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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3개 · 1 / 1쪽 · 한 쪽 20개

삭개오의 외로움과 나무 위 만남

설교자는 세리장 삭개오가 돈은 많았지만 친구가 없어 외로웠다고 설명합니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모두 얼굴을 돌려 피해 가니, 돈만으로는 만족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삭개오는 예수님이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았다는 소문을 들었고,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세리인 그가 예수님을 찾아가기에는 명분이 없었고, 세금을 착복한 죄만 드러날 것 같아 쉽게 나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아침 일찍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 뽕나무, 설교자의 말로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키가 작아 사람들에 둘러싸인 예수님을 길에서는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무 위의 그를 올려다보며 이름을 부르셨고, 오늘 밤 그의 집에서 머물겠다고 하셨습니다. 설교자는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직 인간성이 남아 있다는 증거라고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6

설교 내 61–70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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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삭개오가 부자라는 거예요. 부자인데 뭐가 없느냐? 돈은 있는데 친구가 없어.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다 외면해 버리고 피해 가 버리고 그래. 이런 돈 있어 봐야, 온 여리고 사람들이 다 그러면 무슨 만족이 있겠냐고. 돈이면 행복할 줄 알지만 돈 갖고는 아니야. 그래서 많이 외로워졌는데 이 사람이 소문을 들었을 거라. 한 삼 년 전부터 무슨 소문이냐? 저 가버나움의 마태를 잘 알지. 세리 세계가 많은 인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예수라는 예언자가 있는데 자기가 아는 마태라는 사람을 제자로 삼았다네. 세상 이상해. 그래서 너무 외롭고 외롭고 하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거예요. 저는 한 번 부산의 어떤 병원에 가 있는데 옆 야구장에서 야구를 하면서 함성 소리가 병원 창이 막 떨릴 정도로 나는 거예요. 나는 내 평생 한 번도 야구 보러 간 적이 없어요. 야구장에 간 적도 없고 축구 보러 간 적도 없고 그런 거 보러 간 적이 없는데, 그때 야구 선수 누가 오고 하면 그 앞에 여고생들이 그 선수가 자는 호텔에 떼로 몰려와서 이름을 부르고 그런다네. 참 희한하다. 한편으로 그때 나는 인정도 메마르고 눈물도 없고, 그런 배우나 이런 사람도 보고 싶지가 않아요. 산청에 보면 옛날에 극장이 있었어요. 공회당이라 하는 데가 있었는데 거기에 최무룡이 오셨다는 거예요. 오시면 내가 거기 가 볼 일이 뭐 있어? 보면 내 것도 아니고 내가 왜 가? 거기를 가려면 육 킬로미터, 칠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돼. 그걸 보러 간다고? 그걸 보면 뭘 한대? 또 김지미가 온대. 김지미가 온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제가 그렇게 마음이 메말라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내가 이렇게 마음이 메말라서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아서 되겠나? 저는 그때 청년들, 학생들 하는 게 더러 마음에 안 들고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건 참 좋은 마음이라고 봐요. 저는 누구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없으니까 얼마나 내 마음이 삭막한지요. 여러분, 삭개오는 모든 친구가 다 없어지고 돈은 있는데 친구는 없어.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가 아는 마태를 제자로 삼았다는 말을 들은 후에는 그냥 예수님이 보고 싶은 거야. 세리인 자기가 어려운 사람 같으면 예수님을 찾아가거나, 아픈 사람이 찾아가거나 하겠는데, 자기는 돈도 많고 무슨 명분으로 예수님을 찾아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세금을 많이 짜내서 착복한 죄만 드러날 텐데 갈 수도 없고요. 그렇다고 예수님이 안 보고 싶은 게 아니고 보고 싶어. 저는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희망이 있다, 하다못해 탤런트나 배우나 스포츠 스타나, 누구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아주 인간성이 남아 있고 좋은 심리라고 봐요. 어쨌든 이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 그런데 마침 소문이 들리기를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그 기회도 마지막 기회야, 여리고로 지나가신다네. 가서 봐야지. 그래서 아침밥을 일찍 먹고 거리에 사람들이 안 나올 때 나무에 올라갔어. 성경에 보면 뽕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에요. 뽕나무가 아니고 돌무화과나무인데, 여러분, 무화과하고 뽕나무가 과가 같아요. 돌무화과, 야생 무화과나무인데 여리고에 가면 지금도 그 나무인지 모르지만 굉장히 큽니다. 우리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무가 커요. 올라가서 나뭇잎 뒤에 싹 몸을 숨기고 그냥 본다는 거예요. 어떻게 한다는 게 아니고 내가 보고 싶다는 거예요. 나는 이런 심리,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심리가 남아 있다는 건 인간성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숨어서 보는데 왜 올라갔냐면 키가 작아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이 지나가도 못 봐. 길바닥에 있으면 못 보는 거예요. 예수님을 사람들이 막 에워싸고 가기 때문에 못 봐. 앞에 가고 뒤에 가고 하니까 못 볼 것 같아서 자기가 나무에 올라가면 잘 보이죠. 그래서 보고 있는데 보니까 베드로, 요한, 야고보, 열두 제자하고 어떤 여인들하고 좌편에 우편에 쭉 사람들이 함께 갑니다. 지나가면 될 텐데 삭개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도 안 깜빡이고 보고 있는 거야. 그런데 그 밑을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갑자기 위를 쳐다보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나는 삭개오가 오줌을 싸지 않았겠나? 얼마나 놀랐겠어요? 이름을 덜컥 불러 봐요. 보기라도 하고 싶다, 보기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건데 예수님께서 “내가 오늘 밤에 너희 집에서 하룻밤 하고 가야 되겠다.” 세상에, 여러분, 나는 삭개오가 내려왔는지 후루룩 떨어졌는지 몰라. 그냥 놀라서 떨어지지 않았겠나? 보기만이라도 하고 싶은데 예수님께서 오늘 밤에 너희 집에서 하룻밤 자야 되겠다고 하는 바람에 막 내려왔어요. 그때 삭개오는 자기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몰랐을 거라. 예수님이 그냥 지나가시지, 이름을 탁 불러 버리면 어떻게 해? 세리장은 그 마을에서 지역 유지급이나 되는데 나무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온 동네 사람들에게 들통났잖아. 그러나 상관이 없어요. 그냥 내려와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들입니다.

삭개오의 재산 절반 나눔과 네 배 배상

설교자는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뒤 보인 결단을 전합니다. 삭개오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겠다고 말하고,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설교자는 예수님이 그에게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삭개오가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약속했다고 강조합니다. 설교자는 이 약속을 따르면 재산이 거의 남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삭개오가 그로 인해 거덜이 나도 좋다고 여겼다고 말합니다. 친구 하나 없이 외면당하던 그가 이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열두 제자와 함께 대접하게 되었다는 점도 설교자는 주목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부르시고,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언하셨음을 전합니다. 설교자는 삭개오가 돈 귀신에 홀렸다가 돈이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증거하게 되었다고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6

설교 내 73–76문단 · 예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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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아무 말씀 하지 않고 있는데 삭개오가 뭐라 하느냐? “제가 가진 재산 절반을 일단 떼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겠습니다. 그리고 토색한 것은”, 토색했는가 봐, “토색한 것은 네 배씩 다 갚아 주겠습니다.” 보나 마나 절반 떼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남은 절반을 가지고 토색한 것을 네 배로 갚아 버리고 나면 뭐가 남겠어요? 내가 볼 때 별로 남은 게 없겠어. 거덜 나는 거야. 이제 예수님 때문에 쫄딱 망했어. 그래도 좋다는 거야. 친구 하나 없이 길에서 만나면 얼굴을 휙 돌려 버리던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만 만난 게 아니잖아. 열두 사도가 더 왔어요. 여러분, 지금은 예수님을 예언자 정도, 마태 같은 세리를 제자로 받아 준 예언자 정도로 알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잖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열두 사도를 자기 집에 모셔서 대접할 수 있었다. 이게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일단 절반을 떼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겠나이다” 하니까 예수님께서 “봐라.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야. 한때 돈의 맘몬 귀신, 돈 귀신에 홀려서 돈을 좇아갔지만 그게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만족하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삭개오가 아주 웅변적으로 증거하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신 게 아니고, 그냥 앞에 있는데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너 이거 토색했지?” 이렇게 한 게 아니야. 아닌데 삭개오가 그런 고백을 하고 다 있는 데서 그런 약속을 한 겁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여리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설교자는 키가 작은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던 장면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삭개오는 아침밥을 일찍 먹고 거리에 사람이 나오기 전에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설교자는 우리 성경에 뽕나무라고 된 나무가 실제로는 돌무화과나무라고 설명하며, 여리고에서는 그 나무가 매우 크다고 말합니다. 삭개오는 나뭇잎 뒤에 몸을 숨기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고 싶어서 예수님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위를 올려다보시며 '삭개오야, 내려오라' 하고 이름을 부르셨고, 오늘 밤 그의 집에서 머무셔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놀라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습니다. 집에 가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집이었지만, 예수님이 오시자 등불을 켜고 손님을 맞았습니다. 이때 삭개오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고,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며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설교자는 돈을 따라 살던 삭개오가 돈으로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증거한 사례로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5

설교 내 65–73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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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우리 성경에는 뽕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에요. 뽕나무가 아니고 돌무화과나무인데, 여러분 무화과하고 뽕나무가 과가 같아요. 돌무화과, 야생 무화과나무인데, 여리고에 가면 지금도 그 나무인지 모르지만 굉장히 큽니다. 우리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무가 커요. 올라가서 나뭇잎 뒤에 싹 몸을 숨기고 그냥 본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고 내가 본다, 보고 싶다는 겁니다. 나는 이런 심리,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심리가 남아 있다는 건 인간성이 남아 있다는 거라고 봐요. 몸을 딱 숨기고 있는데, 왜 올라갔느냐 하면 키가 작아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이 지나가도 못 봐요. 길바닥에 있으면 못 보는 거예요. 예수님을 사람들이 에워싸고 앞에 가고 뒤에 가고 하니까 못 볼 것 같아서 자기가 나무에 올라가면 잘 보이죠. 그래서 보고 있는데, 보니까 베드로, 요한, 야고보, 열두 제자와 어떤 여인들과 사람들이 좌편에 우편에 쭉 함께 갑니다. 그냥 지나가면 될 텐데, 삭개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도 안 깜빡이고 딱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밑을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갑자기 위를 쳐다보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나는 삭개오가 오줌을 싸지 않았겠나 싶어요. 얼마나 놀랐겠어요? 이름을 덜컥 불러 봐요. 보기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건데 예수님께서 “내가 오늘 밤에 너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야 되겠다” 하십니다. 세상에, 나는 삭개오가 내려왔는지 후루룩 떨어졌는지 몰라요. 놀라서 막 떨어지지 않았겠나? 보기만이라도 하고 싶은데 예수님께서 오늘 밤에 너희 집에서 하룻밤 자야 되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막 내려와서, 그때는 자기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몰랐을 거예요. 예수님이 그냥 지나가시지 이름을 딱 불러 버리면 어떡해요? 세리장은 그 마을에서 지역 유지급이나 되는데 나무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온 동네 사람들에게 들통났잖아요. 그러나 그냥 상관이 없어요. 내려와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들입니다. 앞을 봐요. 이제 예수님께서 잔치를 하시는데, 삭개오 집에 가 보니까 마당에 이끼가 끼어서 아무도 안 와요. 아무도 친구로 온 사람이 없어요. 그저 대문간에서 마당으로 가는 길만 조금 발자국 흔적이 있고, 화장실 가는 길 같은 게 있고, 사람이 아무도 안 와서 괴한 집처럼 되어 있어요. 모처럼 예수님이 오시니까 등불을 켜고 사람 사는 집 같아요. 키가 좀 작죠? 봐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계시는데 삭개오가 뭐라고 하느냐? “제가 가진 재산 절반을 일단 떼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토색한 것은 네 배씩 다 갚아 주겠습니다.” 토색했는가 봐요. 보나 마나 절반을 떼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절반으로 토색한 것을 네 배 갚아 버리고 나면 뭐가 남겠어요? 내가 볼 때 별로 남는 게 없고 거덜 나는 거예요. 이제 예수님 때문에 쫄딱 망했어도 좋다는 거예요. 아무 친구 하나 없이 길에서 만나면 얼굴을 휙 돌려 버리던 삭개오에게 예수님만 오신 게 아니잖아요. 열두 사도도 왔어요. 지금은 마태 같은 세리를 제자로 받아 준 예언자 정도로 알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잖아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열두 사도를 자기 집에 모셔서 대접할 수 있었다, 이게 아무나 누리는 기회가 아니잖아요. 일단 절반을 떼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겠나이다 하니까 예수님께서 “봐라,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하십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에요. 한때 돈의 맘몬 귀신, 돈 귀신에 걸려 돈을 쫓아갔지만, 그게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만족하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삭개오가 아주 웅변적으로 증거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