맺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이야기가 소유보다 존재를 중시한 삶의 모범이며, 예수님께서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신 말씀과 맞닿아 있다고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3

설교 내 25–33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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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문제를 가지고 성경은 진작부터 이야기하고 있어요. 여러분, 이 사람이 누구 같아요? 이삭이에요. 이삭이 브엘세바 근방에서 양을 치는데 우물을 가지고 그랄 목자들이 와서 시비를 거는 거예요. 이삭이 거부가 됐거든요. “애굽에 가지 말고 이 땅에 거하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걸핏하면 미국 가려고 그래, 그렇죠? 그때 미국이 뭐냐? 그때 미국이 애굽이야. 나일강 물이 넘치고 비옥한 토양에 양식 걱정 없고 외적의 침입도 없고, 최고로 좋은 곳이 애굽인 거라. 전부 다 그렇게 가는데 심지어 아브라함도 갔다가, 물론 혼나고 왔지만, 이삭도 좀 어려우면 또 갈까 싶어서 하나님께서 미리 “너 애굽 가지 말고 여기 유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그랬더니 이삭이 두말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애굽에 가지 않고 거기 머물렀더니 정말 백 배나 주신 거야. 거부가 됐어요. 여러분, 거부가 되면 집에서 같이 일하는 청지기나 노예도 있고 가족도 있고, 목축하는 사람이 거부라는 것은 양 떼가 많다는 거예요. 양 떼가 많으면 풀밭이 좀 넓어야 하고, 그다음에 중요한 게 우물이에요. 양이나 염소는 풀 속에 일정량의 수분이 있기 때문에 물을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양들도 물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우물을 파야 하는데 요즘처럼 우물 파는 기계가 발달한 게 아니고, 어디 산을 딱 둘러봐서 여기쯤 파면 물이 나겠다는 것을 경험상 알아서 파는데, 상당히 깊이 파요. 우리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깊이 파야 물이 있습니다. 또 깊이 파는데 흙으로 된 땅이라면 시간만 가면 파낼 수 있지. 그런데 돌이 나와 버렸어요. 그럼 발파도 못 하는데 어떻게 해요? 그런 면에서 우물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생명수, 생명과 직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소유 중에서 굉장히 소중한 소유가 우물입니다. 어떤 데는 우리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물줄기가 바위틈에서 졸졸 나오는데, 아인 카렘이라고 세례 요한의 본가, 엘리사벳이 있던 그 본가 동네 입구에 가면 진짜 바위틈에서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물이 졸졸 나와요. 이것 하나밖에 없는데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물줄기 하나 때문에 한 동네가 삽니다. 그것이 없으면 못 사는 거예요. 우물은 생명과 같아요. 그런데 목자들이 와서 다투니까 이삭이 ‘이걸 다투네. 다투면 싸움 나지’ 하는 거예요. 싸움이 나면 싸워서 이겨도 누군가는 죽어야 돼. 그런 목자들이 우물이 탐나서 우물만 빼앗으려고 온 것이 아니에요. 우물이 생명과 같은데 그것을 내놓으라 하면 순순히 내놓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바로 싸움 나죠. 싸움이 나면 우물만 빼앗는 게 아니고 다 죽여 버리고 빼앗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삭이 ‘소유냐 존재냐? 우물을 안 뺏기려고 하다가는 우물도 뺏기고 생명도 뺏길 것 아니냐.’ 그렇죠? 그래서 존재를 생각해서 소유, 우물을 깨끗이, 안 싸우고 흔쾌하게 “가지시라” 그렇게 한 거예요. 다른 그림을 봐요. 다른 데 가서 또 우물을 파요. 팠는데 더 좋게, 아까는 말다툼이 일어났잖아요. 이것은 더 좋게 했더니 더 좋은 물을 팠는데 물이 더 좋게, 많이 나와요. 그랬더니 또 와서 그러자 ‘싯나’라고 했어요. 싯나가 뭐냐? 아예 대적하겠다는 거네. 우물을 줬잖아요. 줬으면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되지 왜 또 와서 애먹이느냐? 완전히 대적이 되겠다는 거예요. 그때 이삭은 그래도 소유보다 존재가 더 소중하니까 ‘대적하겠다니까 내가 또 줘야지.’ 또 주고 양보하고 다른 데 가서 팠어요. 이번에는 좀 더 근사하게 우물을 팠는데, 가서 보니까 아까보다 훨씬 풀밭도 넓고 양 떼도 더 많이 불어났고 우물도 더 멋지고, 평화롭게 우물을 길어요. 여기 여자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와서 우물을 긷잖아요. 두 번 양보하고 세 번째 가서 우물을 파니 또 물이 나와요. 그러니까 이것을 그랄 목자들이 다 본 거야. 딱 보니까 ‘희한하네, 저 사람이.’ 그래서 그랄 목자들이 찾아와요. 이삭이 하는 것마다, ‘왜 저 사람들은 손만 대면 우물이 나오지? 왜 자꾸 더 좋아지지?’ 여기에 우물을 파고 이름을, 이삭은 확장됐잖아요. 확장된 거야. 더 잘됐잖아요. 여러분, 양보하고 양보하고 왔는데 세 번째 와서 더 확장됐어요. “하나님이 내 장막의 터를 넓히셨도다” 하면서 확장됐다는 뜻으로 ‘르호봇’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거예요. 얼마 있다가 아까 그 그랄 목자들이 찾아왔어요. 와서 하는 말이 “이삭 어르신, 우리가 어르신의 삶을 멀찌감치서 유심히 살펴봤는데 아무리 봐도 하나님이 당신의 삶 속에 함께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도지 같은 것은 안 줬어요. 전도지도 사영리도 안 줬는데 이삭의 삶이 살아 있는 전도지야. 양보하고 또 양보하고 안 싸우고, 또 말없이 가서 우물을 팠더니 물이 나는 것을 보고 ‘저 사람들은 믿는 신이 있는데 그 신이 진짜 같다.’ 찾아와서 정중하게 사과하고 앞으로 서로 침략하지 않기로 불가침 조약을 맺고, 이삭이 “잘 들어오셔서 앞으로 잘 지내 봅시다” 하고 대접해서 보냈다는 거예요.

이삭의 우물 세 번째 확장

설교자는 이삭이 세 번째로 판 우물에서 물이 넉넉히 나와 장막의 터가 넓어진 일을 전합니다. 두 번 양보하고 세 번째에 얻은 확장이라는 점에서 이삭이 '하나님이 내 장막의 터를 넓히셨도다'라는 뜻으로 르호봇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이를 양보와 확장의 관계로 풀어 줍니다. 다투지 않고 물러선 자리에서 오히려 더 넓은 자리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 이름은 이삭의 삶이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있었음을 드러내는 고백으로 전해집니다. 설교자는 청중에게도 손해처럼 보이는 양보가 결국 하나님 안에서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합니다.

노우호 · 2026-10-23

설교 내 32–32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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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우물을 파고 이름을, 이삭은 확장됐잖아요. 확장된 거야. 더 잘됐잖아요. 여러분, 양보하고 양보하고 왔는데 세 번째 와서 더 확장됐어요. “하나님이 내 장막의 터를 넓히셨도다” 하면서 확장됐다는 뜻으로 ‘르호봇’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거예요.

이삭의 우물 양보와 르호봇

설교자는 창세기의 이삭 이야기를 소유보다 존재를 중시한 모델로 소개합니다. 이삭은 브엘세바 근방에서 양을 치며 거부가 되었는데, 그랄 목자들이 그가 판 우물을 두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설교자는 우물이 목축민에게 생명과 직결된 소유이기에, 다투면 우물도 생명도 잃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삭은 싸우지 않고 우물을 넘겨준 뒤 다른 곳에서 다시 팠고, 이런 양보가 두 번 반복되었습니다. 세 번째 우물에서는 물이 넉넉히 나와 터가 넓어졌고, 이삭은 그곳을 르호봇이라 불렀습니다. 나중에 그랄 목자들이 찾아와 하나님이 이삭의 삶과 함께하시는 것 같다고 말하며 사과하고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는 점을 설교자는 살아 있는 전도지라고 적용합니다. 설교자는 이 이야기가 산상수훈의 양보의 말씀과 이어진다고 덧붙입니다.

노우호 · 2026-10-21

설교 내 25–33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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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문제를 가지고 성경은 진작부터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 사람이 누구 같아요? 이 사람. 왜 이삭이요, 이삭. 이삭이 브엘세바 근방에서 양을 치는데 우물을 가지고 그랄 목자들이 와서 시비를 거는 거야. 이게 그랄 목자들이고 이거 이삭인데, 이삭이 거부가 됐거든. 그해에 “애굽에 가지 말고 이 땅에 거하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걸핏하면 미국 가려고 그러죠? 그때 미국이 뭐냐? 그때 미국이 애굽이야. 나일강 물이 넘치고 비옥한 토양에 양식 걱정 없고, 아무 외적의 침입이 없고, 최고 좋은 곳이 애굽인 거라. 전부 다 그렇게 가는데, 심지어 아브라함도 갔다가 물론 혼나고 왔지만, 이삭도 어렵고 하면 또 갈까 싶어서 하나님께서 미리 “너 애굽에 가지 말고 여기 유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그랬더니 이삭이 두말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애굽에 가지 않고 거기 머물렀더니 정말 백 배나 주신 거야. 마침내 거부가 됐어요. 거부가 되면 집에서 같이 일하는 청지기, 노예, 이런 사람도 있고 가족도 있고, 이렇게 하다 보면 거부가 뭐냐? 목축하는 사람이니까 양 떼가 많아. 양 떼가 많으면 풀밭이 좀 넓어야 되고, 그다음에 중요한 게 우물이야. 양이나 염소는 풀 속에 일정량의 수분이 있기 때문에 물을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양들도 물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우물을 파야 되는데, 요즘처럼 우물을 파는 기계가 발달된 게 아니고 어디 산을 딱 봐 가지고 ‘여기쯤 파면 물이 나겠다’ 하고 경험상 알아서 파는데, 상당히 깊이 파요. 우리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깊이 파야 물이 있습니다. 또 깊이 파는데 흙으로 된 땅이라면 시간이 가면 파낼 수 있지. 그런데 돌이 나와 버렸어. 그럼 발파도 못 하는데 어떻게 해요? 그런 면에서 우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생명수, 생명과 직결돼 있어요. 그래서 소유 중에서 굉장히 소중한 소유가 우물입니다. 어떤 데는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물줄기가 바위틈에서 졸졸 나오는데, 아인 카렘이라고 세례 요한의 본가, 엘리사벳이 있던 그 본가, 그 동네 입구에 가면 진짜 바위틈에서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물이 졸졸 나와요.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물줄기 하나 때문에 한 동네가 삽니다. 그게 없으면 못 사는 거예요. 우물은 생명과 같은데 그 목자들이 와서 다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삭이 ‘이걸 다투네. 다투면 싸움 나지. 싸움 나면 싸워서 이겨도 누군가는 죽어야 돼.’ 이 목자들이 우물이 탐나서 우물만 빼앗으러 온 게 아니고, 우물이 생명과 같은데 그걸 내놓으라 하면 순순히 내놓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바로 싸움 나죠. 싸움 나면 우물만 빼앗는 게 아니고 다 죽여 버리고 빼앗는 거거든, 그게. 그러니까 이삭이 소유냐 존재냐, 우물 안 뺏기려고 하다가는 우물도 뺏기고 생명도 뺏기고 그럴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래서 존재를 생각해 가지고 소유, 우물을 깨끗이 안 싸우고 흔쾌하게 “가지시라” 하고 그렇게 한 거예요. 다른 그림을 봐요. 다른 데 가서 또 파요. 우물을 팠는데 더 좋게, 아까는 막대기 들고 일어났잖아요. 이건 더 좋게 했다니까요. 더 좋은 걸 팠는데 물도 좋게 나와요. 많이 나와. 그랬더니 또 와서, 싯나라 그랬어. 싯나가 뭐냐? 아예 그냥 이것들이 대적하겠다는 거네. 우물을 줬잖아요. 줬으면 그걸 가지고 있으면 되지 왜 또 와서 애먹이냐? 완전히 대적이 되겠다는 거예요. 그때 이삭은 그래도 소유보다는 존재가 더 소중하니까 ‘그래, 대적하겠다니까 내가 또 줘야지.’ 또 주고 양보하고 다른 데 가서 또 팠어. 이번에는 좀 더 근사하게 우물을 팠는데, 가 봤더니 아까보다 훨씬 풀밭도 넓고 양 떼도 더 많이 불어났고 우물도 더 멋지고, 평화롭게 우물을 길었는데 여기 여자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와서 우물을 긷잖아요. 두 번 양보하고 세 번째 가서 우물을 파서 또 물이 나니까 이걸 그랄 목자들이 다 본 거야. 딱 보니까 ‘희한하네, 저 사람이.’ 그래서 그랄 목자들이 찾아와요. ‘이삭이 하는 것마다 왜 저 사람들은 손만 대면 우물이 나오지? 왜 자꾸 더 좋아지지?’ 우물 이름을, 이삭은 확장됐잖아. 더 잘됐잖아. 여러분, 양보하고 양보하고 왔는데 세 번째 와서 더 확장됐다. “하나님이 내 장막의 터를 넓히셨도다” 하면서 이름을 확장됐다, 르호봇이라고 지었다는 거예요. 얼마 있었는데 아까 그 그랄 목자들이 찾아왔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삭 어르신, 우리가 어르신의 삶을 멀찍이서 유심히 살펴봤는데 아무리 봐도 하나님이 당신의 삶 속에 함께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도지 이런 거 안 줬어. 전도지고 사영리고 그런 것도 안 줬는데, 이삭의 삶이 살아 있는 전도지야. 양보하고 또 양보하고 안 싸우고, 또 말없이 가서 우물을 팠더니 물이 나고 하는 걸 보고 ‘저 사람들은 믿는 신이 있는데 그 신이 진짜 같다.’ 찾아와서 정중하게 사과하고 앞으로 서로 침략하지 않기로 불가침 조약을 맺고, 이삭이 “잘 들어오셔서 앞으로 잘 지내 봅시다” 하고 대접해서 보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