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4개 · 1 / 1쪽 · 한 쪽 20개
자녀들이 방에서 나와 어깨동무한 모습
설교자는 자녀들의 모습을 통해 부모의 마음을 나눕니다. 말을 잘 듣는 자녀가 얄밉게 느껴질 때도 있다는 유머로 시작합니다. 설교자의 자녀들은 이전 교회에서도, 지금 교회에 왔을 때도 첫날 무언가를 부수곤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제 아이가 방에서 뛰쳐나와 설교자에게 말했습니다. 엄마와 형이 방에서 분명히 다투듯 지냈는데 지금은 어깨동무를 하고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앉아 밥을 먹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설교자는 이것을 보며 부모의 품이 넓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품은 바로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넓다는 것을 알아 간다고 덧붙입니다. 설교자는 이를 하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언약의 마음에 비추어 설명합니다.
오경제 · 2026-10-23
설교 내 10–10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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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에 대해서 대항을 하고 언약을 파괴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부활의 사건을 통해서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메시지가 하나님의 언약인 거거든요. 이것은 이제 부모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말을 잘 듣나요? 잘 듣는 자녀를 보면 좀 얄밉더라고요. 한승우 목사님 자녀들 너무 착한 거 같아요. 우리 자녀들과는 좀 달라요. [웃음] 한승 목사님 얘기했어요. 너무 착한 거, 이렇게 말 잘 듣는 거 같다. 그렇대요. 저희 아이들은 안 그렇거든요. 이전 교회도 그렇고, 우리 교회 왔을 때도 그렇고요. 첫날 늘 뭘 부셔 먹어요. 정말 그래요. 에너지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렇게 막 뛰쳐 나와 가지고 저한테 하는 말이, '아빠, 엄마랑 형아랑 분명히 그 방에 들어가서 막 그랬는데, 지금 어깨 동무하고 나오고 있어. 그리고 같이 앉아서 밥을 먹고 하더라고요.' 아, 부모의 품이 넘죠. 부모의 품이 넘습니다. 엄마는 그것이 드러난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버지 된 품이라는 것은 바로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버지의 존재의 품이 넓다는 것을 알아가는 거 같아요. 자녀를 키우다 보면, 하나님의 이 언약이라는 것은 그만큼 여기서 말하는 헤세드의 사랑, 신실성을 얘기하고 있는 거죠. 아침에 시작할 때 이러한 마음으로 시작하자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품 안을 떠나는 자녀 이야기
설교자는 부모가 자녀를 품 안에 두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부모의 팔힘이 세서 자녀를 붙잡고 있을 때까지는 자녀가 품 안에 있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자녀는 결국 떠나고, 부모가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거나 밥을 먹여 줄 수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자녀를 지키는 일은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부모가 더 이상 보호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이 보호하고 지켜 주시기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남편을 지키는 일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이것은 부모와 가정 모두에게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라는 적용으로 이어집니다.
하용조 · 2026-10-21
설교 내 1–1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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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피하지 말고, 꼭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가장 중요한 생각은, 그 제자가 내 제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속한 사람인데, 하나님이 나한테 보낸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보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남편도 누가 보내 준 사람이라고요?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이고요. 여러분의 아내도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이에요. 여러분을 속이려는 친구도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셨습니다. 이 제자들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나한테 보내 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나는 이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주고 축복해 주고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일 가지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보통 제자라 부르면, 내가 이 사람한테 무슨 일을 시키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전문성을 훈련시키고 전수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사랑이었습니다. 부족하고 흠이 있고 미숙해도, 그걸 다 껴안고, 이 사람이 언젠가 성숙해질 때까지 예수님 죽고 나서 성령 받을 것을 아시고, 그때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어 주고 기다려 주고 사랑했던 것이 제자 훈련이었다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 훈련을 하시고 나서, 두 번째로 예수님은 기도를 하시는데,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도를 하십니다. 11절부터 다시 보시겠습니다. 11절 한번 같이 읽어 주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어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옵소서.' 11절에 보면 두 가지 기도가 나와요. 첫째는 '아버지여 저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이고요. 두 번째는 '아버지여 하나님이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먼저 하나되게 해 달라는 기도부터 시작을 하겠습니다. 사람의 본능, 죄인의 본질이 분열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아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이면 얼마 가지 못해서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서로 평가하고, 서로 비판하고 헤어지는 게 인간의 본능입니다. 가만 놔두면 꼭 인간은 헤어지게 되 있어요. 가만 놔두면 인간이 서로서로 이렇게 사랑하고 협동하고 하나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인간은 서로 헤어지지 못해서 앙탈을 합니다. 그게 인간의 죄성이고 본능이에요. 사람의 본능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에요. 가만 놔두면 서로 미워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에요. 사랑의 본능은 나눔이 아니라 소유예요. 자꾸 가지려고 해요. 주려고 하지 않고, 자꾸 내 것을 만들려는 게 인간의 본능이에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에요. 처음에는 평화한 거 같지요. 처음에는 나누어 줄 것 같지요. 처음에는 사랑하는 것 같지요. 그러나 부패한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그 본질이 다 드러나는 거예요. 인간은 일치하기보다는 자꾸 분열해요. 분열의 영이 있어요. 왜 이렇게 사람들은 자꾸 가만 놔두면 싸우고 비판하고 헤어질까? 이유가 간단합니다. 그 속에 죄가 있기 때문에, 죄 뿌리가 있기 때문에, 도덕과 교양과 훈련을 통해서는 처음에는 안 보여요. 그러나 그것이 지나가면 인간 안에 죄성의 뿌리가 이렇게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람은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소유의 욕망,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권력의 욕망, 사람을 믿지 않는 의심의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잘 믿다가도 의심하고, 하나됐다고 하다가 또 편가르게 하고 싸우는 것이 인간입니다. 제일 큰 숙제가 동업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나는 끝까지는 사람 보면 머리 숙이고 싶어요. 그게은 어렵습니다. 꼭은 나중에 헤어집니다. 사탄은 분열의 영입니다. 마귀가 들어오면 어떤 이유를 들어서도 싸우고요. 이게 어디까지 싸울까요? 교회도 싸워요. 그 교회 싸우는 거 보셨어요? 아, 뭐 많이 받겠지요. 안 싸우는 교회가 없고요. 분열 안 하는 교회가 없어요. 사랑에서 서로 헤어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파송해서요. 근데 인간은 자꾸 이렇게 싸워서 헤어져요. 성령은 연합과 일치의 영입니다. 이 성령이 임하면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서 틀린 것도 하나로 만들고, 다른 것도 새롭게 하나로 만드는 영이 성령의 영입니다. 사탄의 영은 분열과 미움과 비판과 싸움으로 결론을 짓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화해자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화목 재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한테 부탁한 게 뭐예요? 세상을 화목케 하라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천사도 감당할 수 없는 직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화목케 하는 축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가는 곳마다 화해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트라블 메이커가 되지 마시고 피스메이커가 되십시오. 싸우면 붙여주고, 이혼하면 붙여주고, 나가면 돌아오게 하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화해자의 특징이 뭔줄 아세요? 십자가 짓는 거예요. 그냥 있어서는 화해가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기 위하여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던 것처럼, 화해자의 대가는 언제나 십자가를 짓는 것입니다. '주여, 저들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 기도였어요.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12절에 있는 11절에 있는데, 11절 12절에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아버지여, 저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옵소서.' 우선 12절을 읽겠습니다. 12절 시작.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오사 지키었나이다. 그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이는 멸망할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심이라.' 예수님의 관심은 11절에도 12절에도 보존하게 해 달라. 제자들을 지켜 달라. 보호해 달라, 보존해 달라.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11절에서는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존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셨고, 12절에도 똑같이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여 지키었나이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11절에는 하나님이 보존하게 해 달라는 기도고, 12절에는 '내가 저들을 보존하여 지켰나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성도의 보존, 안전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지키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켜 주지 아니하면, 우리가 내가 나를 아무리 지켜도 잘 안 돼요. 인간이 발견한 것 중에 하나가 성입니다. 성.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성을 쌓는 거예요. 그게 바벨탑이에요. 성을 쌓다 보면 무슨 결과가 오느냐? 성을 높이 쌓다 보면, 타인의 공격에서부터 날 지키기 위해서 성을 쌓다 보면은 타인과 단절되는 거예요. 인간은 인간의 외로움이란 누가 외롭게 만들어 준 게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 거예요. 여러분 외롭다는 사람한테 속지 마세요. '나는 외로워' 이런 거. 뭘 외로워요? 자기가 외로움을 만들었지. 이 사람 끊었지. 저 사람 끊었지. 혼자 골방에 들어가 이집 입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안 내려올 방법이 어디 있어요? 외로운 사람 제가 말합니다. 이불을 팍 차고 나오십시오. 아멘. 그리고 나가 사람 만나세요. 그럼 안 외로워져요. 이래서 뭐 싫고 절에서 싫고 다 [한숨] 스스로 외로움을 만나는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성을 쌓으면 첫째 타인과 단절되고요. 두 번째 또 뭐가 있어요? 스스로 성 안에 갇치는 거예요. 그리고 홀로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지켜 주지 않으면 우리가 어찌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운전해도, 술 먹고 뒤에서 박는데 어떻게 해요? 내 노력으로만 세상은 사라지지 않아요. 내 노력 내가 성실하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요. 하나님의 보호와 보존이 필요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보호. 시편 23편 1절부터 4절에 보면은 유명한 말씀이 있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놓이시며, 잔잔한 시내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비록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아니하시나이다.' 이게 뭐냐면 하나님의 보호, 하나님의 보전.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렇게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자녀요. 여러분, 여러분이 팔이 힘이 세 가지고 자녀를 붙잡고 있을 때까지는 여러분 품안에 있어요. 근데 이 아이들이 품 안에 오래 있지 않아요. 다 떠납니다. 쫓아다니면서 잔소리 하겠어요. 쫓아다니면서 밥을 먹여 주겠어요. 하나님이 보호해 줘야지요. 그래서 꼭 기도해야 돼요. '나는 더 이상 보호할 능력이 없다.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이 지켜 주옵소서.' 아멘. 이렇게 기도하는 거예요. 여러분 남편을 다 어떻게 지켜요? 술직 가는데 하나님이 지켜 줘야죠. 하나님이 여러분의 안에도 하나님이 지켜주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버지여 지켜 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세 번째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이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했었어요. 13절을 보겠습니다. 시작.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기독교의 교리 중에 독특한 교리는 기쁨의 교리입니다. 기독교는 슬픔의 종교가 아니라 기쁨의 종교고요. 좌절의 종교가 아니라 희망의 종교입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목사의 아들이라는 부담을 덜어준 대화
설교자는 자녀들이 아버지의 사역을 부담으로 느끼지 않도록 가정에서 노력했던 일을 나눕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아들들에게 '목사의 자식'이라는 부담을 완전히 덜어준 것이었습니다. 마이클이 10살, 11살 무렵 교회의 한 사람이 그에게 목사 아들이면서 그런 짓을 한다고 말했고, 아내 토니아에게 이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마이클은 그 말이 공평하지 않다고 여겼고, 토니아는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더 중요한 것은 마이클이 왕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땅의 아버지보다 하늘 아버지가 중요하며,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잘못 보고 있으니 무시해도 괜찮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설교자는 자녀들에게 강조한 것이 이 세상에서 아버지에게 책임지는 시간은 짧지만 영원히 하늘 아버지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 가정의 원칙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이 가치를 따라 교회보다 아내와 아들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려 했다고 고백합니다. 이 대목은 자녀에게 정체성을 바르게 심어 주는 것이 가정 사역의 중요한 부분임을 드러냅니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21
설교 내 17–17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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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목사의 자식"이라는 부담을 완전히 제거한 것입니다. 마이클이 10살, 11살 때 교회에 있던 누군가가 그에게 "믿을 수 없어, 너 목사 아들이면서 그런 짓을 하다니"라고 말했다고 토냐에게 말했어요. 마이클은 그 말이 공평하지 않다고 했고, 토냐는 "네 말이 맞아"라고 했습니다.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버려야 해"라고 말했죠.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라고 하자 마이클이 "무슨 문제인가요?"라고 묻자, 토냐는 "목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 네가 왕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네가 신경 써야 할 일이고, 너의 땅에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서의 아버지가 중요하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네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그 사람도 잘못된 점을 보고 있는 거니까 무시해도 괜찮아." 우리가 아이들에게 강조한 것은 "이 세상에서 네가 내게 책임을 져야 하는 시간은 짧지만, 영원히 하늘 아버지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를 그분께 맡기고 사는 거야." 그리고 저는 이 가치를 반영하는 결정을 내려왔습니다. 제 아들에게도, 제 아내에게도 교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항상 교회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아내는 다시 얻을 수 없고, 마이클과 세스의 아버지라는 역할도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있지만, 만약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저는 항상 아내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드릴게요. 기본적으로 갈등은 없지만, 때때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지금은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이라 1995년을 떠올리게 됩니다. 당시 제 아들 마이클은 12살이었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브레이브스가 1995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저는 멍청한 생각을 했습니다. 브레이브스가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이겼을 때 마이클이 너무 기뻐했고, 저는 "마이클, 만약 브레이브스가 다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면, 우리가 가자. 나이가 아무리 들었어도, 다른 일이 아무리 있어도, 우리가 가자. 내가 80살이라도 너가 데려가줘야 해"라고 맹세했습니다. 마이클은 12살이었으니, "아니, 그런 멍청한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해"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네, 좋아요"라고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다음 해 브레이브스가 플레이오프를 무패로 통과해 야니스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을 때 저는 놀랐습니다. 그 주에는 제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부흥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부흥회 강사로 삼 카티를 예정해 놓았습니다. 삼 카티는 오래전 남침 통합 교회에서 이름을 알던 인물이었죠. 그는 불과 석유로 가득한 설교를 했고,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을 꺼내면 바로 꺼내는 사람으로, 저는 그가 부흥회에 올 것이라고 알고 있었고, 마이클과 월드시리즈 약속을 지키기로 한 사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두 경기는 뉴욕에서 열렸고, 세 번째 경기는 애틀랜타에서 화요일 밤에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부흥회는 일요일 아침에 시작되었고, 삼 카티는 토요일 밤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삼, 말할 게 있어"라고 했습니다. "내일 부흥회에 참석할 거고, 월요일 밤에도 참석할 거지만, 화요일과 수요일 밤에는 참석하지 못할 거야." 삼은 제가 2x4로 머리를 때렸다는 듯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 어디 가는 거야?"라고 묻자, 저는 "월드시리즈 경기에 가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교회를 포기하고 경기를 보러 가는 거야?"라고 묻자, 저는 "아니, 교회를 포기한 게 아니라, 내가 아들에게 한 멍청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는 거야. 나는 약속을 지켜야 해. 애틀랜타로 가서 월드시리즈 경기를 보러 가야 해. 티켓은 어떻게 구할지 몰라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삼은 "그건 잘못된 일이야"라고 했고, 저는 "알겠네"라고 했습니다.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교회를 빠지는 건 안 돼"라고 하자, 저는 "삼, 네가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아. 나는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교회를 빠진 게 아니라, 내가 아들에게 한 멍청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빠진 거야. 성경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어. 나는 그 약속을 지킬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삼은 제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제 이야기를 꺼내며 제 믿음을 흔들었습니다. 저는 월드시리즈 경기를 보러 갔고, 교회에서 익명의 편지를 두 통 받았습니다. 그리고 삼과의 관계는 그 후로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삼의 사위가 제게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저는 설교 예시로 쓰였다고 합니다. "나는 어떤 목사를 알고 있어. 이름을 말하면 다들 알 거야. 그 목사는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교회를 빠졌지."
아들들과 떠난 청소년기 여행
설교자는 두 아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 때 각자의 원하는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들들은 성격과 관심이 매우 달랐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활동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큰아들이 열한 살이 되었을 때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마이클은 세스보다 두 살 많았기 때문에 시카고를 선택했고, 콜리지 교회의 켄트 휴즈 목사를 만나고 위튼과 모디 기념 교회, 자연사 박물관과 셰드 수족관, 시카고 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설교자는 그 여행의 세부 사항을 지금도 마이클이 기억한다고 말하며, 그 여행을 통해 아들과 함께 청소년기를 다시 이끌었다고 표현합니다. 작은아들 세스는 오렌지를 보고 싶어 했는데, 설교자는 그 이유가 분명하다고 가볍게 덧붙입니다. 이후 설교자는 두 아들에게 열여섯 살이 되면 세계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약속했고, 몇 년간 돈을 모아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마이클은 런던을 골라 대영박물관과 엘긴 석조상, 린디스파네 성경 원고를 보고 싶어 했으며, 비틀즈를 좋아해 리버풀도 다녀왔습니다. 세스는 아마존에서 화려한 바스를 낚고 싶어 했고, 그 소원도 이루어졌습니다. 설교자는 이 여행이 아들들과 지금도 이어지는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21
설교 내 21–24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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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활동이 없었습니다. 그 아들들은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어디든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 마이클은 세스보다 2살 많기 때문에, 그는 시카고를 선택했습니다. 콜리지 교회의 켄트 휴즈 목사를 만나고 싶었고, 위튼과 모디 기념 교회, 자연사 박물관과 셰드 수족관, 시카고 대학교를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11살 때의 여행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는 지금 43살인데, 그 여행의 모든 세부 사항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를 통해 다시 청소년기를 인도했습니다.
세스는 오렌지로 가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명백하겠죠.
[웃음]
그들은 매우 다릅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16살이 되면 세계 어디든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 그래서 우리는 그 여행을 위해 돈을 모았습니다. 저는 몇 년간 돈을 모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마이클은 런던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브리티시 박물관을 보고 싶었고, 아크로폴리스의 엘긴 석조상을 보고 싶었습니다. 브리티시 라이브러리에서 린디스파네 성경 원고를 보고 싶었습니다. 런던의 모든 박물관을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리버풀로의 부가 여행도 했습니다. 그는 비틀즈 팬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세스는 아마존에서 화려한 바스를 낚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