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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설교 속 이야기·일화·비유·인용을 모았습니다. 설교자의 설명을 요약한 내용이며, 원 설교의 맥락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총 628개 · 1 / 32쪽 · 한 쪽 20개

아덴 사람들의 '알지 못하는 신' 제단

설교자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덴 사람들이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 세운 제단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설교자는 오늘날 영국의 일부 철학적 사상가들이 이와 비슷하게 알지 못하는 구속을 믿는다고 말하는 모습을 그 제단에 견줍니다. 그는 누구나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의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의미를 밝히지 못한다면 실제로 이해하거나 참으로 믿는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어서 설교자는 브라이턴의 로버트슨을 예로 듭니다. 로버트슨은 오늘날의 많은 진보적 사람들과 비교하면 정통에 가까웠지만, 그가 가르친 내용은 우리 주님께서 무언가를 이루셨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구원과 관련된다는 막연한 수준이었습니다. 설교자는 그것이 불확실한 가르침이었으나 오늘날의 교리보다는 낫다고 평가합니다. 이 대목은 구체적인 사건을 기록하기보다 인물과 입장을 대비시키는 비교입니다. 설교자의 결론은 속죄 교리를 막연한 신비로 두지 말고 분명하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구속의 의미를 명확히 드러내라고 촉구합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5–5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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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구속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밝히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실제로 그것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며, 어쩌면 참으로 믿지도 않는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누구나 자신이 아는 것에 관해서는 나름의 설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이해하는 바는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덴 사람들과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 세운 제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영국에는 철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알지 못하는 구속을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렇게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이턴의 로버트슨은 오늘날 진보적 시대의 많은 사람과 비교하면 정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르쳤다는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데,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어느 정도 우리 구원과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확실한 가르침이었지만 오늘날의 교리보다는 나았습니다.

스펄전 자신의 구원 고백

설교자는 자신의 개인적 구원 경험을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뼈아프게 깨닫고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곳에 몰렸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행하거나 어떤 사람이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자기 자체를 받아 주시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완전하고 신적인 의가 필요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그 의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믿음으로 자기 것이 된다는 말씀을 읽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한 죄에 대해 공의가 만족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전에는 그와 비슷한 것조차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설교자는 처음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마음의 짐이 벗겨졌던 순간과, 구주의 상처를 다시 바라볼 때마다 옛 기쁨이 되살아났던 수많은 순간을 떠올립니다. 그는 새로운 교리는 참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대속 교리가 진리임은 확실히 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다른 것을 전할 수 없으며, 대속 제사를 돌이킬 수 없는 결심으로 계속 전하겠다고 적용합니다. 이 고백은 그의 설교가 개인적 체험에서 나왔음을 보여 줍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10–12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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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두고 사용된 천박한 표현들로 제 입술을 더럽히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이 악한 말들을 용납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사역하면서 대속 제사를 전파하는 일을 가장 단호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결심으로 계속할 것입니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하려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어떤 근원에서도 구원의 소망을 조금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대속자가 아니시라면 저는 멸망한 사람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죄를 뼈아프게 깨닫고 막다른 곳에 몰렸습니다. 제가 무엇을 행하거나 어떤 사람이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저 자체를 보시고 받아 주시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포기했습니다. 저에게는 의가, 완전하고 신적인 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 힘으로는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의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합니다. 그 의가 믿음으로 제 것이 된다는 말씀을 읽고,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제 양심은 제가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한 데 대하여 그분의 공의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을 바라보기 전에는 그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것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제가 처음 그분을 바라보고 마음의 짐이 벗겨졌던 때를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죄인으로 구주의 발 앞에 나아가 그분의 상처를 다시 바라보고 영생을 새롭게 믿을 때마다, 그 믿음의 행위를 통하여 옛 기쁨이 되살아났던 수많은 순간을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형제 여러분, 저는 다른 것을 알지 못하기에 다른 것을 전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교리들은 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리가 진리라는 사실은 확실히 압니다.

빌려 온 뼈로 끓인 수프

설교자는 많은 교회 강단에서 기쁨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설교자가 자기 주제를 즐거워하지 않고, 성령 안에서 말씀을 전했다는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현대 교리에는 즐거워할 것이 없어서 아무도 그것을 즐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하나의 비유로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빌려 온 뼈로 끓인 수프'로 만족해야 하는데, 그 뼈는 엿새 동안 내리 같은 용도로 빌려 쓴 것이라 고기 맛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설교자는 어젯밤 우리 벗이 이 수프를 생생하게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이 비유를 통해 생명력 없는 새 교리를 비판합니다. 그에게 참된 양식과 기쁨은 옛 복음에 있습니다. 이 비유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설교 현장에서 쓰인 구체적인 대비이며, 설교자의 메시지는 옛 복음만이 설교자와 청중에게 기쁨과 힘을 준다는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15–15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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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는 사람이라면 많은 교회 강단에서 기쁨의 요소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설교자는 자기 주제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말씀을 전하는 동안 성령 안에 있었다는 말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십 분 설교보다 이십 분 설교를 더 좋아하고, 두 차례의 저녁 집회를 하나로 합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대 교리에는 즐거워할 것이 없으므로 아무도 그것을 즐기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어젯밤 우리 벗이 참으로 생생하게 이야기한 그 수프로 만족해야 합니다. 빌려 온 뼈로 끓인 수프인데, 같은 용도로 엿새 동안 내리 빌려 쓴 뼈여서 고기 맛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수프 말입니다.

독이 든 빵과 창문을 여는 장로들

설교자는 원수가 아이들의 빵에 독을 넣었다고 경고했을 때 들었던 반응을 소개합니다. 그가 이 사실을 알리자 어떤 이들은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이 악에 맞서 창문을 열고 아이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쐬어 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설교자는 창문을 여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며 여러 목적에 유익하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독을 넣는 자들을 막지 않은 채 영적 생명을 깊게 하자는 말만 반복한다면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한 가지 선한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며, 독을 막으면서도 창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생명과 진리와 길 가운데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대신, 각각이 똑같이 중요하고 서로 없이는 어느 것도 바르게 유지될 수 없다는 확신으로 하나가 되자고 적용합니다. 이 이야기는 진리를 소홀히 한 채 경건과 생명만 강조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입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29–29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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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들에게 원수가 아이들의 빵에 독을 넣었다고 경고하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런 소식을 들으니 안타깝습니다. 이 악에 맞서기 위해 창문을 열고 아이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쐬어 주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쐬어 주십시오. 여러 목적을 이루는 데 그보다 좋은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독을 넣는 자들을 막으면서 창문도 여십시오. 사람들이 계속 거짓 교리를 전하는 동안에는 그들의 영적 생명을 깊게 하자는 말을 아무리 해도 실패할 것입니다. 한 가지 선한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생명이 더 중요하다거나 진리가 더 중요하다거나 길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대신, 각각이 똑같이 중요하며 다른 것들 없이 어느 하나도 바르게 유지되거나 온전히 실현될 수 없다는 굳은 확신으로 하나가 됩시다.

폼페이우스와 속임수에 넘어간 도시들

설교자는 폼페이우스가 사용한 속임수를 역사적 사례로 듭니다. 폼페이우스는 자기 군대를 도시에 주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병들고 다친 몇 사람만 쉬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성벽 밖에 있는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본 주민들은 문을 열었고, 그 결과 도시들은 쉽게 정복당했습니다. 설교자는 이 일을 통해 동정을 구하며 다가오는 사소한 오류들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그런 작은 것들을 멀리하지 않으면 적의 공격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요새를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누구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신자를 사로잡지 못하게 하라고 권합니다. 이 예화의 핵심은 작은 양보가 큰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34–34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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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이 시대에 우리의 무오한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고 진리에 대하여 지극히 열심을 냅시다. 폼페이우스가 자기 군대를 받아들이지 않던 도시들을 속인 것처럼 우리도 속임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군대를 주둔시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병들고 다친 몇 사람이 있으니 여러분 가운데서 쉬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벽 밖의 연약한 이들을 보고 사람들이 문을 열자 주민들은 쉽게 정복당했습니다. 동정을 구하며 다가오는 사소한 오류들을 멀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공격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요새를 빼앗길 것입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 위에 굳게 서고, 아무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하십시오.

알렉산드로스의 얼음도끼

설교자는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알렉산드로스가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로 들어가려 할 때, 얼음과 눈으로 덮인 산을 뚫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길이 험하자 병사들은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때 알렉산드로스는 말에서 내려 얼음도끼를 들고 앞장섰습니다. 그는 자주 허리까지 눈에 잠긴 채 얼음덩이를 깨뜨리며 길을 열었습니다. 이것을 본 마케도니아 병사들은 왕이 앞서 간다면 온 세상이라도 가로지를 수 있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통과하여 앞장서 가셨으니, 신자들도 그분이 어디로 이끄시든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는 고난이 있을 때 비교할 대상을 동료 군사들 가운데서만 찾지 말고, 죄인들의 거역을 견디신 주님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지도자가 먼저 고난의 길을 여는 모습이 따르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51–51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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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회자는 외칩니다. ‘저는 너무나 부끄러운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도 훨씬 더 나쁜 대우를 받았습니다. 고난에서 비교할 상대를 동료 군사들 가운데서만 찾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친히 죄인들의 그토록 심한 거역을 어떻게 견디셨는지 생각하십시오. 알렉산드로스가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로 들어가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산을 뚫고 나아가야 했을 때, 병사들은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가 말에서 내려 얼음도끼를 들고 앞장섰습니다. 자주 허리까지 눈에 잠긴 채 얼음덩이를 깨뜨리며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마케도니아 병사들은 알렉산드로스가 앞서간다면 온 세상이라도 가로지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숨겨진 보화를 던진 괴팍한 부자

설교자는 한 괴팍한 부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는 너그러웠지만 몹시 까다롭고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빚을 많이 진 한 가난한 사람이 그의 집 문 앞을 지나가곤 했는데, 부자는 그가 빚 때문에 몹시 염려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자는 그 채무자에게 무거운 주머니를 던졌습니다. 채무자는 맞아 다쳤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자기를 해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머니를 집어 드니 동전 소리가 났고, 열어 보니 빚을 갚고도 남을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그 돈은 당신이 가지시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채무자는 폭행으로 고소하지 않고 그 선물에 감사했습니다. 설교자는 이 이야기를 섭리에 적용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거친 손으로 헤아릴 수 없는 보화를 던져 주실 때가 많은데, 그것은 금보다 귀한 믿음의 시련이라는 형태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잠시 입은 멍은 잊히지만 영적 유산은 영원히 남습니다. 고난이 저주처럼 보여도 실은 복으로 찾아온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55–56문단 · 예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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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너그러웠지만 몹시 괴팍했습니다. 빚을 많이 진 사람이 그의 집 문 앞을 지나가곤 했는데, 그는 그 가난한 채무자가 빚 문제로 몹시 염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이상한 부자는 너그러운 사람이면서도 잔인하게 행동하여 그 가난한 채무자에게 무거운 주머니를 던졌습니다. 그 사람은 그것에 맞아 다쳤고, 무슨 일인가 둘러보았습니다. 자기를 해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머니를 집어 드니 동전이 짤랑거렸습니다. 열어 보니 빚을 갚고도 남을 만큼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그 돈은 당신이 가지시오’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그 사람을 폭행으로 고소하지 않고 선물에 감사했습니다. 섭리도 거친 손으로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보화를 던져 주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금보다 훨씬 귀한 믿음의 시련이라는 형태로 주셨습니다. 주님을 찬송합니다. 잠시 입은 멍은 곧 잊히지만 영적 유산은 영원히 남습니다. 어쨌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 우리의 일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끊어질 수 없는 교제로 우리는 그분과 결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비용을 계산했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저는 예수님의 낙인 찍힌 종이며, 제 귀는 그분을 위하여 뚫려 있습니다.

파리 끈끈이를 붙이는 브리짓

설교자는 가정부 브리짓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여주인이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브리짓은 파리를 잡느라 바쁘다고 답했습니다. 끈끈이 종이를 샀으니 파리들이 그 위에 붙어야 하는데 저절로 앉지 않아 자신이 직접 붙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장면을 복음 전도에 빗댑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만으로는 죄인을 끌어오고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 인간이 고안한 방법을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단순하게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보충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자신은 그런 끈끈이 종이를 쓰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 예화는 비유로 쓰였으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사람의 기술이 아니라 복음 자체와 성령의 역사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65–65문단 · 예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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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설교자들은 자기들이 전하는 복음에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듯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만으로는 죄인을 끌어오고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 인간이 고안한 것을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복음을 단순하게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보충물이 필요합니다. 브리짓이 파리를 잡아 죽이느라 아주 바빴습니다. 여주인이 물었습니다. ‘브리짓, 지금 무엇을 하는 거니?’ 그가 대답했습니다. ‘보세요, 마님. 우리가 끈끈이 종이를 샀으니 파리들이 그 위에 붙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절로 앉지 않으니 제가 붙이고 있어요.’ 저는 그런 끈끈이 종이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

'죽은 죄인'에게 믿으라고 한 설교

설교자는 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그 사람은 설교자가 죽은 죄인에게 믿으라고 한 것을 비판했습니다. 설교자는 잘못을 인정하는 듯 말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믿기에 다시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상대는 그것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설교자는 상대에게 필요한 믿음이 없다면 그것이 쓸모없게 느껴질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주님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전하면 죽은 죄인들이 믿고 살아난다고 답했습니다. 설교자가 의지하는 것은 죽은 죄인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살리시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대화는 설교자가 자신의 사역 근거를 설명하는 장면이며, 복음이 죽은 자를 살린다는 확신을 드러냅니다. 설교자는 인간의 능력에 기대지 않고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는 태도를 적용합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67–67문단 · 예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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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죽은 죄인에게 믿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잘못을 인정한다는 식으로 말하면서도 다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시간 낭비라고 느낄 것입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어쩌면 당신에게는 정말 쓸모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필요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 것을 믿기에 주님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면 죽은 죄인들이 믿고 살아납니다.’ 제가 의지하는 것은 죽은 죄인이 스스로 살아날 능력이 아니라 그를 살리시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뜨거운 물에 빠진 사람과 물을 데우는 사람

설교자는 여러 해 전 세례로 중생한다는 가르침을 설교했던 일을 회고합니다. 그때 존경하는 벗 스틴 박사가 그에게 '자네, 뜨거운 물에 들어갔군'이라고 말했습니다. 곤경에 빠졌다는 뜻이었습니다. 설교자는 물이 뜨겁다고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아주 평온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자신은 불을 때는 사람일 뿐이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그들이 기꺼이 뛰쳐나오고 싶어질 만큼 물을 뜨겁게 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화는 논쟁 상황에서 설교자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보여 줍니다. 그는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싸움이 벌어진다면 반대자들이 불편을 느낄 만큼 진리를 선명하게 전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또 비판과 오해를 감수하며 진리를 굳게 붙드는 한 두려워할 자리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 예화는 설교자의 강한 확신과 논쟁 속의 태도를 보여 주는 개인적 일화입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84–84문단 · 예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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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제가 세례로 중생한다는 가르침을 두고 설교했을 때, 존경하는 벗 스틴 박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자네, 뜨거운 물에 들어갔군.’ 곤경에 빠졌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물이 뜨겁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저는 아주 평온합니다. 저는 그저 불을 때는 사람일 뿐이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들이 기꺼이 뛰쳐나오고 싶어질 만큼 물을 뜨겁게 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싸움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벌어진다면 그런 동정이 우리와 맞서는 이들에게 유용하기를 바랍니다.

썰물을 보고 바다가 마를까 걱정하지 않는 뱃사람

설교자는 노련한 뱃사람의 모습을 들어 복음의 승리를 확신하라고 말합니다. 뱃사람은 썰물이 몇 시간 이어져도 걱정하지 않고, 물때가 바뀌기를 확신하며 기다리며, 밀물은 제때 찾아옵니다. 설교자는 지난 삼십 분 사이에 바위가 드러났다고 해서 바다가 몇 주 동안 계속 빠져 영국 해협의 물이 하나도 남지 않고 프랑스 사람들이 셰르부르에서 걸어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지적합니다. 바다가 그런 식으로 줄어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비유를 신앙에 적용하여, 복음이 무너지고 영원한 진리가 우리 땅에서 쫓겨날 것처럼 말하지 말자고 권합니다. 신자는 전능하신 주님을 섬기므로, 일시적인 썰물 같은 상황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진리의 최종 승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이 비유는 일시적 현상과 변하지 않는 진리를 구별하는 데 쓰인 설교자의 비교입니다.

찰스 스펄전 · 2026-10-28

설교 내 86–86문단 · 예화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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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썰물이 몇 시간째 이어진다고 걱정하는 노련한 뱃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물때가 바뀌기를 확신하며 기다리고, 밀물은 제시간에 찾아옵니다. 지난 삼십 분 사이에 저 바위가 드러났다고 해서 ‘바다가 몇 주 동안 이렇게 계속 빠지면 영국 해협에 물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고, 프랑스 사람들이 셰르부르에서 걸어올 것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바다가 줄어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니 아무도 그처럼 유치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복음이 무너지고 영원한 진리가 우리 땅에서 쫓겨날 것처럼 말하지 맙시다. 우리는 전능하신 주님을 섬깁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잊혔다고 느낀 때

설교자는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잊으신 것처럼 보인 때가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원수들이 일어나 승리하고 자랑하며 큰소리를 쳤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셨는가, 은혜 베푸시기를 잊으셨는가 하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설교자는 이런 말이 시편과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고 짚어 줍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그분의 계획은 계속 진행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예로 제시됩니다. 설교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정황만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원수들의 승리가 커 보일 때에도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요지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질문이 오늘 우리가 던지는 질문과 겹쳐 보인다고 적용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권합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8

설교 내 24–24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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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이 모든 일을 다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그 과정을 내버려 두신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잊으신 것처럼 보인 때가 얼마나 자주 있었습니까? 원수들이 일어나 승리하고 자랑하며 큰소리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자신도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셨는가?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를 잊으셨는가?’ 하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시편과 다른 곳에서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때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고 잊으신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성경 전체의 메시지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 예로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찰 때까지 어떤 일들이 허용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장면을 듭니다. 설교자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며, 그분이 행동하시는 때가 따로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그는 우리가 그 기다림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의 때에 관해 얼마쯤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적용합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원리는 이 위대한 계획과 목적이 있으며 지금도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8

설교 내 25–25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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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고 잊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러시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시듯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찰 때까지 어떤 일들이 허용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행동하실 것입니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에 나타난 국가와 교회의 혼동

설교자는 교회가 국가의 한 부서처럼 되어 국가에 굴종하고 정치가들의 언어로 말하는 모습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이 모습이 중세의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심지어 개신교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나타났다고 그는 안타까워합니다. 설교자는 교회를 국가의 영적인 측면을 맡는 기관처럼 여기는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그는 교회가 국가의 기관이 아니며, 국가가 교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할 권리도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큰 음녀의 모습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닌지 질문을 던집니다. 설교자는 이런 혼동이 신약성경의 중심 메시지를 철저히 부인하는 일이라고 경고합니다. 그에게 교회는 세상 나라에 속하지 않고 그 나라들 위에 서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8

설교 내 31–31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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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모습은 중세의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도 아주 여러 차례, 심지어 개신교 안에서도 나타났습니다. 교회를 그저 국가의 영적인 측면을 맡는 어떤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 자체의 중심 메시지를 철저히 부인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바리새인과 구별된 성도의 차이

설교자는 성도가 세상과 구별되었다고 말하면 바리새주의가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는 이 반론에 대해 두 태도의 차이를 분명히 밝힙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아주 선하고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성도는 자신이 절망적인 죄인임을 깨달았기에 구별되었다고 설교자는 말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합니다. 설교자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붙잡으시고 그들에게 행하셨으며 앞으로도 행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일은 마침내 성도가 온전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됩니다. 그는 이 차이를 통해 성도의 구별이 자기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점을 적용합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8

설교 내 52–52문단 · 예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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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바리새주의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을 따로 구별해 놓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만 관심이 있고 다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군요.’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것은 바리새주의가 아닙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아주 선하고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절망적인 죄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구별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에 비유함

설교자는 교회가 건물에 비유되고, 제국에 비유되며, 가족에 비유된다고 먼저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에베소서 5장에서 사도가 풀어 설명하는 또 하나의 비유를 소개합니다. 그 비유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신부라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처음에 읽은 요한계시록 19장에서도 이 말씀을 다시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위하여 신부를 준비하고 계시다고 설명합니다. 이 비유 안에서 교회의 모습은 장차 혼인 잔치에서 신랑을 맞이할 신부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설교자는 청중이 이 모습을 조금이라도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그 영광스러운 날을 위해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고 적용합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8

설교 내 55–55문단 · 예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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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위하여 신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건물에 비유되고, 제국에 비유되며, 가족에 비유됩니다. 그러나 사도가 바로 이 서신의 5장에서 풀어 설명하는 또 하나의 비유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신부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제가 읽어 드린 요한계시록 19장에서도 이 말씀을 다시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이것을 보고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식민 공동체라는 비유

설교자는 휴전 기념일에 죽음과 모든 것의 끝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본향을 떠올려 보자고 말합니다. 그는 정치가들, 국제회의, 수소폭탄,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 같은 일들에서 잠시 생각을 멈추고 위를 바라보자고 권합니다. 그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모든 사람과 함께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설교자는 다른 번역을 따르면 우리는 하늘의 식민 공동체라고 설명합니다. 이 설명으로 그는 성도가 땅의 일보다 하늘에 속한 자신의 지위를 기억해야 한다고 상기시킵니다. 그에게 이것이 우리의 지위이며, 우리는 어린양의 신부라는 사실을 붙들어야 합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 2026-10-28

설교 내 56–56문단 · 예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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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치가들과 국제회의와 수소폭탄과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 그 밖의 이런저런 일에 대한 생각을 멈추십시오. 어떤 의미에서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위를 바라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다른 번역을 따르자면 우리는 하늘의 식민 공동체입니다.

전도사 시절 화평회와 변유복 전도사의 최선

설교자는 전도사 시절의 경험을 먼저 꺼냅니다.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4천 명이 모이는 교회에 갔을 때, 곁에서 손을 잡아 주거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도사 네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한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화평회'를 가졌습니다. 규칙이나 격식은 없었고, 목회와 가정, 생활의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해결된 것은 기억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었고, 피곤한 사람은 먼저 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자유로운 모임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이어서 같은 모임에 있던 분이 광양에서 은퇴한 뒤, 평촌교회에 부임했던 변유복 전도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변 전도사는 교회에 사람이 나오든 말든 동네를 찾아다니며 인사했고, 열매가 뚜렷하지 않아도 열심히 한 만큼은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그 말에 백 번 옳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잘 실천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를 적용합니다.

노우호 · 2026-10-28

설교 내 7–8문단 · 예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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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도사 시절,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전도사로 4천 명이 모이는 교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 있을 때 제 손을 잡아 주는 사람도 없고, 곁에서 충고나 지도나 어드바이스를 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배울 만한 단임 목사 밑에서 훈련받은 것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전적으로 맡겨졌습니다. 뭘 알아야 뭘 하지, 그래서 전도사 네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한 사람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함께 지냈습니다. 이런저런 사역의 여담을 나누고, 고민도 나누고, 해결되든 말든 그 고민을 털어놓고, 나름대로 해결점을 얻곤 했습니다. 네 사람이 모여서 화평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화평회'라고 불렀는데, 특별한 규칙이나 격식도 없었습니다. 너무 외롭고 서로 부족하니까 만나서 목회의 고민, 가정의 고민, 생활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딱히 해결된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었어요. 네 사람 모두 그랬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그 모임이 없어졌는데, 지금도 그때 모임에서 개인적인 목회의 고충을 다 털어놓고, 이제 그만 누워서 자자, 이제 그만합시다 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피곤한 사람은 먼저 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더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참 자유로운 모임이었습니다. 그때 거기 있던 분이 나중에 광양에 가서 은퇴하셨는데, 대원사를 가다 보면 반머리를 쭉 가고, 반머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면 대원로가 나옵니다. 그 삼거리에 교회가 있어요. 평촌교회라는 교회인데, 거기에 부임해 온 전도사가 변유복 전도사라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는 것도 많고 기도도 넓었고, 또 열심이었어요. 특히 이 사람은 교회에 누가 나오든 말든, 동네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부지런히 찾아다녔습니다. 평촌에는 동네가 크지 않아서 한두 개, 세 개 정도의 작은 동네가 있는데, 그곳을 찾아가 인사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때 그분이 한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대학생을 전도도 잘하지 못하고, 그렇게 다닌다고 열매가 있고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그렇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야 되지 않느냐, 최선을 다해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열매도 없고 전도가 잘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 만큼은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과가 어떻든 일단 계속 집 저 집을 찾아다니고 만나며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대인 공포증이 깨진 경험

설교자는 자신에게 대인 공포증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려서부터 낯선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기 어려웠고, 군에 다녀오고 목회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고 합니다. 지리산 산골 출신이라 산청읍만 가도 겁이 났는데, 군에서 똑같은 군복을 입히고 머리를 빡빡 깎자 누구나 비슷해 보였다고 말합니다. 이등병 계급장을 단 사람은 아무리 잘나가던 사람이라도 우스워 보이고, 병장이 되면 무엇을 해도 폼이 난다는 군대의 모습을 재치 있게 묘사합니다. 그렇게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지만, 설교자는 변유복 전도사의 '잘하지 못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여전히 머리에 남아 있다고 나눕니다. 그 말을 알고도 실천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습니다.

노우호 · 2026-10-28

설교 내 9–9문단 · 예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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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말을 듣고 백 번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는 그것을 잘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왜 잘하지 못하는지 살펴보니, 제가 보기보다 대인 공포증이 있어서, 낯선 사람과 서슴없이 이런 대화를 잘 하지 못합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습관이 좀 있었는데, 군에 다녀와서 많이 나아졌고, 목회를 하면서도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사람을 괜히 두려워할 것도 없는데, 군에 가서 그것이 많이 깨졌어요. 군에 가서 보니 저는 지리산 산골 촌사람이라서, 산청읍만 가도 겁이 나고 만나는 사람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군에 가서 똑같은 군복을 입히고 머리를 다 빡빡 깎아 버리니, 그놈이 그놈이고 네놈이나 내 놈이나 똑같아서 별다른 사람이 없었어요. 여러분,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머리를 빡빡 깎고 이등병 계급장 한 개를 달아 놓으면, 세상에 그런 바보가 없습니다. 다 쪼다가 되는 거지요. 그때 군대는 3년을 복무했으니, 3년쯤 된 사람들은 보통 병장이 되는데, 병장들은 뭘 해도 폼이 나요. 욕을 한마디 해도 아주 폼나게 합니다. 쫄병은 아무리 잘해도 쪼다가 되는 거죠. 그래서 군대에서 대인 공포증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 변유복 전도사는 나중에 목사가 되었는데, 이분의 말이 늘 잊혀지지 않습니다. 잘하지는 못해도 최선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그 말이 머리에 늘 남아 있어요.

지미 카터와 리코버 제독의 'Why not the best?'

설교자는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젊은 시절 일화를 소개합니다. 카터는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타게 되었고, 새파란 소위 시절 원자력 동력 배의 첫 제독이자 원자력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먼 리코버 제독에게 면접을 받았습니다. 제독은 사관학교 시절 학급 성적을 물으며 서류를 넘겨 보았고, 카터는 나름 노력했다고 자신 있게 답했습니다. 그때 리코버 제독은 'Did you always do your best?', 즉 항상 최선을 다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카터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고 대답했고, 제독은 차갑고 따끔하게 'Why not best?',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카터는 얼굴에 불이 붙는 것 같았고, 이후 그 말이 마음에 꽂혀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이 한마디가 카터의 일생을 좌우했다고 강조하며, 정곡을 찌르는 말 한마디의 힘을 적용합니다. 카터가 남긴 책 『Why Not the Best』도 이 일화와 연결해 소개합니다.

노우호 · 2026-10-28

설교 내 10–13문단 · 예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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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좀 보실까요? 여기 모니터가 안 나오는데. 그 내용은 무슨 이야기냐 하면, 여러분 미국 대통령 중에 잘 아시는 지미 카터라는 사람이 있지요. 카터는 조지아주 출신인데, 자기 집에 어마어마한 땅콩 농장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미국의 대통령까지 됐을까요? 어떻게 조지아주의 땅콩 농장 하던 사람이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었단 말인가요? 그 일생 중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젊었을 때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때 배의 제독이 있었는데, 제독이라면 높은 사람이지요. 그 제독이 누구냐면 하이먼 리코버라는 제독입니다. 사진에 나오는 사람인데, 날카롭게 생겼죠. 네. 그 하이먼 리코버는 얼마나 유명하냐면, 원자력을 동력으로 하는 배의 첫 번째 제독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자력 해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과 지미 카터가 새파란 소위였을 때 면접을 갔어요. 부대에 배치되자마자 신고하고 면접을 하는데, 면접관은 하이먼 리코버 제독이었습니다. 제독이 카터에게 해군 사관학교 시절 학급 성적이 어땠는지 물으면서 서류를 넘겨 보며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카터는 사관학교 시절에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정도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그때 하이먼 리코버 제독이 카터를 많이 바라보더니, Did you always do your best? 당신은 항상 최선을 다했는가? 하고 물었다는 거예요. 카터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아닙니다, 항상 최선을 다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리코버 제독이 따끔하고 차갑게 카터를 바라보며 Why not best?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그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물러 나오는데, 카터는 얼굴에 불이 붙는 것 같았습니다. 왜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나서 서류를 쭉 보니, 리코버 제독이 뭔가를 본 것입니다. 이 사람이 볼 때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대충 해도 어떤 사람이 남다른 데가 있는지, 어떤 면을 보았던지 간에, 그 최선을 다했는가 하고 물었는데, 카터가 아닙니다, 그렇게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니, 제독이 아주 단호하게 Why not best?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고, 왜 최선을 다하자는 거야? 하고 다시 물었던 것입니다. 하이 말이 그냥 마음에 팍 꽂혀 가지고, 그날부터는 그날 이후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그렇게 했더니 어, 배 각간에게 주인이 된 거야. 나중에.