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설교자는 키가 작은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던 장면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삭개오는 아침밥을 일찍 먹고 거리에 사람이 나오기 전에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설교자는 우리 성경에 뽕나무라고 된 나무가 실제로는 돌무화과나무라고 설명하며, 여리고에서는 그 나무가 매우 크다고 말합니다. 삭개오는 나뭇잎 뒤에 몸을 숨기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고 싶어서 예수님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위를 올려다보시며 '삭개오야, 내려오라' 하고 이름을 부르셨고, 오늘 밤 그의 집에서 머무셔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놀라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습니다. 집에 가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집이었지만, 예수님이 오시자 등불을 켜고 손님을 맞았습니다. 이때 삭개오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고,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며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설교자는 돈을 따라 살던 삭개오가 돈으로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증거한 사례로 적용합니다.
설교 내 65–73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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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우리 성경에는 뽕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에요. 뽕나무가 아니고 돌무화과나무인데, 여러분 무화과하고 뽕나무가 과가 같아요. 돌무화과, 야생 무화과나무인데, 여리고에 가면 지금도 그 나무인지 모르지만 굉장히 큽니다. 우리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무가 커요. 올라가서 나뭇잎 뒤에 싹 몸을 숨기고 그냥 본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고 내가 본다, 보고 싶다는 겁니다. 나는 이런 심리,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심리가 남아 있다는 건 인간성이 남아 있다는 거라고 봐요. 몸을 딱 숨기고 있는데, 왜 올라갔느냐 하면 키가 작아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이 지나가도 못 봐요. 길바닥에 있으면 못 보는 거예요. 예수님을 사람들이 에워싸고 앞에 가고 뒤에 가고 하니까 못 볼 것 같아서 자기가 나무에 올라가면 잘 보이죠. 그래서 보고 있는데, 보니까 베드로, 요한, 야고보, 열두 제자와 어떤 여인들과 사람들이 좌편에 우편에 쭉 함께 갑니다. 그냥 지나가면 될 텐데, 삭개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도 안 깜빡이고 딱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밑을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갑자기 위를 쳐다보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나는 삭개오가 오줌을 싸지 않았겠나 싶어요. 얼마나 놀랐겠어요? 이름을 덜컥 불러 봐요. 보기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건데 예수님께서 “내가 오늘 밤에 너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야 되겠다” 하십니다. 세상에, 나는 삭개오가 내려왔는지 후루룩 떨어졌는지 몰라요. 놀라서 막 떨어지지 않았겠나? 보기만이라도 하고 싶은데 예수님께서 오늘 밤에 너희 집에서 하룻밤 자야 되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막 내려와서, 그때는 자기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몰랐을 거예요. 예수님이 그냥 지나가시지 이름을 딱 불러 버리면 어떡해요? 세리장은 그 마을에서 지역 유지급이나 되는데 나무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온 동네 사람들에게 들통났잖아요. 그러나 그냥 상관이 없어요. 내려와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들입니다. 앞을 봐요. 이제 예수님께서 잔치를 하시는데, 삭개오 집에 가 보니까 마당에 이끼가 끼어서 아무도 안 와요. 아무도 친구로 온 사람이 없어요. 그저 대문간에서 마당으로 가는 길만 조금 발자국 흔적이 있고, 화장실 가는 길 같은 게 있고, 사람이 아무도 안 와서 괴한 집처럼 되어 있어요. 모처럼 예수님이 오시니까 등불을 켜고 사람 사는 집 같아요. 키가 좀 작죠? 봐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계시는데 삭개오가 뭐라고 하느냐? “제가 가진 재산 절반을 일단 떼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토색한 것은 네 배씩 다 갚아 주겠습니다.” 토색했는가 봐요. 보나 마나 절반을 떼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절반으로 토색한 것을 네 배 갚아 버리고 나면 뭐가 남겠어요? 내가 볼 때 별로 남는 게 없고 거덜 나는 거예요. 이제 예수님 때문에 쫄딱 망했어도 좋다는 거예요. 아무 친구 하나 없이 길에서 만나면 얼굴을 휙 돌려 버리던 삭개오에게 예수님만 오신 게 아니잖아요. 열두 사도도 왔어요. 지금은 마태 같은 세리를 제자로 받아 준 예언자 정도로 알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잖아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열두 사도를 자기 집에 모셔서 대접할 수 있었다, 이게 아무나 누리는 기회가 아니잖아요. 일단 절반을 떼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겠나이다 하니까 예수님께서 “봐라,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하십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에요. 한때 돈의 맘몬 귀신, 돈 귀신에 걸려 돈을 쫓아갔지만, 그게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만족하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삭개오가 아주 웅변적으로 증거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