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6개 · 1 / 1쪽 · 한 쪽 20개
이민 초기 '밥벌지'라 불린 청년 시절
설교자는 20대 초반 이민 초기에 자신에게 '밥벌지'라는 별명이 붙었던 시절을 회고합니다. 그 별명은 밥이나 축낸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때는 사대주의가 있어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고, 미국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고백합니다. 미국 사람의 눈으로 보면 막노동을 하며 영어도 못하는 자신이 형편없이 보여 비웃음을 살 것 같아 위축되었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결핍의 고통이 가장 컸던 이 시기를 숨기지 않고 되돌아봅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그를 살린 것은 교회였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그를 영어 실력이나 처지로 평가하지 않았고, 일주일에 숨을 쉬는 곳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설교자는 이 경험을 통해 교회가 사람을 소유나 처지의 기준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대해야 한다는 적용을 이끌어 냅니다.
이찬수 · 2026-10-25
설교 내 2–2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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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이 여기 있다고 치고 한 번 보세요. 멀쩡히 그 존재로 산에서 잘 살고 있는데, 그걸 꺾어 가지고 꽃꽂이로 만들어 놓으면 이미 그 꽃은 죽은 꽃이에요. 살아 있던 생명력으로 며칠 연장하는 거지. 이게 에리프롬이 강조하고 있는 포인트거든요. 그런데 저는 일본 시인 바쇼가 쓴 시에서 맨 앞이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눈여겨 살펴보니, 콧마하고 울타리 곁에 냉이꽃이 피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시는 뭘 강조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이 꽃의 어떤 점이 특별한지 궁금해요. 눈 여겨 봐야 보이는 꽃이에요. 여러분, 꽃구경 가자, 단풍놀이 가자 해서 버스 대절하고 설상 가는 건, 눈 여겨 봐야 찾을 수 있는 꽃이 아니잖아요. 너무나 매력적이고 유명한 꽃을 보러 가는 건데, 하나님은 눈 여겨 살펴봐야 하는 초라한 꽃, 존재가 별로 없는 꽃을 보고 계신 거예요. 확 뽑아버려도 되는데, 눈 여겨 살펴본 그 꽃이 너무 아름다운데도 꺾지 않는 거예요. 저는 이 설교 준비하려고 에리프롬 책을 오랜만에 꺼내서 쭉 읽으면서, 전에 깨닫지 못했던 점이 있었어요. 이분이 크리스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크리스천 같아요. 그 책 뒤에 보면 구약 성경, 신약 성경에 예수님은 그런 내용으로 설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저는 에리프롬이 크리스천이건 아니건 모르겠지만, 마음이 감동이 되었어요. 왜 우리 하나님은 테니슨 시인의 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바의 시처럼 우리를 대하시는 분이신가요? 눈 여겨 봐야 볼 수 있는, 보살 것 없는 초라한 작은 꽃도 인간의 평가긴 하지만, 그걸 존귀하게 보고 눈여겨 보고, 감상하되 생명력을 존중해서 꺾지 않는 게 우리 하나님 성품이구나. 왜 제가 유난히 그게 은혜가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저는 열등감이 많았던 사람이에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철이 들수록 제 존재가 세상이 요구하는 소유 양식의 삶의 기준으로 많이 떨어진다는 걸 인식했어요.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는 걸 사춘기 때부터 느꼈어요. 너무나 가난했고요. 결혼한 누나 집에 놀러 갔는데, 누나 집에서 중학생 때 충격을 받았어요. 뽀빠이라는 과자를 박스로 사 놓고 먹더라고요. 선반에 올려 놓고, 누나가 매일 놀러갔잖아요. 하나씩 얻어 먹을 수 있으니까. 그 가난이 제게 결핍이었어요. 외모나 소유물도 부족했고요. 아버지는 작은 교회 목사님이셨는데, 금식 기도하다 돌아가셨어요. 결핍이 많았습니다. 제 결핍의 정점은 이민 초기예요. 정말 결핍으로 인해 고통받았어요. 오죽하면 제 별명이 '밥벌지'였어요. 20대 초반에요. '밥이나 춥네요'라는 뜻이었죠. 그때는 사대주의가 있었어요. 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미국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한국에서 살기 전에 미국에서 살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많았어요. 미국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저는 형편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얼마나 비웃겠나 싶었죠. 막노동하고 살고, 영어도 못 하니까요. 83년도는 인종 차별이 지금보다도 심했어요. 길 가면 지들끼리 '하이, how are you, fine, thank you' 하는데, 육사람 지나가는데 '하이' 하면 고개를 돌려요.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인종 차별이었어요. 제 존재가 너무 초라했기 때문에요. 일도 직장에서 쫓겨나고, 쫓겨나고 그렇게 살았어요. 수없이 말씀드렸지만, 그때 저를 살려 준 건 교회예요. 교회는 일주일에 숨을 쉬는 곳이었어요. 오늘 초대받아 오신 분들께 이걸 전하고 싶어요. 교회는 그런 기준으로 저를 평가하지 않고, 막대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았어요. 미국 사람 중에는 영어 못 하는 걸 대놓고 무시하거든요. 비웃고 그러면 너무 리얼했나? 교회만 가면 그런 걸로 저를 대하지 않았어요. 수많은 고마운 분들이 어릴 때부터 격려해 주었어요. '너 걱정도 하지 마라. 네가 잘못되면 누가 잘못되? 네 아버지가 교회를 위해 금식 기도하다 돌아가신 분인데, 아무 걱정하지 마. 네가 잘될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축복이 교회 안에서 쏟아져 나왔고,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 혜택을 받은 우리 청년들이, 기성 세대, 은퇴하신 분들이, 세상은 퇴직하면 퇴물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그냥 보지 마세요. 우리 하나님은 눈 여겨 봐야 보이는, 조그만한 꽃을 그냥 작은 꽃이라고 보세요. 자기 틈새에 있는 귀한 꽃이에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셨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고 믿고 난 이후로는 열정감이라는 게 없습니다. 전혀 없어요. 있으면 바로바로 하루 이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가운데 없애 주시거든요. 그래서 오늘 왜 지난주 설교로 끝내지 않고, 이 본문으로 다시 말씀을 나누고 싶었어요. 지난주와는 다른 각도로 본문을 살펴보자는 거예요. 16절을 다시 보세요.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과정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대답하길,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제가 방송실에 요청했더니, 직원이 어색하다고 했어요. '목사님, 이거 어디 그 어색하잖아요. 뿐인입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썼어요. 왜 '뿐인이다'라고 썼겠냐고요. 제자들 입장에서도 수많은 군중을 먹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건 어린아이 도시락이에요.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출처가 어린아이 도시락이라고 나와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장난치나? 예배 풀치를 하려고 이걸 갖고 왔냐?' 그런데 놀라운 건 18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라고 하시죠.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은밀하게 느껴져요. 주님께서 '이 보잘이 뿐이니이다'라고 하시면서, 갖고 왔는데 '내게 가져오라'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건 무슨 뜻일까요? 그걸로 충분하다는 거예요. 자세히 봐야 보이는, 보잘 것 없는 작은 꽃이 너무 존귀하고 함부로 꺾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뿐인이다' 인생을 '충분하다'로 바꾸어 주세요. 저는 주님 만나기 전에 '뿐인이다' 인생이었어요. 제가 자살하려고 죽고 싶다고 미시간 호수까지 가봤지만, 실제로 시도한 건 아니에요. 그냥 '뛰어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예수 믿고 난 이후로 가장 큰 변화를 경험했어요. 우울하고 밥이나 춥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제가, 이제는 '충분하다'의 인생이 되었어요. 주님 앞에 너무나 행복하게 쓰임을 받고 있어요. 저는 우리 청년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왜냐하면 20대 때 제가 '뿐인이다' 인생이었기 때문이에요. 지금 우리 20대, 30대 얼마나 힘들까요? 그들에게 호소하고 싶어요. '뿐인이다' 인생은 누구나 겪어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이 필요하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충분하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요. 사실 이런 면에서 저는 저 자신을 비하하는 걸 좋아해요. 저는 저를 비하하기를 원해요. 왜냐하면 어떤 분들은 저를 만나서 득담하시느라고 '목사님은 뭘 해도 잘하셨을 것 같아요'라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목사님 사업하면 잘하셨을 거예요'라고 하시면, 그런 칭찬으로 기분이 나빠요. 저한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나님 어디 시느냐고요? 뭘 해도 다 잘하는 사람이면요. 그래서 저는 저를 피하고, 약점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귀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아무리 비하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 비하가 충분치 못하니까요. 더 비하하고 더 비하해도 '뿐인이다'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두 가지예요.
언어인팅 장로님들의 화장실 청소
언어인팅 특별 집회에서 장로님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화장실 청소와 주차 안내 봉사였습니다. 설교자는 장로님이 화장실 청소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럼에도 장로님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 물에 손을 넣어 깨끗하게 청소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세미나 참석자들은 '강의보다 더 위대한 설교였다'고 말했습니다. 참석자들은 교회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놀라워했고, 돌아가서 자기 교회에서도 비슷한 일을 실천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이런 섬김이 '저희로 하여금 보게 하옵소서, 알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와 이어진다고 적용합니다. 또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드는 그리스도인들과 장애인을 돕는 교인들의 헌신을 예로 들며, 그것이 진짜 예배라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런 섬김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용조 · 2026-10-24
설교 내 18–18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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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25절 26절 보십시오. 시작. '오신 하나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고, 저희도 아버지를 부르신 것 같으의 이름을 저희로 알게 하여 또 알게 하리니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 아 지난번에요, 우리 언어인팅 때 우리 장로님들에게 특별히 주어진 임무가 화장실 청소였습니다. 그리고 주차 안내 봉사였어요. 물론 장로님이 화장실 청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그런 특별한 집회 때 우리 장로님들이 앞치마를 두르시고 고무 장갑을 끼고 화장실 물에 손을 넣어서 짓고 깨끗하게 청소하시는 일을 했어요. 이번 세미나에 오셨던 분들이 그걸 보고 뭐라 그런 줄 아세요? '강의보다 더 위대한 설교였다' 그러더라고. 그걸 보고 놀란 거예요. 그리고 다 말없이 '와, 교회는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가?'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 그리고 그분들이 자기 교회에 가서 또 그 비슷한 일을 하시더라고. 이게 뭐냐면 '저희로 하여금 보게 하옵소서. 저희로 하여금 알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나라가 어려움이 생기고요. 지진이 나고 재앙이 남기면 제일 먼저 뛰어가는 사람들이 사실 그리스도인들이에요. 전 세계 전쟁 지역에 뛰어들어가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어요. 그게 뭐냐면 '와, 종교는 달라도 저 사람들은 참 좋은 일을 한다'는 말이에요. 당신의 희생, 당신의 포기, 당신의 헌신. 근데요. 화장실 청소하는 거 쉬워요? 안 쉬워요? 안 쉽지요. 매연 가스가 많은 주차장에서 빨간 등 들고 왔다 이거 하는 거 쉬워요, 안 쉬워요? 안 쉽죠? 그데 그거를 하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감동한단 말이에요. 여러분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쓰레기 짓는 모습을 보고요. 요즘 저희 교회 JDS가 많이 생겼는데, 내가 늘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감동하는 건요. 그거 섬기려고 그냥 뭐 보 딱 보 씌우고 청소하고, 음식 만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뒤에서 그걸 하더라고요. 빛도 안 나는 일인데, 아무튼 그거 열심히 해요. 근데 가서 이렇게 보고 있으면 '와, 와, 참 좋다, 참 아름답다, 참 감동적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교회 안에 그런게 많아요. 장애인들 돕는 사람들 보면요. 한 사람을 돕기 위하여 그 수고하고, 남멀리 가서 도와주고, 휠어 밀어 주고, 그들 앞길을 만들어 주는 걸 이렇게 보면요. 저게 진짜 예배지. 저게 예배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거예요. '세상이 당신들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십시오.'
중부 인도 친구의 '힌두교도 가족' 표현
설교자는 중부 인도에서 살던 시절 알게 된 한 남성과의 우정을 떠올립니다. 이 사람은 내부 운동의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그의 증언이 중요한 사례를 보여 준다고 설교자는 말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은 지 오래되었고 지역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중부 인도의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소개할 때 "저희 가족은 힌두교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설교자에 따르면 이는 역사적으로 이슬람 가족도 가톨릭 가족도 아니었고, 전통적으로 힌두교인의 성씨를 가진 집안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표현이 그에게 적절한 신앙 정체성의 표현은 아니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를 직접 알고 있기에 그 뜻을 이해한다고 덧붙입니다. 설교자는 그 친구가 즉시 자신의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에 있으며 교회에 소속되어 죄 사함과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했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그러면서 만약 그 사람이 그 지역 운동의 대표자였다면, 운동에 속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동일시되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케이일 바우스 · 2026-10-22
설교 내 4–5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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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힌두교도와의 대화에서 자막 오류를 바로잡고 문장부호와 대소문자를 넣어 읽기 좋은 영어 문단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힌두교도와의 대화는 매우 다양한 반응과 복잡한 대화 흐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합니다. 따라서 도시에 사는 20대 힌두교도와의 대화는, 농촌에 사는 60대 힌두교 여성과의 대화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언제나 존재하므로, 우리는 대화를 진정으로 필요한 방향으로 이끌고, 상대방의 실질적인 필요를 듣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저는 인도에서 힌두교도들과 오랫동안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면, 종종 '바른 카르마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과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 사이의 대비를 언급하게 됩니다. 이는 너무 단순한 대답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좋은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대비는 힌두교도들과의 대화에서 복음의 독특함이 특히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로, 전통, 교파에 속하든, 많은 힌두교도들은 바른 카르마를 통해 목숨을 구원받는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2장 8절의 진리, 즉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는, 제 경험상 힌두교도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복음이 본래 있어야 하는 모습대로요. 그렇습니다. 정말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매우 좋습니다. 따라서 케일, 과거 미션 톡에서 우리는 이슬람 내부 운동의 방법론에 대해 논의한 바 있습니다. 이슬람 배경의 신자는 사회적·종교적으로 이슬람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지만, 내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힌두교 공동체 내에서의 내부 운동의 방법론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에 대한 연구와 출판물이 일부 존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힌두교 내부 운동의 방법론이 어디에서 부족한지, 그리고 신실한 문화적 적용이 어떤 모습일지 설명해 주세요. 네. 네, 훌륭한 질문입니다. 우선 저는 힌두교 내부 운동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존 트래비스의 맥락에서 있었던 내부 운동과 비슷합니다. 저는 힌두교 내부 운동에 대한 최초의 출판된 저서인 허버트 호퍼의 『교회 없는 기독교』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금은 다소 오래된 내용이지만, 힌두교 맥락에서 활동했던 저자가 제시한 사고방식은 매우 종교적 융합적이며 문화적으로 적응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힌두교인들 사이에서 종교적 융합을 시도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힌두교 내부 운동에 해당합니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힌두교도라고 여깁니다. 그들의 공동 예배에는 힌두교 문화적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찬식을 할 때 빵과 포도주 대신 코코넛 우유와 쌀을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공동 예배는 매우 문화적으로 적응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운동이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간단히 말하자면, 내부 이슬람 운동이 잘못된 곳과 동일한 점에서 잘못되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몸, 교회와의 정체성을 부족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스도나 교회와의 정체성을 부족하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점입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네,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네, 미션 톡에서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네, 저는 중부 인도에서 살던 시절, 한 남자와의 우정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사람은 단순히 내부 운동의 구성원이 아니었지만, 그의 증언이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지 오래된 사람으로, 지역 교회의 적극적인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소속되어 있고, 예수님을 따르는 유일한 신앙과 종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중부 인도의 특정 사회 구성원으로 자신을 정체화할 때, 그는 "저희 가족은 힌두교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뜻은 역사적으로 저희 가족은 이슬람 가족이 아니며, 가톨릭 가족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전통적으로 힌두교인 성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네, 그래서 저희 민족은 힌두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까? 저는 이 표현이 그에게 적절한 정체성 표현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직접 알고 있으므로, 그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저는 힌두교도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저는 단지 역사적으로 힌두교인 부족에 속한 사회 집단에 속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맞죠? 하지만 그는 즉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알겠지만, 제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저는 이 교회에 소속되어 있고, 제 죄를 사함 받기 위해, 구원을 받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걸 떠나게 하고, 만약 당신이 "이 남자가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대표자였다고 가정해 보자"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마주치는 문제는 그 운동에 속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동일시되지 않을 것입니다. 네, 이건 매우 유용한 이야기입니다.
덴버 교회 근처 DU 학생들의 자발적 출석
설교자의 교회는 덴버에 있으며 덴버 대학교(DU)와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는 수년 동안 교회가 스태프나 크루 같은 캠퍼스 사역에 참여한 사람들을 지원하며 캠퍼스 사역을 시도해 왔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나 거리가 멀고 학생들이 자동차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들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고 아마 캠퍼스 성경 공부에만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에는 학생들이 갑자기 꾸준히, 점점 더 많이 교회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일부는 아주 최근에 믿음의 길에 들어선 학생들이었는데, 우리 교회는 캠퍼스 근처에 있기 때문에 그들이 교회를 찾았고 그냥 시작해서 매주 계속 참석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일은 교회가 기존의 캠퍼스 사역을 완전히 중단한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은 소그룹과 친교 모임에 참여하면서 실제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설교자는 이를 성령님께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서 일하시는 결과로 해석하며, 학생들이 공동체에 연결되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데릭 리쉬마와이 · 2026-10-22
설교 내 8–9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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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는 이에 대해 생각이 있습니다. 알렉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네, 저는 이것이 도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난 두 젊은이들은 매주 성경 공부를 제가 하고 있고, 다른 강한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데, 그들은 교회에 가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지역 교회의 신학을 세워주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 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모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된 성경 구절들을 몰라요. 그리고 지역 교회 공동체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맥락이나 이해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일화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제 교회는 덴버에 있고, 덴버 대학교(DU)와는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수년 동안, 제 교회는 스태프나 크루(Crew) 같은 캠퍼스 사역에 참여한 사람들이 교회에서 일하거나 교회에 의해 지원받으며 캠퍼스 사역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거리와 학생들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못한 점 때문에, 그들은 교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캠퍼스 성경 공부에 참석했을 뿐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갑자기 학생들이 꾸준히, 점점 더 많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아주 최근에 믿음의 길로 들어선 학생들인데, 우리 교회는 캠퍼스 근처에 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찾았고, 그냥 시작해서 매주 계속 참석했으며, 우리가 말하는 소그룹이나 친교 모임에 참여하면서 진짜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기존의 캠퍼스 사역을 완전히 중단한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이 그냥 시작해서 계속 참석한 것이죠. 저는 이 현상이 성령님이 믿는 자의 마음속에서 일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이 참석한 이후에 공동체에 연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때로는 의도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아, 너는 주중에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관계를 깊이 있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이죠. 만약 그들이 그냥 참석해서 전통적인 예배에 참여한다면, 그게 그들에게는 낯선 것이고, 그들의 집중력은 1시간 반의 예배에 적응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건 꽤 어려운 일이죠. '매주 이런 걸 하려고 하는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속에서 관계가 형성된다면, 이는 그들이 교회에서 성장하면서 교회 신앙의 본질을 배우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에서 저는 Z세대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훌륭합니다. 저는 그들의 관계 형성 능력과 위험 회피 성향, 그리고 사실은 이 세대가 관계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적은 횟수로 데이트를 하고, 성관계도 적게 한다는 걸 보게 됩니다. 젊은 목회자들은 '와, 기분이 좋다'고 말하죠. 하지만 사실 그들은 데이트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교환의 문제가 아닙니까? 그들의 가장 깊은 욕구 중 하나는 더 깊은 관계, 외부 활동, 자연 속에서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캠프 사역에서는 '터치 그래스 썸데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공원에 가서 자연 속에서 그들을 데려가서, 컴퓨터 뒤에 숨어 있는 것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있게 했습니다. 관계 동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들은 관계에 대해 매우 굶주려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가장 큰 장애 중 하나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복음과 교회가 제공하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그 두려움을 극복할 기회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그들을 교회에 오게 만드는 것은 큰 도전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오면, 교회에 오면, 젊은이를 보고 '아, 그가 말하고 싶어 할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 실천적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세대는 실제로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은 어른이니까'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는 코로나19, 봉쇄, 디지털 기기 등이 여러 가지를 지연시켰기 때문에, 교회는 실제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을 데려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일들이 일어납니다. 집이 열리고, 집이 열리면 사람들이 서로를 데려옵니다. 거기에는 굶주림이 있고, 그 굶주림을 채우면 일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관계 영역에서는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보는 현실입니다. 코리, 당신은 이 그룹의 고립감에 대해 이야기한 경험이 있나요? 당신의 그룹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네. 곧 질문을 받을 예정이지만,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혹시 읽어보셨나요? 첫 번째 책은 『불안한 세대』입니다. 많이들 들어보셨죠. 이 책은 Z세대에 대한 뛰어난 이해를 제공합니다. 『불안한 세대』는 어린 시절의 큰 변화가 정신 건강 위기를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책은 고립에 대한 이야기인 『볼링 혼자』입니다. 이 책은 미국 공동체의 붕괴와 부활에 관한 것이며, 로버트 푸트만이 썼습니다. 이 두 책은 세대 간 사회학적 영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특히 디지털 기기들이 학생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당신이 사람과 소통한다고 생각할지라도, 사실은 디지털 기기와의 소통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캠퍼스에서 하는 일은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는 세 가지 주요 요소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고립감이고, 두 번째는 극단적 사고입니다.
캠퍼스 사역 중단 이후 찾아온 학생들
교회는 기존 캠퍼스 사역을 완전히 중단한 뒤에도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찾아온 학생들을 맞이했습니다. 학생들은 특별한 준비 없이 그냥 시작해서 매주 계속 참석했고, 소그룹이나 친교 모임에 들어오면서 실제 공동체를 형성해 갔습니다. 설교자는 그들이 1시간 반 동안의 전통적인 예배에 바로 익숙해지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의도적으로 '주중에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라고 말하며 관계를 이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이렇게 맺어진 관계가 학생들이 교회 안에서 자라며 신앙의 본질을 배우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Z세대의 관계 형성 능력과 위험 회피 성향을 함께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사랑하고 훌륭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만큼 교회가 먼저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데릭 리쉬마와이 · 2026-10-22
설교 내 9–9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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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갑자기 학생들이 꾸준히, 점점 더 많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아주 최근에 믿음의 길로 들어선 학생들인데, 우리 교회는 캠퍼스 근처에 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찾았고, 그냥 시작해서 매주 계속 참석했으며, 우리가 말하는 소그룹이나 친교 모임에 참여하면서 진짜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기존의 캠퍼스 사역을 완전히 중단한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이 그냥 시작해서 계속 참석한 것이죠. 저는 이 현상이 성령님이 믿는 자의 마음속에서 일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이 참석한 이후에 공동체에 연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때로는 의도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아, 너는 주중에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관계를 깊이 있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이죠. 만약 그들이 그냥 참석해서 전통적인 예배에 참여한다면, 그게 그들에게는 낯선 것이고, 그들의 집중력은 1시간 반의 예배에 적응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건 꽤 어려운 일이죠. '매주 이런 걸 하려고 하는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속에서 관계가 형성된다면, 이는 그들이 교회에서 성장하면서 교회 신앙의 본질을 배우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에서 저는 Z세대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훌륭합니다. 저는 그들의 관계 형성 능력과 위험 회피 성향, 그리고 사실은 이 세대가 관계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적은 횟수로 데이트를 하고, 성관계도 적게 한다는 걸 보게 됩니다. 젊은 목회자들은 '와, 기분이 좋다'고 말하죠. 하지만 사실 그들은 데이트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교환의 문제가 아닙니까? 그들의 가장 깊은 욕구 중 하나는 더 깊은 관계, 외부 활동, 자연 속에서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캠프 사역에서는 '터치 그래스 썸데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공원에 가서 자연 속에서 그들을 데려가서, 컴퓨터 뒤에 숨어 있는 것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있게 했습니다. 관계 동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들은 관계에 대해 매우 굶주려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가장 큰 장애 중 하나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복음과 교회가 제공하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그 두려움을 극복할 기회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그들을 교회에 오게 만드는 것은 큰 도전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오면, 교회에 오면, 젊은이를 보고 '아, 그가 말하고 싶어 할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 실천적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세대는 실제로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은 어른이니까'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는 코로나19, 봉쇄, 디지털 기기 등이 여러 가지를 지연시켰기 때문에, 교회는 실제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을 데려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일들이 일어납니다. 집이 열리고, 집이 열리면 사람들이 서로를 데려옵니다. 거기에는 굶주림이 있고, 그 굶주림을 채우면 일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관계 영역에서는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보는 현실입니다. 코리, 당신은 이 그룹의 고립감에 대해 이야기한 경험이 있나요? 당신의 그룹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네. 곧 질문을 받을 예정이지만,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혹시 읽어보셨나요? 첫 번째 책은 『불안한 세대』입니다. 많이들 들어보셨죠. 이 책은 Z세대에 대한 뛰어난 이해를 제공합니다. 『불안한 세대』는 어린 시절의 큰 변화가 정신 건강 위기를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책은 고립에 대한 이야기인 『볼링 혼자』입니다. 이 책은 미국 공동체의 붕괴와 부활에 관한 것이며, 로버트 푸트만이 썼습니다. 이 두 책은 세대 간 사회학적 영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특히 디지털 기기들이 학생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당신이 사람과 소통한다고 생각할지라도, 사실은 디지털 기기와의 소통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캠퍼스에서 하는 일은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는 세 가지 주요 요소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고립감이고, 두 번째는 극단적 사고입니다.
식료품점 계산대와 마늘맛 마차 이야기
설교자는 식료품점 계산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계산대 직원에게 '우리 아버지는 뉴욕에 교회를 세우고 계세요'라고 말했다는 일인데, 설교자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고 기억합니다. 그 말은 가족 가운데 다른 사람이 자랑스럽게 했던 말로 이야기되고, 설교자는 그때 과자 때문에 흥분했던 기억을 함께 꺼냅니다. 이어서 예배 후에 남은 포도주나 음식을 아래층에 내려가 먹던 일이 회상되며, 과자를 예배 후에 준비하던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가 오갑니다. 예배 준비를 맡았던 조나단은 식료품을 골랐고, 설교자는 슈퍼마켓 매니저와 합의를 보고 신용카드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제사절 시기여서 일반 마차가 떨어져 있었고, 조나단은 마차 상자를 그대로 빼서 마늘과 양파맛 마차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설교자는 그 주 예배에서 그 마차를 먹었을 때의 어색한 반응을 우스갯소리로 전하며, 청중의 코웃음이 이어졌던 장면을 그려 보입니다. 설교자는 이 사연을 가족 모두가 함께 움직였던 작은 사업의 소박한 모습으로 기억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팀 켈러 · 2026-10-21
설교 내 2–10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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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가 식료품점에서 계산을 할 때를 기억하시나요? 아버지가 계산대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죠. "우리 아버지는 뉴욕에 교회를 세우고 계세요."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너희들이 한 말이에요. 너희는 자랑스러워서 그런 말을 했죠. 그걸 기억하세요. 저는 과자 때문에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네, 맞아요. 너는 예배 후에 과자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네가 과자를 다 사왔죠.
예배 후에 남은 포도주나 다른 것들을 내려가서 먹는 걸 기억하세요. 그건 제가 아니었어요. 저는 분명히 제가 한 일이었어요.
그건 아마도 당신이 한 일일 수도 있겠네요.
그게 허용되는 일인지조차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마늘맛 마차를 샀어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오, 그건 또 별 이야기입니다. 조나단이 예배 준비를 위한 식료품을 산 사람이었고, 저는 슈퍼마켓 매니저와 합의를 보고 신용카드를 줬어요. 조나단은 그냥 모든 과자를 꺼내 버렸죠. 그리고 예배 때 포도주와 마차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유대인의 제사절 시기에 일반 마차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조나단은 마차 상자를 그냥 다 빼 버렸어요. 마늘과 양파맛 마차였죠. 그래서 그 주에 예배 때 마차를 먹었을 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