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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628개 · 30 / 32쪽 · 한 쪽 20개

유다의 후회와 죽음

설교자는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의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결박되어 판네로 넘겨지고 유죄 판결이 내려지자, 유다는 후회에 잠겨 은화 서른 냥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돌려줍니다. 그는 자신이 무고한 피를 팔아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그것은 네 책임이라고 대답합니다. 설교자는 이 대답을 전하면서, 유다가 도움을 받을 곳 없이 혼자 책임을 떠안게 된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설교자가 든 표현에 따르면, 은행장이 대출 실패를 책임져 주지 않듯이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유다는 은화를 성전에 던지고 떠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설교자는 이 결말을 돈 때문에 무너진 사람의 모습으로 제시합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한 사람을 배신과 고립, 절망으로 몰아간 과정이 드러납니다. 그는 그 슬픈 아침의 장면을 청중에게 상기시키며, 돈이 가져오는 결말이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지 경고합니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19

설교 내 5–5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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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사비라의 이야기가 이 비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재산을 팔아 교회에 드린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실제로 드린 것보다 더 많은 것처럼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없었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압박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다 이스카리오테는 예수님이 결박되어 판네로 넘겨진 그 슬픈 아침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시겠습니까?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했고, 예수님의 유죄 판결을 보고 후회에 잠기며 30냥의 은화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무고한 피를 팔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그것은 네 책임이다. 너는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이니까, 은행장이 너의 대출 실패를 책임지려 하지 않을 거다. 너의 집을 압류당했을 때 그가 너에게 수프를 가져다주기를 기대하지 마라. 그는 너에게 짧은 편지를 보내고 끝낼 것이다. 그는 단지 그게 네 책임이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그 은화를 성전에 던지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열왕기하 5장 게하시의 욕심

설교자는 구약 열왕기하 5장의 게하시를 돈에 대한 욕심의 사례로 소개합니다. 그는 가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물건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거짓말을 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설교자에 따르면 나아만이 여러 선물을 가지고 와서 엘리사에게 드리려 했지만, 엘리사는 받을 수 없다고 하시고 그를 떠나보내십니다. 게하시는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욕심이 가득 차 있었고, 나아만이 가진 것을 원했다고 설명됩니다. 설교자는 그가 내려가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는 그 욕망에 갇히게 되었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설교자가 전하는 대로 그는 즉시 황사병에 걸렸고, 성경에 따르면 그의 자식들까지도 태어날 때부터 그 병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물건을 향한 욕망이 사람을 유혹과 속박으로 이끌고, 그 대가가 가족에게까지 미칠 수 있음을 적용합니다. 엘리사의 거절 앞에서 돌아서지 않고 거짓말하며 재물을 쫓은 마음이 결국 자신을 묶었다는 것입니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19

설교 내 6–6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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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구약서 2열왕기 5장에 나오는 남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학이라는 이름의 그 사람은 물건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거짓말을 합니다. 그가 주님께 가장 불만이 있었던 것은 나아만을 그냥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여러 가지 선물을 가지고 와서 엘리사에게 드리려고 했는데, 엘리사는 "아니요, 저는 그런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시고 작별 인사를 하십니다. 가학은 옆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서 돈에 대한 욕심이 가득 차 있었고, 나아만이 가진 모든 것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려가서 유혹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그 욕망에 갇히게 되었고, 그 상태는 치명적이었으며, 즉시 발진이 나서 황사병에 걸렸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의 자식들까지도 태어날 때부터 황사병에 걸린 상태였다고 합니다.

데마가 세상을 사랑한 이야기

설교자는 데마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믿음을 떠나게 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는 데살로니가후서 4장 10절에서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다가 바울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소개합니다. 다만 설교자는 그가 돈에 사로잡혔다는 구체적 언급은 없다고 분명히 합니다. 그럼에도 이 말씀은 그들이 믿음에서 떠났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믿음을 떠났다는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과 기초적인 소망과 사랑으로 삼는 신뢰에서 벗어난 것으로 풀이합니다. 그는 찬송가의 고백을 인용하며, 우리는 주님만이 전부라고 노래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결정을 내려야 하고 구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그들이 믿음에서 떠난 뒤 많은 슬픔으로 찔렸다고 전합니다. 한 해설자의 말을 빌려, 그들이 돈을 탐하며 어리석고 해로운 욕망을 삶에 끌어들였고, 그 욕망이 스스로에게 가한 고문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자는 세상의 것을 좇는 마음이 결국 자신을 찌르는 고통이 된다고 적용합니다. 청중에게는 세상의 욕망이 얼마나 조용히 마음을 점령하는지 살펴보기를 권합니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19

설교 내 7–7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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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마는 어떤가요? 데마는 데살로니가후서 4장 10절에서 이 세상을 사랑하다가 저자를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가 돈에 사로잡혔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 말씀은 10절에 언급된 사람들이 믿음을 떠났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보세요, 그들은 믿음을 떠난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이며 기초적인 소망과 사랑으로 삼는 믿음과 신뢰에서 벗어났습니다. 찬송가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 주님, 당신만이 전부이십니다. 당신보다 더 큰 것을 저는 찾지 않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며 우리는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구입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믿음을 떠난 그들은 많은 슬픔으로 찔려졌습니다. 한 해설자는 그들이 돈을 탐내면서 이전에 언급된 바 있는 어리석고 해로운 죄악적인 욕망을 삶에 끌어들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이 바로 그들이 스스로에게 가한 고문이 되었습니다.

질 브리스코의 고백

설교자는 여성 사역자 질 브리스코의 고백을 인용하며,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는 만족을 보여 줍니다. 그녀는 오래 전 누구에게서도 만족을 얻지 않으려 했다고 말하며,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나 필요로 하는 아이도 자신을 충분히 채울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이 글이 남편이 세 달간 전도 여행을 떠나 집에 돌아오지 않던 상황에서 쓰였다고 소개합니다. 그 글에서 그녀는 며칠 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채우실 것이라고 결심했다고 적습니다. 그녀는 어떤 직업이나 경험도 충분히 보상하거나 만족시킬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그렇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이 고백을 다시 읽으며 좋은 말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어서 그는 요한이 전한 그리스도 안의 새 피조물 고백을 연결하고, 세상이 그리스도인의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차이는 외적인 것보다 결혼 전의 순결, 결혼 안의 충성, 돈과 권력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고백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만족의 본보기로 제시합니다.

알리스테어 벡 · 2026-10-19

설교 내 10–11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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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들과 함께 가는 것을 생각하려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지난 20년간 목회자들 사이에서 나타난 많은 도덕적 실패가 1티모테오 6장 6절 이후의 말씀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겪은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물건을 사랑하게 되었고, 물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물건은 이전에는 결코 가지지 않았던 곳으로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환경과 그 사람들 속에서 그는 방황하는 눈, 산만한 발, 통제되지 않은 손을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깨끗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 한 분의 말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질 브리스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래 전에 저는 누구에게서도 만족을 얻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도, 아무리 필요로 하는 아이도 저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어떤 직업도 나를 충분히 보상해 줄 수 없고, 어떤 경험도 나를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렇습니다."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은 참 좋습니다. "며칠 전 저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채워 주실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이 말은 그녀의 남편이 세 달간 전도 여행을 떠나 집에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서 쓴 것입니다. "어떤 남자도 나를 충분히 사랑해 줄 수 없습니다. 어떤 자녀도 나를 충분히 필요로 해 줄 수 없습니다. 어떤 직업도 나를 충분히 보상해 줄 수 없습니다. 어떤 경험도 나를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렇습니다." 요한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 피조물이라, 옛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오늘날에 어떤 큰 영향을 미치려 한다면, 이교도 세상은 우리가 뚜렷한 차이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외적인 것에서 그런 차이를 기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침에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모두 물가 근처의 오두막으로 가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생활도 그런 시도를 했지만, 결국 많은 수도사들이 어떻게 끝났는지 보세요. 그러나 우리의 핵심 태도에서 차이를 보여야 합니다. 즉, 결혼 전의 순결과 결혼 내의 충성심에 대한 태도, 그리고 돈과 권력에 대한 태도에서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화는 몸, 머리, 돈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몸을 가지고 있거나, 올바른 몸을 가진 사람과 함께 있는지, 당신이 올바른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사람들을 둘러싼 그룹에 속해 있는지, 그리고 당신이 자신의 지위를 확보할 만큼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판단됩니다.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에 자랑하지 말며, 힘센 자는 힘에 자랑하지 말며, 부한 자는 재물에 자랑하지 말라." 즉,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못생겼고, 가난하고, 멍청이야"라고 말하지 마세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못생기지도 않았고, 가난하지도 않고, 멍청이도 아닙니다. 그게 해결책이 아닙니다. 해결책은 그걸 자랑거리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너는 정말 예쁘구나"라고 말하지 마세요. 아이들의 성품에 집중하세요. 자원이 있다면 밤새 세는 일은 그만두고, 그걸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을지 생각하세요. 지적 능력이 있다면, 큰 단어를 써서 사람들을 인상 주려 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당신의 마음을 드리고 섬기세요. 그리고 세상이 새 피조물, 변화된 삶의 차이를 볼 수 있도록 하세요. 특히 여러분 젊은이들, 앞으로 삶이 펼쳐지고, 많은 도전이 닥쳐오고, "너는 이런 모습이어야 하고, 이런 생각을 해야 하고, 이런 차를 타야 한다"는 소비주의적 요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말 힘듭니다.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내가 앞서 인용한 짧은 노래는 제가 자주 마음속에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좋아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 제 죄를 깨끗이 제거해 주소서. 죄는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힘을 주소서. 저는 혼자서는 힘이 없습니다. 유혹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음 덫에 걸릴 것입니다. 저는 끝장난 사람입니다. 주님, 제 안에 힘을 주소서. 주님, 저를 그대로 받아 주시고, 저를 완전히 주님의 소유로 만드소서. 주님, 날마다 저를 주님의 지배 아래 두어 주소서. 제 마음을 주님의 성전과 왕좌로 삼아 주소서. 저는 돈을 벌든 안 벌든, 유명하든 은둔생활을 하든, 제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가든 무엇을 희생하든, 주님께서 이 일을 하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은, 이 말을 진심으로 말하고 실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결코 부당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릇이 없는 자에게는 좋은 것을 결코 거두지 않으시리라." 오늘 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이 짧은 노래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셔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방황하며 어리석고 해로운 욕망에 빠져 있는 분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파멸로 떨어뜨리기 전에 붙잡아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사천 예배당 개척과 할머니들의 예배

설교자는 1977년 7월 10일 신학 공부 중 강사 목사님의 권유로 사천의 작은 예배당에 파송된 경험을 나눈다. 그곳은 26년간 유지되어 왔으나 교역자가 공석인 날이 많았고, 세례 교인이 15명에 못 미쳐 교회에서 기도처로 격하될 위기에 있었다. 교인은 할머니 두 사람과 남자 집사 한 명 정도였고, 교회학교 학생도 몇 명뿐이었다. 설교자가 머문 집은 80세가 넘은 할머니 집이었는데, 벽에서 곰팡이와 흙냄새가 났고 벽지가 떨어져 나왔으며 지네가 자주 나왔다. 음식에는 파리가 꼬였고 냉장고와 전기도 없어 설교자는 자주 금식하며 견뎠다. 온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지만 예배당과 할머니 집에만 전기가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변소간만도 못하다고 비웃었다. 설교자는 그 말 앞에서 전도할 수 없다고 느끼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강사 목사님은 그저 엎드려 기도하라고 권했고, 얼마 뒤 장로님이 산을 팔아 마련한 돈을 가져와 동네 입구 땅을 계약하게 되었다. 이후 노회에 청원했으나 두 차례 기각되었고, 세 번째 청원에서 블록을 한 장씩 모금하는 방식이 허락되었다. 각 교회의 도움으로 예배당과 사택, 교육관이 지어졌고, 설교자는 이를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 증거로 말한다. 설교자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믿음을 강조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15–28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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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서 들은 분도 계시겠는데, 오래전 50년 전에 제가 사천이라는 곳에 갔는데, 조그만 예배당을 건축해서 예배를 드리며 한 26년간 유지되다가, 그것도 교역자가 공석으로 있는 날이 절반, 교역자가 있는 날이 절반인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교역자가 와서 살아갈 수 있는 재정이 아예 안 되는 그런 곳인데, 26년간 유지해 오다가 폐쇄한 거라. 안 된다, 이 교회가 안 된다 해 가지고. 교회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세례 교인 15명 이상이 있어야 되고, 그게 떨어진 채 2년, 3년 가면 등급이 격하돼 가지고 교회가 아니고 그냥 기도처, 이렇게 한 급 내려옵니다. 기도처 정도도 안 되고, 할머니 두 사람하고 남자 집사라고 하는 분이 한 분, 서리 집사 되겠고 여자 집사 한둘 있고, 그게 다예요. 교회학교 학생 몇 사람 있고. 그래도 여러분, 세상의 어떤 단체라면 벌써 흐지부지되고 사라지고 할 텐데 교회는 좀 다른 데가 있어요. 그래도 유지가 되는 거예요. 목회자도 없고 해도 어떻게든 거기 모여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때는 할머니 둘만 나와 가지고 예배하는 거야. 그런데 할머니 둘이 성경도, 성경 구절도 몰라. 그러니까 뭘 하면 되겠어요? 모르는 할머니 둘이 주일날 예배하면 뭘 하면 되겠습니까? 생각을 안 해 보신 거지. 사도신경 합시다. 그건 다 외웠거든요. 사도신경하고, 아는 찬송을 하나 꺼내야 돼. 그런데 또 안 맞아. 그걸 모르니까 둘이 하면 이부, 셋이 하면 삼부고 그래. 성경은 모르니까 읽을 수도 없고, 주기도문 합시다. 그럼 끝이라. 예배가 그게 끝인데, 그렇게 교회가 힘이 없어도 기도하고 할머니들이 유지를 하는데, 제가 신학 공부할 때 저를 가르치는 강사 목사님이 나보고 거기 가라는 거예요. 1977년도 7월 10일에 거기로 간 거예요. 가 가지고 어렵사리, 80이 넘은 할머니는 큰방에 자고 나는 작은방에 자는데, 벽에 곰팡이 냄새, 흙내 냄새가 나고, 풀하고 흙벽에다가 벽지를 자꾸 바르니까 벽지가 두껍고 뻣뻣해 가지고 자꾸 떨어져 나와. 서로 내밀어. 바람 불면 벽지가 푹 나왔다가 붙었다가, 풍구질을 해 가지고 얼마나 냄새나는지. 그게 또 대밭 밑에 있어 가지고 걸핏하면 지네가 나와. 그런데 할머니가 밥을 차려 주는데 파리가 먹다가 빨다가, 밥은 소화가 된 것 같아. 파리가 얼마나 빨았던지. 냉장고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갔으니까. 그걸 내놓는데 먹어야 돼요, 안 먹어야 돼요? 지금도 모르겠어. 그래도 전도사가 온다고, 전도사가 없는 게 절반이니까 온다 하니 할머니가 정성이 있어 가지고 갈치를 사다가 구웠는데, 구운 건지 삶은 건지 하여튼 그것도 파리가 얼마나 냄새를 좋아해 가지고. 그걸 갖다 내놓는데 이것도 먹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고민인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제가 금식 중입니다. 금식이 아니고, 금식이죠, 금식. 그러니까 자주 금식을 했어요, 덕분에. 금요일 저녁에 가 가지고 토요일 금식하고, 끓여 먹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거의 밥을 못 먹다시피 하는 거죠. 그때 그걸 내가 어떻게 견뎌 냈는지 지금도요. 그래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전도한다고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데, 온 동네에 다 전기가 들어왔는데 길가에 있는 외딴집, 예배당하고 할머니 집만 전기가 안 들어온 거야. 할머니 혼자, 80세 넘은 분이 혼자 사니까 집을 손볼 수도 없고, 그야말로 기침만 거기 하면 집이 날아갈 것 같아. 무너질 것 같아요. 전도하러 갔더니 뭐라고 하느냐? 야, 우리 화장실만도 못한, 변소간만도 못한 거기에 우리더러 가란 말이냐, 오란 말이냐, 그러더라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전도하러 못 나가겠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사실이거든요. 당시만 해도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어 가지고 집마다 지붕 개량도 하고 페인트도 칠하고,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겉으로 좀 번질하게 하는데, 온 동네 전기가 들어왔는데 예배당하고 할머니 집에는 전기가 안 들어온 거라. 거기다가 비포장도로 큰길가에, 진주하고 고성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직행버스가 지나가는 길가에 있었으니까,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를 덮어씌우고 하니까 정말 가서 보니 눈물 나는 거예요. 지금도 내가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멍청해서 그런지, 그걸 무시하지 못하고. 전도하려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 반응이 그렇다는 거야. 그때 기도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 전도하려고 하니까 예배당이나 전도사 꼴이 이래 가지고 어떻게 전도하겠습니까? 차라리 없으면 모르겠는데 있다는 게 온 마을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밖에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지어야 되겠는데, 예배당을 지으려면 돈이 있어야 되고 땅을 사야 되고, 또 어디서 건축비를 마련해 가지고. 돈 이야기를 어떻게 해요? 저는 늦게 믿어 가지고 인맥이 없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아무도 저에게 손잡아 주고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기도해야 돼.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그 예배당에 사람 나오라고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봐도. 그때부터 전도를 못 하겠더라고.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창피하게 들리는지. 그래서 학교에 와 가지고 나를 보낸 강사 목사님에게 도저히 이래 갖고 못 하겠다고 하니까, 무슨 소리냐며 그냥 엎드려 있으라, 기도하고 있으라는 거예요. 엎드려 있어도 하늘에서 벽돌이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눈앞이 캄캄하고 그래요. 그런데 얼마 있었더니 한 장로님이, 나를 가라고 한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 장로님인데, 강월상이라는 장로님이 산을 하나 팔아 가지고 돈을 싸 들고 온 거야. 그러니까 나를 보낸 분은 나름대로 도우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했던 것 같아요. 나는 순종해서 간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동네 제일 입구의 반듯한 땅 하나를 계약하고. 그런데 땅만 가지고 예배당이 됩니까? 기초를 해 가지고 벽돌을 올려야 될 거 아니야. 뭐가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기도도 하지만 노회에 청원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50년 전이니까 진주노회 안의 교회가 한 60, 70개 됐을 텐데, 재정적으로 목회자 생활비라도 줄 수 있는 교회가 아마 열 교회도 안 될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노회에 청원서를 내는데 노회 재정이 없는 건 상식적으로 아니까, 경남 진주노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한 사람당 블록, 우리 여기 말로 블록 한 장씩을 보내 주시면 제가 목수 일 한 경험이 있으니까 제 손으로 지어 보겠습니다. 기도하고 그걸 보냈어요. 그런데 노회에서 보더니 이런 청원이 다 있느냐면서 그냥 기각시켜 버린 거예요. 6개월 있다가 또 보냈어. 날짜만 고쳐 가지고 똑같은 문구 그대로, 안 고치고 보냈어. 이 사람이 이거 또 보내? 또 기각. 오기가 생기더라고. 내가 번거롭게 하리라, 이 과부처럼 내가 번거롭게 하리라. 세 번째 보내니까 노회 임원들이 이 사람 또 보냈네, 계속 보낼 모양인데, 그래서 상정해 가지고 노회에서 결의한 거예요. 정치하는 목사, 장로들이 얼마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그렇게 모아서 모금해 주는 게 아니고 그런 방식으로 모금하는 걸 허락하기로. 자기들은 책임 안 지는 거야. 그런 방식으로 모금하는 걸 허락하기로 결의해서 통과됐어. 그래 가지고 허락받았다 하면서 각 교회에, 노회 안에 교회 주소가 있으니까 다 보내 가지고, 노회에서 허락받았다, 예배당은 내 손으로 지을 테니까, 내가 건축 경험이 있으니까 벽돌만 보내 주면 내가 쌓아 올리겠다. 그 간단한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해 가지고, 그렇게 모인 돈으로 예배당을 다 짓고 사택 다 짓고 교육관 짓고, 제가 그 교회에 5년 있다가 떠나오는데 그때 돈으로 100만 원 정도 남겨 놓고 왔다고. 예산을 남겨 놓고.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아,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들으신다.

원지 땅 계약과 40일 잔금 마련

설교자는 원지에서 교회 건축을 위해 시멘트 한 포씩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일부 목사님은 시멘트를 한 차 사 와서 싣고 왔지만, 설교자는 시멘트가 굳어 버릴 수 있다며 돈을 모아 오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동네 한복판에 남은 땅이 하나 있었는데, 그 땅의 주인은 노름빚 때문에 팔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설교자는 땅을 계약하면서 보통 한 달인 잔금 기한을 40일로 늘려 달라고 졸랐다. 돈이 전혀 없었기에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걱정했지만, 기도하며 기한 안에 잔금을 치르고 이전등기를 마쳤다. 이후 사택과 예배당을 짓게 되었다. 설교자는 돈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가장 어려워했다고 고백하면서도, 이 경험을 통해 돈 문제는 사람 문제보다 하나님께 어렵지 않다고 적용한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하지 못한 일은 거의 없었다고 돌아본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29–33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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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바로 1982년도 9월에 여기 원지에 왔는데, 원지에 와서는 간이 좀 커졌어요. 지난번에 벽돌 한 장 했는데 이번에는 시멘트 한 포로 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멘트 한 포씩 보내 주시면 예배당을 짓겠습니다, 했더니 돈으로 모아 주면 될 텐데 어떤 목사님은 시멘트를 한 차 사 가지고 싣고 왔어. 생초에 있던 목사님인데. 아니, 예배당을 지으려면 땅을 사서 기초를 하고 그 이후에 시멘트도 사용할 텐데, 시멘트부터 사면 어떻게 해. 놔두면 시멘트 굳어서 못 쓸 텐데. 돈을 가져오면 될 텐데 시멘트를 사 와 가지고. 원지에서도 원지 한복판에 남은 땅이 딱 한 개 있었어요. 남을 땅이 아닌 거야. 동네 한복판인데 남아 있어 가지고 나온 거야. 그 땅의 임자가 누구냐 하면 여기 단성고등학교 앞에 가면 대 쪼개는 데, 대 쪼개는 그 사람들 땅인데 노름을 해서 빚을 엄청나게 진 거야, 노름빚을. 노름빚이 아니었으면 안 팔 텐데 그 사람이 노름하는 바람에 우리가 그 땅을 사게 되는 거예요. 한 푼도 없이 또 기도했는데, 보통 계약하고 중도금하고 잔금 치르는 것을 한 달 정도로 하는데,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한 달 안에 잔금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40일로 해 달라고 졸라 가지고 40일로 했어요. 그리고는 잠이 안 와. 40일 안에 잔금을 치러야 하니까. 잔금만 치르고 나면 그다음에 땅은 되팔아도 그 가치는 갖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잔금을 치르는 게 목표인 거예요.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아는 사람도 없는데 잔금을 어디서 처리해요? 어떻게든 이래저래 해 가지고, 제가 어디 가서 돈 문제를 가지고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제일 하기 어려워서 잘 못하는 입장이에요. 그걸 못 하겠어. 돈을 도와 달라는 걸 잘 못하는 거예요. 어떻든 여러분, 그렇게 해서 40일 안에 잔금을 치르고 이전등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택을 짓고 예배당을 짓고 그렇게 해냈거든요. 저걸 보면 그게 미련한 건지 믿음인지 모르지만, 그리고 여기 지금 여러분 아시는 대로 에스라하우스 땅을 장만하고 집을 짓고 저쪽 건물 짓고. 내가 돈이 있었느냐? 진짜 내 생활비하고 아이들 교육비도 안 되는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계약해 가지고 이루어 왔는지, 지금도 돌아보면 상상이 잘 안 돼요. 그래서 내가 볼 때 돈 문제는 하나님께 간단한 것 같다. 안 어려운 것 같아요. 뭐가 어려우냐? 사람. 사람은 하나님도 애를 먹어. 사람은 참 어려운데 돈은 그렇게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경험상. 지금까지 제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가지고 못 해 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아브라함과 이삭의 약속 성취

설교자는 아브라함이 75세에 자손의 약속을 받았지만 아들이 없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이삭을 약속하셨으나 실제로 주신 것은 25년이 지난 뒤였다. 설교자는 그 사이 낙심할 만한 일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라의 생리가 끊어지자 사람들은 약속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여겼고, 그래서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냈다. 아브라함이 90세를 넘기면서는 자연적인 출산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길 만한 때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삭은 생물학적 출생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로 태어났다. 설교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사람의 판단보다 늦게 보일 수 있으나, 가장 적합한 때에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믿음이 낙심을 이기고 기다리는 힘이라고 적용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36–40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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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아브라함 같은 경우는 아시는 대로 부족한 게 없어요. 다 만족한데 아들이 없는 거예요. 75세 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 모래같이 될 것이다. 아니, 하늘의 별은 놔두고 바다의 모래는 놔두고 하나나 주세요. 그냥 하나라도. 하나도 안 주면서 무슨 하늘의 별같이. 그런데 그래도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거야. 하나님께서 하실 거다. 믿었는데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 여기셨다. 여러분, 세상에 우리가 죄도 하나도 없고 허물도 없고 약점도 없고 이런 의는 없어요. 하나님께서 어떤 걸 의로 여기시기로 했느냐 하면 믿는 것. 믿어지지 않는 걸 믿는다는 건 아직 어딘가 그 인격 속에 순진한 구석이 좀 남아 있어야 뭘 믿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참 못된 놈이고 늘 거짓말하고 늘 속이고 하는 사람은 네놈도 내놈 같겠지 해 가지고 아무것도 못 믿습니다. 아무것도 못 믿고 누구도 못 믿어. 그건 나쁜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안 믿고 누구도 안 믿고 하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 없습니다. 비록 실수도 하고 부족함도 있어도 잘 믿는 사람은 자기가 순진하거나 아직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거나 해서 믿는 거거든요. 남도 자기 같은 줄 알고 믿는 거야. 잘 믿다 보면 속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잘 믿는 사람이 아무도,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보다 좀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거예요.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 모래같이 네 자손이 많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삭 하나를 하나님께서 약속해 놓고 얼마만큼 지나서 주시느냐? 25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영원 속에 사시는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25년도 잠깐이지만 사람에게 25년은 긴 세월이죠. 그동안 낙심될 만한 일이 몇 번 있었어? 사라의 생리가 끊어졌어. 그러니까 나를 통해서는 아니구나. 그래서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 방에 들여보낸 거거든요. 그다음에 내가 볼 때 90세 이렇게 넘어가면서 아마도 그때는 아브라함이 나도 생리적으로 애를 못 낳는 거 아닌가 그랬을 거라. 다시 말하면 사라나 아브라함이나 자연적인 생명 탄생은 거의 불가능하다 싶을 때쯤 돼 가지고, 정말 약속의 자녀, 생물학적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로 이삭이 태어나는 거예요.

다메섹 엘리에셀의 빠른 기도 응답

설교자는 아브라함의 종 다메섹 엘리에셀이 주인의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하러 밧단아람에 간 이야기를 소개한다. 동네가 가까워졌을 때 그는 막중한 사명을 앞에 두고 사람을 알아볼 방법이 없어 구체적으로 기도했다.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온 처녀에게 물을 청했을 때 그가 약대에게도 물을 길어 주겠다고 대답하면 그 여인을 이삭의 아내로 믿겠다는 내용이었다.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브두엘의 딸 리브가가 나왔고, 그녀는 낯선 사람에게 물을 주고 약대를 위해서도 물을 길어 주었다. 약대는 많은 물을 마시기 때문에 그 일은 쉽지 않았지만, 엘리에셀은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는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 설교자는 이를 빠른 응답의 예로 들며, 기도가 곧 그 사람의 믿음을 드러낸다고 말하고 종의 믿음이 아브라함보다 탁월하다고 평가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44–48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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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어떤 사람의 기도는 굉장히 빨리 응답됩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 집의 청지기 다메섹 엘리에셀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가 존경하는 주인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위해서 배필을 구하려고 아브라함의 본토 밧단아람으로 가요. 그 동네가 가까워지니까 자기가 막중한 사명을 띠고, 한 가문을 이어갈 만한 좋은 며느릿감을 구해야 되는데, 사람 보고 이력서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다메섹 엘리에셀이 동네가 가까워질 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동네 입구에 가서 우물가에 물 길으러 오는 처녀들이 있을 텐데, 제가 어떤 처녀를 보고 소녀야, 내게 물 좀 다오 하면, 예, 제가 마시게 해 드리리다 하고 당신의 약대를 위해서도 내가 물을 길으리이다 하고 대답하는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가 이삭의 아내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줄 제가 믿겠나이다.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아주 굉장히 구체적이에요.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니고 당장 그날 응답되는 걸 봐야 될 텐데. 기도 끝나고 눈을 떠 보니까 바로 어떤 처녀가 나와. 브두엘의 딸, 라반의 여동생 리브가야. 오길래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길으려 하는데 소녀야, 물을 좀 마시게 다오 하니까, 그 처녀가 낯선 사람에게 못 본 체하지 않고 예, 제가 마시게 해 드리리다 하고 당신의 약대를 위해서도 내가 물을 길으리이다. 우리나라처럼 물을 긷기 쉬운 우물이 아니고 틀면 나오는 그런 게 아니고, 우물이 상당히 깊어 가지고 물을 길으려면 상당히 힘도 들여야 돼요. 또 사람이야 한 잔이면 목마른 것이 해갈되는데 약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약대가 물을 마시면 많이 마시거든요. 한 번 충분히 마시면 15일간 물 안 마시고 갈 수 있어. 그래서 약대를 위해 물을 길으리이다 할 때는 약대에게 물 한 잔 주고 끝내지 않았을 거라. 물을 계속 길어서 붓고, 약대가 다 마시면 또 붓고 하는 걸 다메섹 엘리에셀이 묵묵히 보고 있는 겁니다. 보다가 다메섹 엘리에셀이 땅에 엎드려요. 종의 기도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빨리 들어주시다니 하면서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다는 거예요. 여기 보면 기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 응답됐다는 거예요.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오래전에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어찌 보면 다메섹 엘리에셀의 믿음이 아브라함보다 더 탁월하다. 대단한 믿음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 사람의 기도가 그 사람의 믿음이거든.

조지 뮬러의 5만 번 기도와 고아원

설교자는 영국의 목회자 조지 뮬러를 소개한다. 그는 독일 할레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기도회에 참여해 회심했고, 젊은 시절의 도둑질과 도박 같은 방탕한 삶에서 돌아섰다. 이후 영국 브리스톨에서 기드온 채플과 베데스다 채플을 운영하며 버려진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는 누구에게도 재정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다렸고, 기도한 내용과 응답을 일기로 기록했다. 설교자는 그 기록에 따라 5만 번의 응답을 받았다고 전한다. 한번은 고아들이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 빵이 없었지만 뮬러는 빵 주심을 감사한다고 기도했다. 그때 빵을 실은 차가 도착했는데, 사고로 배달될 곳에 가지 못해 가져온 것이었다. 설교자는 하나님이 교통사고를 내신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뮬러는 자신은 검소하게 살았고, 70세가 넘어 40개국을 다니며 3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설교자는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적용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50–54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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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림을 보셨죠? 이 그림 누구인지 아세요? 보통 식당이라든지 붙어 있을 텐데, 조지 뮬러라고 하는 영국의 목회자예요. 독일에 가서 할레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그때까지는 도둑질하고 못된 짓 하고 그렇게 살던 사람인데, 독일의 할레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누가 권해 가지고 기도회에 한번 같이 가 보겠느냐? 가자 하니까 갔대요. 여기 보면 성경책과 돋보기 같은 것, 입에 풀칠한다고 수프 한 잔하고 빵 한 개, 참 소박한 것 같아.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데 얼마나 기도해서 얼마나 응답받았어요? 5만 번 기도해서 응답받은 사람, 조지 뮬러. 어떻게 이분이 5만 번이나 응답받았느냐? 1805년에 태어나 가지고 1898년까지, 영국의 목회자인데 고아의 아버지라고. 이분이 왜 그렇게 기도하게 됐느냐 하면,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영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떼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들은 가난해져 가지고 버려진 아이, 부모 없는 아이가 너무 많아. 그런 아이들 중에서 여자아이 한 30명을 거두어 가지고 먹이고 입혀야 되는데 자기가 목사로 가진 게 뭐 있어요. 그런데 이분의 경험이 뭐냐 하면 한 번도 누구를 찾아가서 내가 고아원을 하고 있으니까 재정적으로 좀 도와 달라고 말해 본 적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냥 기다리고 있어. 더 놀라운 것은 왜 이분이 5만 번이라고 쓰고 있느냐? 기도한 것마다 일기를 써요. 기도 일기를. 몇 년도 몇 월 며칠 몇 시에 무슨 기도를 했다, 그리고 응답되면 응답된 기도를 다 쓰고 그렇게 한 거예요. 젊은 시절에 도둑질, 거짓말, 도박, 사기 등으로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던 방탕아 중의 방탕아인데, 할레 대학에서 기도회에 참여해 가지고 회심하게 돼요. 신학 공부를 해서 전도자로 살았는데 영국으로 건너가 브리스톨 지역에서 기드온 채플하고 베데스다 채플이라고 하는 교회를 운영하면서 고아들을 거두고 챙기고 섬기는데, 5만 번이나 응답받은 거예요. 어떤 때는 때가 돼 가지고 고아들이 다 식탁에 앉아 있어. 빵이 없어, 지금. 먹으려고 침을 삼키면서 김칫국 마시고 있는데 빵이 없어. 제가 그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거예요. 빵이 없는데 감사를 해요. 빵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입장이 곤란해요. 빵이 없는데 빵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기도하는데 빵차가 들어온 거야, 빵 실은 차가. 그 내용을 다 이야기할 수 없고, 어떤 경우는 사고가 나 가지고 빵을 가져갈 수가 없어, 배달될 곳에 못 가는 거야. 갖다 내버릴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가져왔다고 하면서 가져온 거예요. 그런 식으로. 그렇다고 하나님이 교통사고를 내신 건 아닙니다. 자칫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5만 번 중에는 그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란 말이야. 그래서 고아들을 챙기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직접 하지 않으니까 누군가 하나님 대신 해야 될 일이고, 뮬러 목사가 하는 일은 하나님 보실 때 하나님의 일인 거예요. 뮬러가 자기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얼마나 검소하게 살았는지 아까 봤죠. 빵하고 수프 하나 하고 그렇게 검소하게 살고, 70세가 넘어서 40개국을 다니면서 전도해 가지고 300만 명에게 하나님을 전했다는 거예요. 내가 살아온 내 삶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사천 예배당 철거 위기와 면장의 도움

설교자는 사천 예배당 건축 과정에서 생긴 위기를 전한다. 땅이 대지와 농지로 나뉘어 있었는데, 예배당의 앞마당을 넓히려고 사택 쪽 경계를 조금 넘어 한 미터 정도 더 지었다. 그 땅은 곧 대지로 바뀔 땅이었지만 지목 변경 전이라 사천군청이 문제를 삼았다. 그해 8월에는 태풍이 두 차례 지나가 큰 피해가 있었고, 이후 군에서 복구를 위해 굴착기가 올라와 잘못 지은 부분을 뜯겠다고 연락했다. 설교자는 블록을 살 때 시멘트를 제대로 넣어 단단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일을 떠올리며 마음이 타들어 갔다. 그는 날짜가 다가오는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고, 면장 이영우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면장도 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애썼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이 피격되는 혼란 속에서 면장이 이곳이 원래 집이 있던 곳이라는 서류를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 결과 포클레인은 돌아갔고 예배당은 지금까지 서 있게 되었다. 설교자는 자신이 그 사건을 기도로 일으킨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하며, 다만 예배당이 부서지지 않기만 기도했다고 말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55–60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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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제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 안 할 수 있습니까? 내 힘으로 안 되는데. 기도하게 되면 예기치 않은 일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1979년도에 제가 사천에, 아까 이야기한 그곳에 있을 때 예배당을 지으면서 조금 무리한 일을 했어요. 땅이 두 필지가 있는데 한 필지는 대지고 한 필지는 농지인 거야. 농지에는 사택을 지을 수 있어. 주택은. 그래서 농지에 주택을 짓고, 앞에 길가 쪽에 있는 예배당 지을 땅은 길 쪽으로 앞마당을 좀 많이 남기기 위해서, 어차피 사택을 지은 그 땅도 곧 대지로 변경될 것이기 때문에, 앞에 마당을 남기느라 사택 쪽으로 경계를 넘어서 조금 침범해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다 내 땅이고 결국 그 땅도 대지로 될 것이고, 농지로 보존되는 땅은 아닙니다. 지목이 아직 변경 전이고 농지인데 예배당을 거기에 한 1미터 더 지었거든. 그걸 사천군청에서 문제 삼아 가지고. 그해 8월에 태풍이 두 개 왔어요. 어빙호라는 태풍하고 주디라는 태풍이 한 달에, 8월 초에 한 번, 8월 중순에 한 번, 두 번 할퀴고 지나가면서. 그때 태풍이 얼마나 무서웠느냐? 한 130명이 죽었다는 거야, 당시에. 우리 성경 강좌하는 모임도 안 되고, 교통이 다 두절돼서 길이 끊겨 차가 못 다닐 정도로 무시무시한 태풍이 지나갔는데. 군에서 또 연락이 뭐였느냐?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해 굴착기 같은 것이 그쪽에 올라갈 텐데, 올라간 김에 우리가, 내가 잘못 지은 것을 뜯는다는 거야. 아이고, 저는 여간해서는 금식 안 하고 철야 잘 안 하는데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말라요. 어떻게 지은 집이냐. 제가 사천에 가서 블록 공장에 가 가지고 보니까 블록에 시멘트가 너무 적게 들어갔어. 보통 블록 살 때 깎아 달라고 하잖아요. 저는 얼마 더 쳐 드릴 테니까 시멘트를 제대로 넣어서 단단한 블록을 만들어 달라 하니까 사장이 쳐다보더라고요. 보통 깎자고 그러잖아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이건 보통 사람 집을 짓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집을 지을 것이기 때문에 블록에 시멘트를 제대로 섞어서 찍어 달라. 정말 가서 보니까 다른 것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멘트가 기가 막히게 들어간 거야. 때려 보니까 쇳소리가 나.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내 손으로 다 쌓아 올려서 지붕만큼 올라갔어. 진주노회 안에 블록 한 장씩 보내 주세요 해 가지고 모금한 거잖아. 그걸 다 쌓아 올렸는데 포클레인으로 와서 밀어 버린다고. 여러분, 기도 안 하겠어요? 기도하다가 면장을 찾아가고. 면장은 법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다 해 주려고 하는데 법이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 이영우라는 면장,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는데 이분이 저를 참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애가 나보다 더 타는 거라. 날짜가 바짝바짝 다가오는데, 그해 태풍이 연달아 두 개나 왔기 때문에 사천에서 고성 사이 경계, 제일 먼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 가지고. 포클레인으로 밀어 버리는 걸 보고 내가 어떻게 견뎌 낼 것인가? 잠이 안 오고 밤이 두렵고, 진짜 살맛이 없어지는 거야. 10월 29일인가 포클레인이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에 뭐가 있었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거야. 그때는 박정희가 곧 나라이고 나라가 박정희야, 그냥. 그런데 박정희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온 나라가 질서도 없고 세상 끝난 것 같았어요. 그때 이영우 면장이 군에 가 가지고, 여기가 원래 사실 공부상에는 없어도 원래 집이 있던 곳이다, 해 가지고 서류를 만들어 통과시켜. 그래서 포클레인 가지고 오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도 예배당이 서 있습니다. 그 뒤에 있는 농지로 돼 있던 땅은 빨리 지목 변경해 가지고 완전무결하게 처리된 거예요.

2008년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의 확산

설교자는 2008년 건강이 나빠지자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스라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을 만들었다. 구약을 4박 5일씩 두 차례, 신약을 한 차례 녹음해 엠피스리 파일로 만들고 시디에 담아 보급했다. 설교자는 이 시디가 자신의 사후에도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는 유언 같은 역할을 하리라 기대했다. 완성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졌다. 그런데 반응은 설교자의 예상을 넘어섰다. 심화 과정은 많은 사람이 구입했고, 이후 판매가 많아 땅 장만과 시설 건축이 이루어졌다고 돌아본다. 광주 월광교회의 오일주 집사님처럼 먼 곳의 성도들도 참여했고, 불법 복제본까지 우루과이, 파라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퍼졌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설교를 듣고 네팔 선교 헌금을 보낸 분도 있었다. 설교자는 심화 과정을 듣고 성경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람이 많다고 전하며, 하나님이 기도와 사역의 길을 넓혀 주셨다고 간증한다.

노우호 · 2026-10-18

설교 내 74–77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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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에 제가 건강이 조금 안 좋아지면서 이러다가는 내가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보지도 못하고 내 생이 끝나는 거 아닌가? 2008년도에는 뭘 했느냐? 에스라 성경 강좌 심화 과정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구약을 4박 5일씩 두 번, 신약을 또 한 번, 그렇게 해 가지고 녹음해서 엠피스리 파일로 만들어 그때는 유에스비가 아니고 시디에 담아서 보급하게 됐는데, 나는 죽어도 내 시디는 살아 있어 가지고 계속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들려줄 것이다. 그걸 해 놓고 나면 내가 한국 교회에 남기는 유언처럼 남아 있으리라 하고 만들었어요. 그걸 만들어 놓으니까 조금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그때까지만 해도 당뇨도 있고 여러 가지가 힘들었는데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그런데 그렇게 반응이 일어날 줄 몰랐어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이후, 2008년도 이후에 우리가 여기 땅을 장만하거나 이렇게 한 걸 보면 전부 다 그게 너무 많이 나간 거예요. 심화 과정이 엄청나게 많이 나간 거예요. 우리 상상을 넘어설 만큼 많이 나가 가지고 이런 시설도 만들어지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다른 걸 만들어도 별로 많이 안 나갔는데 심화 과정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 주고. 오늘 여기 앉아 계신 오일주 집사님, 최근에 알았는데, 이분은 제가 오래전에 광주 월광교회에 가서 세미나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이분이, 최근에 이야기를 듣고. 그러니까 지금도, 그건 불법인데 불법 복제품이 요즘은 유에스비에 담겨서 돌아가는데 온 세계를 돌아다니는 거예요. 우루과이, 파라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더반 같은 데까지 가서, 발도 없는데 거기 날아다니는 거예요. 얼마 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우리 설교를 들으시는 분이 있어 가지고 네팔 선교 헌금을 보내 온 분도 있는 거예요. 그런 분들을 보면 심화 과정을 듣고 성경이 안 보이다가 성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분이 많아요.

교수님의 '나 한 사람을 위한 십자가' 말씀

설교자는 신학교에서 들은 교수님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십자가가 필요했다면 그렇게 하셨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설교자는 이 말씀이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고 나눕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첫 기적으로 결혼 잔치에서 떨어진 포도주를 채워 주신 사건을 언급합니다. 격에 맞지 않아 보일 수 있는 사소한 필요까지 살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성품 덕분에 성도는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님께 구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고 적용합니다. 설교자는 이 개인적 사랑을 본문의 병자 치유와 오천 명을 먹이신 일로 연결합니다. 예수님께서 사소한 필요를 방치하지 않으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이 전 인류를 향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닿아 있다는 메시지로 전해집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1–1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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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이 참 섬세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은 어느 결혼식 피로연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신 사건입니다. 사실, 인류 구원이라는 큰 사명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하셨다는 것이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주인이 당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소한 필요까지도 채워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를 민감하게 보시고 채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그 성품 덕분에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사소한 것까지도 구할 수 있고, 주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으셨지만, 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십자가가 필요했다면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이 말씀은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에 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그런 성품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빈들로 가셨는데, 거기까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저녁이 되었을 때는 어린아이의 작은 도시락으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셨습니다. 이 역시 예수님께서 사소한 필요를 방치하지 않으신 것과 연결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마태복음 14장 14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 '불쌍히 여기사'가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병자들을 고치시고, 군중을 먹이셨습니다. 저는 살아갈수록 이 마음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특히 부부 관계에서, 상대방을 불쌍히 여긴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목회를 시작할 때 결혼했을 때, 저는 너무 어려워서 많은 것을 따지며 지적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내를 불쌍히 여긴 마음이 생기면서 행복해졌고, 아내의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이 마음은 악용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자녀가 지각하면 도와주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다시 태워주면서 '다음부터는 안 태워줄 거야'라고 말합니다. 이는 부모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24년간 목회하면서 수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모에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특효약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 마음으로 우리를 풍성하게 인도하고 싶어 하십니다. 마태복음 20절에서 '다 배불리 먹고'라는 말씀은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시편 23편 5절에서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풍성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분당 우리 교회의 구호는 '넘치도록 흘려받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가두어 두지 말고 흘려 보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11절에도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매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물난 동상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는 샘 같기를 바랍니다. 매마른 심령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난 동상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심령이 매말랐지만, 이제는 주님의 성령을 간절히 기다리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다시 태워주는 부모의 마음

설교자는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예로 듭니다. 자녀가 지각을 자주 하면 이번에는 도와주지 않겠다고 부모는 결심합니다. 그러나 결국 아이를 다시 차에 태워 주면서 '다음부터는 안 태워줄 거야'라고 말하게 됩니다. 설교자는 이것이 바로 부모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목회 24년 동안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받은 상처를 이 마음으로 치유받는 것을 보았다고 나눕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이 마음이 특효약이라고 말합니다. 이 적용은 부부 관계에서도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이어집니다. 설교자는 이 마음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도 함께 덧붙입니다. 결국 이 마음이 관계를 회복시키는 힘이라는 것이 설교자의 메시지입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1–1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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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이 참 섬세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은 어느 결혼식 피로연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신 사건입니다. 사실, 인류 구원이라는 큰 사명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하셨다는 것이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주인이 당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소한 필요까지도 채워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를 민감하게 보시고 채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그 성품 덕분에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사소한 것까지도 구할 수 있고, 주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으셨지만, 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십자가가 필요했다면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이 말씀은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에 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그런 성품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빈들로 가셨는데, 거기까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저녁이 되었을 때는 어린아이의 작은 도시락으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셨습니다. 이 역시 예수님께서 사소한 필요를 방치하지 않으신 것과 연결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마태복음 14장 14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 '불쌍히 여기사'가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병자들을 고치시고, 군중을 먹이셨습니다. 저는 살아갈수록 이 마음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특히 부부 관계에서, 상대방을 불쌍히 여긴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목회를 시작할 때 결혼했을 때, 저는 너무 어려워서 많은 것을 따지며 지적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내를 불쌍히 여긴 마음이 생기면서 행복해졌고, 아내의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이 마음은 악용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자녀가 지각하면 도와주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다시 태워주면서 '다음부터는 안 태워줄 거야'라고 말합니다. 이는 부모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24년간 목회하면서 수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모에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특효약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 마음으로 우리를 풍성하게 인도하고 싶어 하십니다. 마태복음 20절에서 '다 배불리 먹고'라는 말씀은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시편 23편 5절에서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풍성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분당 우리 교회의 구호는 '넘치도록 흘려받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가두어 두지 말고 흘려 보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11절에도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매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물난 동상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는 샘 같기를 바랍니다. 매마른 심령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난 동상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심령이 매말랐지만, 이제는 주님의 성령을 간절히 기다리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99세까지 행복했던 설교자의 어머니

설교자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금식 기도하다 돌아가신 뒤 오남매를 홀로 키우며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사셨습니다. 경제 활동 경험이 없던 어머니는 시골에서 자녀들의 월사금 걱정까지 떠안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99세까지 사셨고, 딱 열흘 모자란 백 세를 채우셨다고 설교자는 회고합니다. 설교자가 어머니에게서 발견한 첫 번째 특징은 어머니가 갈수록 행복해지셨다는 점입니다. 노년의 어머니는 '예수 믿는 노인들이 불쌍해서 어떡하냐'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이 말이 자신이 행복하다는 뜻이었다고 풀이합니다. 그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을 떠올립니다. 하객들이 갈수록 향기로운 포도주를 내놓은 집이라고 감탄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도 어머니처럼 갈수록 행복해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적용합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3–3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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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시대는 학비 못 내 가지고 중간에 쫓겨나가는 학생이 어디 있습니까? 다 먹을 만큼 먹고, 배가 나와서 문제지, 못 먹어서 문제인 경우는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영혼이 시들어가는 걸 몰라요. 우리의 영혼이 시들어가는 거에는 관심이 없는 거라는 거죠. 저희 어머니를 생각하면요, 똑같이 그렇게 가난했거든. 아니요, 더 가난했죠. 왜? 아버지가 목사님이셨는데, 금식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셨단 말이에요. 아버지가 있는 남편이 있는 집 아이도 월사금을 못 내는데, 주렁주렁 그 오남매, 어떻게 여러분? 그 시골에, 경제적으로 돈 버는 일에는 경험도 없는 초보 무능력한 저희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겠냐고요. 그러나 저는 저희 어머니가 99세에 돌아가셨거든요. 딱 열흘 뺀 백세를 채우신 분이에요. 근데 제가 우리 어머니를 보면서 두 가지 특징을 뚜렷하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갈수록 행복해지시는 거예요. 야, 이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나중에 노년이 되셔 가지고는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고, 입에 달고 사신 말씀이 이거예요. '아이고, 예수 믿는 그 뭐라 그러셨더라? 노인들이라 그러셨던가? 뭐 예수와 믿는 노인들 불쌍해서 어떡하냐?' 본인은 행복하다는 뜻이잖아요. 아까 가나 혼인 잔치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의 자리에, 그거를 벌컥벌 마셨다. 하객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이 집 대단하다. 보통 잔치집 가면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 내놔 가지고 잘 마시게 하다가 나중에는 취하면은 싸그로 포도주를 내놓는다. 이 집은 출처를 모르니까 예수님의 기적에 포도주를 마시면서 갈수록 향기로운 포도주를 주는 거라.' 여러분, 예수님 계신 그 잔치 집에는 갈수록 향기로운 포도주를 마시는 것처럼,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 같은 거예요. 정상입니다. 갈수록 행복해지시는 거예요.

열한 살 아동 학대 피해자의 회복

설교자는 오랫동안 집에 갇혀 학대와 굶주림을 겪은 11살 소녀의 신문 기사를 소개합니다. 아이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가스 배관을 타고 집 밖으로 탈출했습니다. 발견 당시 아이의 키는 120cm였고 몸무게는 16kg에 불과했으며, 같은 나이 평균 몸무게는 39kg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슈퍼마켓 주인은 여섯 살쯤 되어 보인다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일주일 뒤 기사에는 아이의 몸무게가 4kg 늘었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설교자는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고 나눕니다. 그는 회복의 가장 중요한 비결이 억압된 공간을 벗어난 데 있다고 묻고 답합니다. 이를 신앙에 적용하여,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자리에 머문 채 회복을 바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회개하고 잘못된 생활을 청산해야 영혼도 회복된다고 강조합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5–6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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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초대받아 오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래 교회를 다녔지만 몸은 늘 주일에 한 번씩 여기 와 있지만, 이게 뭔지를 잘 맛을 못 보신 분에게 특별한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매마른 걸 안 매마르게 해 달라고 자꾸 떼 쓰는 바람에, 매마른 곳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걸 못 배운 게 우리 아닙니까? 어머니를 보면 매마른 곳에서도 만족하시니까 감당할 장사가 없잖아요. 사단이 뭘로 유혹하겠냐고요? 13평 괜찮다는데, 이만하면 됐지, 저 자꾸 넓은데 가려 그러느냐, 그러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속으로 한번 대답해 보세요. 아니, 하나님은 여러분을 풍성하게 인도하기를 원하신다는데, 물된 동산같이 인도해 주신다는데, 내 잔이 넘치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왜 맨날 이렇게 빈곤합니까? 왜 우리는 맨날 이렇게 매마르게 사는 거냐고요? 아니, 오늘 처음 오신 분은 그래서 그렇다 치고, 오래 예수 믿는 여러분, 어떻게 왜 우리 내면에 이런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없어지고, 늘 낙심하고, 걸핏하면 절망에 빠지고, 이상한 사람 만나 가지고 상처를 받으면 풀리지 않고, 계속 그 마음의 분노 때문에 내 마음의 평정신을 잃어버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 물론 너무나 광야 같은 악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매순간 기쁘고 매순간 행복할 수는 없잖아요. 그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믿음 좋아도 이거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뭐죠? 그런 순간마다 그 매마른 광야를 만나는 순간마다 인도하심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의 공급이 다시 흐르는 일이 일어나면 되는데, 그게 없잖아요. 아, 내가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하는데, 어떤 분한테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잖아요. 제가 이 질문을 가지고 묵상을 하면서, '주님은 이처럼 우리를 풍성하게 인도하기 원하시는데, 왜 많은 성도님들은 이렇게 매말라 가나?' 이걸 생각하다가, 또 다른 오래 전에 나온 그 아동학대 사건 신문 기사가 생각이 난 거죠. 아마 제가 말씀드리면 기억하신 분이 많으실 거예요. 그 당시 그 아이가 11살 여자였는데요. 오랫동안 집안에 갇혀 지냈지도 못하고, 그렇게 학대를 당한 사건입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그 아이가, 집청이었나 보죠. 가스 배관을 타고 집 밖으로 탈출을 한 거예요. 얼마나 그동안 굶주였는지, 11살짜리 아이의 키가 120cm라고 하는데요. 그 당시 우리나라 7살 나이 평균 키가 120이래요. 11살 나이가 키가 120이고, 몸무게가 16kg이었대요. 우리나라 그 당시 11살짜리 아이들 평균 몸무게가 39kg이었대요. 자기 또 애들이 다 평균이 39kg인데 16kg이었다는 거예요. 얼마나 굶주였는지 아시겠죠? 어죽께요. 그 아이를 발견한 슈퍼마켓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아, 여자인데요. 한 여섯 살쯤 돼 보입니다.' 이렇게 말했다는 거죠. 한 일주일쯤 뒤에 참 반가운 소식인데, 제 마음이 참 씁쓸하고 슬펐던 신문 기사 하나를 봤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아빠의 학대를 피해 탈출한 영양실조 11살 딸, 일주일 만에 몸무게가 4kg 늘어.' 이게 너무 반가우면서도 참 너무 씁쓸하더라고요. 아니, 도대체 얼마나 극심한 영양 실조에 시달렸으면, 일주일 만에 4kg이 늘어난 거예요? 11살짜리 애가, 남의 가정 사정을 모르니까 함부로 정죄할 마음은 없습니다만, 이걸 우리 삶에, 신앙생활에 적용해 보자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질문을 또 드려 볼게요. 여러분, 그 아이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16kg 하던 그 몸무게가 일주일 만에 4kg이 늘어날 정도로 회복이 된 겁니까? 가장 중요한 비결이 뭐죠? 배관 타고 탈출했잖아요. 자기가 거기에 억압돼 있던 그 공간을 벗어났기 때문 아닙니까? 이걸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거거든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이 점점 매말라가고, 감사가 사라지고, 삶의 의욕은 없어지고, 기쁨도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뭐 있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 주시는데." 이런 원망이 넘쳐나는 여러분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를 혼미하게 하는 그 영역을 벗어나려고 애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려고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그 아이처럼 가스 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해야 회복이 일어나듯이, 우리의 신앙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곳을 배회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 생활은 청산하지 않으면서, 제가 돌아보면은요. 목사들인데도 어릴 때 항상 하나님 없어. 하나도 안 도와줘. 그걸 제가 많이 불평한 기억이 나거든요. 도와줄 수 없는 불신앙의 자리에 머물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했다고요. 20대 초반에 시카고로 이민 가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 상황에서 진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제가 은혜를 누리기 시작한 출발이 되는 거예요. 저는 가끔씩요. 저는 3월 15일 날 시카고로 이민을 갔는데, 그 날이 영적으로 내 생일이라고 얘기를 해요. 제가 미국에 안 갔으면, 시카고에 가지 않았으면, 그 절망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절대로 목사가 안 됐습니다. 교회도 안 나갈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 인격적으로 제가 애쓰지도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뭘 강조하고 싶은 겁니까? 여러분, 이런 점에서 저는 기독교 변증가거든요. CS 루이스라는 분. 여러분, 신앙생활 처음 하시거나, 오늘 초대 오신 분들, CS 루이스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십시오. 어떤 책이라도 괜찮아요. 이분이 정말 대단한 분인데요. 이분이 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우리가 그냥 내 힘을 의지하여 전도해 보면, 그런 분들이 옛날에 많았습니다. "난 주먹을 믿어. 난 내 주먹을 믿지. 난 하나님 없어도 돼." 너무나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려고 바둥바둥 그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 종이 신문이 있을 때, 신문 보내라고 몰입하고 있으면, 아내가 처음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로 "식사하세요. 밥 먹으라고요." 안 들려요. 신문에 내가 몰입하고 있으면, 밥 먹으라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거든요. 오늘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풍요로운 삶을 원하세요. 계속 말씀하십니다. "진짜 얘들아, 땅이 다가 아니라고, 왜 그렇게 바둥바둥 그리냐고." 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영혼이 없다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설명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 반통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안 그렇던가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건 전부이고, 나는 영혼이 없는 짐승하고 똑같이, 나 우리 강아지를 보면서, 이 강아지가 어떨 때는 나하고 차이가 뭐지? 걔도 모든 흰혈구를 다 갖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동물들하고 저하고의 결정적인 차이는, 저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 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려요. 그리고 집에 가서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땅이 끝이라고 한다면,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잖아요. 설명이 안 되는 그 많은 일들이, 왜 이후에 연장되는 그 부분을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은 계속 그 말씀을 해 주세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참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본문에서 "다 배불리 먹고" 이런 결과가 이제 결론이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놀라운 결론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어땠는 줄 아십니까? 자, 15절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마태복음 14장 15절입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두 대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빈 들은 결핍의 상징 아닙니까? 게다가 제자들이 관찰한 그대로, 이미 밤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구할 수 없다. 그 이야기를 지금 고백한 거거든요. 그래서 빈 들이요. 이거가 어떻게 다 배불리 먹고의 재료가 됐나? 이게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결핍의 상징인 빈 들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기에 지금 밤까지 찾아왔는데, 놀라운 건 그게 역설적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배불리 먹게 된 원인이었다는 거예요. 다른 데서 그날 군중들 먹일 수 있는 양식을 구해 왔으면, 예수님의 기적에 음식은 나오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요. 결핍이 기적을 만든 재료가 된 거거든요. 빈 들이 다 배불리 먹고, 이 풍요로움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누가 저한테, "아니 그 장소가 빈 들이었는데, 거기는 결핍이었는데,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저한테 물으시면, 저는 대답 간단하게 다 그거요. 정답은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결핍이 재료가 된 겁니다. 오늘 초대받아 오신 분들과 우리 교회 오래 다니지만 복음이 뭔지 모르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핵심이 이거거든요. 여러분, 살다 보면 빈 들이 오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차원의 빈 들이 오고, 관계적으로 배신당해서 상처받는 빈 들이 오고,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마음을 나눌 길이 없어 가지고 막 절망하고, 이게 인생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이 그때 이미 분당 우리 교회 만 명에 단임 목사로 딱 계획을 하고 계셔 가지고, 저희에게 빈 들을 좀 빨리 보내 주셨어요. 저는 20대 초에 인생의 빈 들, 인생의 쓴맛을 본 거거든요. 지금도 기억해요. 절망적인 제 상황, 환경은요. 아니, 내가 한국 살다가 미국 갔는데, 그때 경제 격차가 미국하고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이만큼 우리나라가 낙후가 됐는데, 세상에, 난 미국이라고 갔는데, 미국에서 저 화장실 가는데 새벽에 불을 켜면은 바퀴벌레들이 막 놀라가고, 이것 왜 일찍 일어나서 그러면서 막 바퀴벌레가 도망가는 그 그거, 아, 내가 한국에도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이 목조 건물, 막 미국에 낡아 빠진 100년된 목조 건물에 제가 사는데, 하여튼 한심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셨죠. 온 남매 중에 뚝 떨어지는 막내죠. 대학교 2학년 맞추고 이민을 갔는데, 거기서 다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학비를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이게 절망이 온 거죠. 빈 들이 찾아왔죠. 자꾸 좌절이 겹치니까, 그냥 죽고 싶더라고요. 조금만 더 제가 용감했으면, 뭐 도전했을지 모르죠. 무서워서 못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에요. 그 빈 들들이 저로 하여금 놀랍게도 배불리 먹고, 이 인생을 만들어 준 거 아닙니까? 배불리 먹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한테, 아 참, 저희 교회가요, 지금도 자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힘듭니다. 그 오연을 하지 말아 주세요. 얼마나 주 목사가 욕심이 많아 가지고, 나까지 신도 만들려고 그냥 저렇게 쓴다고 그러는데, 진짜 오해하세요. 저희는요, 일만 소도 파송 운동으로 만 명 이상을 다 파송한 교회예요. 이 오해만 가지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왜 그 영화 한편 참 재밌는 거 보고 나면, 막 진짜 우리에 보고, 너 그거 봐야 된다. 말 안 들어, 너 진짜 이 영화는 봐야 된다. 아직도 안 봤니? 같이 가져 나오고, 이런 영화가 있잖아요. 최근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이 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한 거예요. 여러분이 마음 말고는 다른 거 없습니다. 바로 어제인데요.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 마음을 울린 찬양, 이게 참, 원래부터 잘 아는 곡인데, 하나님은 때에 따라 새롭게 은혜를 주세요. 광야를 지나며, 이런 제목의 찬양인데, 가사가 이렇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써 있네." 제가 이 가사가 너무 어제 와닿 가지고요. 왜 시카고에 만 명 때 저를 보는 거 같으니까요. "왜 나를 깊은 어둠에 가두어 두느냐고, 막 떼지를하고, 당신이 신이냐고, 막 이렇

시카고 이민과 영적 생일

설교자는 20대 초반 시카고로 이민을 간 경험을 나눕니다. 그곳은 가장 밑바닥의 상황이었고, 그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매달리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은혜를 누리기 시작한 출발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3월 15일 시카고로 이민 간 그날을 영적 생일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합니다. 만약 미국에 가지 않았고 그 절망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자신은 목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도 나가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시기를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이 간증은 고난의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적용으로 이어집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6–6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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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이 점점 매말라가고, 감사가 사라지고, 삶의 의욕은 없어지고, 기쁨도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뭐 있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 주시는데." 이런 원망이 넘쳐나는 여러분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를 혼미하게 하는 그 영역을 벗어나려고 애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려고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그 아이처럼 가스 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해야 회복이 일어나듯이, 우리의 신앙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곳을 배회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 생활은 청산하지 않으면서, 제가 돌아보면은요. 목사들인데도 어릴 때 항상 하나님 없어. 하나도 안 도와줘. 그걸 제가 많이 불평한 기억이 나거든요. 도와줄 수 없는 불신앙의 자리에 머물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했다고요. 20대 초반에 시카고로 이민 가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 상황에서 진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제가 은혜를 누리기 시작한 출발이 되는 거예요. 저는 가끔씩요. 저는 3월 15일 날 시카고로 이민을 갔는데, 그 날이 영적으로 내 생일이라고 얘기를 해요. 제가 미국에 안 갔으면, 시카고에 가지 않았으면, 그 절망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절대로 목사가 안 됐습니다. 교회도 안 나갈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 인격적으로 제가 애쓰지도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뭘 강조하고 싶은 겁니까? 여러분, 이런 점에서 저는 기독교 변증가거든요. CS 루이스라는 분. 여러분, 신앙생활 처음 하시거나, 오늘 초대 오신 분들, CS 루이스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십시오. 어떤 책이라도 괜찮아요. 이분이 정말 대단한 분인데요. 이분이 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우리가 그냥 내 힘을 의지하여 전도해 보면, 그런 분들이 옛날에 많았습니다. "난 주먹을 믿어. 난 내 주먹을 믿지. 난 하나님 없어도 돼." 너무나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려고 바둥바둥 그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 종이 신문이 있을 때, 신문 보내라고 몰입하고 있으면, 아내가 처음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로 "식사하세요. 밥 먹으라고요." 안 들려요. 신문에 내가 몰입하고 있으면, 밥 먹으라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거든요. 오늘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풍요로운 삶을 원하세요. 계속 말씀하십니다. "진짜 얘들아, 땅이 다가 아니라고, 왜 그렇게 바둥바둥 그리냐고." 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영혼이 없다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설명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 반통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안 그렇던가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건 전부이고, 나는 영혼이 없는 짐승하고 똑같이, 나 우리 강아지를 보면서, 이 강아지가 어떨 때는 나하고 차이가 뭐지? 걔도 모든 흰혈구를 다 갖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동물들하고 저하고의 결정적인 차이는, 저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 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려요. 그리고 집에 가서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땅이 끝이라고 한다면,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잖아요. 설명이 안 되는 그 많은 일들이, 왜 이후에 연장되는 그 부분을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은 계속 그 말씀을 해 주세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참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본문에서 "다 배불리 먹고" 이런 결과가 이제 결론이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놀라운 결론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어땠는 줄 아십니까? 자, 15절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마태복음 14장 15절입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두 대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빈 들은 결핍의 상징 아닙니까? 게다가 제자들이 관찰한 그대로, 이미 밤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구할 수 없다. 그 이야기를 지금 고백한 거거든요. 그래서 빈 들이요. 이거가 어떻게 다 배불리 먹고의 재료가 됐나? 이게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결핍의 상징인 빈 들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기에 지금 밤까지 찾아왔는데, 놀라운 건 그게 역설적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배불리 먹게 된 원인이었다는 거예요. 다른 데서 그날 군중들 먹일 수 있는 양식을 구해 왔으면, 예수님의 기적에 음식은 나오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요. 결핍이 기적을 만든 재료가 된 거거든요. 빈 들이 다 배불리 먹고, 이 풍요로움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누가 저한테, "아니 그 장소가 빈 들이었는데, 거기는 결핍이었는데,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저한테 물으시면, 저는 대답 간단하게 다 그거요. 정답은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결핍이 재료가 된 겁니다. 오늘 초대받아 오신 분들과 우리 교회 오래 다니지만 복음이 뭔지 모르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핵심이 이거거든요. 여러분, 살다 보면 빈 들이 오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차원의 빈 들이 오고, 관계적으로 배신당해서 상처받는 빈 들이 오고,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마음을 나눌 길이 없어 가지고 막 절망하고, 이게 인생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이 그때 이미 분당 우리 교회 만 명에 단임 목사로 딱 계획을 하고 계셔 가지고, 저희에게 빈 들을 좀 빨리 보내 주셨어요. 저는 20대 초에 인생의 빈 들, 인생의 쓴맛을 본 거거든요. 지금도 기억해요. 절망적인 제 상황, 환경은요. 아니, 내가 한국 살다가 미국 갔는데, 그때 경제 격차가 미국하고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이만큼 우리나라가 낙후가 됐는데, 세상에, 난 미국이라고 갔는데, 미국에서 저 화장실 가는데 새벽에 불을 켜면은 바퀴벌레들이 막 놀라가고, 이것 왜 일찍 일어나서 그러면서 막 바퀴벌레가 도망가는 그 그거, 아, 내가 한국에도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이 목조 건물, 막 미국에 낡아 빠진 100년된 목조 건물에 제가 사는데, 하여튼 한심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셨죠. 온 남매 중에 뚝 떨어지는 막내죠. 대학교 2학년 맞추고 이민을 갔는데, 거기서 다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학비를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이게 절망이 온 거죠. 빈 들이 찾아왔죠. 자꾸 좌절이 겹치니까, 그냥 죽고 싶더라고요. 조금만 더 제가 용감했으면, 뭐 도전했을지 모르죠. 무서워서 못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에요. 그 빈 들들이 저로 하여금 놀랍게도 배불리 먹고, 이 인생을 만들어 준 거 아닙니까? 배불리 먹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한테, 아 참, 저희 교회가요, 지금도 자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힘듭니다. 그 오연을 하지 말아 주세요. 얼마나 주 목사가 욕심이 많아 가지고, 나까지 신도 만들려고 그냥 저렇게 쓴다고 그러는데, 진짜 오해하세요. 저희는요, 일만 소도 파송 운동으로 만 명 이상을 다 파송한 교회예요. 이 오해만 가지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왜 그 영화 한편 참 재밌는 거 보고 나면, 막 진짜 우리에 보고, 너 그거 봐야 된다. 말 안 들어, 너 진짜 이 영화는 봐야 된다. 아직도 안 봤니? 같이 가져 나오고, 이런 영화가 있잖아요. 최근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이 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한 거예요. 여러분이 마음 말고는 다른 거 없습니다. 바로 어제인데요.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 마음을 울린 찬양, 이게 참, 원래부터 잘 아는 곡인데, 하나님은 때에 따라 새롭게 은혜를 주세요. 광야를 지나며, 이런 제목의 찬양인데, 가사가 이렇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써 있네." 제가 이 가사가 너무 어제 와닿 가지고요. 왜 시카고에 만 명 때 저를 보는 거 같으니까요. "왜 나를 깊은 어둠에 가두어 두느냐고, 막 떼지를하고, 당신이 신이냐고, 막 이렇게 무능한 시기냐고, 막 되들고 그랬거든요." 그때 땅이 가사 그대로예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광야가 어떤 곳이냐?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제가 이 곡을 선분 검색을 해 보니까요, 여성분인데요, 저하고 좀 환경이 비슷하더라고요.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 그것도 비슷해요. 그리고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아직 그 어린 학생인데, 자기가 벌어서 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얼마나 그 광야 그 길이 심했겠냐고요. 그 고백을 쭉 하면서, 아까 여기에 저는 과거형으로 썼는데, 저는 단수로 여러분께 설명했던 게 뭐였죠? 왜 나를 다시 한번 보세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그리고 결론에 있는 그다음 가사가 너무 중요합니다. "주께서 나를 사,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고,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고,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 곳, 그 광야에 내가 서 있네." 이 찬양 아닙니까? 이 부분은 다음 주일 날 제가 또 설명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제가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요. 오늘은 설교를 끝내지 않고 마치리라. 요렇게 설교를 끝내려고요. 지금 여러분 생각에, 우리 목사님 스타일을 보니까, 아직 서론하고 있는데, 폴로는 도대체 언제 하는 거야? 두려워하고 있는데, 폴로는 다음 주일 할 거예요. 이 설교 끝났습니다. 요렇게 설교를 제가 끝내고요.

CS 루이스의 '고통은 확성기' 인용

설교자는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 말은 고통이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확성기라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젊은 시절 자기 힘을 믿으며 하나님 없이도 된다고 말하던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를 신문에 몰입해 아내가 식사하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면에 비유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땅이 전부가 아니라고 계속 말씀하신다고 적용합니다. 영혼이 있다는 관점에서 보아야 이 땅에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고통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권합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6–6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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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이 점점 매말라가고, 감사가 사라지고, 삶의 의욕은 없어지고, 기쁨도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뭐 있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 주시는데." 이런 원망이 넘쳐나는 여러분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를 혼미하게 하는 그 영역을 벗어나려고 애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려고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그 아이처럼 가스 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해야 회복이 일어나듯이, 우리의 신앙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곳을 배회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 생활은 청산하지 않으면서, 제가 돌아보면은요. 목사들인데도 어릴 때 항상 하나님 없어. 하나도 안 도와줘. 그걸 제가 많이 불평한 기억이 나거든요. 도와줄 수 없는 불신앙의 자리에 머물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했다고요. 20대 초반에 시카고로 이민 가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 상황에서 진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제가 은혜를 누리기 시작한 출발이 되는 거예요. 저는 가끔씩요. 저는 3월 15일 날 시카고로 이민을 갔는데, 그 날이 영적으로 내 생일이라고 얘기를 해요. 제가 미국에 안 갔으면, 시카고에 가지 않았으면, 그 절망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절대로 목사가 안 됐습니다. 교회도 안 나갈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 인격적으로 제가 애쓰지도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뭘 강조하고 싶은 겁니까? 여러분, 이런 점에서 저는 기독교 변증가거든요. CS 루이스라는 분. 여러분, 신앙생활 처음 하시거나, 오늘 초대 오신 분들, CS 루이스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십시오. 어떤 책이라도 괜찮아요. 이분이 정말 대단한 분인데요. 이분이 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우리가 그냥 내 힘을 의지하여 전도해 보면, 그런 분들이 옛날에 많았습니다. "난 주먹을 믿어. 난 내 주먹을 믿지. 난 하나님 없어도 돼." 너무나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려고 바둥바둥 그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 종이 신문이 있을 때, 신문 보내라고 몰입하고 있으면, 아내가 처음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로 "식사하세요. 밥 먹으라고요." 안 들려요. 신문에 내가 몰입하고 있으면, 밥 먹으라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거든요. 오늘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풍요로운 삶을 원하세요. 계속 말씀하십니다. "진짜 얘들아, 땅이 다가 아니라고, 왜 그렇게 바둥바둥 그리냐고." 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영혼이 없다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설명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 반통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안 그렇던가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건 전부이고, 나는 영혼이 없는 짐승하고 똑같이, 나 우리 강아지를 보면서, 이 강아지가 어떨 때는 나하고 차이가 뭐지? 걔도 모든 흰혈구를 다 갖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동물들하고 저하고의 결정적인 차이는, 저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 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려요. 그리고 집에 가서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땅이 끝이라고 한다면,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잖아요. 설명이 안 되는 그 많은 일들이, 왜 이후에 연장되는 그 부분을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은 계속 그 말씀을 해 주세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참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본문에서 "다 배불리 먹고" 이런 결과가 이제 결론이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놀라운 결론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어땠는 줄 아십니까? 자, 15절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마태복음 14장 15절입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두 대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빈 들은 결핍의 상징 아닙니까? 게다가 제자들이 관찰한 그대로, 이미 밤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구할 수 없다. 그 이야기를 지금 고백한 거거든요. 그래서 빈 들이요. 이거가 어떻게 다 배불리 먹고의 재료가 됐나? 이게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결핍의 상징인 빈 들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기에 지금 밤까지 찾아왔는데, 놀라운 건 그게 역설적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배불리 먹게 된 원인이었다는 거예요. 다른 데서 그날 군중들 먹일 수 있는 양식을 구해 왔으면, 예수님의 기적에 음식은 나오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요. 결핍이 기적을 만든 재료가 된 거거든요. 빈 들이 다 배불리 먹고, 이 풍요로움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누가 저한테, "아니 그 장소가 빈 들이었는데, 거기는 결핍이었는데,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저한테 물으시면, 저는 대답 간단하게 다 그거요. 정답은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결핍이 재료가 된 겁니다. 오늘 초대받아 오신 분들과 우리 교회 오래 다니지만 복음이 뭔지 모르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핵심이 이거거든요. 여러분, 살다 보면 빈 들이 오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차원의 빈 들이 오고, 관계적으로 배신당해서 상처받는 빈 들이 오고,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마음을 나눌 길이 없어 가지고 막 절망하고, 이게 인생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이 그때 이미 분당 우리 교회 만 명에 단임 목사로 딱 계획을 하고 계셔 가지고, 저희에게 빈 들을 좀 빨리 보내 주셨어요. 저는 20대 초에 인생의 빈 들, 인생의 쓴맛을 본 거거든요. 지금도 기억해요. 절망적인 제 상황, 환경은요. 아니, 내가 한국 살다가 미국 갔는데, 그때 경제 격차가 미국하고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이만큼 우리나라가 낙후가 됐는데, 세상에, 난 미국이라고 갔는데, 미국에서 저 화장실 가는데 새벽에 불을 켜면은 바퀴벌레들이 막 놀라가고, 이것 왜 일찍 일어나서 그러면서 막 바퀴벌레가 도망가는 그 그거, 아, 내가 한국에도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이 목조 건물, 막 미국에 낡아 빠진 100년된 목조 건물에 제가 사는데, 하여튼 한심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셨죠. 온 남매 중에 뚝 떨어지는 막내죠. 대학교 2학년 맞추고 이민을 갔는데, 거기서 다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학비를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이게 절망이 온 거죠. 빈 들이 찾아왔죠. 자꾸 좌절이 겹치니까, 그냥 죽고 싶더라고요. 조금만 더 제가 용감했으면, 뭐 도전했을지 모르죠. 무서워서 못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에요. 그 빈 들들이 저로 하여금 놀랍게도 배불리 먹고, 이 인생을 만들어 준 거 아닙니까? 배불리 먹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한테, 아 참, 저희 교회가요, 지금도 자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힘듭니다. 그 오연을 하지 말아 주세요. 얼마나 주 목사가 욕심이 많아 가지고, 나까지 신도 만들려고 그냥 저렇게 쓴다고 그러는데, 진짜 오해하세요. 저희는요, 일만 소도 파송 운동으로 만 명 이상을 다 파송한 교회예요. 이 오해만 가지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왜 그 영화 한편 참 재밌는 거 보고 나면, 막 진짜 우리에 보고, 너 그거 봐야 된다. 말 안 들어, 너 진짜 이 영화는 봐야 된다. 아직도 안 봤니? 같이 가져 나오고, 이런 영화가 있잖아요. 최근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이 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한 거예요. 여러분이 마음 말고는 다른 거 없습니다. 바로 어제인데요.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 마음을 울린 찬양, 이게 참, 원래부터 잘 아는 곡인데, 하나님은 때에 따라 새롭게 은혜를 주세요. 광야를 지나며, 이런 제목의 찬양인데, 가사가 이렇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써 있네." 제가 이 가사가 너무 어제 와닿 가지고요. 왜 시카고에 만 명 때 저를 보는 거 같으니까요. "왜 나를 깊은 어둠에 가두어 두느냐고, 막 떼지를하고, 당신이 신이냐고, 막 이렇게 무능한 시기냐고, 막 되들고 그랬거든요." 그때 땅이 가사 그대로예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광야가 어떤 곳이냐?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제가 이 곡을 선분 검색을 해 보니까요, 여성분인데요, 저하고 좀 환경이 비슷하더라고요.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 그것도 비슷해요. 그리고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아직 그 어린 학생인데, 자기가 벌어서 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얼마나 그 광야 그 길이 심했겠냐고요. 그 고백을 쭉 하면서, 아까 여기에 저는 과거형으로 썼는데, 저는 단수로 여러분께 설명했던 게 뭐였죠? 왜 나를 다시 한번 보세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그리고 결론에 있는 그다음 가사가 너무 중요합니다. "주께서 나를 사,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고,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고,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 곳, 그 광야에 내가 서 있네." 이 찬양 아닙니까? 이 부분은 다음 주일 날 제가 또 설명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제가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요. 오늘은 설교를 끝내지 않고 마치리라. 요렇게 설교를 끝내려고요. 지금 여러분 생각에, 우리 목사님 스타일을 보니까, 아직 서론하고 있는데, 폴로는 도대체 언제 하는 거야? 두려워하고 있는데, 폴로는 다음 주일 할 거예요. 이 설교 끝났습니다. 요렇게 설교를 제가 끝내고요.

빈 들에서 시작된 배불리 먹음

설교자는 본문의 빈 들이 결핍의 상징이었지만, 그곳이 오히려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게 된 재료가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제자들은 빈 들이고 이미 저물었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결핍이 풍요의 재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해석을 자신의 인생에 연결합니다. 그는 20대 초반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절망했던 시기를 나눕니다. 화장실에 불을 켜면 바퀴벌레가 도망가던 100년 된 낡은 목조 건물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온 남매 중 막내로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이민을 갔는데, 다시 공부할 학비도 생활비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좌절이 겹쳐 죽고 싶었으나 무서워서 죽지 못했다는 고백도 합니다. 설교자는 그 빈 들이 자신을 배불리 먹이고 지금의 인생을 만들어 주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관계와 경제의 빈 들을 겪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계시면 결핍도 재료가 된다고 전합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6–6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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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이 점점 매말라가고, 감사가 사라지고, 삶의 의욕은 없어지고, 기쁨도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뭐 있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 주시는데." 이런 원망이 넘쳐나는 여러분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를 혼미하게 하는 그 영역을 벗어나려고 애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려고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그 아이처럼 가스 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해야 회복이 일어나듯이, 우리의 신앙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곳을 배회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 생활은 청산하지 않으면서, 제가 돌아보면은요. 목사들인데도 어릴 때 항상 하나님 없어. 하나도 안 도와줘. 그걸 제가 많이 불평한 기억이 나거든요. 도와줄 수 없는 불신앙의 자리에 머물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했다고요. 20대 초반에 시카고로 이민 가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 상황에서 진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제가 은혜를 누리기 시작한 출발이 되는 거예요. 저는 가끔씩요. 저는 3월 15일 날 시카고로 이민을 갔는데, 그 날이 영적으로 내 생일이라고 얘기를 해요. 제가 미국에 안 갔으면, 시카고에 가지 않았으면, 그 절망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절대로 목사가 안 됐습니다. 교회도 안 나갈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 인격적으로 제가 애쓰지도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뭘 강조하고 싶은 겁니까? 여러분, 이런 점에서 저는 기독교 변증가거든요. CS 루이스라는 분. 여러분, 신앙생활 처음 하시거나, 오늘 초대 오신 분들, CS 루이스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십시오. 어떤 책이라도 괜찮아요. 이분이 정말 대단한 분인데요. 이분이 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우리가 그냥 내 힘을 의지하여 전도해 보면, 그런 분들이 옛날에 많았습니다. "난 주먹을 믿어. 난 내 주먹을 믿지. 난 하나님 없어도 돼." 너무나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려고 바둥바둥 그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 종이 신문이 있을 때, 신문 보내라고 몰입하고 있으면, 아내가 처음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로 "식사하세요. 밥 먹으라고요." 안 들려요. 신문에 내가 몰입하고 있으면, 밥 먹으라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거든요. 오늘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풍요로운 삶을 원하세요. 계속 말씀하십니다. "진짜 얘들아, 땅이 다가 아니라고, 왜 그렇게 바둥바둥 그리냐고." 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영혼이 없다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설명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 반통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안 그렇던가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건 전부이고, 나는 영혼이 없는 짐승하고 똑같이, 나 우리 강아지를 보면서, 이 강아지가 어떨 때는 나하고 차이가 뭐지? 걔도 모든 흰혈구를 다 갖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동물들하고 저하고의 결정적인 차이는, 저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 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려요. 그리고 집에 가서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땅이 끝이라고 한다면,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잖아요. 설명이 안 되는 그 많은 일들이, 왜 이후에 연장되는 그 부분을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은 계속 그 말씀을 해 주세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참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본문에서 "다 배불리 먹고" 이런 결과가 이제 결론이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놀라운 결론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어땠는 줄 아십니까? 자, 15절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마태복음 14장 15절입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두 대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빈 들은 결핍의 상징 아닙니까? 게다가 제자들이 관찰한 그대로, 이미 밤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구할 수 없다. 그 이야기를 지금 고백한 거거든요. 그래서 빈 들이요. 이거가 어떻게 다 배불리 먹고의 재료가 됐나? 이게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결핍의 상징인 빈 들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기에 지금 밤까지 찾아왔는데, 놀라운 건 그게 역설적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배불리 먹게 된 원인이었다는 거예요. 다른 데서 그날 군중들 먹일 수 있는 양식을 구해 왔으면, 예수님의 기적에 음식은 나오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요. 결핍이 기적을 만든 재료가 된 거거든요. 빈 들이 다 배불리 먹고, 이 풍요로움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누가 저한테, "아니 그 장소가 빈 들이었는데, 거기는 결핍이었는데,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저한테 물으시면, 저는 대답 간단하게 다 그거요. 정답은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결핍이 재료가 된 겁니다. 오늘 초대받아 오신 분들과 우리 교회 오래 다니지만 복음이 뭔지 모르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핵심이 이거거든요. 여러분, 살다 보면 빈 들이 오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차원의 빈 들이 오고, 관계적으로 배신당해서 상처받는 빈 들이 오고,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마음을 나눌 길이 없어 가지고 막 절망하고, 이게 인생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이 그때 이미 분당 우리 교회 만 명에 단임 목사로 딱 계획을 하고 계셔 가지고, 저희에게 빈 들을 좀 빨리 보내 주셨어요. 저는 20대 초에 인생의 빈 들, 인생의 쓴맛을 본 거거든요. 지금도 기억해요. 절망적인 제 상황, 환경은요. 아니, 내가 한국 살다가 미국 갔는데, 그때 경제 격차가 미국하고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이만큼 우리나라가 낙후가 됐는데, 세상에, 난 미국이라고 갔는데, 미국에서 저 화장실 가는데 새벽에 불을 켜면은 바퀴벌레들이 막 놀라가고, 이것 왜 일찍 일어나서 그러면서 막 바퀴벌레가 도망가는 그 그거, 아, 내가 한국에도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이 목조 건물, 막 미국에 낡아 빠진 100년된 목조 건물에 제가 사는데, 하여튼 한심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셨죠. 온 남매 중에 뚝 떨어지는 막내죠. 대학교 2학년 맞추고 이민을 갔는데, 거기서 다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학비를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이게 절망이 온 거죠. 빈 들이 찾아왔죠. 자꾸 좌절이 겹치니까, 그냥 죽고 싶더라고요. 조금만 더 제가 용감했으면, 뭐 도전했을지 모르죠. 무서워서 못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에요. 그 빈 들들이 저로 하여금 놀랍게도 배불리 먹고, 이 인생을 만들어 준 거 아닙니까? 배불리 먹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한테, 아 참, 저희 교회가요, 지금도 자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힘듭니다. 그 오연을 하지 말아 주세요. 얼마나 주 목사가 욕심이 많아 가지고, 나까지 신도 만들려고 그냥 저렇게 쓴다고 그러는데, 진짜 오해하세요. 저희는요, 일만 소도 파송 운동으로 만 명 이상을 다 파송한 교회예요. 이 오해만 가지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왜 그 영화 한편 참 재밌는 거 보고 나면, 막 진짜 우리에 보고, 너 그거 봐야 된다. 말 안 들어, 너 진짜 이 영화는 봐야 된다. 아직도 안 봤니? 같이 가져 나오고, 이런 영화가 있잖아요. 최근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이 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한 거예요. 여러분이 마음 말고는 다른 거 없습니다. 바로 어제인데요.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 마음을 울린 찬양, 이게 참, 원래부터 잘 아는 곡인데, 하나님은 때에 따라 새롭게 은혜를 주세요. 광야를 지나며, 이런 제목의 찬양인데, 가사가 이렇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써 있네." 제가 이 가사가 너무 어제 와닿 가지고요. 왜 시카고에 만 명 때 저를 보는 거 같으니까요. "왜 나를 깊은 어둠에 가두어 두느냐고, 막 떼지를하고, 당신이 신이냐고, 막 이렇게 무능한 시기냐고, 막 되들고 그랬거든요." 그때 땅이 가사 그대로예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광야가 어떤 곳이냐?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제가 이 곡을 선분 검색을 해 보니까요, 여성분인데요, 저하고 좀 환경이 비슷하더라고요.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 그것도 비슷해요. 그리고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아직 그 어린 학생인데, 자기가 벌어서 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얼마나 그 광야 그 길이 심했겠냐고요. 그 고백을 쭉 하면서, 아까 여기에 저는 과거형으로 썼는데, 저는 단수로 여러분께 설명했던 게 뭐였죠? 왜 나를 다시 한번 보세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그리고 결론에 있는 그다음 가사가 너무 중요합니다. "주께서 나를 사,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고,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고,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 곳, 그 광야에 내가 서 있네." 이 찬양 아닙니까? 이 부분은 다음 주일 날 제가 또 설명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제가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요. 오늘은 설교를 끝내지 않고 마치리라. 요렇게 설교를 끝내려고요. 지금 여러분 생각에, 우리 목사님 스타일을 보니까, 아직 서론하고 있는데, 폴로는 도대체 언제 하는 거야? 두려워하고 있는데, 폴로는 다음 주일 할 거예요. 이 설교 끝났습니다. 요렇게 설교를 제가 끝내고요.

광야를 지나며 찬양의 간증

설교자는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양을 소개합니다. 그는 이 곡의 가사를 처음에는 원망하는 마음으로 불렀지만, 과거를 돌아보니 광야가 주님만 도움이 되시고 빛이 되시며 친구가 되시는 자리였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가사의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라는 구절을 자신의 시카고 시절과 연결합니다. 그 시절 그는 왜 깊은 어둠에 가두시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말합니다. 또 설교자는 찬양을 검색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린 나이에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한 여성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고 나눕니다. 가사의 결론처럼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정결케 하시려고 택하여 보내신 곳이 광야라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찬양의 의미를 다음 주일에 이어서 설명하겠다고 예고합니다.

이찬수 · 2026-10-18

설교 내 6–6문단 · 예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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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이 점점 매말라가고, 감사가 사라지고, 삶의 의욕은 없어지고, 기쁨도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뭐 있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 주시는데." 이런 원망이 넘쳐나는 여러분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를 혼미하게 하는 그 영역을 벗어나려고 애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려고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그 아이처럼 가스 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해야 회복이 일어나듯이, 우리의 신앙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곳을 배회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 생활은 청산하지 않으면서, 제가 돌아보면은요. 목사들인데도 어릴 때 항상 하나님 없어. 하나도 안 도와줘. 그걸 제가 많이 불평한 기억이 나거든요. 도와줄 수 없는 불신앙의 자리에 머물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했다고요. 20대 초반에 시카고로 이민 가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 상황에서 진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제가 은혜를 누리기 시작한 출발이 되는 거예요. 저는 가끔씩요. 저는 3월 15일 날 시카고로 이민을 갔는데, 그 날이 영적으로 내 생일이라고 얘기를 해요. 제가 미국에 안 갔으면, 시카고에 가지 않았으면, 그 절망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절대로 목사가 안 됐습니다. 교회도 안 나갈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 인격적으로 제가 애쓰지도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뭘 강조하고 싶은 겁니까? 여러분, 이런 점에서 저는 기독교 변증가거든요. CS 루이스라는 분. 여러분, 신앙생활 처음 하시거나, 오늘 초대 오신 분들, CS 루이스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십시오. 어떤 책이라도 괜찮아요. 이분이 정말 대단한 분인데요. 이분이 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는 그분의 확성기입니다. 우리가 그냥 내 힘을 의지하여 전도해 보면, 그런 분들이 옛날에 많았습니다. "난 주먹을 믿어. 난 내 주먹을 믿지. 난 하나님 없어도 돼." 너무나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려고 바둥바둥 그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 종이 신문이 있을 때, 신문 보내라고 몰입하고 있으면, 아내가 처음에는 아주 부드러운 소리로 "식사하세요. 밥 먹으라고요." 안 들려요. 신문에 내가 몰입하고 있으면, 밥 먹으라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거든요. 오늘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풍요로운 삶을 원하세요. 계속 말씀하십니다. "진짜 얘들아, 땅이 다가 아니라고, 왜 그렇게 바둥바둥 그리냐고." 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영혼이 없다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설명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 반통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안 그렇던가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건 전부이고, 나는 영혼이 없는 짐승하고 똑같이, 나 우리 강아지를 보면서, 이 강아지가 어떨 때는 나하고 차이가 뭐지? 걔도 모든 흰혈구를 다 갖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동물들하고 저하고의 결정적인 차이는, 저는 영혼이 있어요. 영혼이. 그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려요. 그리고 집에 가서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땅이 끝이라고 한다면,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잖아요. 설명이 안 되는 그 많은 일들이, 왜 이후에 연장되는 그 부분을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은 계속 그 말씀을 해 주세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참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본문에서 "다 배불리 먹고" 이런 결과가 이제 결론이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놀라운 결론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어땠는 줄 아십니까? 자, 15절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마태복음 14장 15절입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두 대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빈 들은 결핍의 상징 아닙니까? 게다가 제자들이 관찰한 그대로, 이미 밤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구할 수 없다. 그 이야기를 지금 고백한 거거든요. 그래서 빈 들이요. 이거가 어떻게 다 배불리 먹고의 재료가 됐나? 이게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결핍의 상징인 빈 들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기에 지금 밤까지 찾아왔는데, 놀라운 건 그게 역설적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배불리 먹게 된 원인이었다는 거예요. 다른 데서 그날 군중들 먹일 수 있는 양식을 구해 왔으면, 예수님의 기적에 음식은 나오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요. 결핍이 기적을 만든 재료가 된 거거든요. 빈 들이 다 배불리 먹고, 이 풍요로움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누가 저한테, "아니 그 장소가 빈 들이었는데, 거기는 결핍이었는데,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저한테 물으시면, 저는 대답 간단하게 다 그거요. 정답은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결핍이 재료가 된 겁니다. 오늘 초대받아 오신 분들과 우리 교회 오래 다니지만 복음이 뭔지 모르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핵심이 이거거든요. 여러분, 살다 보면 빈 들이 오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차원의 빈 들이 오고, 관계적으로 배신당해서 상처받는 빈 들이 오고,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마음을 나눌 길이 없어 가지고 막 절망하고, 이게 인생 아닙니까? 저는 하나님이 그때 이미 분당 우리 교회 만 명에 단임 목사로 딱 계획을 하고 계셔 가지고, 저희에게 빈 들을 좀 빨리 보내 주셨어요. 저는 20대 초에 인생의 빈 들, 인생의 쓴맛을 본 거거든요. 지금도 기억해요. 절망적인 제 상황, 환경은요. 아니, 내가 한국 살다가 미국 갔는데, 그때 경제 격차가 미국하고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이만큼 우리나라가 낙후가 됐는데, 세상에, 난 미국이라고 갔는데, 미국에서 저 화장실 가는데 새벽에 불을 켜면은 바퀴벌레들이 막 놀라가고, 이것 왜 일찍 일어나서 그러면서 막 바퀴벌레가 도망가는 그 그거, 아, 내가 한국에도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이 목조 건물, 막 미국에 낡아 빠진 100년된 목조 건물에 제가 사는데, 하여튼 한심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셨죠. 온 남매 중에 뚝 떨어지는 막내죠. 대학교 2학년 맞추고 이민을 갔는데, 거기서 다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학비를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이게 절망이 온 거죠. 빈 들이 찾아왔죠. 자꾸 좌절이 겹치니까, 그냥 죽고 싶더라고요. 조금만 더 제가 용감했으면, 뭐 도전했을지 모르죠. 무서워서 못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에요. 그 빈 들들이 저로 하여금 놀랍게도 배불리 먹고, 이 인생을 만들어 준 거 아닙니까? 배불리 먹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한테, 아 참, 저희 교회가요, 지금도 자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힘듭니다. 그 오연을 하지 말아 주세요. 얼마나 주 목사가 욕심이 많아 가지고, 나까지 신도 만들려고 그냥 저렇게 쓴다고 그러는데, 진짜 오해하세요. 저희는요, 일만 소도 파송 운동으로 만 명 이상을 다 파송한 교회예요. 이 오해만 가지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왜 그 영화 한편 참 재밌는 거 보고 나면, 막 진짜 우리에 보고, 너 그거 봐야 된다. 말 안 들어, 너 진짜 이 영화는 봐야 된다. 아직도 안 봤니? 같이 가져 나오고, 이런 영화가 있잖아요. 최근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이 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한 거예요. 여러분이 마음 말고는 다른 거 없습니다. 바로 어제인데요.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 마음을 울린 찬양, 이게 참, 원래부터 잘 아는 곡인데, 하나님은 때에 따라 새롭게 은혜를 주세요. 광야를 지나며, 이런 제목의 찬양인데, 가사가 이렇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써 있네." 제가 이 가사가 너무 어제 와닿 가지고요. 왜 시카고에 만 명 때 저를 보는 거 같으니까요. "왜 나를 깊은 어둠에 가두어 두느냐고, 막 떼지를하고, 당신이 신이냐고, 막 이렇게 무능한 시기냐고, 막 되들고 그랬거든요." 그때 땅이 가사 그대로예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광야가 어떤 곳이냐?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제가 이 곡을 선분 검색을 해 보니까요, 여성분인데요, 저하고 좀 환경이 비슷하더라고요.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 그것도 비슷해요. 그리고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아직 그 어린 학생인데, 자기가 벌어서 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얼마나 그 광야 그 길이 심했겠냐고요. 그 고백을 쭉 하면서, 아까 여기에 저는 과거형으로 썼는데, 저는 단수로 여러분께 설명했던 게 뭐였죠? 왜 나를 다시 한번 보세요.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요." 과거형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니까, 그 광야가 내게,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그리고 결론에 있는 그다음 가사가 너무 중요합니다. "주께서 나를 사,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고,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고,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 곳, 그 광야에 내가 서 있네." 이 찬양 아닙니까? 이 부분은 다음 주일 날 제가 또 설명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제가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요. 오늘은 설교를 끝내지 않고 마치리라. 요렇게 설교를 끝내려고요. 지금 여러분 생각에, 우리 목사님 스타일을 보니까, 아직 서론하고 있는데, 폴로는 도대체 언제 하는 거야? 두려워하고 있는데, 폴로는 다음 주일 할 거예요. 이 설교 끝났습니다. 요렇게 설교를 제가 끝내고요.

율법 교사가 영생을 묻는 이야기 (누가복음 10장)

설교자는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율법 교사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고 되물으셨습니다. 교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대답했고, 예수님은 그 대답이 옳다며 이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사는 '내 이웃이 누굽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질문의 속내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는 데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율법을 갖추었으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여긴 그에게 영생은 자신을 더 빛나게 해 주는 액세서리처럼 비칩니다. 설교자는 이것을 하나님을 위해 수고했으니 하나님이 보상하셔야 한다고 여기는 기복 신앙과 연결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헌금하면 인생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지만, 축복이 주어지지 않을 때 그 관계 속에서는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구원이 나의 노력과 고행으로 얻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자격 없이 받은 은혜라고 강조합니다.

유재준 · 2026-10-18

설교 내 14–14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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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치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던 질문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율법 교사가 뭐라고 했는지, 누가복음 10장 25절부터 29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내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셨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이웃이 누굽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어디 율법엔 이렇게 써 있는데, 그 이웃이 누군지 저한테 말만 해 보세요. 제가 얼마나 율법의 요구대로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지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29절 앞에 지문처럼 쓰여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 율법 교사에게 있어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단지 나를 옳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고,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더 멋진 사람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율법들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러한 것을 얻을 만한 자격과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나는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고, 도덕적으로 많은 것들이 이미 갖추어진 괜찮은 사람, 나를 옳게 보이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필요한 영생은 나를 더 빛나게 만들어 주는 액세서리와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해내었기 때문에, 마치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애쓰고 수고했으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한 채무를 갖고 계신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셔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의 형태를 기복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하나님 앞에서 '축복해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내가 주를 위해서 무언가 합당한 것을 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법적인 의무가 있다고 하나님 앞에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로 바꿔 보면, 내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여기에 예수까지 믿고,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착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간다면, 나는 더 멋지고 완벽하고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까지 믿으면 나는 더 잘될 수 있어. 교회를 다니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신앙생활하면, 하나님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주실 것이고, 성경에 약속된 축복이 나에게 다 주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신앙과 믿음에는 큰 오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약에 그러한 축복과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그 관계 속에서는 신앙에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생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무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수많은 것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에게 주셔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으신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을 주지 않겠다고 하시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은 이러한 프로세스가 절대 아닙니다. 어떠한 나의 노력, 고행, 수고, 애정과 같은 것들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이는 사실 복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았냐, 받지 않았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믿음은 무엇을 동반하는 믿음입니까? 사랑을 동반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복음의 은혜는 자격 없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는 우리가 무언가 애쓰고 노력하고 열심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삶을 자랑하는 삶, 나의 괜찮음을 증명하는 요구와 시도들로부터 벗어나, 오히려 자격 없는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나는 그러할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그럴 거 요구한 적도 없는데, 하나님이 나와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함께 해 주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의무가 없는 사람이 베푸는 사랑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와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자격 없이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격 없는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나보다 남을 더 낮게 여기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까지도 우리는 사랑하게 되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역을 통해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이러한 내용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완벽하고 능력 있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힘과 권세가 있으셔서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실 수 있는 영향력도 가지신 분이었지만, 그분은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대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셔서 왕권을 무너뜨리고 승리를 쟁취하실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진정한 복음의 참된 승리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믿음이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