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공부 중 불편했던 동료 목사와 주님의 질문
설교자는 에버르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때의 경험을 나눕니다. 그곳에는 한국 목사님들 15가정 정도가 함께 와서 공부했고, 대부분 좋은 관계를 맺으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교자에게 유독 불편한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설교자에게 잘해 주었고 사회에서도 사랑과 인정을 많이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설교자는 성격 탓인지 그를 보면 속에서 부글부글 무언가가 올라온다고 고백합니다. 여러 제목으로 그를 싫어했는데,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잘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그를 매일 바라보며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자'는 태도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 그의 약점이 드러나는 현장을 포착했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그 장면을 호주머니에 넣었다고 표현하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자신이 훌륭하다고 여겨 너무 기뻐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칭찬할 때마다 그 약점을 한 번씩 열어 보며 이중적인 기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엉뚱한 기쁨으로 기뻐하던 어느 날 주님이 질문하셨다고 나눕니다. 설교자가 되묻자, 주님은 그에게 '너에게 부활은 뭐야?'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이 허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일은 이미 지난 일이며, 오늘 부활의 영광이 그에게 임했을지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설교자는 그때 너무 수치스럽고 부끄러웠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세상이 상대의 약점을 붙들고 자기를 높이는 자리라면,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일로 배웠다고 적용합니다. 상대의 약점을 붙들고 낮추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설교 내 9–9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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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르에서 공부할 때, 여러분 한국 목사님들이 한 15 가정 정도가 와서 같이 신학을 공부했는데, 거의 대부분이 좋은 관계를 잘 맺으면서 지냈는데 한 분은 참 불편했어요. 저한테 참 잘해 줬고, 정말 그 사회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인정을 많이 받던 분인데, 희한하게 저는 성격이 약간 뭐가 나서 그런지, 그냥 보고 있으면 속에서 부글부글 뭐가 자꾸 끌어 올라오면서 그렇게 한 분 힘들게 생각했어요. 여러 가지 제목으로 그분을 싫어했는데, 그중에 영어도 너무 잘해요. 저는 사투인데 그분은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하시는 거예요. 그런 많은 것들 때문에 불편해 하고 있을 때, 매일 가지고 '그래,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자' 이러고 딱 보고 있었는데, 놀랍게 놀라운 현장을 딱 포착했어요. 예. 여러분, 제가 그 현장을 딱 포착하고 보자에 딱 사서 호주머니에 딱 넣었어요. 그리고 너무 기뻤어요. '내가 아무한테도 말 안 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보고도 나는 아무한테 토스하지 않았다. 얼마나 훌륭한가 나요. 이러면서 너무 좋아했어. 너무 좋아했어.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그분 칭찬을 하면 한 번씩 열어 봤어요. 그러면서 이중적인 기쁨이 왔어요. 이 사람 이런 사람인데 나는 말 안 한다. 그 사람의 그 약점도 붙들고 있고, 그죠. 말 안 하는 저의 또 고매함이 드러나면서 막 너무 기뻤는데, 하도 그렇게 엉뚱한 기쁨으로 기뻐하니까 주님이 하루는 질문하셨어요. '쏘왓 영국이니까 영어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냐?' 그렇게 물었어요. 제가 주님께 대답했어요. '주님, 이걸 보시고 다 아시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제가 여쭈었어요. 그때 주님이 저에게 '너에게 부활은 뭐야?' 이렇게 질문하셨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때 그 사람은 정말 그 일을 허물 있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일은 이미 지난 일이고, 오늘 부활의 영광이 그에게 임했을지 네가 어떻게 아냐?' 이렇게 주님이 반문 딱 하셨을 때 너무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세상은 끝없이 상대의 약점이 드러나고 모자람이 보이면 어떤 형태로든지 그걸 붙들고 어떤 형태든지 그걸 붙들고 자기를 높이고 상대를 낮추고 싶어 하는 이런 세상에, 사랑을 하기를 사랑을 가르치기를 기뻐하시는 주님은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