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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4개 · 1 / 1쪽 · 한 쪽 20개

파리 끈끈이를 붙이는 브리짓

설교자는 가정부 브리짓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여주인이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브리짓은 파리를 잡느라 바쁘다고 답했습니다. 끈끈이 종이를 샀으니 파리들이 그 위에 붙어야 하는데 저절로 앉지 않아 자신이 직접 붙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복음 전도에 빗댑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만으로는 죄인을 끌어오고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 인간이 고안한 방법을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단순하게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보충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자신은 그런 끈끈이 종이를 쓰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 예화는 비유로 쓰였으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사람의 기술이 아니라 복음 자체와 성령의 역사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65–65문단 · 예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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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설교자들은 자기들이 전하는 복음에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듯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만으로는 죄인을 끌어오고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 인간이 고안한 것을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복음을 단순하게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보충물이 필요합니다. 브리짓이 파리를 잡아 죽이느라 아주 바빴습니다. 여주인이 물었습니다. ‘브리짓, 지금 무엇을 하는 거니?’ 그가 대답했습니다. ‘보세요, 마님. 우리가 끈끈이 종이를 샀으니 파리들이 그 위에 붙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절로 앉지 않으니 제가 붙이고 있어요.’ 저는 그런 끈끈이 종이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

위중한 아버님께 전한 복음과 손을 잡은 응답

설교자는 한 성도의 아버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 사정으로 직접 찾아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복음의 내용을 정리해 성도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성도는 아버님 곁에서 그 복음의 내용을 소리 내어 읽어 드렸는데, 아버님은 위중한 상태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고 소리를 듣고 몸으로만 반응할 수 있었다.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야기를 모두 나눈 뒤, 평소 무뚝뚝했던 아버님과 아들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기운이 있었다. 그때 성도가 아버님께 믿으시면 제 손을 꽉 잡아 달라고 부탁했고, 아버님은 그 말에 손을 꽉 잡아 주셨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한 번도 복음을 전해 본 적 없는 성도가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전한 순간이었다고 나누었다. 성도는 아버님의 손에 담긴 힘을 느끼며 가슴 찬 마음으로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후 아버님의 건강이 조금 회복되어 요양병원으로 옮겨지셨고, 설교자는 어제 그곳을 찾아가 아버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설교자는 다시 아버님과 복음의 이야기를 이어 가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도를 마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하자, 아버님도 잘 표현하지 못하시지만 아멘으로 응답하셨다. 함께 간 성도와 그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그 시간을 보냈다. 설교자가 장난스럽게 어떤 아들이냐고 묻자, 아버님은 '내게 가장 소중한 아들'이라고 답하셨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해서 전하셨다고 한다. 설교자는 이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강조했다. 그리고 믿지 않는 부모나 가족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거창한 말이 아니어도 예수님이 나를 붙잡아 주셨다는 고백부터 용기 내어 말하기를 권면했다.

은주성 · 2026-10-23

설교 내 3–5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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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성도님의 아버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병원 사정상 제가 직접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성도님께 아버님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복음의 내용을 이렇게 만들어서 카톡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도님이 아버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가슴 복잡한 마음으로 저하고 통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보내 주신 그 복음의 내용을 아버지 곁에서 다 읽어 드렸습니다. 위중한 상황이라서요.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소리는 듣지만 몸으로 좀 표시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다 복음을 이야기하고 난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다 나누고, 아들과 아들, 아들과 아버지 서먹서먹한 관계 속에서, 아버님 믿으시면 제 손 꽉 잡아 주세요. 그랬더니 그 무뚝뚝했던 아버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손을 꽉 잡아 주셨다는 거예요. 한 번도 복음을 전해 보지 못했는데, 그 위중한 상황 가운데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맘대로 전했고, 그렇게 아버지의 그 손에 힘을 느끼면서 가슴 찬 마음으로 목사님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어, 아버님께서 건강이 조금 회복되었다고 요양 병원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어제 제가 만나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버님과 인사를 나누고, 아버님과 함께 그 복음의 이야기를 또 나누고, 또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니까 아버님께서 뭐라고 하셨을까요?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아멘 말씀하십니다. 함께 갔던 우리 성도님, 성도님의 아내분, 그 눈물에 흘리면서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는 그 시간 그리고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그 아버님께서 이렇게 표현을 잘 못 하시는데 저에게 좀 장난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막 물어봤어요. 아버님이 아들, 어떤 아들이에요? 이렇게 물어봤거든요. 근데 연세 많으시니까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뭐라고 하셨다고요? 내게 가장 소중한 아들요. 그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그리고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호, 뭐라고요? 고맙다고요. 고맙다. 고맙다.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전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할 수 있는 귀한 일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자리에요. 아, 믿지 않는 부모님이 생각나시는 분들, 가족들이 생각나시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기도한 다음에는요. 용기 내어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기를 축복합니다. 거창한 말이 아니어도 됩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셨어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 내게 새 생명 주셨어요.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면 참 행복해요. 그 비밀을 함께 말하며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암스테르담 거리에서 소리치던 설교자들

설교자는 아내와 함께 암스테르담에 있을 때의 경험을 전한다. 오랫동안 거리에서 설교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는데,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모습은 사실 설교라기보다 소리 지르기에 더 가까웠다. 설교자는 거리 복음 전도와 강단 설교의 상황이 매우 다르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에는 여전히 교훈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희미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들려지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고백한다. 같은 목적을 향하더라도 전하는 자리와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사례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22

설교 내 20–20문단 · 예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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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내와 함께 암스테르담에 있었는데, 오랫동안 거리에서 설교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실은 설교보다는 소리를 지르는 것이 더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의 교훈적인 요소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목소리가 희미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들려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점에서는 같지만,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스테파노 살해에 동의하고 교회를 핍박한 바울

설교자는 바울이 기독교인을 향해 얼마나 적대적이었는지를 먼저 설명합니다. 바울은 스테파노의 학살을 승인했고 교회를 파괴하고 있었으며, 더 많은 기독교인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에서 바울의 삶에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징후가 전혀 없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구원하시려 했다는 점이 이 본문의 핵심으로 제시됩니다. 설교자는 바울의 회심이 오랜 준비를 거친 결과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하나님의 개입이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준비의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합니다. 주변의 누군가가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있어 보여도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적용이 이어집니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시며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다는 확신으로 청중을 격려합니다. 이 이야기는 바울이 가장 먼 자리에 있던 순간에도 은혜가 찾아왔다는 메시지로 정리됩니다.

존 파이퍼 · 2026-10-22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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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의 전환을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서 준비하신 일과 연결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삶 속에서 쌓인 죄책감이나 실망, 죽음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전환을 이끌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 나아가고 있었고, 행동했으며, 자신의 종교에 완전히 헌신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준비의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속에서 바울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면, 그는 스테파노의 학살을 승인했고 교회를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더 많은 기독교인을 체포하려고 대마세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예수님께로 나아가고 있다는 징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려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