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고백한 하나님의 붙드심
설교자는 어머니에게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견디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한마디로 "하나님 없었으면 나 그때 죽었다"고 답하셨습니다. 이 말이 설교자의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예수님, 내주하시는 성령, 예배의 자리, 찬양, 말씀 한 구절을 붙들고 살아간다고 나눕니다. 그러나 신앙이 있다고 해서 낙담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말합니다. 이 고백을 통해 설교자는 믿음이 고난 가운데 사람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는 적용을 전합니다.
설교 내 1–1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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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시간, 당신은 무엇으로 버티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말씀을 시작하면서 지난 주일 세제 때 만났던 한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한 권사님이 예배를 오셨는데, 제가 있는 모습을 보고 막 뛰어오셨습니다. 그리고 한 분을 초청해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편모 가정의 엄마와 딸이 함께 오는 과정이었습니다. 몇 가지 상황을 듣고 기다리다 엄마와 딸을 만났습니다. 딸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는데, 부모로부터 상황을 듣고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돌아가고 나서 권사님과 함께 기도를 드렸고 예배를 드린 후, 오후에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그 문자를 읽어드리면, "목사님, 기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매님은 20년 전 순원의 친정 언니로, 영육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라 3주 전부터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며 치유와 회복을 얻고 있습니다. 특성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딸도 여기 왔으면 해서 오늘 오게 되었습니다. 딸은 왕따로 힘들었고, 최근에는 중동 문제로 치료 센터를 다녔지만 효과가 없어 그만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 후 얼굴이 밝아지고 웃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초청을 했기 때문에 초청자의 마음을 알잖아요. 예배 때 와서 하나님이 만져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교회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이 생기고, 예수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아이는 편모 가정에서 자라며 어려움을 겪고, 엄마의 마음이 위로받고 돌아가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돌아갔을 때, 아이의 얼굴이 웃는 얼굴로 변화되었고, 대화를 나누며 그 웃는 얼굴을 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평안했을까 생각하니, 저 또한 마음이 포근해졌던 주일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다시 보며 위로를 받고 기뻐하려고 했는데, 한 가지 생각이 먼저 났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참 거창한 일이 아니구나. 그분을 기다려 주는 마음, 그분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 초청하여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장에 와서 그 마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자를 계속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를 초대하고 사랑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브라보 시니어를 섬기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자녀의 신앙을 위해 오랫동래 기도하고 있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대 축제에 좋은 자리가 있지만, 그 자리에 초청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해 초청했음에도 거절당하거나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오래 지속되면 믿음을 가진 사람도 지칩니다. 누군가를 열심히 초청하려 노력하지만, 그분이 세대 축제 때 지쳐 있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세대 축제를 보내고 오후에는 많은 분들이 초청자들과 함께 복음을 경험하는 시간을 보내며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낙담한 성도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주에 또 기회가 있겠지만, "이번에 오지 않으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제 마음이 치졸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때로는 버티는 인생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의 제목을 "당신은 무엇으로 버티고 있습니까?"로 잡았습니다.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어떤 분들은 잘 산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어떤 분들은 지금 견디고 있고, 버티고 있습니다. 버티는 의미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견뎠는지 물어봤을 때, 어머니의 한마디가 제 마음속에 박혔습니다. "하나님 없었으면 나 그때 죽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예수님, 내 안에 내주하신 성령, 예배의 자리, 때로는 예배에 못 나오는 가나안 성도, 옛 추억, 찬양, 말씀 한 구절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낙담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세대 축제를 보내면서 제 마음속에 계속 찾아오는 생각은, "내가 지금 이 상태인데 누군가를 전도할 수 있을까?"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본이 되지 않는 모습인데,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가자고 말할 수 있을까? 내 모습이 떳떳하지 못한 것 같고, 믿음이 약한 것 같아 스스로 자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은 베드로전서입니다. 2,000년 전 소아시아의 한 마을에서, 오늘날과 비슷한 성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많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일상은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한 성도는 낮에는 평소처럼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가족 앞에서는 웃으며 믿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과 2장을 보면, 베드로가 성도들을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표현은 아름답습니다. 2장 9절에서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라고 극찬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성도들은 믿음 안에서 갈등하고, 때로는 믿음을 떨어뜨리는 이웃을 위로해야 했습니다. 신앙 상담을 받을 때, 내 믿음으로 설명하더라도 낙담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포기하고 믿음을 포기하면 좋은 세상이 열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로 한 게 정말 잘한 일일까?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왜 더 힘들어지는 걸까?"라고 하나님 앞에서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말을 한 인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전서를 보면, 실루아노를 통해 기록된 내용 중에 이름이 등장하는 사람도 있고, 소아시아 교회에 이름 없이 믿음을 지키려 하며 갈등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때로는 오해를 받고, 선을 행하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오히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점을 강조합니다. 세대 축제를 보내면서, 잘 초청된 분들도 있지만, 전도 대상자 명단은 적게는 900명, 많게는 1,300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교회에 오는 분은 주에 300명 내외입니다. 초청되지 못한 많은 분들에 대해 실망하고 넘어진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많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