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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1개 · 1 / 1쪽 · 한 쪽 20개

끓다가 냄비가 터지기 직전인 물에 빗댄 열심

설교자는 11절의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말을 짚습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옮기면 물이 버글버글 끓어 냄비가 터지기 직전인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그런 상태를 '열심'으로 해석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물이 끓어 터지기 직전과 같은 열정이 생긴다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이 열심이 사랑을 하는 일에 정말 중요하다고 덧붙입니다. 이 열심은 기질이 적극적인지 소극적인지에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만들어 내는 기적 같은 요소라고 말합니다. 다만 그 열심이 육신을 따라 인간의 방법으로 나오면 쉽게 공로주의에 빠진다고 경고합니다. 그렇게 되면 열심은 남을 판단하고 비평하는 방향으로 바뀐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열심이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결과로 나와야 한다고 적용합니다. 또한 열심은 방향이 매우 중요하며, 방향이 잘못되면 많은 해를 끼치고 사랑이기보다 폭력이 될 때가 많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주님을 향해 제대로 향할 때, 주님을 섬기는 연장선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성경이 원하는 바른 열심이 있는 사랑이라고 결론짓습니다.

화종부 · 2026-10-18

설교 내 10–10문단 · 예화 4

본문 발췌 보기

사랑은 존중하기를, 상대의 훌륭함과 귀함을 인정하면서 그를 귀하게 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을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 봐가면서 평가하고 나서 그렇게 하지 말고, 사랑은 우리 같은 사람을 주님이 죄로 다 망가지고 일어선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주님, 나는 주님이 필요해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고, 우리는 필요도 모르고 있던 그때 주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 것처럼, 사람들을 존중하기를 먼저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지나가야겠어요. 사랑은 11절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게으르다는 것은, 오늘 해야 될 것을 내일로 연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해야 될 것을 지금 하지 않고 다음으로 미루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늘 뭘 붙이나요? 어느 날 한꺼번에 기적같이 일어날 사건을 기대하면서 오늘 나의 게으음을 계속해서 딜레이시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은 것이 다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은 반드시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습니다. 구분이 되시죠? 그죠? 바른 사랑은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연기하고 미루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회를 주실 때, 사랑을 위한 기회로 선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죠?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깁니다. 여러분, 여기 ‘열심을 품고’ 하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물이 버글버글 끓어서 남비가 터지기 직전인 상태입니다. 그게 열심입니다. 물이 그냥 불에서 벌펄벌펄 끓어서 남비가 이제 더 이상 감당이 안 될 만큼 터지기 직전의 상태를 ‘열심’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여러분, 열심은 여러분이 사랑을 하는 일에 정말 중요합니다. 그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냥 물이 끓어서 터지기 직전인 상태와 같은 열정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기질이 어떤 건가, 적극적인가 소극적인가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요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만약에 여러분의 육신적인 열심이면, 열심은 있기는 있는데 육체를 따라하는 열심이면, 여러분은 굉장히 쉽게 공로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에는 정말 열심이 너무너무 있게 되는데, 여러분 육체를 따라 인간의 방법으로 하는 열심은 자주 공로주의에 빠져서 남을 판단하고 비평하는 제목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 어떤 열심입니까?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결과로 열심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죠? 사랑은 열심을 다하도록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 열심은 방향이 너무 중요해요. 열심히 방향이 잘못되면 어떻게 됩니까? 많은 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죠? 그런데 이 열심에 사랑은 열심을 드러내게 되는데, 어떤 방향을 가지고 주를 섬기는 방향을 가지고 열심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성경이 여러분과 저에게 가르치는 사랑입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사랑이기보다 폭력일 때가 많습니다. 주님을 향해서, 주님께로 향해서 사랑이 딱 제대로 향하고 있을 때, 사랑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사랑이 되어 죽게 하듯이 주님을 섬기는 연장선에서 누군가를 사랑할 때, 정말 성경이 원하는 바른 열심이 있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다음 빨리 보고 싶어서 서둘러 온 것 같아요. 여러분, 저는 이 본문 묵상할 때 12절이 너무 좋았어요. 여러분, 12절 앞에 ‘사랑은’ 붙여서 12절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사랑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쓴다.’ 여러분, 사랑을 세 가지로 12절은 소개해요.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 사랑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환난 중에 참는 것입니다. 그죠? 항상 사랑은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12절은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주변을 보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 주로 뭘 가지고 좋아해요? 현재를 가지고 좋아합니다. 현재 지금 일어난 어떤 일, 지금 뭔가 바라든 일이 성취된 지금을 가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원하는 대로 됐는데 안 기쁠 사람이 누구가 있겠어요?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랑은 소망 가운데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았을뿐 아니라, 여러분을 넘어뜨리고, 여러분을 낙심시키고, 여러분들이 그만하고 싶도록 만들고 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만두지 않고, 낙심해지지 않고, 소망을 딱 붙들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행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망이 뭡니까?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이미 시작한 그 위대한 놀라운 주님의 일을, 우리 몸에까지, 우리의 전 인격에까지 그 놀라운 일을 다 드러내실 그 영광스러운 날에, 여러분과 제가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사랑함으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너무 돌아오지 않아서 낙심스럽고 멈추고 싶을 때, 여러분이 이 힘을 다해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들이 여러분을 배반하고 여러분을 낙심시킬 때, 그럴 때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다 보시고 계시잖아요.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실 그 주님의 오실 그날을 사모하면서 오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죠?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뭐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좀 나쁜 말로 우리의 모든 사랑과 수고를 조롱할 때도, 전혀 섭섭해하지 않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 사랑이지요. 그죠? 환난 중에 참는 것. 여러분,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는 뭘 보면 알아요? 환난이 왔을 때 보면 되죠. 그죠? 환난이 딱 오면, 이게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를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진짜 사랑은 참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죠? 멈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제 할만큼 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진짜 사랑은 참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그 위대한 장에 사랑은 하고, 제일 먼저 뭐가 나왔지요? ‘오래 참는다’가 나왔어요. 그죠? 사랑은 참된 사랑은 참게 됩니다. 포기하거나 멈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거는 그냥 모조품이었으니까 멈출 수 있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참게 하고 견디게 하고 기다리게 하고 믿게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한 번씩 넘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기도의 골방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죠? 우리를 아시고, 우리의 아픔을 들으시고, 우리를 들으시는 그 기도의 골방에 항상 힘써서 들어가는 것이 사랑이지요. 그죠? 아무도 만질 수 없는 그 자리에, 우리를 아시는 그분의 만짐이 일어나는 그 현장으로 항상 힘써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마지막 두 개 사랑이 있습니다. 그죠? 그게 뭡니까? 여러분과 저에게 익숙한 두 사랑이 나와요.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라.’ 이게 뭡니까? 뭐라고 말하면 될까요? 사랑은 나눔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여러분의 시간을 나누고, 관심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여러분의 재능을 여러분의 것으로만 쓰려고 하지 않고, 사랑하는 누군가와 나누고, 여러분의 물질을 나누고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누가 형제의 궁핍을 보고도 도울 줄 모르면, 이것이 참으로 믿는 자이겠는가? 너희 사랑이 어디 있느냐? 주님이 반문하시는 것처럼, 사랑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흘려보내고 나누어서, 그들의 아픔을 만지고, 그들의 아픔을 만짐으로 형평케 하고 균등케 하는 것이 사랑이지요.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정부가 세계의 정부들이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어서 획적인 균등을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이 되지 않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제도가 하는 것은 여러분과 제가 해야 되는 사랑과 구별되기 때문이에요. 제도가 만들어서 획적인 평등을 만들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흘려 보내고 나누면서 균등케 하는 이 사랑이 살아나야, 우린 정말 아픔이 해소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사랑. ‘나그네를 접대하라.’ 이게 뭐라고 말하면 되겠습니까? 환대하라입니다. 환대하라. 나은 사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집에 들리면 해괴한 짓을 할지, 정말 성도의 교재를 할지 전혀 검정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불편을 끼치고, 우리의 일상에 일상적인 삶의 리듬을 깨게 만드는 사람인데, 그러기 때문에 못 본체하고 지나가지 말고, 그를 환대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환대하는 것입니다. ‘나는 저 사람 잘 몰라요.’ 하고 뒤걸음질 치지 말고, 처음 봤기 때문에 제 실력이 잘 안 나옵니다. 그렇게 말하지 말고, 누구든지 마음을 활짝 열어서 받아서, 그의 필요와 그의 아픔과 그의 여러 가지 상황이 해소될 수 있도록 사람을 마음을 열고 환대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조국 땅에 오늘 이렇게 많은 아픔과 부르짖음의 핵심은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다 가진 것 같은 사람이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든, 똑같이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오늘 이 시대, 조국 땅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에 제일 핵심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미루지 말고, 오늘 해야 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낯설기 때문에 못 다가간다고 그렇게 자꾸 말하지 말고,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모든 삶의 자리를 사랑을 행할 현장으로 여기면서, 누가 먼저 하기 전에 여러분들이 먼저 공경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먼저 존경을 행하는 것이 사랑인 줄 알고, 삐죽되지 않고 뒤걸음질 치지 않고, 이 시대에 이런 보편적인 덤성덤성한 문화에 지지 말고, 피부치 본능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칠 그 사랑을 바로 그 사람에게 적용하면서, 많이 사랑해서, 오늘 이 조국의 아픔이 여러분들의 믿음과 삶의 실천을 통해서 해소되고 극복되고, 정말 따뜻한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조국 사회 되도록,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 되어 주시기를 기대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