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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4개 · 1 / 1쪽 · 한 쪽 20개

강아지 캐니와 어린 시절의 사랑 이야기

설교자는 아홉 살, 열 살 무렵의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집에서는 털이 날린다는 이유로 강아지를 키우지 못하게 하셨지만, 옆집 1층 마당에 아저씨가 데려온 회색 큰 강아지 캐니를 보고 그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는 캐니가 근본 없는 믹스견이었지만 학교가 끝나면 계단에 앉아 세 시간, 네 시간씩 캐니와 대화했고, 토요일에는 하루 종일 그곳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도시락 반찬으로 귀하던 오양맛살이 나오면 그는 반찬통을 다시 닫고 밥만 먹었다가, 학교가 끝나 집에 뛰어가 캐니에게 오양맛살을 부어 주었습니다. 캐니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10초 만에 다 먹어 치웠지만, 그는 그 모습이 너무 기뻤다고 회상합니다. 설교자는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줄 만큼 캐니를 사랑했다고 말하면서도, 캐니처럼 개가 되어 좁은 마당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 대비를 통해 설교자는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빌립보서 2장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사랑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자비와 은혜인지 적용합니다.

남득현 · 2026-10-28

설교 내 14–18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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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제가 아홉 살인가 열 살 때쯤에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었어요. 제가 막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는데, 저희 어머니가 절대 못 키우게 하셨어요. 털 날린다고요. [웃음] 집에서 털 날린다고 막 못 키우게 하셨어요. 제가 너무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서, 그런데 어느 날인가 저희 옆집, 저희 집이 2층이었는데 1층 마당에 그 아저씨께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오신 거예요. 회색 큰 강아지를. 이름이 케니였어요. 캐니. 제가 지금도 기억해요. 캐니. 얼마나 우리 둘이 친했는지. 와, 너무 좋았어요. 제가 아홉 살, 열 살 나이에 우리 집에서는 강아지를 못 키우는데, 바로 우리 집 옆에 붙어 있는 집, 우리 계단을 올라가면 볼 수 있는 그 1층 마당에 캐니를 데리고 오신 거예요, 아저씨께서. 제가 그 캐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학교가 끝나면 하루에 세 시간, 네 시간씩 거기 계단에 앉아서 캐니랑 대화했습니다. 진짜예요? 제가 세 시간씩 캐니랑 대화했어요. 캐니는 저한테 꼬리를 치고, 그 근본이 없는 개였거든요. [웃음] 옛날에 근본이 없는 개들 많았잖아요. 전형적인 근본이 없는 개였어요. 믹스견이었죠. 너무 좋아서 제가 진짜 너무 좋아했어요. 캐니를 학교가 없는 날, 토요일 같은 날은 정말 하루 종일 계단에 앉아 있었어요. 제가 캐니를 얼마나 좋아했냐면, 그 당시 초등학교 때는 도시락을 싸 갖고 다녔거든요. 그때 처음 나오기 시작한 반찬이 뭐였냐면 오양맛살이에요. 제가 너무 좋아했어요. 오양맛살을 도시락 반찬으로 싸 오면 너무 좋아했어요. 저희 어머니께서 많이 싸 주시지도 않으셨어요. 가끔, 정말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오양맛살을 싸 주셨어요.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왜 그 '오양'이란 회사가 가장 먼저 맞는 거 같아요. [웃음] 그래서 오양 마사이인 거야. 옛날에 오양 마사이라고 불렀어요. 지금은 '개마사이'라지만. 기억하시죠? [웃음] 그 반찬을 제가 너무 좋아했어요. 아홉 살짜리, 열 살짜리가. 그런데 제가 캐니를 만난 이후로, 학교에 가서 도시락 반찬을 열었을 때 반찬통에 오양맛살이 있으면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 아홉 살짜리가 반찬통을 다시 닫았어요. 캐니 주려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거니까 캐니도 좋아하겠지. 그래서 밥만 먹었어요. 밥만. 그래서 제가 학교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거예요. 학교 끝나기만을 기다려. 그래서 학교 끝나면 진짜 뛰어서 집으로 가고, 케니한테 그 반찬통을 열고 오양맛살을 막 부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캐니는 10초 컷입니다. 그 귀한 오양 마사를 나한테 고맙다 얘기도 안 하고 그냥 10초 안에 다 먹어요. 저는 그냥 그게 너무 기뻤어요. 케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게. 여러분, 아홉 살짜리가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줄 정도면 얼마나 좋아했겠어요? 그 강아지를. 여러분, 제가 그렇게 캐니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그렇게 캐니를 사랑하고, 오양 마사를 줄 정도로, 하루 종일 세네 시간씩 앉아서 캐니랑 대화할 정도로 사랑했지만, 여러분, 저는 한 번도 캐니처럼 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어린 나이였을지라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겠죠. 저는 캐니를 제가 너무 사랑하는 존재지만, 여러분, 캐니처럼 개가 돼서 그 좁은 마당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니고데모와 하늘에서 내려오신 인자

설교자는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살핍니다. 말씀의 핵심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여기서도 올라감과 내려옴이 대조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은 지옥으로 내려가신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으로 내려오신 이야기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면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주님이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으며 여전히 하늘에 있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다고 풀어 전하며, 같은 대조가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의 '내려오셨던 그'도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신 강림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적용합니다. 설교자는 이 구절이 성육신의 의미를 함께 보여 준다고 덧붙입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6

설교 내 40–40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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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표현들을 들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서도 올라가심과 내려오심, 내려오심과 올라가심이 나옵니다. 이것은 지옥으로 내려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으로 내려오신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시며 이 땅에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비밀을 듣기 위해 하늘에 올라갔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으며, 여전히 하늘에 있다.” 같은 대조가 나타납니다.

천사들의 찬양과 영광의 왕의 강림 노래

설교자는 성육신을 노래한 찬송 가사를 인용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찬송은 영광의 왕께서 한때 이 땅에 거하시려고 내려오셨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를 좋아한다고 노래합니다. 설교자는 그분이 하늘 궁정을 떠나셨다는 사실을 말하며, 사도의 '먼저 내려오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라는 표현이 이 일을 되짚어 보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죄와 수치였을 때 둘째 아담이 싸움과 전투를 위해 오셨다는 찬송의 고백을 덧붙입니다. 설교자는 내려오신 일이 원수를 상대하시고 포로 상태를 처리하시기 위한 전제였다고 풀이합니다. 그래서 청중에게 하늘에서 내려오신 주님을 묵상하도록 권합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6

설교 내 54–54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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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음성이 전하는 그 이야기를 전하기 좋아하네. 영광의 왕께서 한때 이 땅에 거하시려고 내려오셨다는 이야기를.” 그분은 하늘 궁정을 떠나셨습니다. “먼저 내려오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저는 사도의 이 표현이 좋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사도는 그 일을 되짚어 보라고 말합니다. 성육신입니다. “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의 지혜여! 모든 것이 죄와 수치였을 때, 둘째 아담이 싸움과 전투를 위해 오셨도다.” 먼저 내려오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내려오셔서 원수를 상대하시고 그 포로 상태를 처리하시기 전에는 어떻게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오셨습니다. 내려오셨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

설교자는 천사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지닌 독생자께서 목수로 일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를 상상해 보라고 권합니다. 그분은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으시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이것이 화려함이나 드라마틱함이 아닌 간단함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한다면 매우 화려하고 극적으로 했겠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허세와 번잡일 뿐 지혜가 아니라고 대비합니다. 하나님은 도움이 전혀 없는 아기로 시작하셨고 그로부터 모든 것이 펼쳐졌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분이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지 않으셨다면 가장 낮은 자들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적용합니다. 설교자는 그 모든 낮아지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목적을 보셨다고 강조합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19

설교 내 20–20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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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이 빛나는 영광, 아버지의 영광이 냉큼에서 목수로 일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다시금 간단함이 드러납니다. 그분은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결코 예상하지 못할 마지막 것, 깊은 곳 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가운데 목적을 보셨습니다. 그분이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지 않으셨다면, 가장 낮은 자들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신다면, 매우 화려하고 드라마틱하게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 가운데서 오는 인간적인 허세와 번잡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간단한 방식으로 하셨습니다. 도움이 전혀 없는 아기로 시작하셨고, 그로부터 모든 것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분을 보았을 때, 그들도 역시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인가?"라고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마치 지옥과 악마, 세상의 최악이 승리하는 시간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골로새서를 쓰실 때 이 일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그분은 자신을 반대하던 세력을 모두 드러내어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그 세력을 자신의 지혜와 교활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목적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거기서 죄를 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죄를 그분께 놓으셨고, 거기서 죄를 다루셨습니다. 죄를 형벌하셨으므로, 그분은 여전히 의롭고 공의로우십니다. 죄는 형벌받았고, 율법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분은 완전히 율법을 지키셨고, 이제 그 형벌을 지셨습니다. 율법은 존중받았습니다. 그분은 율법을 세우셨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실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이 일의 모든 세부사항을 따라가며 생각해 본다면, 바울이 티모테오에게 쓴 서신, 첫 편, 세 번째 장, 열여섯 번째 절에서 "모든 논쟁을 피하고, 신앙의 신비는 크도다. 하나님이 육체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어졌고, 영광으로 데려가셨도다."라고 쓰셨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천사들에게 보이셨다"는 표현의 의미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천사들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보았지만,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의 지혜이며, 이제 우리는 그것을 진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통해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의 최종적이고 최고의 표현이며, 그분께서 자신의 속성을 어떻게 화해시키셨는지, 그리고 그 세부사항을 통해 어떻게 이루셨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특히 이 시점에서 바울이 이 일을 매우 높이 평가하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어떻게 하나로 묶으셨는지, 이는 아마도 가장 놀라운 일 중 하나일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화해할 수 없는 존재이며, 완전히 다르고, 전통적인 적대자이며, 서로의 전통이 서로 반대되는 존재입니다. 천사들은 세상이 여전히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보고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일을 해결하려고 단순히 덮어두거나, 잠시 화해시키는 방식으로 시도했었습니다. 잠시 손을 잡고, 다시 무기를 들고 서로를 배신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가능한가요? 결국 천사들은 교회에서 그 일을 이루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교회에서 단순한 일시적 화해가 아니라, 서로를 멀리 하기 위한 어떤 힘도 아닌, 경찰의 개입도 아닌, 하나의 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어떻게 그 일을 이루셨을까요? 여기서 하나님의 지혜를 보게 됩니다. 그분은 단순히 그 두 존재를 그대로 두고 연결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유대인을 땅에 깨뜨리셨고, 이방인도 땅에 깨뜨리셨습니다. 두 존재 모두 자신들이 죄인임을 보게 하셨습니다. "의인은 아무도 없고, 하나도 없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고 자랑할 것이 없으며, 이방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존재는 땅을 핥으며,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고, 동시에 자신들이 완전히 같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땅에 깨뜨리신 후, 그들을 단순히 원래 상태로 되돌리지 않고, 두 존재 모두를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며, 이방인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닙니다. 각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되었으며, 육체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 사실이 잊혀지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동일하며, 하나의 몸의 구성원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이며,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