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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3개 · 1 / 1쪽 · 한 쪽 20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오래 참음

설교자는 인내를 결과를 앞둔 시간으로 설명하며, 시험을 앞둔 수험생을 예로 듭니다. 수험생은 합격이라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래 참으며 힘겹고 많은 수고가 요구되는 과정을 지나야 합니다. 설교자는 이처럼 인내는 유쾌하지 않은 시간일 수 있지만, 바로 그 과정이 열매로 이어지는 단계라고 말합니다. 특히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이 오래 참음으로 시작한다는 말씀과,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 가운데 오래참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씀을 함께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인내의 과정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지금 이 시간도 열매를 맺는 시간이라고 격려합니다. 설교자는 이렇게 믿음으로 버티며 열매를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성도의 모습이라고 적용합니다.

조시환 · 2026-10-23

설교 내 1–1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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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묵상 말씀은 야고보서 5장 7절에서 12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눈밖에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면하라. 아멘.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큰 일교 차이에 우리 성도 여러분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오늘을 견디는 소망의 인내'라는 제목으로 함께 야고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는 오늘을 살아가며 미래를 소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낸다고 말을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말씀 다 아시죠, 여러분? 그래서 그 믿음, 그 오늘과 미래의 사이에 있는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바로 믿음인데요. 그 믿음의 대표적인 행함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인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5장에는 앞절 말씀에 보면 의인이 가난한 종이 착취받고 억압받는 부자에 의해서 핍박받는 일들을 우리가 보게 되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그런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인내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인내는 주권자 하나님을 향한 능동적인 기다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7절 8절 말씀을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길이 참으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길이 참다는 것은 스스로 바로바로 적시적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면서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바라보는 것이 바로 길이 참으라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길이 참을 때에 농부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길이 참는 자들의 좋은 예가 되는 사람이 바로 농부들인 것이죠. 농부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따라서 그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있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죠. 이 유대 어 배경에서 농부들은 파종기 그러니까 우리나라 계절로 따지면 한 10월쯤 됩니다. 10월 전으로 해서 씨를 뿌리는 시기가 있고요. 그리고 수확기 한 4월쯤 됩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그때 전으로 수확을 하게 되는데 씨를 뿌릴 때에 그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씨가 그 비에 의해서 자라나기를 고대하는 농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농부가 그렇게 기다리고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길이 참으라라고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말씀을 보면 시작할 때 인내와 기도의 말씀으로 시작했다가 또 마지막도 오늘 인내의 말씀이고 내일 또 나눌 말씀인 야고보서 다음 장의 말씀은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라고 말씀을 했었죠. 1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리하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이다라고 이렇게 설명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에 또 이렇게 인내에 관한 말씀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인내는 그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한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면 신앙에 여러 요소들이 있거든요. 신앙에도 여러 요소들이 이렇게 나눠져 있는데 그 모든 요소들을 균형 있게 온전하게 세워진다는 설명입니다.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온전함으로 나아간다는 말이죠. 성을 향해서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온전하게 준비되어진다는 말입니다. 부족함이 없게 된다는 말씀으로는 그렇죠.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부어 주실 뭐 좀 편하게 설명하자면 복받을 그릇이라고 해야 될까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한량 없는 충만함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데 인내를 통해서 그 받을 그릇이 더 넓어지고 빈틈 없어지고 하는 일들이 바로 인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라고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길이 참으라. 오늘 두 점 말씀에서 무려 세 번이나 길이 참으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굳건하게 되어서 굳건하게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직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굳건한 마음으로 올라갔다는 그 단어와 같은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보하게 되어서 마음을 고정시키는 단어. 그것이 바로 굳건하게 한다는 단어입니다. 그렇게 고정시켜서 확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마음이죠. 그래서 이 인내는 여러분, 소극적이거나 그냥 수동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아주 적극적인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사랑의 열매 우리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에 보면 첫 번째 해당되는 것이 사랑은 오래 참고 다른 것 많이 있지만 첫 번째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견드리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 말씀에 보면 그 성령의 열매 중에서 네 번째 해당되는 말씀이 바로 오래참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여러 가지 열매들이 많이 있지만 오래참음의 열매, 오래참음이 바로 인내가 바로 열매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참음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은 오래 참는 상황은 그렇게 결과를 좋은 결과를 맺어지는 때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죠. 시험을 앞둔 수험생 오래 참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를 앞두고 인내의 그런 시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는 아주 힘겹고 또 많은 수고가 요구되어지는 그러한 과정 중에 있는 단계가 바로 인내 오래 참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열매라고 말씀을 합니다. 지금 말씀을 듣는 많은 분들 중에서 인내의 열매 과정 중에 있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금이 시간도 열매 맺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농부가 최종적인 귀한 열매를 바라보는 것처럼 최종 시간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공의가 세워지고 모든 정의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때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많은 성도들처럼 우리는 길이 참으며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마음을 가지고 인내의 열매를 맺어가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 두 번째는 인내는 오늘 야고보서에 보면 많은 언어의 교훈도 많이 하고 있는데요.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의 표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내는 입술로 말하는 것이 아닌데 제가 언어의 표현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금하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데요. 첫 번째가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원망하지 말라라는 단어는 9절에 보면 나와 있는데요. 그 단어는 한탄하다. 또 두 주변 사람에게 비탄을 고백하는 그런 단어입니다. 원망, 불평, 좌절이라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일들을 설명하는 것이죠. 우리가 여기 오늘 본문 문맥상으로 보면 어떤 부자에게 그런 원통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원통함을 가지고 주의 형제들에게 와서 원망, 불평, 힘든 말,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형제들 내에서는 또한 마음을 상하게 하고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원망하지 말라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 원망하는 마음, 그 한탄하는 마음, 비탄하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것이죠.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다 헤아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는 바로 원망이 아니라 있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백성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을 그랬고요. 25년 동안 출산되지 못하게 하다가 25년 후에 열매 맺지 않습니까? 모세도 40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던 그 모세를 40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원망 불평로만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원망을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입술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인내로 버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 말씀, 우리 12절 말씀을 한번 읽어 볼까요?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면하라. 여러분, 맹세하는 것은 또 다른 그 원망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미래를 하나님 앞에서 쉽게 내가 재단을 하려고 하는 유혹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미래를 내가 재단하려고 하는 교만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미래를 하나도 우리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재단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앞장 4장 말씀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한 사람이 어느 마을로 가서 장사하여 1년 후에는 많은 이익을 보리라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씀하시죠? 4장 14절 말씀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침에 안개가 자욱합니다. 그런데 그 안개는 몇 시간 지나면 오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는 그런 안개와 같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죠. 원망을 하지 말고 맹세를 하지 말라.

팔을 들어 올리기 힘든 일상의 경험

설교자는 청중에게 요즘 팔을 들어 올리기 힘든 분이 있는지 묻습니다. 5년 전과 10년 전, 20년 전을 비교하며 나이가 들수록 팔을 드는 일이 어려워진다는 일상의 경험을 꺼냅니다. 이어서 팔을 들고 있다가 지쳐 내려온 모세를 본문으로 가져옵니다. 홍해를 가르고 백성을 인도한 위인 모세도 팔이 지쳤다는 것입니다. 오늘 살필 인물은 모세가 아니라 성경에 잘 드러나지 않는 훌이라고 소개합니다. 배경으로 르비 골짜기에서 마실 물이 없던 백성이 모세에게 항의했고, 하나님이 물을 주셔서 겨우 목을 축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곧이어 아말렉이 쳐들어와 싸움이 시작되었고, 설교자는 어려움을 넘기면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는 모습이 우리 인생과 닮았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싸움을 맡기고 아론, 훌과 함께 산 꼭대기에 올라가는데, 설교자는 이들이 비슷한 연배였을 것이라며 할아버지들이 산에 오른 셈이라고 웃으며 전합니다.

이원희 · 2026-10-21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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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혹시 팔을 들어 올리기가 힘든 분 계십니까? 예. 맞습니다.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 5년 전만 해도 충분히 힘들지 않았을 텐데, 10년 전, 20년 전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팔을 들어 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팔을 들고 있다가 지쳐버린 한 사람이 나오는데요. 누군지 아십니까? 모세죠. 홍해를 가르고 이집트에서 백성들을 인도한 그 훌륭한 모세도 팔이 지쳐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인물은 모세가 아닙니다. 모세가 아니라, 우리가 이번 학기의 주제로 다루고 있는 ‘연약해도 넉넉합니다’라는 주제 아래, 성경에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요. 바로 훌입니다. 여러분, 훌이 성경에 몇 번 나오는지 아십니까? 몇 번 나오는지 아세요? 저는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사실 주목받는 인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의 주제,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그동안 우리가 이 주제 안에서 뭐 나오리 빌립보의 간수를 만났습니다. 오늘 만나는 훌도 성경에 몇 번 나오지 않는데요. 그런데 이 사람이 없었으면 이스라엘은 큰 위기에 처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을 좀 살펴 봤으면 좋겠는데요.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걷다가 르비 골짜기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이 르비가 어떤 곳인지 아시나요? 우리가 읽었던 17장 1절부터 보면, 마실 물이 없어서 힘들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오는데 바로 그곳이 르비입니다. 이 르비에서 목마르다고 백성들이 모세에게 항의를 하죠. 모세도 이 항의에 두렵고 또 항의를 맞이하니까 하나님께 나아가서 ‘저는 살려 달라’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물을 주시죠. 물을 주셔서 겨우 간신히 목을 추이게 됩니다. 여러분, 근데 이 르비 골짜기에서 위기를 넘겼는데 이번에는 아말렉이 쳐들어옵니다. 8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그때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에서 싸우니라. 여러분, 목마름의 문제가 해결이 좀 되나 싶었더니 곧바로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생존의 문제가 목마른 것도 생존의 문제이지만 이제는 전투가 찾아오는 것이죠. 여러분, 르비에서 일어난 이 문제들은 흡사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려움을 넘겼다 싶으면 또 어려움이 찾아오고, 몸이 좀 괜찮아졌다 싶으면 무릎이 아프고, 무릎이 괜찮았다 싶으면 팔이 아프고,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르비에서 그런 어려움을 만나죠.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분, 전공이 무엇입니까? 벽돌 만드는 겁니다. 그냥 시키는 일을 하는 노예였습니다. 군사 훈련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군대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과 싸우라고 하니까 굉장히 당황하죠. 근데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모세랑 여호수아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싸움터에 내보내고 모세는 산 꼭대기로 올라간다고 하죠. 근데 혼자 올라가지 않습니다. 10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누구랑 올라간다고요? 아론과 훌과 함께 올라갑니다.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 모세, 아론, 훌은 동년배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들께서 산 꼭대기로 올라간 겁니다. 대단하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세 가지 단어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살펴봤으면 좋겠는데요.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피곤, 붙듬, 깃발. 다시 한번 읽을까요? 시작. 피곤, 붙듬, 깃발. 여러분, 첫 번째 나오는 단어입니다. 첫 번째는 피곤입니다. 피곤. 바로 밑에 있는 글을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모세도 지쳤. 여러분, 모세도 지쳤습니다. 출애굽기 17장 1절 11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여러분, 너무 잘 알고 있는 말씀이죠. 제가 유년부 아이들과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주일마다 유년부 아이들도 어느 정도 성경을 많이 읽었다면 충분히 알고 있을 법한 부분입니다. 승패의 달려 있음이 여호수아의 칼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있었습니까? 모세와, 모세의 팔 그리고 기도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세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었습니까? 지팡이. 그 지팡이로 수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와 함께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이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입니다라는 믿음의 선포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것이죠. 근데 12절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함에, 여러분 모세도 피곤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모세가 피곤한 것을 애써서 감추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그 위인이라고 해도 피곤함을 감추지 않아요. 믿음이 좋으면 안 지칠까요? 아니죠. 그렇지 않습니다. 소년이어도 지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우리도 기도하다가 분명히 지칠 때가 있습니다. 3개월, 6개월 기도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자녀들을 위해, 손주들을 위해 그들의 구원을 위해 10년, 20년 놓고 기도하신 우리 성도님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모세와 같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내가 신앙이 약해서 그런가 보다. 내가 기도를 덜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스스로 자책하는 마음까지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믿음이 없어서 지쳤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흙으로 빚어진 유한한 창조물이기 때문에 누구나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우리 음목사님께서 바울의 가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약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모세도 똑같이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다음 페이지요.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지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지치고 아파지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애써 숨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모세도 이 지침이 힘들어짐이 그냥 기록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의 지침을 강건하게 또한 건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데 팔이 내려온 모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두 번째 단어인데요. 두 번째 단어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붙듬. 여러분 함께 붙들면 넉넉합니다. 12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모세의 팔이 피곤함에, 그들이 모세의 아래에 놓아 안게 하고, 아론과 훌,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아멘. 아멘. 아멘. 여러분, 아론과 훌의 한 일을 하나씩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뭘 가지고 오죠? 돌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핀잔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왜 이렇게 약합니까? 왜 이렇게 민족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힘이 없습니까?’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세에게 지금 지쳐 있는 모세에게 필요한 말은 잔소리가 아니라 앉을 자리입니다. 돌 하나를 놓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양쪽에서 그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붙들어 줍니다. 모세의 팔을 대신해서 들어 준 것은 아닙니다. 모세에게 ‘잠깐 좀 쉬시라고, 내가 대신 들어서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기도하는 모세의 팔을 붙들어 줍니다. 기도는 모세가 하고, 아론과 훌은 그 기도가 멈추지 않도록 곁에서 붙들어 주었습니다. 해가지도록 붙들어 줍니다. 여러분,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모세 그리고 아론, 훌은 아마도 비슷한 연배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론과 훌도 붙들어 주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붙들면 넉넉하다라는 진리를 이들은 알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여러분,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13절 말씀인데요. 13절 말씀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여러분, 통쾌한 승리 아닙니까?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못 찍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군대의 훈련을 받지도 않고 군사 훈련을 받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찔러 이겼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말씀이 이어지는데요. 14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단지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라는 것만 기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잊지 말라고 책에 적어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10절 말씀에 나왔던 모세, 아론, 훌이 기록이 됩니다. 성경에 많이 나오지 않는 그 훌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기록해 놓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 전쟁의 공로자가 누구였을까요? 여호수아도 공로자였을 것이고, 모세도 당연히 공로자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팔을 붙든 아론과 훌 또한 공로자였습니다. 특별히 훌이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작게 등장하는 그이지만, 그가 이 전쟁의 주역이었음을 하나님을 기록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하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4장 14절 말씀에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으로 올라가는데요.

아내와의 저녁 메뉴 대화에 빗댄 새 창조

설교자는 이사야 43장의 새 일을 설명하면서 일상적인 부부 대화를 가볍게 떠올립니다. 설교자가 아내에게 저녁 메뉴를 묻는다고 가정하는 장면입니다. 아내는 그냥 새롭게 할 거야라고 대답하고, 설교자는 아 하고 반응합니다. 이어서 설교자는 이것이 새 창조라고 농담처럼 말하며 이사야 43장을 인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설교자는 아내가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상황까지 함께 그려 보입니다. 이 장면은 새로움을 어렵게 설명하기보다 친숙한 말 속에서 떠올리게 하는 비유로 쓰입니다. 설교자는 이를 통해 새 창조라는 개념을 청중의 일상에 가까이 가져오려 합니다. 대화 형식의 예화여서 가볍지만, 신학적 용어를 생활 언어와 연결하려는 의도가 드러납니다.

알렉스, 잼, 샘 · 2026-10-21

설교 내 84–84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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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롭게 솟아오릅니다. 이는 땅에서 새 생명이 솟아나는 것처럼, 가지나 줄기가 뿌리에서 다시 자라나는 것처럼 표현된 것입니다. >> 내가 아내에게 물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 뭐 먹을 거야?"라고. 그녀는 "아, 그냥 새롭게 할 거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나는 "아."라고 할 것입니다. >> [웃음] >> 너는 >> 알겠지, 새 창조야. >> 너는 이사야 43장을 인용하고 있어. 그녀는 "무슨 말이야?"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데이allas 잼의 인터뷰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그는 조나단 레만과 매우 비슷한 말투를 가지고 있습니다. >> 조나단 레만처럼 말이죠. >> 누가 그들을 한 방에 함께 본 적이 있나요? >> 마찬가지로, 팀 켈러를 듣고 눈을 감으면, 그는 체비 챠시처럼 들립니다. >> 정말 그런가요? >> 그렇죠. >> [웃음] >> 나는 >> 종종 사람들이 너와 내가 서로 비슷하게 들린다고 말하더군요. >> 자, 18절에 대해 한 마디 해보겠습니다. 알겠죠, 이 구절은 아이러니하죠. 왜냐하면 16절과 17절에서 이사야가 "아, 내가 너에게 기억해야 할 것을 말해줄게. 여호와께서 바다를 가르고 바로의 전차를 무너뜨리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라고 말하면서도, 그 다음에 "이런 일을 기억하지 말라."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 잊어버려라. >> 그리고 저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이 이런 일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이제 잊어버려라. 이는 곧 과거에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던 일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뛰어난 일이 될 것입니다. 알겠죠, 출애굽 사건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소진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16절, 17절, 18절이 함께 보았을 때, 여호와께서 행하실 일은 출애굽 사건과 일치하며, 이는 곧 이전의 일과 비슷한 새 일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새 일은 이전의 일과 비슷하지만, 동시에 이전의 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전의 일과 새 일 사이에는 단절이 있으며, 새 일은 훨씬 더 크고 위대할 것입니다. >> 예를 들어, 언약의 표징은 언약 공동체에만 적용되었죠. >> 그렇죠, 맞습니다. >> 바로 그런 예입니다. >> 그렇죠. 그리고 저는 >> 할렐루야. >> 저는 성경에서 유형론을 다루는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겔리와 웰럼은 그들의 책에서 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저자들도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형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말합니다. 텍스트적 대응과 역사적 대응을 원합니다. 그리고 종종 언급되는 것은 단계적 발전입니다. 반유형은 원형보다 더 크고 위대해야 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예로 들어, 반유형과 원형 사이의 단계적 발전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또한, 이사야가 본인 스스로 유형론적으로 읽고 있다는 점을 잠시 주목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모세의 글들이 자신들을 넘어서는 더 큰 종말론적 행위를 가리키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으며, 모세의 글들에 담긴 종말론적 사상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시대에 맞게 투영하고 있습니다. >> 아멘. >> 내가 당신이 설명한 단계적 발전에 대해 주목한 것은, 이는 양면적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점점 더 좋고 영광스러워지지만, 동시에 악한 일도 더 심각해진다는 점입니다. 바로, 심판이 더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 그렇죠, 맞습니다. >> 그렇죠. 저는 이사야 2절에서 물과 불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당신의 말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실제로 그걸 노트에 적어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당신이 그쪽으로 가셨다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당신이 정확히 맞다고 생각합니다. 소돔과 홍수 사이의 관계는 종말론적 기대를 만들어내며, 2 베드로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처럼, 이는 세상의 종말적 심판이 될 것입니다. 이는 단지 홍수에서의 육체적 생명의 파멸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지역적 심판이 아니라, 악한 자들에게 가해질 종말적 심판이며, 이는 육체적이고 영적인 측면에서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심판이 될 것입니다. >> 자, 우리는 19절 중간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새 일은 이전의 일과 비슷하다."라고 말씀하시죠.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제 새롭게 솟아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