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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3개 · 1 / 1쪽 · 한 쪽 20개

아내와의 차 안 다툼

설교자는 먼저 용서가 관계를 전제로 한다고 말합니다. 지나가는 사람과는 큰 트러블이 드물지만, 가까운 관계에서는 상처와 용서의 과정이 생긴다고 짚습니다. 그러면서 가까울수록 더 상처를 주고 더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고 솔직하게 나눕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설교자는 자신의 경험을 꺼냅니다. 월요일 저녁, 아내와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다툼의 핵심은 설교자가 아내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반면 자신에게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때 아내는 '너도 똑같아'라고 대답했습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통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작은 것 하나를 용납하고 용서하며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이라도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며, 청중에게도 같은 자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양현서 · 2026-10-21

설교 내 3–3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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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 아내와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 다툼의 핵심은 제가 아내에게 서운한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반면, 나에게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서운하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너도 똑같아'라고 대답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작은 것 하나 용납하고 용서하고 이해해 주고 배려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여도,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스데반의 순교 이야기

설교자는 사도행전 6장에 등장하는 초대교회의 첫 번째 집사 스데반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스데반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회 앞에 서서 긴 설교를 했는데, 아브라함부터 솔로몬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훑으며 하나님이 사람이 지은 성전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의인을 죽였다고 고백합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 스데반을 향해 격렬하게 반응했습니다. 설교자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돌이키고 회개했던 장면과 이를 대비합니다. 설교자는 스데반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그와 특별한 관계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스데반은 돌이 날아오는 결정적인 순간에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설교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원수를 향한 용서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시선을 옮기는 데서 시작된다고 적용합니다.

양현서 · 2026-10-21

설교 내 4–5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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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 질문 어디까지 용서해 봤습니까?'에 대한 어마어마한 용서를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그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6장에 등장하는 초대교회의 첫 번째 집사입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공회에 서서 긴 설교를 하며, 아브라함부터 솔로몬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훑으며, 하나님이 사람이 지은 성전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고 말하고, '하나님이 보여신 의인을 여러분이 죽였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 그를 향해 일을 갈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돌이키고 회개했지만, 여기서는 사람들이 완악한 마음으로 스데반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와 관계가 어마어마하게 있었을까요? 아니었겠죠.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스데반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돌이 날라오는 결정적인 순간에 스데반이 어떤 말을 선포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돌을 던지던 사울의 변화

설교자는 스데반의 죽음이 있던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를 말합니다. 사람들이 옷을 맡고 있던 청년 사울이 그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는 처참한 상황에서, 당장 눈앞에는 기도의 응답이 없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그 순간 순종을 통해 사울이 등장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훗날 사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 바울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설교자는 이 사례를 근거로 남편, 자녀,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위해 드리는 눈물의 용서의 기도도 당장 변화가 없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기도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격려합니다.

양현서 · 2026-10-21

설교 내 12–12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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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무엇입니까? 내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두 번째는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도이지 않습니까? 바로 십자가 위에서 묵묵히 서서 못박히신 예수님의 기도와 닮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향해 돌이 날라오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분노로 맞서지 않고 먼저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용서라고 하면 내 마음에 맺혀진 것이 조금씩 풀려가야지 용서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억울한 마음들이 다 풀리고 상대방의 마음이 조금씩 풀려지는 것이 스데반의 모습이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스데반의 기도는 그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그 사람이 지은 죄를 그냥 없던 일로 덮어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기도의 진짜 의미는 내 손에 쥐고 있었던 그 용서할 판단의 마음을 하나님 손에 올려 드린다는 것입니다. 용서의 판단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올려 드리는 것이 스데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저 사람이 저에게 큰 상처를 주었지만 저 사람을 판단하고 벌하시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 손에 올려 드립니다라는 것이 스데반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진짜 용서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고 용서할 일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면,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을 계속 지적하면서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용서는 그 판단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판단을 내가 하지 않고 하나님 손에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몫으로 올려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서입니다. 이 위대한 용서의 기도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서 돌을 다시 내려놓고 '아니야, 죄송합니다'라고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되었고, 당장 눈앞에는 내 기도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순종을 통해 누가 나타났습니까? 바로 사울이 등장했습니다. 그 죽음의 자리에 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옷을 맡고 있던 청년 사울이 있었습니다. 훗날 사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 바울이 되었습니다. 만약 스데반의 용서의 기도가 없었으면 우리는 바울이라는 위대한 사도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스데반이 도망가서 살아남았더라면 사도 바울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을 위해, 자녀를 위해, 가정을 위해, 부모님을 위해, 시부모님을 위해 우리가 눈물과 용서의 기도를 드려도, 당장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변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 우리의 삶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기도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님들, 나에게 깊은 원상처를 준 원수들은 저 멀리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까운 우리의 이웃이고 가족입니다. 내게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사람도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가족, 내 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마음속에 밉고 원망스러운 그 사람의 이름을 한 번 조용히 불러 보세요. 아직 마음이 다 풀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세요. '나를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그 마음을 올려 드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억지로 관계를 회복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있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어 주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손에 쥐고 있던 용서의 판단과 재판하려는 마음들을 하나님 손에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방향입니다. 주여, 그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 마음으로 나아가시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날아오는 돌 가운데 스데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저 같았으면 화를 내고 도망가고 맞서 싸웠을 것 같은데, 스데반 집사님은 성령 충만하여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 손에 맡겨 드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 내가 당장은 할 수 없지만, 당장은 나의 모든 상황이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 손에 맡겨 드리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 마음으로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